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78
넋이 나간 표정으로 생각에 잠기는 와중에도 손은 장비를 끄고 있었다.
‘이거였구나.’
보는 순간 확신할 것이라는 페르미의 말이 사실이었다.
‘시로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랬던 거야? 다 알면서도…… 기억을 지운 거야?’
그 순간 굉음이 터졌다.
“마르샤!”
고개를 돌리자 오퍼레이터의 붕괴에 수많은 제트들이 파괴되고 있었다.
“지금 나가야 돼!”
프리먼이 가리킨 승강기 쪽에 활로가 열리자 마르샤는 곧바로 몸을 날렸다.
“빨리! 빨리 타!”
승강기가 닫히기 직전 소녀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오퍼레이터가 탑승했다.
“후우, 죽는 줄 알았네.”
“잘했어요, 누나.”
그렇게 말한 막대 사탕이 마르샤를 올려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일 끝나면 꼭 돌려줘요. 다른 건 손대지 말고요. 사적인 비밀이니까.”
“어? 아, 그래.”
‘뭐야?’
아줌마라는 소리에 눈이 뒤집어졌던 것과 달리 얼굴에 슬픔이 가득했다.
스마일 마크가 물었다.
“대책이 있나요? 밖에도 제트가 있을 텐데요. 이제 끌어올 장비도 없어요.”
“우리가 막을 테니 너희들은 도망쳐. 안전한 곳을 찾아서 아포칼립스를 떠나.”
한때 시로네의 폐기된 정보, 즉 로시네가 아포칼립스를 해체한 적이 있었다.
페르미는 당시의 정보를 바탕으로 탈출 코드를 만들었고 그것이 바로…….
‘이스케이프.’
스마일 마크는 손바닥에 올린 알약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완전히 빠져나가려면 최대 10분이 걸려. 조건에 맞는 장소가 있을까?’
지상에 도착하자 예상했던 대로 수많은 제트들이 입구를 틀어막고 있었다.
‘이건 너무하잖아.’
검은 서클 마크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고개를 들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게임 오버.”
“누나! 재수 없게 그런 소리를…….”
동시에 시야의 좌측에서 빛의 섬광이 불어와 제트들을 순식간에 쓸어 냈다.
빈 공간에 시로네가 착지했다.
“형!”
막대 사탕이 달려가고, 앵무 용병단도 긴장이 풀린 듯 크게 숨을 내쉬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얼마나 기다렸는데.”
“미안.”
시로네는 일행의 숫자부터 확인했다.
“다들 괜찮아요?”
“그래. 우선 자리를 피하자. 탈출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점검해야 하니까.”
핸드 오브 갓으로 일행을 쓸어 담은 시로네는 곧장 하늘로 날아올랐다.
제트가 추격했으나, 작정하고 도망치는 시로네를 따라잡기란 역부족이었다.
‘정말 끝이 없구나.’
같은 패턴, 같은 풍경의 도시만 있을 뿐, 어디에도 자연은 보이지 않았다.
“안 되겠어요. 일단 내려가죠.”
제트가 보이지 않는 지점에 내린 시로네는 마르샤에게 채굴 상황을 물었다.
“어떻게 됐어요? 성공했나요?”
표정 관리가 어려운 마르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완벽하지는 않지만, 소기의 성과는 달성했어. 페르미에게 보내면 끝이야.”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시로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어요. 곧 제트가 몰려올 테니, 일단 여기서 나가죠.”
반대하는 사람은 당연히 없었고 저마다 이스케이프 알약을 손에 쥐었다.
마르샤가 물었다.
“순서는?”
정할 필요 없었다.
“다 같이 나가세요. 저는 다시 한번 이동했다가 마지막으로 나갈게요.”
“그래.”
결국 시로네가 책임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마르샤는 슬픔에 잠겼다.
‘왜?’
도시의 먼 곳을 경계하는 시로네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처량하게 느껴졌다.
‘너는 모든 것을 떠안고 세상을 위해 싸우는데…… 왜? 왜 너는 행복할 수 없는데?’
마르샤가 본 것은.
‘시로네.’
인류의 역사, 오메가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에이미가 죽어.’
앞으로 6시간 뒤에 벌어질 일이다.
‘막을 수 없을 거야.’
그만큼 강력한 사건이지만, 시로네가 안다면 얘기는 달라질 터였다.
‘하지만 나는…….’
마르샤는 이를 악물고 울음을 참았다.
‘너에게 말해 줄 수 없어!’
특별한 누군가에게 집착하는 순간 야훼의 기준은 무너지고 말 테니까.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페르미에게 에이미의 사망을 들었음에도 세상을 위해 기억을 지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묻고 또 물었겠지.’
부정하고 또 부정하면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아 헤맸을 것이다.
“누나.”
시로네가 돌아섰다.
“왜 그렇게 울상이에요? 너무 걱정하지 마요. 나도 안전한 곳에서 나갈게요.”
마르샤는 시선을 피하며 알약을 삼켰다.
“알았어. 기다리고 있을게.”
물론 시로네가 돌아올 때는 이미 정보가 페르미에게 넘어간 뒤일 것이다.
“네. 밖에서 봐요.”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을 느끼던 마르샤가 갑자기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저기……! 시로네.”
“네?”
