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72
시로네의 인사에, 배에서 내리던 아리아가 이빨을 깨물었다.
‘개 같은 자식. 호구인 줄 알았더니 빠꼼이였어.’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플레이였다.
시로네 일행이 상자에 몸을 숨기자 선원들이 뚜껑을 덮고 못질을 했다.
“10분 후에 출발이야.”
선원이 나가자 페나가 볼멘소리를 했다.
“답답해. 꼭 이렇게 해야 하는 거야? 왕도 입성으로 가도 충분하잖아.”
이루키가 말했다.
“이것도 매수 프로그램의 일종일 수도. 어쨌든 어둠의 조직을 만나려면 선장이 곁에 있어야 하니.”
부저 소리가 들리고 배가 잠시 파도에 출렁이는 게 느껴졌다.
다음 순간 시로네 일행의 눈앞에 오색찬란한 빛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공간 이동.’
빛이 사라지자 시로네는 목적지에 왔음을 알고 일행에게 물었다.
“다들 살았어?”
“어. 그런데 계속 이렇게 있어야 해? 부수고 나가면 안 되나?”
“모르겠어. 하지만 밀항이라고 했으니…….”
그때 문이 열리고 인부들이 짐을 내리기 시작했다.
“조용히 있어. 걸리면 끝장이니까.”
코르코라스에서와 달리 선원들의 목소리에는 긴장한 빛이 역력했다.
모든 짐을 내린 인부들은 시로네 일행이 숨은 상자를 따로 수레에 실어 항구의 으슥한 곳으로 옮겼다.
못을 뽑은 인부가 상자를 두 번 두드렸다.
“내일 아침.”
암호 같은 말을 남겨 두고 떠나자 시로네 일행은 천천히 뚜껑을 열었다.
네이드가 투덜거렸다.
“으, 비려 죽겠네. 생선이라도 담았었나?”
저마다 짧은 여행기를 토로하는 가운데 오직 페나만이 말이 없었다.
“왜 그래요?”
“여기가…… 파르메라고?”
루키를 제외하면 멜키두를 도는 플레이어가 가장 많이 찾는 곳이 수도였고, 그녀 또한 다양한 이유로 자주 머물렀지만 항구는 처음이었다.
“아니, 항구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어. 다른 플레이어에게 들은 적도 없고. 우리 정말 제대로 온 거 맞아?”
“아마도.”
상자에서 나온 시로네가 말했다.
“밀항으로만 도착할 수 있는 구역일 거예요. 즉, 여기는 관리자들의 세계라는 거죠. 그럼 페나 씨는 파르메에서 어디까지 가 봤어요?”
“전부 다. 수도의 지리는 빠삭하게 알고 있지.”
뭔가 떠오른 그녀가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멜키두의 모든 공간은 칸으로 막혀 있어. 알지? 보이지 않는 벽. 하지만 딱 한 군데는 달라. 왕성의 성벽 말이야. 나는 그냥 배경인 줄 알았는데…….”
“왕성 뒤편에 항구가 있을 수도 있다는 거군요.”
시로네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다에는 어둠이 짙게 깔렸고 정박된 선박 몇 척에 불이 켜져 있었다.
“여기는 시스템 중간층일 거야.”
시로네가 결론을 내렸다.
“멜키두에 필요한 온갖 물자들이 이 중간층을 통해 움직이고 있는 거지. 그렇다고 생각하면, 밀항을 통해 어떤 칸이든 갈 수 있는 것 같아.”
이루키가 말했다.
“흠, 결국 외부 트랙과 내부 트랙은 동떨어진 공간이 아니었던 거로군. 마을에 있는 관청 건물, 그 문 안쪽의 공간이 내부 트랙이었던 거지. 공간이 아니라 권한의 층위라고 할까?”
에덴이 말했다.
“만약 커티스 씨가 왕성이 아닌 다른 도시의 형무소에 갇혔으면 우리도 관청의 안쪽에 도착했을 거야. 관리자들의 숙소랄지, 아이템을 쌓아 두는 창고랄지.”
네이드가 말했다.
“그건 정말 위험하잖아? 게다가 여긴 가장 물자 공급이 많은 수도인데. 아이템을 훔칠 수도 있고, 고위 관리도 많을 거란 말이지.”
시로네가 말했다.
