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77
현재 옮기고 있는 데이터는 현실에서 결코 얻을 수 없는 100퍼센트 예지였다.
‘한 틱만 버텨도 인류의 미래가 바뀐다.’
오퍼레이터가 앞을 가리켰다.
“저기, 이거 재부팅되는 거 맞지?”
막대 사탕이 고개를 들자 쓰러진 제트의 안면에 하나둘씩 불이 켜지고 있었다.
“이런!”
황급히 고개를 내린 그는 진행률을 확인했다.
‘64퍼센트.’
이대로 메인 시스템이 재가동되면 역으로 공격을 받아 파일이 전부 소멸하고 만다.
‘통신을 끊어야 해. 파일이 깨져도 어느 정도 복구는 가능할 거야.’
여기서 만족해야 하나?
기계와 인간의 반응 속도는 비교가 불가능, 직관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오퍼레이터가 말했다.
“네가 판단하고 결정해. 어떤 결과가 나와도 탓하지는 않을 테니까.”
“흐으으으.”
막대 사탕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1초. 1초만 더…….’
그 1초에 담겨 있는 데이터가 수십만 명의 목숨을 살릴 수도 있지 않은가.
‘아직은 괜찮아. 3초 정도는…….’
그 순간 어떤 맥락도 없이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손이 차단 버튼으로 향했다.
‘끊었다.’
동시에 웅 하는 소리를 내며 메인 시스템의 기둥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홀로그램에 적힌 숫자는 83퍼센트였다.
“됐다! 내가 더 빨랐어.”
그의 손이 무섭게 키워드를 입력했다.
“좋아, 깨진 파일은 복구시켰고. 어디, 뭘 알고 있는지 샅샅이 파헤쳐 주마.”
파일을 열람하려는 그때 프리먼이 빠르게 다가와 장비를 빼앗았다.
“뭐 하는 짓이에요?”
고개를 쳐든 막대 사탕의 눈이 커졌다.
앵무 용병단의 간부들이 어느새 무기를 든 채로 주위를 포위하고 있었다.
“왜, 왜 그래요?”
“미안.”
장비를 넘겨받은 마르샤가 말했다.
“이 정보는 누구도 열람할 수 없어. 이건 내가 가져갈게. 대신 사례할 테니까.”
“이러는 법이 어디 있어요? 내놔요! 그거 내 거라고요! 거기 중요한 프로그램…….”
“쉿.”
6번대 조장 스나이더가 막대 사탕의 뒤에서 단도를 목에 들이댔다.
“그만둬. 이건 인류의 미래가 걸린 일이야. 너도 관심을 끄는 게 신상에 좋아.”
협박은 서늘했지만, 여태까지 형 동생처럼 지낸 사람의 차가운 태도가 더 화가 났다.
“흥! 이제 와서? 좋아요. 어서 찔러요. 한번 시켜 보라고요, 이 아줌마야!”
“뭐? 아줌마?”
마르샤가 도끼눈을 치켜떴다.
“너 진짜로 죽여 버린다! 이게 장난인 줄 알아? 우리 엄청 무서운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해 보라고요! 그럴 자신도 없으면서! 아니면 내 장비 내놔요!”
스나이더가 물었다.
“……제거할까요?”
마르샤는 짜증이 났다.
“너는 그게 애한테 할 소리니? 그냥 좀 적당히 달래! 사탕이라도 주든가!”
그녀가 몸을 돌려 멀어지자 스나이더가 입맛을 다시며 단도를 내렸다.
“아니, 왜 나한테 성질이야? 내가 아줌마라고 그랬어? 어? 내가 그랬냐고.”
오퍼레이터가 말했다.
“정보 공유가 불가능하다는 점은 이해했어요. 위협은 하지 않아도 돼요.”
“그래. 미안하군.”
구속이 풀린 막대 사탕이 돌아섰다.
“우이, 씨!”
로킥을 날렸으나 마치 통나무를 때린 듯 자신의 다리만 아팠다.
“하하! 너무 화내지 마. 형이 진짜 예쁜 여자 소개시켜 줄 테니까. 너보다 열다섯 살 많기는 하지만.”
