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86
공범이 아닌 페나가 은신한 가운데, 시로네 일행은 항구의 창고를 돌아다녔다.
물론 경비는 삼엄했고, 하나의 창고를 열기 위해서는 경비를 매수해야 했다.
“정지. 거기 누구야?”
처음 순찰대에게 걸렸을 때, 시로네는 경비를 해제하는 조건을 파악했다.
“아, 그게, 길을 잃어서요.”
“길을 잃어? 지금 시간이 몇 신데. 그리고 너희들 사용자…….”
“설득할 기회를 주세요.”
순찰대는 바로 말을 바꾸었다.
“아, 그래. 내 성격은 소심. 한 번 설득에 필요한 포인트는 100만 포인트야.”
‘의외로 싸다.’
다만 막상 주사위 대결에 들어가자 난이도는 상점 직원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물론 시로네에게 난이도는 무관.
“양자 붕괴!”
한 번에 성공시키자 순찰대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야? 너 괜찮은 녀석이군. 하지만 조심해.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때는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게다가 1회성 설득.’
그렇게 멜키두 시간으로 대략 3시간 정도를 탐색한 끝에 일행은 깨달았다.
“창고 물품의 대부분은 왕성에서 사용하는 식량이나 유저들의 아이템이야. 이대로 뒤지면 끝이 없겠어.”
에덴이 덧붙였다.
“설득에 들어가는 돈이 싸다고 해도, 계속 매수할 수는 없잖아.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그들이 조사한 창고는 대략 스무 군데였다.
“아이템을 팔면 포인트를 벌겠지만, 그것도 중간층을 나가야 해. 여기서는 무용지물이지.”
이루키가 말했다.
“이제 세 번 정도 시도할 포인트밖에 없는데. 7천 정도는 남겨 두고 싶어. 경비대장을 설득하는 데 5천만이라도 중간 다리가 있을지 모르니까.”
“그럼 딱 세 번만 더 해 보자.”
그렇게 몸을 돌린 네이드는 당장 눈에 들어오는 작은 창고 하나를 가리켰다.
“저기 어때?”
“경비가 2명인데? 효율이 떨어지잖아.”
“이제는 도박이지. 해 보지 않았던 걸 해 보는 수밖에. 따라와. 내가 말할 테니까.”
그들이 뚜벅뚜벅 걸어가자 2명의 경비가 창을 내밀며 무섭게 소리쳤다.
“정지! 올빼미! 암구호를 대라!”
“거, 매수 좀 합시다.”
너무 당당한 태도에 얼이 빠진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보던 경비가 창을 내렸다.
“좋아. 내 성격은…….”
그렇게 매수가 끝나고, 경비들은 10분의 시간을 주고 창고 문을 떠났다.
“찾았다.”
문을 여는 순간 네이드는 직감했다.
“왕성 보급 물자.”
시스템을 관리하는 자들이 사용하는 것이었기에 당연히 등급은 최상이었다.
“사용자가 더 강한 아이템을 가지게 되면 통제가 안 되니까. 하지만 이런 것보다도…….”
이루키는 아마 오늘 밤에 도착했을, 밀봉이 풀리지 않은 중간 크기의 상자를 가리켰다.
“이게 더 재밌을 것 같지 않냐?”
“동감.”
모두 모여 상자의 뚜껑을 살펴보니 ‘검열 대상’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었다.
‘정식 등록품이 아니야.’
못을 뜯어내고 안을 들여다보자 각종 물품이 비닐에 차곡차곡 싸여 있었다.
그리하여 얻은 것은…….
“이거 봐. 빠른 복구 패스 목걸이. 설명은 이상한 코드로 적혀 있어서 모르겠네.”
“봐 봐.”
시로네가 확인했다.
“히든 코드네. 이건 멜키두의 물리적 장벽을 뚫을 수 있는 아이템이야. 아마 건물이 부서지거나 지하 시설에 문제가 생길 때 사용하는 것 같은데. 설명에 의하면 기존 지하수를 뚫지 못하는 오류 수정, 3미터 이상 철벽을 통과하도록 능력치 향상이라고 적혀 있어.”
에덴이 말했다.
