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00
“지긋지긋해.”
본래 천국의 환경에서 진화했을 무기질 머리카락이 중간 지점에서 뚝 하고 끊어졌다.
“당신! 무슨 짓이야!”
그리고 새롭게 자라나는 머리카락은 에덴에 서식하는 생물의 특징인 유기질 털이었다.
“두 번 다시…….”
가늘어진 눈초리로 릴리스가 말했다.
“빼앗기지 않아.”
가이아인에 대한 혐오감과 종의 유지에 대한 집착이 만들어 낸 역진화.
최초의 이브였다.
***
“아름다운 분이셨어.”
그렇게 말한 카인이 말을 이으며 웃었다.
“성질머리는 좀 고약하셨지만.”
악의 전당에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이루키가 시로네를 돌아보며 물었다.
“미토콘드리아 이브가 어째서 선악을 규정한다는 거지?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시로네가 말했다.
“릴리스는 울티마를 버리고 미토콘드리아 이브가 되었어. 이후에도 아담과 자식을 낳았지만, 그 자식은 아담이 원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지.”
이루키는 카인의 얼굴을 살폈다.
“……가이아인이 아니었군.”
“그래. 아직 완벽하게 능력이 각성된 것은 아니었어. 그저 마음에 통달한 가이아인이 간절한 소망을 담아 자신의 유전 능력을 변형시킨 것. 당연히 둘의 부부 사이는 어긋났어. 날마다 의견 충돌이 일어났고, 때로는 반목했지.”
카인의 눈빛이 깊어졌다.
“릴리스는 자신을 번식의 도구로 여기는 아담을 증오했어. 그 증오는 남성 혐오로 이어졌고, 아들에게도 상당히 모질게 굴었던 모양이야. 하지만 정말로 큰 문제는…….”
시로네는 잠시 말을 멈췄다.
“만약 어떤 행성에 남녀 두 사람이 떨어졌는데, 그 둘이 갈라서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거대한 외로움.
시로네는 다시 물었다.
“그들은 대체…… 누구를 사랑해야 하는 것일까?”
“아아아아!”
릴리스는 수간했다.
가이아의 계율을 버린 그녀는 이 행성의 수많은 종들과 사랑을 나누었다.
색욕의 마녀.
그렇게 아내를 비난한 아담은 결국 참지 못하고 집을 떠나고 말았다.
릴리스는 신경 쓰지 않았다.
‘사랑하고 싶어. 사랑받고 싶어.’
쾌락을 탐할수록 마음은 공허해지고, 그럴수록 더욱 쾌락을 탐하는 악순환.
하지만 그런 색욕의 마녀조차 유일하게 어기지 않은 한 가지 계율이 있었다.
“어머니.”
오랜만에 집을 나선 그녀는 열심히 일을 하는 자식들을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웬일이세요, 이곳에 오시고?”
“…….”
100년 넘게 사람의 온기를 느끼지 못한 그녀는 사랑에 말라 가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건장한 체구의 아들인 아벨을 보자 목구멍으로 침이 꼴깍 넘어갔다.
‘하아.’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당장이라도 그를 덮치고 싶어 현기증이 일었다.
‘안 돼.’
릴리스는 필사적으로 참았다.
어쩌면 타락한 가이아인으로서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자존심일 터였다.
‘짐승은 상관없어. 하지만 자식은 안 돼. 한 번이라도 그곳에 발을 들이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
그 하나의 금기가 깨지는 순간, 욕망은 세대를 타고 이어져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끌게 될 터.
생각에 잠겨 있는 그때, 릴리스의 눈에 딸인 룰루와가 아벨과 입을 맞추는 게 보였다.
‘……그런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처음 이 행성에 도착했을 때도 모든 가이아인은 아담과 릴리스의 자식이었으니까.
‘그래,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룰루와는 어릴 때부터 카인하고 친했는데.’
시선을 돌린 곳에 슬픈 표정으로 동생을 바라보고 있는 카인이 서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릴리스는 카인이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룰루와는 아벨과 짝이 되어야 마땅해. 사랑하는 사람과 연을 맺는 것이 도리니까.’
얼마나 타락했든 간에, 가이아인의 합리성은 여전히 남아 있는 그녀였다.
하지만 한때 마음에 통달했던 그녀와 달리 카인은 밤마다 눈물을 흘렸다.
“왜?”
카인은 자문했다.
“왜 아벨은 되고 나는 안되는 거야!”
사랑하고 싶다.
사랑하는 여동생과 가정을 꾸리고 영원히 행복 속에서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내가 먼저 좋아했단 말이야! 아벨이 좋아하기 전부터 내가 먼저 좋아했다고!”
룰루와는 어째서 2명이 아닌가?
아벨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이 불행해져야 하는 이 세계의 율법이 끔찍했다.
“신이시여.”
카인은 세계에 고했다.
“어째서 아벨입니까? 제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입니까! 도대체 왜! 제가 불행해야 하는 것입니까!”
신은…… 무심無心했다.
“젠장!”
아벨만 없었다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 녀석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룰루와는 자신을 사랑했을까?
‘…….’
그 순간 카인은 천재적인 발상을 떠올렸다.
‘아벨이 없다고?’
룰루와에게 처음 사랑을 느꼈을 때처럼 심장이 터질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들이 태어나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누군가가 죽은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같은 시각, 릴리스는 악취가 풍기는 방에서 거울에 나신의 모습을 비췄다.
