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81
슈라는 강하다.
하지만 세계로 범위를 확장하면 그녀를 꺾을 자가 아예 없지는 않을 터.
그럼에도 바사크가 믿는 이유는, 무력 외적인 수완이 탁월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어쨌든 부처의 직계 제자니까.’
슈라가 말했다.
“일단 들어 보죠. 뭘 원하는데요?”
“세계.”
슈라의 손길에도 반응하지 않던 그의 육체가 욕망으로 불타올랐다.
“기스도 정치 잘하는 놈이지. 인정해. 하지만 말이야, 판은 내가 다 깔지 않았던가.”
고개를 돌린 바사크가 눈을 부릅떴다.
“세계 지도국의 수장. 자네라면 그 자리를 나에게 가져다줄 수 있지 않을까?”
슈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정말 끝이 없구나.’
자이브가 가장 유력한 세계 지도국의 후보라는 사실을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자이브가 세계를 먹으면 아이론도 그에 준하는 대우를 받게 될 터. 그런데도 만족하지 못하고, 또다시 위를 향해 올라가고자 한다.’
바사크가 다시 말했다.
“세계를 줘. 그럼 나도 자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넘겨주도록 하지.”
거짓 속에 빛나는 진실.
“……최선을 다해 보죠.”
마치 시간을 거꾸로 돌린 것처럼 침대에서 물러난 그녀가 문을 향해 돌아섰다.
‘어려운 일이야.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닌 듯했다.
***
토르미아 섹터의 국왕 침소에서, 시로네는 신음하는 포니를 지켜보았다.
‘의식을 차렸다. 호전의 징후인가, 아니면…….’
회광반조인가.
의사가 진찰을 끝내고 방을 나서자 시로네는 포니의 이마를 짚었다.
눈을 깜박거리던 포니가 그를 알아보고 학창 시절처럼 미소를 지었다.
“시로네.”
“괜찮아? 좀 어때?”
“글쎄, 모르겠어. 어때 보여?”
“…….”
포니는 죽어 가고 있었다.
“조금만 참아. 내가 어떻게든 할 테니까. 반드시 너를 살릴 테니까, 그때까지…….”
그 순간 포니가 눈을 크게 뜨더니 피를 쏟아 냈다.
감정의 독.
마음에 박힌 울분이 그녀의 신진대사를 끝없이 역류시키는 것이었다.
시로네는 미라클 스트림을 시전했다.
‘제길.’
누가 달랠 수 있을까?
흉악한 남성들에게 둘러싸여 끔찍한 고통 속에 죽어야 했던 한 여인의 감정을.
‘그것조차도 원통할 텐데. 그 어떤 위로의 말로도 각혈을 할 텐데…….’
심지어 지옥의 시스템을 통해 극한까지 증폭시킨, 사상 최강의 살이었다.
‘유일한 방법은…….’
이면 세계의 시스템을 초기화시켜 포니의 마魔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조금만 더 버텨 줘.”
포니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럴 자격 없잖아.”
“사는 데 자격이 어디 있어?”
“모두 다 내 욕심 때문인걸. 내가 왕이 되려고 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겠지.”
“너도 살려고 그런 거잖아. 왕족이 숙청당하는 상황에서, 유일한 선택지였어.”
포니는 고개를 저었다.
“학창 시절에는 내 혈통이 싫었어. 남들은 배가 부르다고 하겠지만, 사실이 그런걸. 왕이 될 수 없는 왕족. 마법을 쓸 수 없는 마법사 같은 거지.”
“…….”
“왜 왕족을 혐오했을까? 수많은 이유를 댔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아. 사실 나는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던 거야. 왕이라는 직함을.”
“그게 나쁜 건 아니잖아.”
“동화 속 왕의 모습을 꿈꿨던 것일까? 남들과 다를 줄 알았는데, 바꿀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포니는 오열했다.
“정말 잘하고 싶었단 말이야. 그런데 시로네, 그게 잘 안돼! 그게 너무 분해!”
