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95
화족을 통솔하여 기마대를 몰아낸 것은 좋았으나 난데없이 숲에 불이 붙었다.
‘마법.’
그렇게 부른다고 들었다.
‘이제 어떡하지?’
아이들이 인질로 잡혀 있는 한 아르망은 절대로 검을 들지 않을 터였다.
‘기마를 따돌리는 건 무리야.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1명이라도 낙오되면 화족은 도망치지 않을 테지. 그렇다고 이대로 끌려가면…….’
순간 요라한의 눈썹이 꿈틀했다.
‘있다!’
모두를 데리고 도망치는 방법이.
‘마법사가 어떤 판단을 할지는 모르지만, 아니, 운이 아니야. 놈들은 절대로 우리를 쫓아올 수 없어.’
이제 남은 것은 하나.
‘할 수 있을까?’
품에 넣은 단도를 만지작거리는 요라한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강렬했다.
금단의 영역 (2)
요라한이 갈등하는 동안 아레온은 화족들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과시했다.
“보라. 나는 100명의 기마대로 이 숲을 정복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1만이 넘는 부대가 있지. 조만간 이 세계는 내 발아래에 놓일 것이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선 속에서 아르망은 생각했다.
‘매력적이다.’
젊고, 아름다우며, 오직 지배를 위해 태어난 듯한 저 능동적인 태도야말로…….
‘인간이 말하는 왕의 혈통이라는 것이겠지.’
아레온의 몸에서 빛이 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테지만.
‘하지만 싫다.’
그 빛이 아르망은 불쾌했다.
‘오직 자신만이 빛나야 하는 존재라면, 그 빛은 결코 아름답지 않아. 요라한은…….’
세상을 아우르는 빛이 될 사람이었다.
족장 루티아가 물었다.
“우리를 어떻게 할 생각이오?”
“나는 관대하다.”
말과 달리 아레온의 서슬 퍼런 장검이 루티아의 턱 밑으로 파고들었다.
“단, 나의 백성에게만.”
아레온이 검을 거두며 화족을 돌아보았다.
“너희들은 이제 곧 위대한 왕국의 시민이 될 것이다. 왕을 보필하는 아주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는 거지. 좋은 집, 좋은 음식, 온갖 보물들이 너희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루티아가 말했다.
“우린 무엇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 숲에서 평화롭게 살아가고 싶을 뿐입니다.”
“애석하군.”
아레온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너희들은 무언가를 잘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잘하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지?”
“모릅니다.”
“너희들이 할 수 있는 건 오직 복종뿐이라는 것이다.”
아레온이 루티아의 목을 베려는 그때 아르망이 앞을 가로막으며 검을 들었다.
강렬한 쇳소리가 들리고, 기마대가 불쾌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돌진했다.
아레온이 손을 들었다.
“그만.”
기마대가 물러서는 가운데 피스크가 말했다.
“육식종입니다. 조금 길들일 필요가 있을 것 같군요.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아이들을 죽이는 것이라면 군인보다는 자신이 직접 하는 게 나을 터였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뒤로 물러서는 아레온은 자신감이 넘쳤다.
“여자여, 이름이 뭔가?”
“아르망.”
“마음에 들었다.”
오직 그것만이 중요했다.
“너는 노예가 아니야. 강하고 적극적이지. 나에게 와라. 지옥에서 구해 줄 테니.”
요라한과 2년을 넘게 살았기에 이제는 그녀도 남자의 언어를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유부녀요. 그럴 수 없소.”
“하하! 말하지 않았느냐, 나는 관대하다고. 나를 만나기 전의 일이야 개의치 않겠다. 하지만 지금 부정하는 것은 화족 전원이 죽어도 할 말이 없는 죄다.”
아르망은 말이 없었다.
‘미안하다, 얘들아.’
요라한을 배신할 수 없기에 화족은 몰살당할 테지만, 그때는 그녀도 검을 들 것이다.
“흐음. 과연…….”
아레온은 침묵으로 거절의 의사를 표시한 아르망을 광기의 눈으로 쳐다보았다.
“전부 죽여.”
“잠깐,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창고에서 요라한이 달려 나오자 아르망의 표정에 처음으로 감정이 드러났다.
현재 상황조차 잊을 만큼 안도감이 밀려들었으나 이내 미간이 구겨졌다.
‘왜 온 거야? 바보같이.’
아레온이 물었다.
“누구냐? 화족 중에도 배신자가 있나?”
“저, 저는 인간입니다. 세상을 떠도는 사상가지요. 화족에게 붙잡혀 2년 동안 수모를 당했습니다.”
“붙잡혔다고?”
이 순한 종족에게?
“여기 있는 아르망이 제 아내입니다. 2년 동안 이곳에서 지식과 기술을 전수했지요. 다른 화족을 건들지 못하도록 계속 감시도 받았습니다.”
어설픈 거짓말은 유일한 기회마저 날려 버릴 것이기에 사실로만 말을 꾸렸다.
아레온이 돌아보자 피스크가 말했다.
“가능한 일입니다. 고문서에 기록되어 있는 육식종은 잔인하고 포악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학자는 사실대로 적었을 것이다.
다만 육식종이 어째서 인간에게 잔인하고 포악해야 했는지를 외면했을 뿐.
“그렇다 이거지.”
흥미로운 눈으로 요라한을 바라보던 그가 아르망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강제로 붙잡힌 상태였다면, 내가 네 아내를 취해도 딱히 상관없겠군?”
“그, 그건…….”
“왜? 기분이 나쁜가?”
“아, 아닙니다! 제가 어찌 미카스의 왕자님에게 그런 마음을 품겠습니까! 다만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청이라?”
요라한은 납작 엎드렸다.