“그래. 어떤 범죄도 무죄가 되는 멜키두에서 또다시 범죄를 저지른 거야, 우리는.”
“걸리는 순간 끝장이겠군.”
감옥에 갇히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터였다.
네이드가 웃음살을 볼록였다.
“하지만 아침까지는 시간이 좀 있잖아?”
“아니, 그게 무슨…….”
페나가 멍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이루키가 피식 웃었다.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아직 출시되지 않은 아이템이나, 검열에 걸려 폐기된 것들도 있을 테니까. 어때, 시로네?”
“음.”
예상보다 크라임 포인트가 많이 들어갈 것 같았기에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을 듯했으나, 사실은 시스템의 중간층을 살펴보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다.
“좋아. 아침까지만 해 보자.”
세 사람이 자리를 벗어나자 페나는 겁에 질렸다.
“야, 진짜 할 거야? 그러다가 걸리면?”
“소용없어요. 학창 시절 때부터 유명했으니까.”
에덴이 뒤를 따르며 고개를 저었다.
“한번 꽂히면 끝장을 보거든요.”
밀항자 5명이 항구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꿈속에서 시간이란 정보의 질과 양에 의해 결정되고, 미로와 이미르의 전투 속에서 시로네도 전승몽의 거대한 데이터를 받아들였다.
“흡!”
요라한을 구하기 위해 강으로 들어간 아르망은 사력을 다해 헤엄쳤다.
소세계창유가 요라한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 주었으나 강한 물살로 인해 이미 상당히 멀어진 상태였다.
‘인간은 오래 숨을 참을 수 없어.’
거기에 더해 물에 떨어진 충격으로 산소를 대부분 소비했을 테니 시간이 촉박했다.
‘강아, 그를 나에게 줘.’
강의 중심부가 역류하더니 요라한의 육체가 아르망의 품에 안겼다.
빠르게 위로 올라간 그녀가 숨을 토해 내며 요라한을 끌어냈다.
“흐윽!”
소세계창유로 연결되는 순간 아르망은 무호흡의 고통에 인상을 찡그렸다.
‘죽어 가고 있어.’
아직 그에게 하지 못한 말을 떠올리며, 아르망은 인공호흡을 시도했다.
무생물과 동화되는 게 훨씬 편한 그녀였기에 요라한이 의식을 잃은 건 오히려 다행이었다.
폐가 주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펌프질을 하면서 많은 양의 물을 토해 냈다.
그리고 다시 입을 맞춘 순간.
“컥! 컥!”
요라한이 기침을 하며 상체를 들썩거렸다.
“아…….”
점차 선명해지는 시야에 아르망의 얼굴이 보였다.
‘예쁘다.’
이마에서 짝 소리가 나며 눈앞에 별이 번뜩였다.
“아야! 왜 때려!”
몸을 일으킬 힘도 없는 그가 소리치자 아르망이 눈에 힘을 주었다.
“하여튼 인간은! 죽을 걸 살려 줬더니 처음 한다는 생각이 고작 그런 거야?”
“아니, 뭐…….”
그런 생각이 드는 걸 어쩌란 말인가?
“아무튼 살았으면 빨리 일어나.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야 하니까.”
딱히 어둠은 두렵지 않지만 요라한과 밤을 보내면 안 될 것 같다는 본능적인 느낌이었다.
“윽!”
몸을 반쯤 일으키던 요라한이 다시 쓰러졌다.
“미안. 당장은 무리야. 일어설 힘도 없다고.”
요라한의 상태를 짐작하는 아르망은 체념의 한숨을 내쉬었다.
의식이 없는 상황에서 오장육부를 돌렸기에 아마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일 터였다.
“하아, 진짜.”
그로부터 2시간 뒤, 해가 완전히 떨어진 강 옆에서 모닥불이 타올랐다.
아르망이 잡아 온 생선을 요라한이 손질해서 나뭇가지에 끼웠다.
“자, 됐다.”
젖은 옷을 말리는 중이라 아르망은 모포 한 장으로 몸을 가린 채 구석에 앉아 있었다.
“난 불이 싫어.”
화족이라면 당연했다.
‘하긴, 육식성이라도 생식을 했었지.’
반면 요라한은 인간이었기에, 생선을 굽는 걸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좀 가까이 와. 몸을 녹여야지.”
아르망이 의심쩍은 눈길을 보내자 요라한은 지레 겁을 먹었다.
