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82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작업량이 뒷받침되지 않아도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남이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기에.
‘한배를 탔다는 것을 빌미로 협박하는 거지. 침몰하기 싫으면 네가 더 희생하라는.’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오히려 더 많은 고통을 받아야 하는 조직 사회의 모순.
‘버릴까?’
장관 하나는 대체할 수 있지만, 조직 전체의 업무 효율도 계산해야 했다.
무엇보다 시간이 촉박했다.
‘두들겨 패서 문밖으로 던져 버리면, 수명이 천 년은 늘어난 것처럼 후련하겠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지기에 페르미는 예의 눈웃음을 지었다.
“그렇죠. 무리한 요구를 했네요. 여러분이 얼마나 왕국을 위해 노력하는지 알고 있어요.”
감동은 없다.
그들이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페르미는 속이 뒤집혔다.
‘참자.’
인간이 자기중심적이라는 것 정도는 글을 배우기 전부터 깨달은 사실이니까.
‘괜찮아. 내가 하면 돼. 남을 탓할 필요 없어. 내가 원하는 일이기에 하는 거니까.’
할 수 있거나 없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해내야 하는 게 세상이다.
‘그게 승리라는 거야.’
페르미는 기존의 계획을 수정했다.
‘기타루맨을 찾는 건 실무자에게 맡길 수밖에 없어. 각 부처의 외교적 인맥이 중요하다. 다른 업무는 내가 처리할 수 있을 거야. 여섯 가지 업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안건을 배열하고…….’
23분 걸린다.
‘안 돼. 18분으로 줄여. 각국의 외교 기록을 검토한 다음 오메가 999의 기록을 대입해서…….’
그 순간 페르미의 머리가 핑 하고 돌았다.
‘어떻게…….’
힘들다는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올 수 있지?
‘이기는 건 원래 힘든 거야. 지나가는 애도 안다고. 우리와 똑같은 시간을 가진 타인과 싸워서 우위를 점하는 거잖아. 그런데 너희들은 고작…….’
페르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냉정해. 감정에 휘둘리면 일을 망치게 돼. 여기서 침몰할 수는 없다고.’
전 국왕 마놀카는 페르미를 이렇게 정의했다.
유능有能.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참고 또 참을 수 있는 인간.
“잡다한 업무는…….”
페르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딱히 중요하지 않으니 생략하죠. 여러분은 란스틴을 찾는 일에 총력을 기울여 주세요. 그 외의 시간은 어떻게 사용해도 좋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러죠.”
딱히 더 얻은 것도 없었기에 장관들은 무미건조한 태도로 방을 나갔다.
홀로 남은 페르미는 고개를 숙였다.
“크으으으!”
감정병의 병세가 악화된 것이다.
‘제길.’
엔젤을 투여할 수 없는 이유는 뇌의 기능을 100퍼센트 유지해야 하기 때문.
시로네의 아가페로 병세를 유예시킬 수 있지만 페르미에게는 없는 선택지였다.
‘어떤 식으로든 얽혀서는 안 돼.’
어디까지나 0.1퍼센트의 거짓과 99.9퍼센트의 진실로 세상을 끌어가야 한다.
“으으으…….”
궁여지책으로 페르미는 자신의 넷째 손가락을 강하게 움켜쥐고 몸을 틀었다.
우득 뼈가 부러지고 통증이 뇌를 쳤으나, 이것으로 당분간은 안심이었다.
“후우.”
치료를 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페르미는 그대로 책상에 상체를 기댔다.
‘어머니.’
어떻게 버텼을까?
모든 이가 자신만을 위하는 가운데 홀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 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대수의 법칙.’
범인을 초월한 시야를 가진 사람이었다.
‘내가 조급했던 거야. 내 시야가 좁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고, 옹졸해지는 거라고.’
한 인간이 다음 순간 어떤 행동을 할지는 거의 예측이 불가능하지만.
‘표본이 늘어날수록…….’
통계는 정확해지고, 모집단은 예측 가능한 패턴으로 그려지게 되는 것이다.
‘선지자였어.’
욜가의 광역 시야에 담긴 표본은 인류 전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거기에서 나오는 판단력은 가히 예측을 넘어 예언의 수준.
‘본인의 죽음조차 알고 있었던 사람이야. 인류 역사의 마지막, 이미 보고 계셨겠지.’
그렇기에 아들의 곁을 떠난 것이었다.
감정이 진정되자, 페르미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부러진 손을 치유했다.
붕대를 감으며 손목에 채워진 시계를 살핀 페르미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하비츠 타임이군.”
***
“키키키키!”
하비츠는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모르겠지, 누굴 죽일지? 응? 절대로 모를 거야. 왜냐면 나도 모르니까.”
전에 없이 흥분한 이유는 일종의 분노.
코로나의 국왕을 암살하려다 무위에 그친 그는 궁여지책으로 시녀를 죽였다.
룰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지만, 게임을 재미없게 풀어 버렸다는 수치심은 상당했다.
‘이미 지나간 일.’
과거에 미련을 갖지 않는 하비츠는 오히려 이것을 역이용할 생각이었다.
“누구지? 누가 죽을까?”
