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79
율법보다 강한 마음의 불이었다.
우리가 사는 세계 (4)
***
델타 본청.
파라스 왕국의 키트라는 검은 구체로 변한 엑소버스를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부피가 없는, 밀도 무한대의 특이점.’
제로의 공간에 모든 가능성이 담겨 있는 게 무라면, 존재라는 것도 착각에 불과.
“신의 뜻을 거역하는가?”
7명의 대천사가 율법을 되돌렸지만 세계 각지의 피라미드는 여전히 건재했다.
100이라는 숫자를 결과라고 했을 때, 그 100을 만드는 방법의 가짓수는 무한대.
천사가 한 일이라고는 고작 원인의 8분의 7을 제거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결과를 바꿀 수는 없다.”
신에게 확률은 0과 100퍼센트뿐.
8개의 원천 개념이 모두 모이기 전까지는 여전히 신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키트라의 눈에 푸른 빛이 들어오자 피라미드의 자기장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자기장의 영향을 받은 자들의 눈에 똑같은 푸른 빛이 켜졌다.
거품처럼 늘어나는 양자 요동의 사건 속에 마음을 잃어버린 인人이었다.
“마야를 죽여라.”
오메가 999년, 누군가의 이름은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율법이 되었다.
***
태양의 코어에서 7명의 대천사는 우주의 율법이 변하는 것을 느꼈다.
다른 방식이지만 결과는 같을 터였다.
“어떻게……?”
이카엘이 말했다.
“우리가 관철시킨 것을 우회한 것입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바꿀 수 있는 거예요.”
사티엘이 말했다.
“그래도 마음을 지켰어. 이거라면 평천사들도 위상을 잃어버리지 않을 거야.”
“…….”
과연 그럴까?
개인적으로는 다행이지만, 우주 전체로 봤을 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신의 뜻을 거역하지 못했다는 뜻이고, 신은 이 세계를 닫으려고 한다.
‘무無. 없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렇게 신의 입김은 모든 물질, 모든 율법의 틈새로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우주를 상자로 비유한다면, 단 하나의 구멍만 존재해도 그 안에 공기가 가득 차는 것처럼.
‘유일한 방법은 완전히 막는 것. 모든 존재가 하나의 의지로 신을 부정하지 않는 한…….’
결국 신이 이기게 되는 게임이었다.
피닉스의 정을 흡수한 에이미는 태양풍을 타고 시로네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시로네.”
미라클 스트림의 보호막 안에서 불의 화신을 없애는 순간 에이미는 알몸이 되었다.
“엇!”
황급히 시로네의 등 뒤로 숨은 그녀가 빨개진 얼굴로 몸을 가렸다.
“돌아보지 마.”
시로네가 입꼬리를 올렸다.
“옷 정도는 만들어 줄 수 있는데.”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지만, 시로네 스피어의 작업량을 보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됐어. 어차피 또 타 버릴 텐데.”
에이미는 시로네의 두 손에서 쏟아지는 물질의 향연에 잠시 넋을 빼앗겼다.
“엄청나구나.”
“응. 엄마가 율법을 되돌렸지만 아포칼립스의 세계는 변하지 않았어. 신의 사고가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고 있다는 거겠지. 아마도 이게…… 내가 신에 대항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일 거야.”
시로네는 ‘우리’라고 하지 않았다.
‘알고 있는 거겠지.’
인간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것이 시로네 스피어보다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에이미는 시로네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힘내라, 힘.”
마치 그녀의 영혼이 등을 뚫고 들어오는 것처럼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에이미가 말했다.
“우리만 행복해지려고 하지 말자.”
피쇼의 장례식이 끝나고 단둘이 남았을 때, 그녀는 같은 말을 했었다.
“……어?”
그리고 시로네의 두 눈에서는 그때처럼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걱정하지 마. 내가 사랑하는 남자는 오직 너뿐이니까. 절대로 변하지 않을 테니까.”
시로네는 소리 없이 울었다.
그의 흐느낌을 온몸으로 느끼며, 에이미는 오래전의 일을 회상했다.
“기억나? 처음 널 만났을 때.”
크레아스 도시의 뒷골목에서 길을 잃은 촌스러운 소년을 만났더랬지.
