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98
“인간의 문제가 아니야. 드리모 프로그램도, 이면 세계 프로그램도 현재 정상적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야. 이대로는 5대 시스템의 밸런스가 무너진다.”
아르고네스가 고개를 돌렸다.
“마지막 기회를 주지. 레테에게 돌아가라. 이곳의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크크.”
바알의 눈빛에 강의가 깃들었다.
“그럴 리가 있나?”
아르고네스의 일격에 가슴이 욱신거리는 만큼이나 그는 기분이 좋았다.
마족 역사상 전대미문의 경지에 오른 그였으니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은 것도 사실.
‘세계의 마지막. 쉽게 끝날 것 같아서 허무했는데.’
다행이다.
‘제대로 휘두를 수 있겠어.’
다음 순간 바알과 아르고네스가 동시에 치받았고, 상아탑 외벽이 먼지처럼 흩어졌다.
“크으으으!”
율법으로 고정되어 있는 태성과 씽 일행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부서지고 있었다.
씽은 생각했다.
아마도 이것이 세상 끝의 전투일 것이라고.
“관리자도 별것 아니군.”
강의의 일 검에 상반신이 사선으로 절단된 아르고네스가 남은 팔로 물구나무를 섰다.
이어서 그 팔이 다리로 변하더니 어느새 상하가 역전되어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바알이 어깨 위로 검을 기댔다.
“역시 죽일 수는 없나?”
미문과 달리 세포 무한 증식이 가능한 아르고네스는 진정한 영생자였다.
“하지만 내가 이겼다. 죽일 수 없는 적 따위 더 상대해 봤자 귀찮을 뿐이야.”
그것 또한 사실.
온 힘을 다해 허리를 뒤튼 바알이 두 손으로 검의 손잡이를 쥐고 말했다.
“내가 마의 정점이다.”
아르고네스는 물론 태성과 씽 일행까지 한 번에 베어 버릴 수 있는 일격이었다.
“그만해.”
익히 알고 있는 목소리.
태성과 씽의 표정이 변하고, 바알의 눈동자에 실핏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검사를 흉내 내도 결국은 마족.
“야훼.”
중심을 향해 일그러진 얼굴로 입술을 찢는 바알의 얼굴은 악귀 그 자체였다.
씽은 믿을 수 없었다.
“시, 시로네.”
마족의 피로 범벅이 되어 있는 모습은 얼마 전에 봤던 시로네가 아니었다.
“크크, 결국 너도 왔냐? 원통하겠군. 결국 너는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어. 그리고 그 마족의 피. 어차피 너도 한낱 인간에 불과…….”
“닥쳐.”
시로네가 짧게 내뱉었다.
“나한테 말 걸지 마.”
바알의 육체 절반이 완전히 짓눌리고.
“……!”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는 중이었다.
바알은 강의를 끌어내 브레이크를 걸었다.
“크으으으!”
하지만 육체는 멈추지 않고, 오히려 몸이 파괴될 듯한 압박감이 밀려들었다.
“으아아아!”
그렇게 그는 하늘의 별이 되었고.
“……아아아아!”
잠시 후 엄청난 속도로 되돌아와 피를 토하는 입으로 시로네를 저주했다.
“가증스러운 야훼!”
“아니야.”
아마도 바알은 냉정했어야 했다.
“네 말대로 내가 가증스러운 존재라고 해도, 그저 위선자일 뿐이라고 해도…….”
마의 정점에 도달한 자부심이 꺾인 것은 불쾌한 일이었을 테지만.
“너희들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어.”
최초의 일격을 어떻게 당했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돌아오면 안 되었던 것이다.
“포톤 캐논.”
탄생한 것은 작은 광자 하나.
그리고 거기에 질량을 담아 광속의 99.9999퍼센트의 속도로 쏘아 보내면.
‘뭐야?’
아무런 느낌도 없을 테지만.
“으아악!”
이미 존재를 이루는 내부의 원자들은 모조리 뒤틀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이.
“인피니티.”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숫자로 퍼져 나갔다.
“허어어어억!”
그것은 충격보다는 기겁의 느낌이었고,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공포였다.
전면부가 끔찍하게 구겨진 바알의 육체가 또다시 뒤로 날아가는 그때.
“이리 와.”
시로네가 손을 내밀자 마치 물살에 밀린 듯 그가 다시 전방으로 날아들었다.
태성은 깨달았다.
‘입자의 파도.’
야훼가 아닌 1명의 인간, 빛의 마법사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였다.
“어어억! 어어어억!”
바닥에 고꾸라진 바알은 마치 열에 녹은 듯 사지를 뒤틀며 비명을 내질렀다.
다리 사이에 바알을 둔 시로네가 그를 내려다보며 살며시 주먹을 내밀었다.
“포톤 캐논.”
바알은 미친 듯 고개를 저었다.
“어어! 어어어어!”
“……인피니티.”
“으아아아아! 으아아아아!”
엄청난 개수의 광속 입자를 아래로 쏟아 버리자 바알이 사지를 경련했다.
우주의 탄생과 멸망이 오직 자신의 뇌를 통과해 지나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괴롭냐?”
이 경험을 형용할 방법이 없기에 바알은 눈물을 흘리며 꿈틀거릴 뿐이었다.
“복수가 아니야. 너를 괴롭힌다고 죽은 자들이 돌아오는 건 아니니까.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 되돌릴 수 없다고. 네가 죽였는데,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데, 당사자인 네가 책임을 질 수가 없단 말이야!”
“흐으으으! 흐으으으!”
