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76
“신을 만나고 싶으십니까?”
시로네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제트는 고승처럼 경건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신을 만나려면 세계의 장막을 넘어야 합니다. 즉, 영원히 돌아올 수 없다는 뜻입니다.”
“…….”
학창 시절, 미로의 시공을 통해 현실로 돌아온 적이 있었다.
또한 하이 기어에서도 신의 사고를 모방해 언더 코더로 복귀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현실이 바깥 세계의 위상이었기에 가능했던 일.
‘이번에는 달라. 현실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반입자의 신호를 알아야 해.’
제트가 본론을 꺼냈다.
“제가 알려 드리겠습니다.”
“네? 하지만 어떻게……?”
“저는 메인 시스템에서 벗어난 오류니까요. 권한을 넘을 수는 없지만 열람은 가능합니다. 코어에 접속해서 타키온에 대한 구결을 전해 줄 수 있을 겁니다.”
모든 존재를 착각으로 만들어 버리는 신의 능력.
“구결만으로 깨달음을 얻기는 힘들겠지만 신을 만나려면 반드시 필요할 거예요. 이 상태로 바깥 세계로 가 봤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입니다.”
나네처럼.
“물론 저도 마찬가지죠. 바깥 세계를 열람하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오류로, 저는 곧 폐기될 겁니다.”
시로네가 다시 물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죠? 당신은 이 세계를 살아가잖아요.”
“글쎄요. 오류이기 때문인지.”
제트는 창밖을 돌아보았다.
“바깥에 있는 수많은 ‘나’와 이곳의 ‘나’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 기적 같은 오류를, 다시 오지 않을 이 느낌을…….”
그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에게 전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시로네는 울컥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당신은…….”
차마 내뱉고 싶지 않은 말이었으나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일이었다.
“죽는 거잖아요.”
바깥의 제트하고는 다르다.
마음을 깨달아 버린 유일무이한 ‘나’의 소멸은, 인간의 죽음과 한 치의 다름도 없을 것이기에.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한쪽 손을 무릎 위에 올린 제트는 반장을 하며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 시로네는 애써 마음을 추스르며 대답했다.
“네.”
그리고 제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기회는 한 번뿐일 겁니다.”
정적이 이어지고, 제트의 안면 스크린에 붉은 범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데이터 출력.”
***
이카엘은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
‘움직인다. 우리가 율법을 이기고 있어.’
지금 모인 7명의 대천사는 초창기 우주를 탄생시킨 거의 모든 개념이었다.
‘한 걸음만 더.’
아타락시아가 찬란하게 펼쳐지고.
‘증!’
정신체가 타오르는 순간 여태까지 뒤틀렸던 율법이 급격히 수복되었다.
그런 느낌이었다.
***
제트는 엄청난 속도로, 고함에 가까운 일갈로 데이터를 출력했다.
‘놓치면 안 돼. 하나의 음절도.’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시로네는 혼미해지는 정신을 붙잡았다.
막대한 엔트로피, 정보의 질을 따지면 우주의 설계도와 맞먹는 정도였다.
절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흐으으으.”
제트의 목소리가 딱히 거슬리지는 않았지만 음절은 여태까지 어떤 문명도 만들어 내지 못한 기괴한 소리였다.
‘모르겠어.’
울티마의 경지에 오른 시로네는 모든 신호를 해독할 수 있기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형태가 아닌 의미였다.
‘전혀 다른 개념이야. 심지어 인간이 기억할 수 있는 성질조차 아니야.’
신이 어떻게 사고하는지 알지 못했더라면 1초 뒤에 증발했을 정보들이 끝없이 밀려들었다.
“아…….”
금방이라도 의식을 잃을 것처럼 동공이 위로 말려드는 그때 제트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끝났다!’
황급히 정신을 차린 시로네는 여태까지 들은 구결을 사고의 속도로 반복했다.
1번, 2번, 23번, 328번.
그렇게 음절의 형태를 통째로 뇌에 새긴 시로네는 고개를 들어 제트를 보았다.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평온해 보였다.
“잘 전해졌나요?”
시로네는 허리를 세우고 답했다.
“네. 전부.”
“다행이군요. 즐거웠습니다.”
작별 인사를 들은 시로네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떠나면 안 돼요. 저와 같이 신호를 분석해야죠. 다행히 메인 시스템에서 아무런…….”
그 순간 굉음과 함께 천장이 무너졌다.
“위험해요!”
제트를 끌어안고 바닥을 구른 시로네는 발아래 떨어진 바위를 돌아보았다.
‘엄청난 크기.’
율법의 세계가 뒤흔들린다는 것은 이카엘이 해냈다는 뜻이었다.
시로네는 다시 제트를 살폈다.
메인 시스템이 다운되면서 그의 기체에도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정신, 정신 차려요.”
모든 제트가 같은 상태일 테지만, 시로네는 방을 나설 수 없었다.
“고맙다는 말도 못 했단 말이에요.”
***
“뭐야? 뭐냐고?”
마르샤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오퍼레이터와 사투를 벌이던 제트들이 동시에 쓰러지고 거대한 기둥에도 빛이 사라졌다.
“됐다! 시로네 형이 해낸 거예요.”
자초지종은 복잡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할 수 있어? 이제 할 수 있는 거지?”
대답할 여유도 없다는 듯 막대 사탕 마크는 언더 코더의 인터페이스를 장착했다.
