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99
시로네가 그녀에게 돌아서며 말했다.
“울티마 시스템.”
씽의 표정이 멍해지고, 그녀를 보좌하는 음지와 양지가 미간을 찌푸렸다.
“씽 님.”
관철력이 약해지고 있다.
‘설득당하고 있어.’
700만 명이 정의한 한 가지는, 씽의 철학을 꺾을 만큼 압도적이었다.
가이아인을 곁에서 지켜보았던 아르고네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말로 울티마라면 마계를 부정하는 건 간단한 일.’
셀 버스터는 어떨까?
“…….”
그는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이 정도의 위력으로는 절대로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울티마 시스템 같기는 해. 이게 도화선이 되어서 진짜가 완성된다면…….’
그 결과는 이제 신도 모를 것이다.
‘지금 처리해야 할까?’
태성이 말했다.
“아르고네스, 약속했잖아요. 아직 인류는 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저를 풀어 주세요. 만약 이면 세계의 시스템이 파괴되면 박지가 열리고 현실과 지옥이 중첩될 겁니다.”
마족이 현세에 강림한다.
시로네가 토르미아를 세계 지도국으로 세워 대비하려는 이유이기도 했다.
“씽,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타인의 진실을 알 수 없겠지. 하지만 함께할 수 있어. 논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아직 나를 향한 마음이 남아 있다면…….”
시로네가 손을 내밀었다.
“함께 싸우자.”
씽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으나 머릿속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시로네. 더, 조금만 더…….’
나를 설득시켜 줘.
***
우오린은 지쳐 있었다.
“허억! 허억!”
미래시의 두통에, 각국 암살자의 습격에, 사선을 넘나드는 공포에.
키도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한계야.’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극한의 영역에서 버티고 있지만 여기서 약간의 충격만 더 가해져도 무너진다.’
인류 역사를 헤치며 살아온 미토콘드리아 이브지만 지금의 우오린은 달랐다.
그 어떤 경험도 새로운 자신에게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버틸 수 있을 테지만…….
‘딸이 없어. 지금 그녀는 유일하다.’
시로네의 아이를 낳기 위해서였고, 오직 그것을 위해 버틴 세월이기 때문이다.
‘수만 년을 기다린 만큼이나 현재의 목숨은 소중하다. 그런데 몇십 번이나 사선을 넘었으니.’
쉬어야 할까?
그렇게 생각하며 돌아보는 순간 우오린이 갑자기 놀란 표정을 지으며 주저앉았다.
“허억!”
키도가 황급히 달려갔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넋이 나간 표정으로 천장을 올려다보는 그녀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엘리키아, 엘리키아가…….”
“응?”
그녀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발동되지 않았어.”
늘 같은 시간에 성전 전체를 감싸며 하비츠의 위치를 찾아냈던 빛이었다.
“다른, 다른 곳에서 쓴 거야. 시로네가 나를 지켜 주지 않아. 더 이상 나는…….”
키도는 우오린의 눈을 통해 정신이 붕괴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우오린, 진정해! 야!”
얼굴을 감싼 우오린이 비명을 질렀다.
“악! 아악!”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수만 년의 세월이 아무런 의미조차 없이.
“정신 차려! 야!”
키도가 그녀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으나 한번 꺾인 의지는 쉽게 복구되지 않았다.
우오린이 키도를 붙잡고 소리쳤다.
“어떡하지? 하비츠가 올 거야. 하비츠가 나를 죽이고 능력을 빼앗을 거야! 다 끝났어!”
감당할 수 없는 절망감에 그녀는 다시 절규했다.
“아아아아!”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키도가 뺨을 세게 때리자 우오린의 눈빛이 일순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비츠는 안 와! 지금 네가 하비츠를 기억하고 있잖아! 배니싱을 발동하지 않은 거라고!”
“…….”
“그래서 시로네도 엘리키아를 쓰지 않은 거야!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어. 우린……!”
그 순간 키도의 감각이 인기척을 감지했다.
“누구냐!”
복도 끝의 모퉁이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오자 키도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뇌가 둥둥 떠서 오고 있었다.
“뇌?”
그 말을 들은 우오린이 고개를 돌리더니 공포마저 잊고 인상을 찡그렸다.
“너…….”
키도가 고개를 돌렸다.
“왜 그래? 저게 뭔지 알아?”
“아담.”
뇌를 중심으로 환영이 펼쳐지더니 금속질의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로 탈바꿈했다.
“인간이야? 뭔가 좀 이상한데.”
“가이아인이야. 그리고…… 내 남편이기도 하지.”
“엉?”
키도가 눈을 깜박이는 동안 차분하게 복도를 걸어온 아담이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구나, 우오린. 아니…….”
그녀의 본명은.
“릴리스.”
이브가 되기 전의 이름이었다.
***
네이드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기가 멜키두의 코어?”
카인이 말했다.
“그래. 정확히는 악의 전당으로 가는 길이지. 한 가지 말해 두자면 여긴 언더 코더가 아니라 현실에 있는 숲이야. 그래서 시간도 현실과 똑같이 흐르지.”
시로네는 카인이 나이를 먹은 이유를 깨달았다.
‘공겁을 통해 시간을 붙잡는다고 해도 사용자들을 코어에 데려오려면 현실로 나올 수밖에 없어. 하지만 5년에 몇 시간 정도가 고작일 텐데.’
