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74
“어디에 있든 예술적으로 살고 있을 겁니다.”
***
도시의 이름은 모른다.
고향을 떠난 뒤로 기타루맨에게는 모든 곳이 낯선 세계일 뿐이었다.
이름 모를 여관방에서, 그는 벽을 타고 전해지는 남녀의 숨소리를 들었다.
그중의 하나는 기타루맨의 전속 가수인 타이라 린의 목소리였다.
“…….”
세계 100대 위험인물인 그들이 여관비가 없어 매음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는 것.
‘마음 내키는 대로.’
마치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한편 린은 좀 짜증이 났다.
“빨리 싸.”
동안의 얼굴에 왜소한 몸이지만 실제 그녀의 나이는 서른 줄에 가까웠다.
거사를 치른 남자가 물었다.
“너 괜찮은데? 여기 소속이야?”
“아니.”
린이 상의 단추를 채우며 말했다.
“그런 거 없어. 내일 공연 끝나면 이 도시도 뜰 거야. 그러니 아무것도 묻지 마.”
“공연? 무슨 공연?”
그녀는 시간과 장소가 적힌 티켓을 건넸다.
“오고 싶으면 와.”
“…….”
멍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 그가 옷 속에 티켓을 챙기며 다시 물었다.
“가수였어? 그런데 왜 이런 일을……. 아니, 그보다 내가 가도 괜찮은 거야?”
린이 피식 웃었다.
“오고 가는 거야 당신 자유지. 나는 그냥 그곳에서 노래를 부를 뿐이야.”
화대를 챙긴 그녀는 작별 인사조차 없이 문을 나서 옆방으로 들어갔다.
“다녀왔어.”
기타루맨, 로베 란스틴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새로운 곡을 썼어.”
화대를 테이블에 놓아둔 린이 침대에 털썩 앉으며 악보를 차례대로 넘겼다.
“괜찮네.”
기타루맨은 다시 악기를 연주했다.
음악적 견해 차이로 4년이나 대화가 없었지만 화해한 뒤에도 말수는 적었다.
감정병이 발발하지만 않았어도 기타루맨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을 것이다.
‘외골수. 병신.’
로베 란스틴은 린이 아는 그 누구보다도 예술적 고집이 강한 인간이었다.
“마음에 들어.”
사실 그래서 따라다니는 거지만.
“들려줄게.”
란스틴은 오브제 로 조금 전에 작업을 끝낸 악보를 연주했다.
아마도 기타를 뜻하는 이름일 ‘기타루’가 모든 악기의 소리를 동시에 냈다.
린이 허밍을 섞으며 노래를 불렀다.
관객이 듣는다면 눈살을 찌푸릴 가사가 처연한 멜로디를 타고 울려 퍼졌다.
다음 날 오후.
광장에 도착한 란스틴과 린은 대관료를 지불하고 소극장을 1시간 정도 빌렸다.
딱히 세션이 필요치 않기에 준비는 빨랐고, 사람들이 제법 모여들었다.
대부분 2주 동안 린과 인연을 맺은 자들이었다.
“응?”
유일하게 그녀의 진면목을 알아보는 사람은 한때 함께 예술대학을 다녔던 작곡가, 킴슬러였다.
“타이라 린?”
어쩌면 첫사랑.
하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린을 좋아하는 학생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았다.
초월적인 동안은 독특하지만, 그녀의 노래는 모든 예인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정말 노래 잘했는데.’
그녀가 학교를 그만둔 이유는 소문으로 접했지만, 듣고도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야만적인 사회였으니까.’
세상 독특한 인간들을 다 모아 놓은 곳이었으니 그만큼 사건 사고도 많았다.
“안녕하세요. 노래할게요.”
간단히 인사한 린이 마이크를 잡자 란스틴이 현란한 연주를 시작했다.
“휘휘!”
휘파람을 불며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남자들의 모습에 킴슬러는 입맛을 다셨다.