슬픈 눈으로 바알을 내려다보며 시로네가 말했다.
“난 그게 너무 싫어.”
금단의 영역 (5)
장내가 숙연해졌다.
누군가를 심판하기 위해 선과 악으로 편을 가르고 싸우는 것이 아니다.
“이런다고 뭐가 달라져?”
사실은 죄인을 욕하고 싶지도, 선을 권하고 싶지도, 악인을 벌하고 싶지도 않고…….
“문제를 해결하고 싶을 뿐이야.”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저지르는 그 혼돈의 극치가 싫은 것뿐이다.
시로네의 말을 들은 바알은 깨달았다.
‘야훼가 아니야.’
미라클 스트림이 마에게 해롭다면 포톤 캐논 인피니티는 만물에게 해로웠다.
‘원자 파괴 능력.’
소정화를 통해 내면의 마를 전부 제거한 야훼는 더 이상 분노할 수 없을 테지만.
‘비슷하다.’
바알이 느끼기에 포톤 캐논 인피니티는 확실히 소정화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양자와 입자의 차이일 뿐, 1대1로 대응하여 파괴하는 방식은 같다는 것.
그래서 더욱 속이 뒤집히는 것이었다.
‘마법사에게 졌다고?’
혼돈의 마지막 경지에 도달했음에도 지성의 정점에게 짓밟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
‘웃기지 마! 아직 끝나지 않았어.’
악의 방법론.
제1군단장의 자존심도, 마족 최강의 자부심도 이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야, 야훼여.”
온몸이 비틀린 상태로 돌아누운 그가 팔꿈치에 의지해 납작 엎드렸다.
“참회하겠습니다.”
“…….”
지성이 이겼다.
하지만 그 광경을 지켜보는 아르고네스는 물론 태성도 심각한 표정이었다.
‘시로네.’
선악공애는 세계의 극단에 있는 자들이지만 목적성에 있어서는 오히려 안정적.
‘이제는 인간으로도 최강이다.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어. 만약 그가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인류의 미래가 파멸로 치달을 수도 있었다.
“그래.”
시로네는 주먹을 거두고 물러섰다.
“그런다고 죽은 자가 돌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부디 참회해라. 진심으로 그들을 애도해 줘.”
누구도 참회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악이 사라질 날은 오지 않을 것이기에.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시로네의 모습에 태성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래, 그랬었지.’
나쁜 마음을 먹을 리가 없기에, 야훼라는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겠는가.
“감사합니다.”
이마를 바닥에 대고 말하는 바알의 눈은 위를 올려다본 채 싸늘했다.
‘이걸로 끝이다, 야훼.’
제1군단장의 마계 데들리 크로스.
지금처럼 마가 강해진 상태라면 운석이 도달하는 시간이 훨씬 단축될 터였다.
‘당연히 위력도 상상을 초월.’
그의 육체가 보라색 연기를 뿜어내는 순간 씽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시로네! 저 녀석……!”
바알이 얼굴을 쳐들었다.
마치 종이 바뀐 것처럼, 분자구조가 변형된 그의 얼굴은 기괴함의 극치였다.
“결국 내 승리다, 야훼여.”
“안 돼!”
태성이 소리치는 순간 아르고네스가 튀어 나가 바알의 목을 싹둑 베었다.
“……늦었다.”
관리자가 가장 먼저 깨닫고, 시로네가 광활한 우주 너머를 돌아보았다.
‘온다.’
엄청난 질량의 운석들이었다.
바알의 육체가 완전히 소멸하자 대기 중에 스며든 마기가 탁한 음성을 내질렀다.
-크하하하! 마가 되었으니 나를 죽일 수도 없지. 어떠냐? 이것도 해결할 수 있을까? 설령 운석을 부순다고 해도 여파만으로 인류가 멸종할 것이다! 너는 지키지 못했어! 정말로 내가 참회라도 할 줄 알았던 거냐?
“아니.”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저 바랐을 뿐이지. 달라질 것은 없어. 우리는 계속해서 손을 내밀 거야. 너희들이 아무리 조롱해도, 한심하게 여겨도, 지금처럼 세 치 혀에 속아 넘어간다고 해도…….”
답은 명확하다.
“옳은 건 우리니까.”
이 우주 어디에도, 악마를 위한 성지는 없다.
“1시간에 한 번.”
시로네의 몸에서 빛의 연기가 피어올랐다.
“엘리키아.”
700만 명에 달하는 울티마 시스템이 마계 시스템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무슨 짓이냐!
현존하는 인류의 0.3퍼센트에 불과한 수치지만, 인간의 정의가 전부라면…….
‘그것은 또한.’
우주 전체의 0.3퍼센트이기에.
-아니야! 이럴 수는 없어! 어떻게 이런……!
“충분하다.”
우주에 비해 먼지에 불과한 운석을 소멸시키는 것 정도는 쉬운 일이었다.
시로네가 두 팔을 벌리자 십자가 형태의 광채가 천공을 향해 빛의 기둥을 쏘았다.
-야훼! 넌 고통스럽게 죽을 것이다! 언젠가 네가 사랑하는 인간이 너를 죽일 것……!
소멸을 직감한 바알이 빠르게 말을 내뱉었으나 결국 끝은 비명이 장식했다.
-오오오오오! 오오오오오!
무저갱으로 빨려 드는 듯한 소리에 이어 섬광이 사라지고 정적이 찾아왔다.
모두가 시로네를 향하고 있었다.
“그게…… 뭐지?”
율법을 다루는 씽에게 있어 조금 전의 섬광은 생애 최고의 충격이었다.
“엘리키아.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