그럼에도 중년이 되었다면 인류의 역사가 얼마나 길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숲을 헤치고 들어가자 황금으로 만든 거대한 제단이 눈앞에 우뚝 서 있었다.
카인이 악의 전당을 가리켰다.
“짐작하겠지만 이곳은 내가 만든 게 아니야. 최초의 멜키두는 원래 악의 전당을 지칭하는 용어였지. 하지만 내가 이 숲에 들어왔고…….”
“이상한 시스템을 만들었지.”
이루키의 말에 카인이 유쾌하게 웃었다.
“하하! 꽤 재밌지 않았어? 아무튼 들어와. 이곳에는 모든 악이 기록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그것을 지우면, 현실에서도 말소가 되는 거지.”
커티스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입구로 들어가자 지하로 가는 계단이 나왔고 밝은 빛을 내는 통로가 끝없이 이어졌다.
에덴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얼마나 먼 거야?”
“글쎄, 인류의 역사만큼? 사실 어디가 끝인지는, 나도 끝까지 가 본 적이 없어서 몰라. 이런 곳을 탐험했다가는 늙어 죽을 거라고. 게다가…….”
카인은 복도를 따라 뚫려 있는 입구 중에서 첫 번째 홀로 들어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여기거든.”
일행은 카인의 시선을 따라 벽에 걸려 있는 초대형 초상화를 쳐다보았다.
“와…….”
크기에서 주는 박력도 그렇지만, 누가 그렸는지 기괴한 느낌을 자아내는 미술품이었다.
“모든 인물에게 특전이 주어지는 건 아니지만 이분은 특별하니까. 야훼라면 알겠지?”
시로네가 말했다.
“미토콘드리아 이브.”
그 말을 들은 일행은 초상화를 자세히 살폈다.
“우오린?”
아름답기는 했으나 현재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고, 무엇보다 인상이 악에 가까웠다.
“역진화하기 이전의 본래 모습이야. 인류에게 선과 악의 개념을 심은 장본인.”
네이드는 황당했다.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선악까지 나와?”
“그녀는…….”
씁쓸한 표정을 지은 시로네가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금단의 열매에 손을 댔어.”
미싱 링크 (1)
오메가 666년.
앙케 라의 소정화로 인해 2명의 가이아인이 방주에 탑승해 천국을 떠났다.
테라포스의 도움을 받아 외딴 행성에 도착한 자들의 이름은 아담과 릴리스였다.
“우리의 땅이야.”
천국과 유사한 대기 환경이었고 생태계의 규모도 그에 못지않았다.
“에덴이라고 부르자.”
만족스러운 아담과 달리 릴리스는 걱정스러웠다.
“울티마의 힘이 약해졌어요. 정말 여기서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을까요?”
“괜찮아. 우린 신과 싸운 종족이니까. 당신과 나, 이곳에서 영원히 행복할 거야.”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대 도시 에덴은 인류라고 부를 만큼 번성했다.
168억 명의 가이아인.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수명이 엄청나게 길기 때문이었다.
농사일을 끝내고 돌아온 아담은 자신의 품에 안기는 릴리스에게 입을 맞추었다.
세월을 초월한 사랑이야말로 그들이 방주의 탑승자로 지목된 이유일 터.
“오늘도 평화로운 날이군.”
에덴의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정경 속에서 릴리스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보다 즐거운 일은 없지요.”
릴리스는 모든 것을 가진 기분이었다.
‘전부 내 아이들이야.’
만약 어떤 부모가 168억 명의 자식을 가졌다면 릴리스의 마음을 이해할 터였다.
“응?”
그 순간 갑자기 하늘이 열리더니 휘황찬란한 섬광이 지상을 비추었다.
도시의 모든 가이아인이 무릎을 꿇은 가운데 아담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아, 아아.”
“친애하는 아담이여.”
훗날 마음을 가진 신이 된 거핀이었다.
그는 신들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이곳의 가이아인을 데려가기로 했다.
한때는 아담도 천국에서 싸웠기에 기꺼이 순응했으나 릴리스는 아니었다.
“안 돼! 절대로 안 돼!”
거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그녀는 울티마까지 버렸으나, 결국 가이아인은 에덴을 떠나고 말았다.
홀로 남겨진 그녀는 3일 밤낮을 울었다.
만약 어떤 부모가 168억 명의 자식을 잃었다면 릴리스의 마음을 이해할 터였다.
이제는 눈물마저 말라 버릴 무렵, 릴리스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었다.
“여보.”
아담이 걸어오고 있었다.
“어째서?”
“당신을 돌봐 주라고 나를 돌려보내셨어. 우리가 살아야 할 땅은 이곳이라고…….”
벌떡 일어난 릴리스가 아담의 뺨을 때렸다.
“어째서 아이들을 보낸 거야! 내가 그 아이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이 도시를 어떻게 가꾸었는데!”
“당신도 알잖아. 우린 싸워야 해! 울티마를 버렸다고 가이아인의 긍지마저 잊은 거야?”
“당연히 알지. 천국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신이 얼마나 강한지! 아이들은 전부 죽을 거야!”
아담은 슬펐다.
서로 대립각을 세우는 지금의 상황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정말 울티마를 버렸구나.”
릴리스는 표독스럽게 내뱉었다.
“아니. 당신이 빼앗은 거야. 내 의견도, 아이들도, 울티마도, 가이아인이라는 긍지도!”
맑고 순했던 그녀의 인상이 차갑고 잔인한 느낌으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