퇴폐적이고 선정적인 가사가 들려오자 환호성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녀의 음성 하나에, 란스틴의 손짓 한 번에 광장의 모두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저 애야?”
“그렇다니까. 어제 내가…….”
간주 중에 관객들이 수군거리는 대화를 들은 킴슬러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게 무슨 말이야?’
진한 음담패설이 길게 이어지자, 결국 화를 참지 못한 그가 소리쳤다.
“이봐요, 모함도 적당히 하죠? 그런 식으로 가수를 폄하하면 당신들에게 도움이 됩니까?”
“당신은 뭐야?”
“저 여자가 누군지 알아요? 자꾸 이런 식이면 고소당할 수도 있어요.”
“푸하하하! 저 여자가 누군데? 내가 저 애랑…….”
린이 노래했다.
“73번가를 걸어가는 저 여자에게 키스할 거야. 그럼 이 엿 같은 기분도 사라질까?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어. 내가 망친 게 아니니까.”
자초지종을 들은 킴슬러는 정신이 멍했다.
‘그럴 리가 없어.’
이토록 멋진 퍼포먼스와 노래 실력을 가진 그녀가 삶을 망칠 이유가 무엇인가?
공연이 끝나자 관객이 모여들었다.
물론 대부분은 나쁜 의도로 남아 있는 것이겠지만 린은 모두에게 깍듯했다.
‘내 추억을 망치지 마.’
학창 시절 차마 눈조차 마주칠 수 없었던 그녀가 저런 희롱을 당하다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몇 번의 농담과 몇 번의 스킨십이 끝나고 린은 씩씩하게 장비를 챙겼다.
“오늘은 그래도 많이 왔어. 그렇지?”
란스틴은 말이 없었다.
“뭐야? 뭐가 또 그렇게 꿀꿀해? 오늘 별로였어? 실수한 것도 없었잖아.”
“아니, 좋았어.”
단지 예전의 아픔이 떠올랐을 뿐이다.
“넌 좋은 재능을 가지고 있어. 아마 세상에 나가면 모두가 너를 인정해 줄 거야.”
린은 코웃음을 쳤다.
“뭐래, 병신이…….”
그 세상이 끔찍하게 싫어서, 진저리가 쳐질 정도로 혐오스러워서 떠난 것이다.
“린.”
킴슬러가 다가왔다.
“너, 타이라 린이지? 나야, 나.”
“누구세요?”
린은 당연히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아, 그게, 동창인데. 메리어스 예술학교 작곡과에 다녔었거든. 공연 때 인사도 했고…….”
메리어스 예술학교는 그녀에게 아픈 이름이지만, 이미 그녀는 세상 밖에 있었다.
“아하, 간만에 들어 보네. 반갑다. 잘 지내지?”
린의 여유로운 태도에 킴슬러가 울컥한 이유 또한 자격지심의 발로였다.
“어. 지금은 국립 예술학원 원장으로 있어. 새 악보를 구상 중이라 잠시 나온 거야.”
자신도 모르게 뒤틀린 말을 내뱉었지만 린은 동창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우와, 멋지다. 대단한데?”
“너는 좀 어때? 이런 곳에서 공연하지 말고 나랑 같이 갈래? 내가 소개해 줄 수 있어.”
“응?”
린이 무슨 말이냐는 듯 쳐다보자 킴슬러가 의기양양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도와주겠다고. 어차피 지금 이렇게 사는 것보다는 훨씬 낫잖아. 안 그래?”
“아하, 들었구나?”
린은 자유롭고 싶을 뿐이다.
자유 외에 가진 게 없는데도, 어째서 사람들은 그 자유마저 빼앗으려 하는 것일까?
“미안. 오늘부로 이 도시에서 공연은 끝이거든. 다른 도시에 오면 말해. 그때는 상대해 줄게.”
“무, 무슨 소리야? 나는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니라, 진정으로 너를 걱정해서…….”