“됐거든요!”
“그나저나……….”
막대 사탕의 머리를 헝클이며 스나이더가 나아가자 간부들이 뒤를 따랐다.
“이것들을 어떻게 한다?”
어느새 제트들이 전방에 벽을 치고 있었다.
***
옥상에서 바깥을 살핀 시로네는 제트가 쓰러져 있는 방으로 되돌아왔다.
“풍경이 변하지 않았어.”
메인 시스템이 다운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이곳은 율법으로 만든 세계였다.
‘어째서? 이카엘이 성공했는데도.’
현실에서 어떤 변화를 일으키든 이미 미래가 정해져 버린 답답한 기분이었다.
‘그럴 리가 없어.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거야. 신의 사고가 나보다 더 넓기 때문에.’
깊은 생각에 빠진 것도 잠시, 시로네는 엔진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제트 씨!”
제트의 안면 스크린에 범어가 떠오르고, 팔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신이 드세요? 갑자기 시스템이…….”
시로네는 우뚝 멈췄다.
형태는 그대로지만, 어쩐지 전과 느낌이 다르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오롯이 기립한 그가 바깥의 제트와 마찬가지로 율법의 탄을 허공에 띄웠다.
“저예요! 기억하시잖아요!”
“번뇌를 제거하라.”
사방에서 터지는 폭발을 피해 시로네는 방의 입구까지 몸을 날렸다.
‘오류가 수정된 거야.’
메인 시스템이 재부팅되면서 양자적 오류가 제자리를 되찾은 것이었다.
“큭!”
영원히 되돌릴 수 없기에, 시로네에게 제트는 움직이는 기계일 뿐이었다.
‘그분을 모독하지 마.’
“중생이여, 율법을 따르라.”
“이야아아!”
핸드 오브 갓을 시전한 시로네는 제트를 붙잡고 벽으로 강하게 떠밀었다.
쿵 하는 소리에 이어, 제트의 육체가 반쯤 으스러진 채 바닥에 쓰러졌다.
“중생이여…… 율……법…….”
안면 스크린의 빛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시로네는 눈물을 훔쳤다.
깨진 찻잔, 불에 타 버린 카펫, 수족관 밖에서 펄떡이는 물고기까지.
제트의 마음이었다.
마테리얼로 만든 수족관에 물고기를 담은 시로네는 기체를 중앙으로 옮겼다.
“죄송해요.”
오늘 전해진 그의 마음이 언젠가는 세상 전체로 퍼지기를 고대하며…….
“후우!”
시로네는 천장 밖으로 날아올랐다.
‘채굴 팀은?’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
수많은 제트들이 외벽을 타고 있는 모습이 마치 깨진 거울처럼 반짝거렸다.
***
메인 시스템의 지하 대공동에서 채굴 팀은 제트 부대와 사투를 벌였다.
“제길! 끝이 없잖아?”
건물을 파괴할 수 없는 이상 유일한 활로는 제트를 뚫고 가는 것이었다.
오퍼레이터가 말했다.
“동력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제트를 구석으로 몰아 주세요. 마지막 붕괴입니다.”
“그래.”
용병단이 적진으로 뛰어들자 제트의 전열이 한쪽으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마르샤는 오메가 999의 파일을 들고 기둥 뒤에 서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한다.’
시로네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용병단의 고용주는 어디까지나 페르미였다.
그가 제시한 특별 조건은 ‘열람하지 않아도 되는 정보는 그대로 전달할 것’이었다.
“그런 상황이 있어?”
당시 마르샤는 이렇게 물었었다.
“뭔지를 알아야 내가 판단을 할 텐데, 어떻게 보지도 않고 전달을 해?”
“기밀을 다루는 방법은 다양하니까요. 암호로 쓴 서적이나 그림에 담긴 은유, 고전적인 형식을 파괴한 비선율적인 악보 같은 것들. 이런 유물은 가급적 조사하지 않은 채 넘기셨으면 합니다.”
“흐음, 알았어.”