자신도 알 수 없다는 긴장감이 약속 시간이 다가올수록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았다!’
델타 본청의 주방에서, 짐을 실어 나르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엘리키아가 발동하고.
“오늘 일도…… 컥!”
배니싱이 깨지면서 남자는 자신의 목이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하아! 하아!”
자,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위저드.’
위치가 포착되는 것과 동시에 그녀가 나타났기에 하비츠는 입술을 적셨다.
“와라. 이번에는 내가…….”
그리고 그 순간 엘리키아의 신호를 통해 위저드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하비츠의 인상이 구겨졌다.
“크으으으……!”
위저드의 앞에 시로네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키아의 빛이 델타 본청을 감쌌을 때.
‘하나, 둘, 셋…….’
각국의 수뇌부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10초 동안 숨을 쉬지 못했다.
‘죽었다.’
주방의 남자가 목이 잘렸다.
“후우, 됐어. 이제 됐다고, 앞으로 1시간은.”
누군가는 안도했고.
“빌어먹을. 언제까지 이렇게 간을 졸여야 하는 거야? 이러다 심장마비로 먼저 죽겠어.”
누군가는 투덜대는 가운데.
“오빠.”
위저드가 시로네에게 말했다.
“아니, 스승님.”
시로네는 말이 없었다.
토르미아가 코드 원, 왕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동안 그는 위저드를 찾았다.
‘한 번은 만나야 했으니까.’
하지만 막상 그녀를 눈앞에 두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우선…….’
강해졌다.
수련을 끝냈을 때도 완벽했지만, 한 번의 벽을 더 넘은 듯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 강렬한 눈빛도 시로네의 얼굴을 눈에 담는 순간 말랑하게 풀어졌다.
“죄송합니다.”
하비츠 암살에 실패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싸우고 있지만 시로네가 원하는 결과는 결코 아니었을 것이기에.
“제가 책임지고…….”
“위저드.”
시로네가 말을 끊자, 위저드는 마치 죄를 지은 것처럼 어깨를 들썩였다.
“미안하다.”
이미 논리를 초월한 아이였기에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진심뿐이었다.
“너에게 피를 묻히게 했어. 나 때문에.”
한 번은 그래야 했지만, 그 한 번이 평생의 마지막이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내가 너를 지옥으로 끌어들였어. 그러니 이제 그만하자. 전장에서 벗어나.”
위저드는 분했다.
‘실망하신 거야. 내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어쨌거나 거역할 수는 없었다.
‘끝이구나.’
한편으로는 하비츠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그때.
‘아니야.’
그녀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이건 위험한 도박이야. 여기서 끝내면 안 돼.’
신의 주파수.
그녀가 마음의 자물쇠를 푸는 순간 하비츠는 모든 것을 알게 될 터였다.
‘벗어날 수 없어.’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살인을 저지른 그 자리에서, 하비츠는 움직이지 않고 감각에 집중했다.
‘막혔다.’
신의 주파수를 통해 뭔가 느껴지려는 찰나 위저드가 마음을 닫은 것이다.
‘나를 사랑한다고 했었지.’
만약 그녀의 마음이 시로네에게 향해 있다면 자동적으로 게임은 하비츠의 승리.
‘아니, 약간의 다정함이라도 묻어난다면 내 마음은 거짓으로 기울게 되겠지.’
만약 그렇게 된다면.
“…….”
그때는 하비츠 본인도 혼돈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상상할 수 없었다.
위저드가 말했다.
“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저에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주세요.”
갑자기 태도를 바꾼 이유를 짐작하지만, 시로네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널 탓하는 게 아니야. 사탄과 이런 게임을 하게 둘 수는 없어. 이제 나에게 넘겨.”
“스승님이 책임질 일이 아니에요. 암살에 실패했을 때부터, 이건 제 싸움이니까요.”
시로네는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다.
“알아, 네가 왜 이러는지. 하지만 이제부터…….”
위저드의 손목을 잡는 순간, 무상신의 화신이 나타나 크게 흐느적거렸다.
“……초공.”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여기서 더 버티다가는 정말로 마음의 문이 열려 버릴 것 같았기에.
‘백자괴력!’
위저드는 전심력을 다해 시로네에게 가장 강력한 일격을 날린 것이었다.
쾅!
1프레임이 사라지고, 공기가 팽창하면서 건물의 벽이 우르르 터져 나갔다.
“하아. 하아.”
위저드는 전방을 노려보았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그 순간 먼지구름이 걷히더니 빛의 연기에 휩싸인 시로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 정말 강하구나.”
상처 하나 없는 상태에 위저드가 멍한 가운데 시로네가 씁쓸하게 웃었다.
“하지만, 누가 너를 가르쳤다고 생각하는 거냐?”
“아…….”
화신술이 자아의 발현이라면, 시로네는 그녀의 초자아라고 할 수 있었다.
“솔직히 몰랐다면 당했을 거야. 하지만 나는 너에 대해 잘 알고 있지. 그러니…….”
위저드는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기쁘다.’
자신의 일격을 막아 낸 것만으로도 우주적 사명감이 절반은 덜어진 기분이었다.
‘언제든지 기댈 수 있는…….’
내 유일한 어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