“저를 미카스로 데려가 주십시오.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세계 각지의 인재에게 읍소를 받는 입장에서 아레온은 기분이 좋았다.
“하하! 사상가라더니 제법 시대를 보는 눈이 있구나. 좋다. 너를 내 곁에 두고 쓰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인간은 타인의 진실을 알 수 없기에 화족의 배신감도 당연한 것일 테지만.
‘어째서?’
아르망은 요라한의 진실을 알고 있다.
‘방법이 없을 텐데.’
죽는 한이 있어도 아내를 버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의문은 깊어졌다.
“자, 이것으로 됐군. 네 남편도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니 너도 선택하는 게 어때?”
요라한을 믿기에 아르망은 검을 내렸으나, 아레온은 순종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래, 이게 세상의 이치지. 너도 그만 일어나라. 앞으로 나를 위해 많은 일을 해야 할 것이야.”
요라한은 가장 낮은 곳에서 세상을 올려다보고, 아레온은 두 발을 땅에 디딘 채 하늘을 향한다.
알고 있을까?
‘보인다.’
그 끝과 끝의 간극이야말로 인간의 숨통이 가장 잘 보이는 위치라는 것을.
순간 표정이 사라진 요라한이 자연스럽게 일어나 품속의 단도를 휘둘렀다.
“어?”
미움도 원망도 아니라서, 그저 대상 없이 휘두르는 것처럼 부드러운 동작 끝에.
“……어?”
아레온의 목덜미에서 피 분수가 터졌다.
“왕자님!”
갑옷으로 가릴 수 없는 부위를 정확하게 칼로 그은 요라한이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도망쳐!”
화족들은 충격이었다.
‘선생님이…….’
누군가를 해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뭣들 하고 있어! 전부 죽고 싶어?”
세상 모두가 지시를 내린다면 그들이 따르는 사람은 오직 요라한일 것이기에.
“얘들아! 숲으로 가! 지금!”
정신을 차린 화족들은 사력을 다해 뛰었다.
숲으로 들어가면 잡을 길이 없다는 것을 아는 기마대장이 말에 올라탔다.
“쫓아라!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기다려!”
피스크의 외침에 기마대가 앞발을 들었다.
“왕자님.”
아레온의 상태가 심각했다.
목덜미의 상처를 압박해 보지만 손바닥 사이로 뜨거운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척수를 피해서 동맥만 끊었어. 설마 도망칠 시간을 벌기 위해? 이 녀석, 해부학을 아는 놈이다.’
당시만 해도 아는 자가 별로 없었다.
“피, 피스크.”
풍선처럼 얼굴이 부푼 아레온이 피스크의 어깨를 붙잡고 말을 쥐어짜 냈다.
“날…… 날 살려라. 날…… 살려.”
‘제길!’
화족이고 뭐고, 왕자가 죽어 버리면 그들의 인생도 여기가 마지막이었다.
피스크가 고개를 쳐들었다.
“지금 당장 왕자님을 데리고 본진으로 귀환한다! 어서! 1초라도 낭비하면 안 돼!”
미로 같은 숲을 최단거리로 주파하려면 기마대의 희생은 필수적이었다.
“왕자님! 조금만 참으십시오, 왕자님!”
아레온을 운송하는 와중에도 피스크는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하여 출혈을 막았다.
‘상처를 막는 건 흙이지만, 이건 출혈이 너무 심해. 그렇다면 물의 힘으로…….’
피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먼 훗날 인간은 만물을 이해하게 되지만, 이는 훨씬 더 많은 전쟁을 치른 뒤였다.
“흐으으으!”
식은땀이 흐르는 피스크의 얼굴은 절망적이었다.
“모르겠어!”
공기, 흙, 물, 불의 4대 원소를 어떻게 조합해도 피를 창조할 수는 없었다.
“……철?”
혹은 다른 어떤 무언가.
“피스크.”
고도로 집중하고 있기 때문인지 아레온의 목소리가 이번에는 거슬렸다.
“왕자님.”
이미 사색이 되어 있는 아레온의 상태는 전문가가 아니라도 사망 직전임을 알 수 있을 지경이었다.
“죽고 싶지…… 않아.”
그 말을 끝으로, 미카스 왕국의 왕자는 눈조차 감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다 끝났어.”
이대로 왕국에 돌아간다고 해도 미카스의 왕이 자신을 죽일 터였다.
“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피란 말이지.”
자신의 인생을 파멸시켰다면, 인생을 걸어 볼 만한 가치도 있는 게 아니겠는가.
“흥.”
달리는 마차에서 뛰어내린 그는 왕자의 시체가 미카스 왕국으로 향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
오메가의 기록에 의하면, 피스크는 평생을 바쳤으나 피를 창조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혈액의 구성과 성분이라는 저작물을 완성시키기는 했으나 그것 또한 전승몽과 무관한 이야기.
깊은 꿈에 잠겨 있는 시로네의 무의식이 향한 곳은 요라한의 번뇌였다.
“하아! 하아!”
화족을 이끌고 정신없이 숲을 달리던 그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무릎을 꿇었을 때에야 숨이 턱 끝까지 찼다는 걸 깨달았고 고통이 밀려들었다.
“요라한.”
아르망은 말을 잇지 못했다.
“내, 내가…….”
손을 부르르 떨며, 요라한이 영혼이 빠진 것 같은 눈으로 중얼거렸다.
“사람을, 사람을 벴어.”
사랑을 설파하고 폭력을 멀리했던 신념이 한순간 물거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니, 그것도 이성의 문제일 뿐.
“흐으으으.”
그저 두렵고, 독을 마신 개구리가 뱃속에서 날뛰는 것처럼 마음이 욱신거렸다.
“아르망, 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