“그때 네가 좀 심하게 당했잖아. 나도 못됐었지. 옷을 벗겨 보라는 둥.”
“……하하.”
“근데 나, 그날 집에 가서 아빠에게 말했어. 마법학교에 다니겠다고.”
시로네가 처음으로 마법을 성공시킨 날이었다.
“그렇게 해서 우린 다시 만났고, 많은 일을 겪었지.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만약 그날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변덕을 부려서 아이스크림 가게에 갔거나, 10분, 아니 5분이라도 골목에 늦게 갔다면. 그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말을 했었더라면…….”
돌이켜 보면 섬뜩한 인간의 운명은.
“난 지금 이곳에 없겠지. 지금 네 뒤에서 너를 끌어안으며, 이런 말을 할 수도 없었겠지.”
시로네는 입을 다물었다.
“다른 삶을 살게 되었으면, 또 그렇게 살아갔을 거야. 하지만 시로네, 나는, 지금의 나는…… 그 순간이 기적이라고 생각해. 내 인생을 바꾼 기적.”
그러니까…….
“절대로 바꾸지 않아.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수천 번, 수만 번을 되돌린다고 해도, 그 어떤 미래하고도 그 순간을 바꾸지 않을 거야.”
시로네는 고개를 숙였다.
‘나는 이 순간을 기억해야 한다.’
여전히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처음과 끝이 이미 정해진 세계라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시로네, 너를 잊지 않을게. 우주에 있는 모든 확률을 뚫고서라도 너를 사랑할 거야.”
최선을 다해 마음을 던지는 것.
“……응.”
몸을 돌린 시로네는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는 에이미의 뺨을 어루만졌다.
“꼭 나를 기억해야 돼. 내가 널 찾아갈 테니까. 우주 전부를 뒤져서라도, 내가 갈 테니까.”
앞으로 6시간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시로네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다만 오메가 999년.
신이 정한 인류 역사의 종착지에서 그보다 먼 미래를 다짐한 그들이었다.
두 사람은 태양을 돌아보았다.
“갔다 올게.”
코어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지만 에이미가 도움이 될 터였다.
“조심해.”
“걱정하지 마.”
시로네의 얼굴을 잡고 살며시 입을 맞춘 에이미가 불의 화신술을 펼쳤다.
미라클 스트림의 보호막 밖으로 멀어진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누구도 날 죽일 수 없으니까.”
자연발화의 마법을 통해 그녀의 육체가 순식간에 태양으로 이동했다.
“그래.”
에이미의 온기를 잠시 느끼던 시로네가 다시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미카.”
-공사 진척도 42.0148퍼센트입니다.
‘내가 성공시켜야 돼.’
어쩌면 처음으로, 인간의 통합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델타 본청의 첨탑.
가장 높은 곳에 앉아 있는 시로네는 정문에 모인 인파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끝이 없구나.’
기스의 기자회견이 끝나고, 로데닌 시민들은 둘로 분열되어 시위를 벌였다.
‘아니, 그런 게 아니야.’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들어가 보면, 누구도 타인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자이브의 명예를 실추시킨 기스를 왕국 법으로 응징합시다! 이건 시민의 권리입니다!”
민주 왕정인 자이브에서 수도의 시민들은 상당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누가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겁니까! 아직 밝혀지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이런 식으로 국론을 분열시키면, 우리만 성전에서 불리해져요!”
“그런 식의 협박으로 넘어갈 생각 마시오! 도덕성이 무너진 국왕은 시민의 대표가 될 자격이 없소!”
너도나도 한마디씩 던지는 목소리가 델타 본청의 안쪽까지 흘러들었다.
창문 앞에 선 알비노는 정문에서 타오르는 수백 개의 횃불을 바라보았다.
루피스트가 말했다.
“기스가 원하는 대로 되었군요. 저 불꽃이 시민의 분노를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분노는 좋지 않아. 감정은 눈에 보이거든.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은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어.”
알비노가 말을 이었다.
“처음부터 기자회견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어. 일단 시그널을 보내면 받아들이는 자는 둘 중 하나로 반응하지.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거나.”
“그렇게 분열시키는 거죠.”