무슨 말이든 들어 줄 것 같은 순진한 얼굴에 마음이 더욱 심란해졌다.
‘말해야 돼.’
그래야 하지 않을까?
‘인류가 무슨 소용이야? 저 아이는 나를 용서했어. 나에게 새 삶을 줬어. 그러니까 나도…….’
발설의 대가가 죽음뿐이라면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목숨을 바칠 터였다.
하지만 시로네가 선택한 일.
그녀 같은 범인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한에 가까운 희생 앞에서.
“그냥. 고맙다고.”
마르샤는 감정을 감추고 배시시 웃었다.
“누나가 너 평생 책임질게, 짜샤.”
“하하.”
마르샤의 육체가, 정확히는 정신이 아지랑이처럼 풀어지며 모습을 감추었다.
“하여튼 못 말린다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시로네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지개를 폈다.
“나도 출발해 볼까?”
비록 신이 지배하는 미래는 변하지 않았지만, 시로네는 좌절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이곳에도 마음은 있었기에.
다시는 없을 오류라고 해도, 그 마음은 시로네를 통해 인간의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이다.
그렇기에.
‘안녕.’
아포칼립스.
***
“미카.”
-공사 진척도 31.6548퍼센트입니다.
월등히 빨라진 시로네 스피어의 작업 속도는 오직 고통의 대가였다.
“흐으으으!”
인류의 지식을 초월하는 공사에서 방법과 효율은 의미가 없기 때문.
‘더, 더 빠르게 할 수 있어.’
정신을 집중하자 뇌가 타들어 가는 기분에 이어 실제로 타는 냄새가 났다.
‘……진짜야?’
그 순간 태양풍이 밀려들었다.
‘에이미.’
초월적인 망원시로 빛을 끌어당긴 시로네는 불과 불의 충돌을 포착했다.
피닉스가 괴성을 질렀다.
“키이이이!”
결국은 같은 속성이기에, 더 강한 불이 약한 불을 집어삼키게 될 터였다.
“어떻게…….”
피닉스는 순식간에 3천 킬로미터 거리 밖으로 멀어진 에이미를 노려보았다.
“나보다 빠를 수 있지?”
“태양이니까.”
태양과 공명하는 두 화신은 빛의 복사를 통해 서로에게 말을 전달했다.
“물론 그건 너도 마찬가지겠지. 하지만.”
에이미가 씩 웃었다.
“나는 프로 마법사거든.”
고유의 전지, 자연발화를 통해 그녀는 태양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었다.
“전지가 달라. 그거 알아? 내 행성에서 너는 2티어 크리처라는 거.”
물론 그것조차 약한 것은 아니다.
“……그런가?”
피닉스가 덩치를 키우자 3천 킬로미터 밖에서도 사나운 눈동자가 보였다.
“필멸자가 나를 무시하는가!”
전력으로 돌진한 피닉스가 에이미의 육체를 꿀꺽 삼킨 채 날아올랐다.
“크르르르! 나는 불이다!”
태양으로 파고들려는 그때, 피닉스의 가슴에 작은 소용돌이가 맺혔다.
“응?”
다음 순간 대류가 급격히 강해지더니 피닉스의 날개와 목이 뒤틀렸다.
“크아아아아!”
완전연소.
불기둥에 휘감긴 피닉스는 자신을 이루는 정精이 빨려 드는 것을 깨달았다.
“안 돼! 안……!”
소용돌이가 폭발하고, 여체의 모습으로 불타는 에이미가 허공에 기립했다.
“크악! 크악!”
그녀의 눈앞에는 이제 사람보다 크다고 할 수 없는 새가 비틀거리고 있었다.
“크으으으!”
형태를 유지할 만한 정이 남지 않은 피닉스가 체념한 듯 고개를 숙였다.
“하긴, 억울할 것은 없지. 불사조에서…… 이제는 네가 되는 것뿐이니까.”
“그래.”
에이미가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젠가 다시 분해되어, 우주의 어떤 것이 되어 있겠지.”
“흐흐.”
피닉스가 고개를 들었다.
“화火에서 인人이 될 줄이야. 보통은 그 반대이거늘. 하긴 이런 말을 하면 실례인가? 인외의 경지에 올랐으면서 왜 우주를 지배하지 않지?”
“혼자가 아니니까.”
에이미는 피닉스에게 걸어갔다.
“나 혼자 존재했다면 절대로 여기까지 오지 못했어. 나를 도와준 사람들, 나를 위해 죽어 준 사람들, 나와 싸운 사람들, 나를 싫어했던 사람들. 그 모든 것에 빚을 지고 있는 1명의 인간일 뿐이야.”
이유는 모르지만, 여태까지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이 동시에 떠올랐다.
“인人이 아니야. 인간人間이지.”
“…….”
반쯤 녹아서 고꾸라진 피닉스를 무릎에 누인 에이미가 부리를 쓰다듬었다.
“더 이상 외롭게 빛나지 않아도 돼. 나와 함께 모든 사람들에게 빛을 전해 주자.”
“인간이라…….”
끝없이 펼쳐진 우주를 바라보던 피닉스가 입꼬리를 올리며 눈을 감았다.
“그래. 그것도 괜찮겠다.”
불사조의 형태가 녹아내리면서 에이미의 불꽃으로 정이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