‘코드표만 알면 돼.’
자체 동력으로 가동되는 홀로그램에 메인 시스템의 초기화 신호가 잡혔다.
“됐어요! 무슨 말인지는 하나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제 뭐라도 만들 수 있어요.”
인간의 언어로 비유하면 의미 없는 알파벳 조합 같은 것이겠지만, 통신규약만 알면 데이터 그 자체로 시스템을 공격할 수 있었다.
제트가 무용지물이 되었기에 채굴 팀 모두가 달려들어서 막대 사탕이 하는 작업을 지켜보았다.
“해킹! 해킹!”
“기다려 봐요.”
다양한 루트를 통해 데이터베이스에 침투한 막대 사탕 마크는 용량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저기……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요?”
“글쎄. 10분? 1시간? 왜 그러는데?”
“나름 꽂히는 데이터가 있는데, 전부 다운받으려면 2시간 14분이 걸려요. 그 안에 재부팅되면 오히려 이쪽 시스템이 공격을 받을 거예요.”
“안 돼, 안 돼. 필요한 것만 받아.”
“그래서 말하는 거예요. 언어 체계가 달라서 필요한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요. 다만…….”
막대 사탕이 홀로그램을 돌렸다.
“여기 이 파일의 제목이 오메가 999라는 것은 읽을 수 있다는 말이죠.”
“뭐야? 우리가 쓰는 말이네?”
“네. 제 생각인데, 미래 세계가 요상하게 변하기 전에 남은 기록은 그대로 보존된 것 같아요. 어쨌거나 읽을 수 있는 마지막 파일은 오메가 999예요.”
그 이후의 기록은 인간의 언어로 적히지 않았다.
“흐음.”
오퍼레이터가 턱을 괴며 말했다.
“양자택일이네. 위험을 감수하고 전체를 다운받을지, 당장 급한 것만 빠르게 받을지.”
미래 세계의 정보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기에 마르샤는 울상을 지었다.
‘다 받고 싶은데. 진짜 아깝다.’
막대 사탕이 말했다.
“채굴 팀의 리더가 결정하세요. 이러는 동안에도 언제 시스템이 복구될지 몰라요.”
“미치겠다, 진짜.”
크게 한숨을 내쉰 그녀가 말했다.
“급한 것부터 받아.”
“넵.”
막대 사탕이 홀로그램의 버튼을 누르자 게이지가 빠르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역사, 오메가 999의 파일이 넘어오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세계 (2)
***
종족 전쟁이 치러지는 그린 오션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에 임시 막사가 있었다.
허름한 막사에는 평천사들이 모여 있었고 같은 숫자의 페어리가 수발을 들었다.
“훌쩍. 훌쩍.”
“그만 좀 질질 짜세요. 짜증 나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천사가 눈물을 흘리자,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울었다.
마치 갓 태어난 아이처럼.
“하아, 진짜.”
처음에는 나름 예우를 갖추던 페어리들도 이제는 그들을 천사로 보지 않았다.
“계속 그렇게 울 거면 잠이나 주무세요. 곁에서 수발드는 우리 생각도 해 줘야죠.”
“미, 미안.”
1명의 천사가 웅크린 자세로 눕자 또다시 모든 천사가 따라 했다.
한때는 신에게 받은 고유의 개념을 통해 세상을 관철시키던 존재들이었다.
“야. 다들 모여 봐.”
천사들이 잠잠해지자 수발대의 대장이 페어리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런 식으로 수발을 드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야. 그냥 천사들을 한군데에 모아 두고, 우리끼리 조를 짜서 돌아가면서 보자. 한 20명 정도씩.”
“그게 좋겠어요. 솔직히 힘든 것을 떠나서, 천사들 징징대는 거 지겨워 죽겠다니까요. 종족 전쟁만 아니었으면 그냥 한 대 쥐어박아…….”
그 순간.
“오오오오오오!”
천사들이 두 눈을 번쩍 뜨더니 고유의 속성인 바이브레이션이 발생했다.
“뭐, 뭐야?”
요정들이 황급히 고개를 돌린 곳에 수백 개의 빛의 기둥이 솟아 있었다.
“……돌아왔다.”
천사들의 머리에 하나씩 떠오르는 성광체가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 했다.
‘정말로 해낸 거야?’
신이 정한 율법을, 고작 3명의 대천사가 태양으로 가서 바꾸었단 말인가?
마치 무덤에서 일어서는 시체처럼 천사들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케스커.”
수발대의 대장이 화살처럼 날아갔다.
“네! 부르셨습니까!”
이미 저지른 짓이 있기에 정신이 혼미하고 작은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물론 천사들도 알고 있다.
그렇기에 페어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으나, 그들에게도 아찔한 시간이었다.
‘끔찍하구나, 기준을 잃는다는 것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일이기에 페어리를 혼내는 것도 나중의 일이었다.
“유리엘 님은 어디에 계시지?”
“그, 그린 오션에…….”
‘굽어보기’를 통해 전장을 살핀 천사들은 빛의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수많은 섬광이 꼬리를 물고 날아가자, 페어리들이 케스커에게 물었다.
“우리는 어떡하죠?”
“뭘 어떡해?”
케스커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했다.
“쫓아가야지.”
***
막대 사탕은 초조하게 손톱을 긁었다.
“빨리. 제발 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