“검열 대상이라는 건 시스템에 적용하기 전에 테스트를 거치기 때문일 거야. 한마디로…… 아직 관리자도 갖지 못한 아이템이라는 거지.”
네이드는 이미 주워 담고 있었다.
“몇 개 챙기면 되지? 5개?”
“6개.”
“아, 맞다. 커티스 씨도 있구나.”
이루키는 보석이 박힌 목걸이를 한아름 품에 안은 네이드를 뒤로 떠밀었다.
“비켜 봐. 내가 볼게.”
이루키가 건진 것은 경비 등록증이었다.
“경비라는 게 일종의 옵션이었군. 이게 있으면 우리도 경비가 되는 거야. 시스템상.”
이루키의 말을 이해한 모두가 눈을 빛냈다.
“아하.”
그리고 10분 후.
“뭐야, 너희들! 내가 분명 10분 준다고……! 응?”
시로네 일행을 보고 고함을 지르던 2명의 경비가 잠시 눈을 깜박거렸다.
“충성! 경계 이상 무!”
간부의 명찰을 달고 있는 네이드가 헛기침을 하며 그들에게 걸어갔다.
“흠흠! 그래, 수고하네. 별일 없지?”
“네! 없습니다!”
“늦은 밤에 고생이 많구먼.”
“아닙니다! 왕국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저의 소명입니다!”
“껄껄! 자네 말을 들으니 내가 다 뿌듯하군. 그럼 수고 좀 해 주게. 자, 가지.”
시로네 일행이 절도 있게 뒤를 따르자 경비들이 무기를 세우고 소리쳤다.
“조심히 가십시오! 충성!”
창고를 빠져나온 시로네 일행이 키득거리고, 네이드가 등록증을 흔들며 뒤를 돌아보았다.
“미안.”
상자는 텅 비어 있었다.
최후의 5시간 (2)
그렇게 창고의 물품을 챙기고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페나는 이미 선장을 만나고 있었다.
“어떻게 됐어?”
“잘됐어요. 이따가 말씀드릴게요.”
선장 또한 이미 매수가 끝났지만 없는 곳에서 얘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선장이 말했다.
“슬슬 출발하지. 분명히 말해 두지만 나는 안내하는 역할이야. 경비대장을 매수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해. 철저한 원칙주의자니까.”
항구를 벗어난 시로네 일행은 왕성, 정확히는 왕성의 뒷문을 통해 들어갔다.
현실의 성과 똑같은 구조였고 많은 사람들이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있었다.
이루키가 말했다.
“저들 모두가 저마다의 역할을 수행하는 프로그램이지. 멜키두라는 거대한 세계를 유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야. 여태까지 플레이 해 본 결과, 솔직히 잘 만든 시스템이야.”
시로네도 동의하는 바였지만 이런 세계를 만든 이유에 대해서는 마음이 아팠다.
‘카인이라고.’
오메가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미토콘드리아 이브의 아들, 정확히는 릴리스의 아들이었다.
“여기야.”
선장이 경비대장실을 가리키더니 노크했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얼굴에 상처가 있는 단단한 인상의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경비대장님. 오늘 밤에 도착한 보급품 목록입니다. 서명을 부탁드립니다.”
높은 권한이 필요한 프로세스였다.
서류를 천천히 훑어보던 경비대장이 시선만 들어 일행을 노려보았다.
“쟤들은 뭐야?”
“그게…….”
시로네가 나섰다.
“제 동료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있어요.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일단 매수에 성공하면 논리는 상관없지만 차마 네이드처럼 할 수는 없었다.
“동료? 누구?”
커티스의 정보에 의하면 경비대장을 매수하려면 반드시 누군가가 감옥에 있어야 한다.
“커티스입니다.”
경비대장의 눈빛이 변했다.
“안 돼. 그 녀석은 중범죄자야. 여태까지 저지른 살인과 강탈한 물품으로 죄목을 나열해도 서류 수십 장이 나와. 그 녀석은 풀어 줄 수 없어.”
“아니, 멜키두에서 커티스 씨는 무죄예요. 경비대장님을 설득할 기회를 주세요.”
“…….”
시로네를 무섭게 노려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나를 설득해 보겠다고? 내 성격은 완고. 설득에 들어가는 비용은 5천만 포인트다.”
예상대로였다.
“네.”