“아니, 감기 걸릴까 봐. 미안.”
짧은 순간이지만 소세계창유로 서로의 마음을 공유한 그들이었다.
‘어색해서 미치겠네.’
마음을 들킨 이상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없는 노릇.
노릇노릇하게 타들어 가는 생선만이 그가 시선을 둘 곳이었다.
“응?”
발걸음 소리에 고개를 들자 아르망이 모포를 붙잡고 걸어오고 있었다.
“맛있겠네. 먹자.”
“…….”
모닥불에 비친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요라한은 깨달았다.
‘이 사람이다.’
그의 마음에도 꽃이 피고 있었다.
마음과 오류 (2)
“흐음.”
아르망이 의심쩍은 표정을 짓자 요라한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래, 먹자. 먹어야지.”
이름 모를 물고기였다.
물론 화족에게는 친숙한 종이지만, 아르망은 굳이 그것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아마도 그녀는 불이 가져다주는 맛의 마법을 느끼고 있을 테지만, 결코 평가하지 않았다.
조촐한 식사가 끝나고 둘은 모닥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뭘 하고 싶은 거야?”
아르망이 물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했잖아. 화족을 교화시켜서 싸울 생각이야?”
“싸운다고…….”
요라한은 다시 무릎에 턱을 기댔다.
“폭력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해. 많은 사상가들이 전쟁을 통해 평화를 찾으려고 하지. 어떤 의미로는 맞을 거야. 하지만 결국 자신의 왕국, 자신의 도시, 자신의 가족에게만 해당되는 말이야. 전체로 보면, 그들의 논리는 절반을 희생시켜 절반을 살린다는 말과 다르지 않아.”
“그게 어때서?”
이제는 요라한을 신뢰하기에 아르망도 속에 담아 둔 말을 내뱉었다.
“그렇게 살아가는 거잖아. 지금 우리는 뭐가 다르지? 먹기 위해서는 다른 무언가를 죽여야 해.”
요라한이 물었다.
“너는 싸우고 싶은 거야?”
“화족은 많은 핍박을 받았어. 단지 수동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간은 우리를 가축 취급했다고. 솔직히 말하면…… 난 인간이 아닌 화족에게 더 화가 난 것일지도 몰라. 아무것도 지킬 수 없는 힘 따위, 너무나 하찮을 뿐이잖아.”
“그렇지 않아.”
아르망이 고개를 들었을 때 요라한의 눈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서로의 마음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야. 나는 인간의 미래가 화족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마을에 남은 거고.”
과연 그런가?
아르망이 생각에 잠긴 가운데 요라한이 말을 이었다.
“힘의 논리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어. 인간은 그저 두려운 거야. 더 강한 자에게 잡아먹힐까 봐. 화족처럼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 두려움은 사라지고 진정한 평화가 올 거야. 강한 건 너희들이라고.”
아르망이 미소 지었다.
“그래, 네 말이 옳을 수도 있겠다.”
잠시 서로의 시선이 교차되고, 요라한이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저기…….”
“하지만.”
갑자기 덧붙이는 말에 요라한은 사레가 들렸다.
“컥! 컥!”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르망이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이대로 당할 수는 없어. 너는 잘 모르겠지만 화족은 인간에게 정말로 심한 핍박을 받았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면 너도 그들을 용서할 수 없을 거야.”
“……그래, 나는 모르지.”
타인의 고통을.
“하지만 거기서부터 시작할 거야. 화족과 인간이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거 말이야.”
어느덧 모닥불이 약해지자 요라한이 홀가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자자.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니까. 마을 사람들이 걱정할 거야.”
물가를 피해 절벽으로 들어간 요라한은 아르망의 자리를 피해 모포를 깔았다.
굵은 자갈에 몸이 배겼지만 오늘 느낀 설렘이 잠자리를 구름처럼 느끼게 했다.
‘노트를 가져와야 했는데. 내일 돌아가면 바로 써야겠다.’
깨달은 내용을 잊지 않기 위해 머릿속으로 말을 되풀이하는 그때 인기척이 느껴졌다.
“……왜?”
놀란 요라한이 일어나려고 하자 아르망이 그의 가슴을 눌렀다.
“알고 있어, 네 마음.”
“…….”
입은 열리지 않고, 심장만이 거칠게 뛰었다.
“이번에는 내 마음을 보여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