“이분법적 사고는 인간의 숙명 같은 거니까. 옳지 않으면, 틀린 거야. 하지만 1.5세대의 인류는 다르지. 놈들에게는 하나의 선택지가 더 있거든.”
알비노가 말했다.
“옳거나, 틀리거나, 정답이 없거나.”
“…….”
“세상에 정답은 없어. 온통 모순이라고. 사람들은 그걸 두려워하지. 그래서 기를 쓰고 맞다고 우기는 거야. 반면에 1.5세대의 인류는 모순을 받아들이지. 이해하지 못해도, 납득할 수 없어도 그냥 하는 거야. 오직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거든.”
“어떤 의미로는 감정의 결핍이죠.”
“아주 차갑지. 문명 생태계의 정점에 오를 정도로 진화한 놈들이니까. 지금쯤 돈과 권력이라는 큰 고기는 알아서 쪼개고, 남은 것은 시민들에게 던져 줄 거야. 승리의 기쁨이랄지, 시민의 성취감이랄지, 그런 영양가 없는 찌꺼기들.”
“좋은 가치잖아요.”
“흐흐, 뭔지도 모를 물건에 ‘최고’라는 딱지를 붙여서 파는 격이야. 사실 난 잘 모르겠어. 그런 것들이 어떻게 내 삶을 행복하게 해 준다는 것인지. 하지만 사는 사람이 있으니까 놈들도 파는 것이겠지.”
생각에 잠긴 루피스트가 물었다.
“만약 기자회견이 끝나고도 시민들이 침묵을 지켰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기스는 피가 마르지 않았을까? 대중의 반응을 예측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힘든 일이지. 선험적 단계에서의 통합, 그게 울티마라는 것이니.”
“그렇군요.”
“차선책이라면 반왕이 시민을 한데 묶는 것이지만, 이미 숙청이 끝났으니 기자회견을 한 것이 아니겠나?”
공표는 늘 마지막이니까.
시민들은 끝없이 대립했다.
“일단 기다려 보죠. 성전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판단을 유보하자고요.”
기스 파 안에서도 온건파와 과격파가 나뉘었고.
“영애님이 사망하셨습니다. 국왕 전하의 마음이 어떻겠어요? 일단은 자중하죠.”
온건파는 다시 감성파와 이성파로.
“그런 문제가 아니라, 답답하네. 지금 시국을 생각해서 참자는 거 아닙니까.”
감성파는 분노파와 동정파로 나뉘었다.
“그게 할 소리예요? 당신은 자식도 없어요? 혹시 사이코 아니에요?”
“뭐가 어째? 말 다 했어?”
시로네는 시민들이 쪼개지는 과정을 슬픈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정답은 없어.’
정답을 찾아 헤매는 자와 오답을 들고 일직선으로 달리는 자만 있을 뿐.
가장 빨리 도착한 자가 그곳에 깃발을 꽂고 모두를 지배하는 시스템하에서.
‘그들은 지금…….’
세상 꼭대기에서 축배를 들고 있을 터였다.
“어이구, 기스 전하. 축하드리오.”
아라크네가 마련한 목욕탕에 자이브 동맹국의 지도자들이 모여 있었다.
기스가 탕에 들어가며 말했다.
“하하! 뭐 이 정도가 큰일이겠습니까? 앓던 이가 빠져서 속이 후련합니다.”
가슴을 드러낸 채 욕탕에 걸터앉은 요음방의 리더가 곰방대를 물었다.
“레이몬드 씨, 의외로 순정파더라고요. 죽기 전에 아내 이름을 불렀다던데.”
아이론의 국왕이 폭소를 터트렸다.
“푸하하하! 왜? 지옥에라도 갈까 봐? 그런 놈이 무슨 왕을 하겠다고……. 에라, 이.”
기스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어어, 좋다. 풀린다, 풀려.”
원하는 것을 얻는 데에 감정의 영향을 받지 않는 문명의 포식자들.
“전하, 제 사랑도 받아 주세요.”
하지만 그 1.5세대 인류라고 칭할 만큼 냉철한 정신이 향하는 곳은.
“흐흐, 그래. 어디 물어 볼까?”
지극히 동물적이고 원초적인 감각이라는 것.
“아아!”
그것이 바로…… 시로네가 바라보는 오메가 999년의 세상이었다.
우리가 사는 세계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