피를 토하면서 울부짖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시로네는 입술을 깨물었다.
‘모순.’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섬뜩해지는 진실이 있다.
‘이 세계는 이상하다.’
애초에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세계라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이렇게 만들지 않을 수 있었어. 모두가 행복한 세계 따위, 충분히 가능했잖아.’
신은 악취미를 가진 변태일까?
‘아니.’
어쩌면 신은 완벽한 세상을 창조했고, 인간만이 거대한 착각을 하고 있는 것.
‘따라서 마음은 오류.’
옳은 것은 공空.
하지만 제트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의 오류를 미래에 전하고 싶어 했다.
‘타키온의 구결. 그게 바깥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열쇠라면, 최소한 나 혼자라도…….’
신과 싸울 수 있다.
각오를 다지는 그때, 문이 열리고 알비노와 루피스트, 단테가 들어왔다.
“오셨군요.”
알비노가 웃으며 다가왔다.
“불렀다고 들었네. 토르미아 쪽 사정은 알겠지. 바쁜 시간을 냈으니 모쪼록…….”
“하겠습니다.”
알비노는 입을 다물었다.
“토르미아를 세계 지도국으로 만드는 일에 협조하고 싶어요. 제가 뭘 하면 되죠?”
‘흐음, 이건…….’
알비노가 수염을 쓸어내렸다.
‘기대 이상인데?’
다시금 호전성이 불타올랐으나 그는 내색하지 않고 포니를 돌아보았다.
“상태는 어떤가?”
조금 전 흥분을 해서인지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어쩌면 그편이 나을 것이다.
“일단 앉지.”
테이블로 자리를 옮긴 루피스트가 물었다.
“토르미아를 돕겠다는 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지? 전쟁도 포함되어 있는 건가?”
“야훼의 뜻을 꺾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전쟁이 유리하다면 벌이지 못할 것도 없어요.”
일단은 그 정도.
“이해했어. 그런데 왜 생각을 바꿨지?”
“구심점이 필요해요. 토르미아를 중심으로 인류를 규합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기스 같은 자에게 세계 지도자의 자리를 넘길 수 없어요.”
이번 시위를 통해 시로네도 느낀 게 많은 듯했다.
알비노가 말했다.
“이미르의 울티마를 채굴하는 게 요원한 이상 정치적 역량은 필수겠지. 하지만 알고 있을 텐데? 우리가 전 인류를 한데 모은다고 해도, 진정한 통합은 아니야.”
“울티마는 됐어요.”
과격한 언사에 모두가 눈을 깜박거렸다.
“물론 통합을 포기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 차선책을 찾아야 할 때예요.”
“그래서 찾았나?”
태양을 감싸는 스피어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제 의견은 충분히 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실지 선택해 주세요.”
알비노가 말했다.
“흠. 현재 토르미아의 후보 순위는 6위. 지도국이 될 정도로 표를 얻을 수 있는 확률은 16.4퍼센트일세.”
그리고 단테를 돌아보았다.
“나도 궁금하군. 시로네가 우리를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면, 확률이 어떻게 되지?”
계산을 끝낸 단테가 입을 열었다.
“……11.7퍼센트입니다.”
알비노는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더 떨어졌군. 야훼와 손을 잡는 것이, 폭탄을 안는 것과 같다는 건가?”
“초기 변수는 아라크네의 스캔들 기사에 야훼의 이름이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일단락되었다면 상관없지만, 기스가 불을 질러서 사건이 커졌어요.”
단테는 모든 정보를 고려한다.
“본래 야훼는 상징적인 이미지였죠. 하지만 정치면에 이름이 올라가면 적은 늘어납니다. 시위대가 반으로 갈라진 만큼, 자이브의 시민들 절반은 야훼를 싫어할 거예요.”
“하지만 성전에서 시민들의 권한은 기스에게 위임한 투표권밖에 없어. 타국의 표심과는 관계없을 텐데?”
“물론 그렇죠. 다만…….”