“호호!”
걱정이라는 말의 이면에 담겨 있는 조롱과 무시, 그것으로 얻는 안도감을 그녀는 알고 있다.
린이 혀를 내밀었다.
“우리를 광대 취급하는 대중보다, 너희들이 훨씬 더 나쁜 놈들이거든.”
인생을 걸 용기도 없으면서.
“잘 가!”
얼굴이 붉어진 킴슬러를 뒤로하고, 린은 란스틴의 팔짱을 끼고 멀어졌다.
그렇게 살아간다.
모두가 그들을 한심하다고 손가락질해도, 동정이란 가면을 쓰고 경멸해도.
이것이 우리의 세상이니까.
‘자유로우니까.’
세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렇게 세상을 조롱하며 살아가는 광대인 것이다.
마음과 오류 (4)
***
아포칼립스.
채굴 팀의 판단은 옳았다.
건물의 지하로 내려가자 수십 미터가 넘는 높이의 메인 시스템이 대공동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게 뭐야?”
멍하니 입을 벌린 마르샤는 천장까지 닿아 있는 기둥을 올려다보았다.
이 세계의 모든 신호가 합쳐진 듯한 선명한 백광을 심장박동처럼 뿜어내고 있었다.
“빨리해.”
오퍼레이터가 들어온 입구를 돌아보며 뒤로 물러섰다.
아직 제트는 보이지 않지만 수많은 안드로이드가 내려오고 있다는 것은 진동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이 기어의 관리자 막대 사탕 마크가 코드를 해킹하는 카드를 기둥에 대었다.
홀로그램이 펼쳐지자 눈으로 확인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코드가 질주했다.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던 막대 사탕 마크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역시 이건 해독할 수 없어요. 이 세계의 언어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세분화되어 있는 것 같아요.”
“무슨 소리야? 세분화라니?”
“오해의 여지가 아예 없다는 거예요. 코드가 도달할 수 있는 최종 단계일 테지만, 그런 것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다고요.”
넘버세븐이 말했다.
“꼭 언어를 알아야 시스템에 침투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개의 언어를 몰라도 개를 놀라게 할 수는 있는 것처럼.”
“그것도 개라는 개념을 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그럼 이게 뭐라고 생각하는데요?”
좌중이 침묵하자 막대 사탕이 말을 이었다.
“넘버세븐 형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에요. 다만 이 세계의 기본적인 코드표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해요. 그래야 데이터를 만들 수 있거든요.”
마르샤가 물었다.
“코드표는 어디서 얻는데?”
“가장 쉬운 방법은 시스템을 리부팅시키는 거예요. 그럼 어느 정도 해독이 가능해요. 외국어를 몰라도 외국인이 처음으로 하는 말이 ‘안녕하세요’일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과 같죠.”
오퍼레이터가 물었다.
“그 외국인이 이상한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 ‘안녕하세요’를 하지 않는 경우에는?”
“그때는 방법이 없어요. 하지만 제 예상이 맞는다면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여긴 이상한 나라가 아니니까요. 단지…….”
막대 사탕은 기둥의 꼭대기를 올려다보았다.
“우리들의 미래일 뿐이죠.”
마르샤가 물었다.
“이걸 부술까? 그럼 방법이 생길 수도.”
프로그래머에게는 황당한 소리였으나 솔직히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었다.
“할 수 있다면 진즉 했죠. 밖에서 확인했잖아요. 어떤 공격도 피해를 입히지 못한다고요.”
오퍼레이터가 말했다.
“온다.”
승강기가 지하에 도착하고, 투명한 유리벽 안에 바글거리는 제트가 보였다.
‘시로네. 어디서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가급적 빨리해 주기를 바랐다.
***
“차 좀 드시죠.”
옥상에서 만난 제트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간 시로네는 방에서 접대를 받았다.
“아, 감사합니다.”
안드로이드가 차를 끓인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방의 풍경은 더욱 놀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