“짐승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일까?”
쾌락을 탐할수록 육체는 더욱 농밀하고 자극적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역진화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아벨이…….”
이 몸을 좋아할까?
‘좋겠구나, 룰루와.’
카인과 아벨, 건장한 두 남자의 사랑을 한 몸에 받다니.
‘내가 내 딸이라면…….’
잠시 아찔한 상상을 해 버린 릴리스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차갑게 돌아섰다.
‘아니야.’
자신으로 끝내야 한다.
생물의 본능은 후세로 전해지는 것이지 역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는 것이다.
‘죽을까.’
차라리 그랬어야 했다고, 우오린은 지금도 당시를 회상하며 생각한다.
영겁의 세월을 견뎌야 할 줄 알았더라면.
어느 날.
당시의 하늘은 너무나 맑고 광활해서 천둥 벼락은 세상을 쪼개는 듯했다.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는 밤이었다.
아덴의 형제들이 각자의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1명의 남자가 빗속을 걸었다.
“…….”
카인은 초조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인가?’
무언가에 홀린 듯 집을 나섰고, 지금이라도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아벨을…… 죽인다고?’
그의 마음은 앞으로 펼쳐질 미지의 기대감으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니야. 아벨을 죽이는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왜 그래야 하지? 식량도 아닌데.’
누구도 사망하지 않기에 살인에 대한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였다.
‘어차피 사냥이랑 똑같은 거잖아.’
실제로 릴리스의 자식들은 수많은 식물과 동물을 죽여 섭식을 이어 왔다.
따라서 아벨을 죽이는 것이 죄가 된다면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죄가 되는 셈이었다.
그것이 훗날 인류가 짊어지게 될 원죄.
‘아벨이 없으면 슬플 거야. 그 녀석은 듬직하고 힘도 세지. 형제들도 기분이 좋지 않을 거야.’
카인은 머뭇거렸다.
하지만 룰루와를 포기하는 것으로 마음이 기우는 순간 단도를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럴 수 없어!’
사랑하는 여자와 행복하고 싶었고, 그 여자가 동생과 행복해지는 것이 싫었다.
‘그래, 그냥 아벨이 사라지는 것뿐이야. 지금도 수많은 생명이 사라지고 있잖아.’
저 멀리 어둠 속에 동생의 집이 보이는 순간 카인은 엄청난 한기를 느꼈다.
“흐으으으.”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하지? 룰루와와 사랑하려면 어쩔 수 없는 거잖아. 세상은 그녀를 2명이나 만들어 주지 않아. 만약 입장이 바뀌었다면 아벨도…….’
과연 자신을 죽이려 했을까?
떠오른 생각을 황급히 외면한 카인은 동생의 집 문 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
“아, 아벨.”
콰르릉 천둥소리가 창공을 흔들었다.
마음이 흔들리려는 순간, 카인은 주먹을 움켜쥐고 문을 연거푸 두드렸다.
쾅쾅쾅! 쾅쾅쾅!
그렇게 스스로를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몰아간 그에게 남은 것은 운명의 심판뿐.
‘나오지 마, 아벨.’
어쩌면 듣지 못했을 수도 있다.
‘절대로 나오지 마. 천둥소리였을 뿐이야. 평소대로 단잠에 빠지면 되는 거야.’
“아우, 뭐야. 이런 날씨에.”
그리고 운명은.
“누구세요? 어? 형이 갑자기 웬일이야?”
카인에게 문을 열어 주었다.
미싱 링크 (2)
“형…….”
아벨은 섬뜩했다.
비에 젖은 상태로 무심하게 서 있는 카인의 표정은, 그가 타인에게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는 감정이었다.
도망쳐.
아마도 그런 느낌의 신호였을 테지만, 아벨은 감정을 추스르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왜 그래?”
“아벨.”
아직 아무것도 실행에 옮기지 않았지만 카인은 그것만으로도 전율을 느꼈다.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어차피 신이 무심하다면, 생각한 것을 저지른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무엇인가?
‘그럴 수 없어.’
카인은 그 전율의 통찰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유일한 브레이크를 발견했다.
‘동생을 죽이는 건, 이상한 일이야.’
너무나 이상해서, 신이 펼쳐 놓은 이 무한한 자유마저 구속시키는 것 같다.
“아벨, 나는…….”
카인이 말을 꺼내려는 그때 방에서 소리가 들렸다.
“누가 왔어?”
룰루와가 침실에서 나오자 아벨이 어색하게 웃으며 카인을 돌아보았다.
“천둥이 치니까 무섭다고 해서…… 윽!”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카인은 그 순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형?”
찰나 동안 세상이 창백했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동생의 가슴에 칼이 박혀 있는 상태였다.
최초의 살인.
아벨은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거구의 육체가 쿵 하고 쓰러지자 룰루와는 잠시 눈을 깜박이며 생각에 잠겼다.
‘뭘까?’
카인이 왜 아벨을 칼로 찌른 것일까?
‘왜 숨을 쉬지 않지? 죽은 거야? 동물처럼, 우리가 먹는 그것처럼…… 죽어 버린 거야?’
감정의 후폭풍은 분석이 되지 않은 만큼 거대하게 그녀의 폐부를 찔렀다.
“아아!”
룰루와가 힘없이 주저앉고, 카인은 차갑게 식어 가는 동생의 육체를 바라보았다.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