마르샤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만 알고 있으면 되지, 뭐. 누가 알겠어?’
“또 하나.”
페르미가 덧붙였다.
“미래 세계의 기술로 만든 데이터를 얻었을 때에는 절대로 열람하지 마세요. 그 누구도, 심지어 하이 기어의 관리자들도 알아서는 안 됩니다.”
이제 와 돌아보면 페르미는 여기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거 되게 빡빡하네. 그 정도의 인간미도 없이 어떻게 팀워크를 유지하라는 거야?”
“타락한 성모라면 충분하죠. 단원들이 그냥 따르는 게 아니잖아요. 게다가 수익과도 직결됩니다. 정보라는 것은 무엇을 아느냐보다 누가 알고 있느냐가 더 중요해요. 독점하지 못한 정보는 가치가 없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정보는 일어날 수 없는 정보와 같은 값을 가진다.
“정보 엔트로피라고 부르는 거죠. 하지만 사실, 이 조항의 진정한 의미는 따로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
“시로네.”
마르샤의 표정이 처음으로 굳었다.
“어떤 정보는 시로네가 절대로 알아서는 안 됩니다. 그걸 알게 되는 순간 모든 게 끝장이에요. 독과점을 떠나서, 아예 모르는 수준의 엔트로피가 유지되어야 합니다. 시로네 또한 납득했기에 기억을 지운 거죠.”
“대체…… 무슨 정보인데? 그러다가 내가 모르고 발설이라도 하면 어떻게 해?”
“알 겁니다. 정보를 접하는 순간 확신할 거예요. 그래서 계약서에도 적지 못했습니다. 정보가 움직일 수 있는 어떤 채널도 존재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마르샤의 입도 채널이었다.
“알았어. 약속할게. 시로네에게 발설하느니 차라리 내가 목숨을 끊겠어.”
페르미는 비로소 계약서를 내밀었다.
“……서명하시죠.”
우리가 사는 세계 (3)
목숨까지 걸린 일이었기에, 마르샤는 계약서에 추가된 항목을 꼼꼼히 검토했다.
‘시로네.’
그녀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준 사람.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에게 가족과 인생을 되찾아준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함구할게. 네가 원하는 거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너에게 말하지 않을 거야.’
마르샤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메인 시스템의 기둥 뒤라고 해도 전장과의 거리는 50미터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전투의 소음조차 아련하게 들릴 정도로 그녀는 갈등에 빠져 있었다.
‘어떡하지?’
오메가 999의 역사가 담긴 파일.
계약에 의하면 이대로 페르미에게 보내야 하지만, 83퍼센트라는 게 문제였다.
‘인류의 미래는 얼마나 남았지?’
만약 83퍼센트의 데이터에 여태까지 지나온 과거의 기록만 남아 있다면?
‘지금 확인해야 돼. 페르미에게 정보를 보내려면 전달자가 현실로 나가야 한다고. 만약 이게 깡통 정보라면, 소중한 기회를 하나 써 버리는 셈이야.’
아포칼립스와 현실의 시간은 다르기에, 한번 나가면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봐야 돼. 돌이킬 수 있는 기회는 지금밖에 없어. 시로네에게만 말하지 않으면 되잖아.’
아날로그 방식의 시계를 꺼낸 그녀는 시차를 이용해 현실의 시간을 계산했다.
‘좋아. 오늘보다 미래의 정보가 있으면, 통과. 아니면 여기서 다시 채굴.’
마르샤는 파일을 열었다.
인간의 언어로 남긴 기록들이 시간의 순서에 따라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넘겨. 넘겨.’
눈은 거의 글자를 담지 않았다.
오직 날짜를 확인할 생각으로 페이지를 넘기던 그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있다.’
그리 많지 않은 분량이었지만 기록에는 오늘의 날짜가 정확히 적혀 있었다.
‘됐어. 여기서 끝내…….’
그 순간, 한 줄의 기록이 시선을 붙잡았다.
“……뭐?”
어떤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뇌가 한 문단의 사건을 통째로 빨아들였다.
마르샤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