시로네가 대답하자 대장실이 위상공간으로 변하며 공범자들만이 남았다.
메시지가 들렸다.
-매수 프로그램이 발동되었습니다. 경비대장의 원칙을 크라임 다이스로 파괴하세요.
위상공간의 저편에서 경비대장이 걸어왔다.
‘이건 예상 밖인데?’
시로네 일행이 당황하는 동안 경비대장은 자신의 크라임 다이스를 꺼냈다.
8면체 주사위 4개를 본 네이드가 미간을 구겼다.
“뭐야, 우리보다 강하잖아? 설득은 똑같은 주사위로 승부하는 게 아니었어?”
시로네 일행의 주사위는 7면체 3개로, 눈의 개수도 주사위의 개수도 한 등급 낮았다.
경비대장이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흥, 여태까지 누구를 매수해서 이 자리까지 왔는지 모르지만 나는 다를 거야.”
시로네는 직감했다.
‘원칙주의자. 다른 관리자와 다르게 경비대장은 자신의 룰을 깨지 않아.’
메시지가 들렸다.
-서로 주사위를 굴려 나온 수만큼 크라임 포인트가 차감됩니다. 크라임 다이스의 눈 하나는 1만 포인트의 가치를 가집니다. 상대방의 크라임 포인트를 먼저 0으로 만드는 팀, 혹은 유저가 이기게 됩니다.
“푸우!”
네이드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1회성 승부가 아니야. 7면체 3개가 기본으로 얻을 수 있는 포인트는 더블을 포함해 42. 경비대장이 얼마나 포인트를 가지고 있는지 몰라도 시로네 혼자서 감당이 안 돼. 결국 우리도 굴려야 한다.’
이루키가 물었다.
“경비대장의 크라임 포인트는?”
-5천만 포인트입니다.
에덴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에 우리는…….”
조금 전에 5천만 포인트가 차감되었으니 대략 800만 포인트 정도 남았다.
‘단순 계산으로 주사위의 눈금이 800개가 모이면 우리는 파산이다.’
시로네는 턱을 괴고 생각했다.
‘커티스 씨가 최소 5천만이라고 한 게 이런 뜻이었구나. 너무 준비가 없었던 것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우리가 특이한 케이스일 뿐, 다른 사람들도 1억 포인트는 가지고 여기에 올 거야. 단순 주사위 승부로는 상당히 쉬운 게임일 수도 있어.’
따라서 이 승부는…….
“아이템.”
시로네가 물었다.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는 건가?”
-경비대장의 원칙은 모든 것을 걸고 부딪쳐라입니다. 이 설득에 한해 제약은 없습니다.
“순서도 바꿀 수 있는 거지?”
-가능합니다. 단, 순번이 돌기 전에 1명이 중복으로 참가할 수 없습니다. 같은 규칙으로 1명이 2개의 아이템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런 거였군.”
아이템이라면 항구의 창고를 뒤지면서 상당량을 획득해 놓은 상태였다.
“네이드의 도벽이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이야.”
“야!”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소리쳤으나 네이드도 내심 안도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내가 우겨서 포인트를 쓴 건데.’
시로네가 말했다.
“아이템이 적용되면 20턴을 넘지 않을 거야. 그만큼 한 번의 턴이 중요하겠지만.”
경비대장이 말했다.
“내가 먼저 하겠다.”
이것도 이례적이었지만 원칙주의자 앞에서 투정을 부려 봤자 헛일이었다.
그가 카드를 꺼냈다.
“대장의 권위.”
“뭐야? 그게 무슨 아이템이야?”
-경비대장은 관리자 전용 아이템을 사용합니다. 상점에서 구매할 수 없습니다.
카드의 효과가 나타났다.
-크라임 다이스의 가장 낮은 숫자만큼 상대의 공격력을 나눕니다. 3턴간 지속됩니다.
설명을 듣는 도중 주사위가 던져졌다.
‘1 나와라! 제발!’
네이드의 바람과 다르게 주사위의 눈은 각각 3, 6, 2, 7에서 정지했다.
‘나누기 2.’
앞으로 3턴 동안 경비대장을 공격하는 수치가 절반만 들어간다는 뜻이었다.
“아니, 뭐 저런 아이템이 다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