단테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교황의 힘이 커진다는 게 문제예요. 성전 개최지에서 야훼가 비판당하면, 세계 최대의 종교인 라미교가 온 세상에 이를 전파할 겁니다. 게다가 허울뿐인 절차라고 해도, 세계 지도국은 공식적으로 교황의 승인을 받아요. 시로네가 창출할 변수도 분명 크지만 정치는 달라요. 아마 표를 받기는 어려울 겁니다.”
오히려 확률이 떨어지는 상황.
“그렇군.”
알비노는 이해했다.
“나도 정보부장의 말에 동의하네. 당사자를 앞에 두고 이런 말 하기는 민망하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시로네의 제안을 거절해야 하는가?”
“당연히…….”
단테가 말했다.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자국의 모든 것을 걸고 시로네를 붙잡아야 해요.”
알비노가 입꼬리를 올렸다.
“왜지?”
“기분이 좋으니까요.”
좌중이 침묵하는 가운데 설명이 이어졌다.
“에이스가 손에 들어왔다고 해서 카드 게임에서 이기는 건 아닙니다. 바닥에 깔린 패와 메이드가 되어야 하죠. 하지만 일단 에이스를 가지면…….”
“기분이 좋지.”
“네. 바닥에 깔린 패가 메이드 시키기 어려운 조합이라고 해도 상대 또한 아직 메이드가 아닐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기세는 훨씬 올라가게 되죠.”
“투표함을 열어 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니까.”
단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돌아가는 정세만 봤을 때는 에이스는 나쁜 패입니다. 하지만 어차피 확률로는 격차를 좁힐 수 없다면, 토르미아도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턱을 짚은 루피스트가 눈을 깜박거렸다.
“…….”
“죄송합니다. 정보원이라는 놈이 기세 같은 소리를 해서. 이건 개인 의견이니…….”
“아니.”
알비노가 웃었다.
“자네는 최고의 정보원이야. 16.4퍼센트를 움직이지 않았나. 이걸로 가지. 해 보자고.”
그렇게 결론이 나자 시로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저는 뭘 하면 되죠?”
“만장일치. 라미교의 세계적인 여론을 누르려면 11개국 전부가 토르미아를 찍어야 해.”
루피스트가 말했다.
“협박이든 허세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왕에게서 표를 뺏어 와. 모조리 다.”
베론 문제 (2)
***
케시아의 장관이 정무 보고를 하는 중에도 페르미는 고독한 뇌에 갇혀 있었다.
“……그래서 각 부처 협의하에 공문을 보냈습니다. 그 뭐지, 국제재판부에요.”
엔젤의 약효에 정신이 몽롱한 장관들은 분초를 다투는 와중에도 느긋했다.
“이거 처리하느라 힘들었습니다. 전 국왕께서 서거하시고 처리할 일이 산더미예요.”
페르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대체 약을 얼마나 투여한 거야?’
용법을 준수하면 엔젤은 일상생활이 가능한 수치까지 고통을 떨어뜨린다.
물론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서 불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테지만…….
‘왜 자꾸 용법을 무시하냐고!’
그 정도도 버티지 못하는 자들이 장관이라고 앉아 있는 것이 기가 막혔다.
‘후우.’
페르미는 감정을 감추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란스틴의 행방 건은 어떻게 됐죠? 6시간 안에 정보를 얻어야 합니다.”
대답은 없었다.
페르미가 시선을 들자 장관들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문제라도 있나요?”
“그게, 성전에 온 이후로 하루도 쉬지를 못했습니다. 다들 피로도도 심하고요.”
피로?
‘짜증 나게 하네.’
물론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지만, 장관은 각 부처의 수장이 아니던가?
비서실장이 말했다.
“전하, 업무량이 너무 많습니다. 다들 지쳐 있어요. 이대로는 버티지 못할 겁니다.”
‘그래.’
그것을 패배라고 하는 거야.
차라리 순순히 인정하고 분루를 삼킨다면 이토록 화가 나지는 않았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