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03
“괜찮아?”
“내 몸에 손대지 마.”
차가운 목소리에, 잠시 생각에 잠긴 키도가 천천히 손을 떼며 물러섰다.
“미안.”
우오린은 그게 더 불쾌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지만, 아담의 말은 신경 쓰지 마. 고블린과 뭔가 할 생각, 절대로 없으니까.”
키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또다시 갈증이 밀려들었지만 그는 거대한 결핍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사랑하는 거야.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것까지 밀어내지는 않잖아.’
키도는 모른다.
그의 야만과 지성이, 우오린으로 하여금 잊고 싶은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을.
하지만 또한 짐작하고 있다.
‘많은 일이 있었겠지.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일도 저질렀겠지. 그래도 괜찮아.’
여전히 키도에게 우오린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결한 카샨의 여황이었다.
“키도.”
그리고 그 여황이 사랑하는 남자는…….
“시로네에게 데려다줘.”
몬스터인 그가 감히 경쟁할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로 밝게 빛나는 인간.
“그래.”
잠긴 목소리로 대답한 키도가 미소 지었다.
“가자, 시로네에게.”
미싱 링크 (4)
성전.
델타 본청의 복도를 걷고 있던 시녀들이 한 남자를 보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꺄악!”
이제는 이름만 들어도 기겁을 하는 사탄, 하비츠가 벽에 등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
그는 9시 타임의 살인 게임을 포기했다.
‘이제 상관없어.’
8시 타임에서 시로네가 위저드의 앞을 막아선 것은 그 정도의 허탈함이었다.
동화 같은 아이들의 놀이터에 갑자기 부모가 찾아와 찬물을 끼얹는 것 같은.
‘위저드의 부모는 시로네니까.’
하비츠는 신의 주파수로 위저드의 마음을 듣고자 했으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쉬운 상대는 아니지, 그 아이도.’
그렇기에 위저드가 사랑하는 사람이 시로네인지 자신인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크크크크!”
헛소리하고 있네.
‘모를 리가 있나? 당연히 시로네를 사랑하지. 하는 행동만 봐도 알 수 있는 거잖아? 나는 이용당하고 있는 거야.’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모르는 거잖아?’
그녀의 마음을 직접 들여다본 적은 없으니까.
‘어쩌면 날 사랑하는 거야. 나를 의식해서 일부러 더 시로네에게 다정하게 군 것일지도 몰라.’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지금 당장 위저드를 죽여 버릴 것 같아서…….
‘왜 날 좋아해 주지 않지?’
하비츠는 비로소 위저드와 하고 싶은 게 무엇이었는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여.”
복도에서 들린 목소리에 하비츠가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발칸.”
몰골은 초췌하지만 여전히 눈빛은 살아 있었다.
하비츠는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
“표정이 말이 아니군. 실연이라도 당했냐?”
“……아마도.”
발칸은 하비츠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얼마 못 살 것 같아. 이제 걸을 힘도 없거든. 내일이면 너하고도 작별이겠어.”
“그렇군. 잘 가.”
하비츠는 무심하게 내뱉었다.
애써 차갑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만나고 헤어지는 친구에게 전하는 작별 인사 같았다.
“크크, 그래. 그나저나 어떠냐? 듣자 하니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같던데.”
“……잘 안돼.”
과묵한 친구였기에 하비츠의 속이 얼마나 타들어 가는지 알 수 있었다.
“왜? 실연이라도 당했냐?”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가도 갑자기 차갑게 변한단 말이야.”
발칸은 하비츠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글쎄. 넌 재밌는 놈이야. 너를 싫어하는 사람은 있어도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지. 만약 어떤 사람이 너에게 지루함을 느낀다면 말이야…….”
발칸의 입에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건 정말로 지루한 거야. 너답지 않다는 뜻이지.”
하비츠는 눈을 깜박거렸다.
“네가 말했잖아, 아무것도 정의하지 않으면 결국 원하는 것을 이루게 될 것이다. 마음껏 뛰어놀자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기로 결심했잖아.”
그것이 혼돈이다.
“그래.”
하비츠는 일어섰다.
“모조리 죽일 거야. 1시간에 1명씩이 아니라, 내 눈에 보이는 자들 전부를.”
위저드를 너무 의식했기에 시로네가 그 빈틈을 파고들 수 있었던 것이다.
발칸은 미소 지었다.
“야훼를 이길 준비가 됐구나.”
“응.”
“열심히 해 봐라. 우리도 너를 죽이기 위해 움직일 테니까. 꽤나 고단할 거야.”
“하하! 과연 그럴까?”
하비츠는 장검으로 발칸의 목을 겨누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고 또한 즐거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잘 가라, 발칸.”
눈에 보이는 자들 전부를 죽인다.
하비츠의 검이 빠르면서도 부드럽게 궤적을 그리자 발칸의 목이 날아갔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가 데굴데굴 구르는 와중에도 그는 이 도박의 승률을 계산했다.
‘크크, 이래야 재밌지.’
하비츠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을 것이고, 진정한 악귀가 되어 성전을 휩쓸 터.
“하비츠.”
발칸의 목에서 쉰 소리가 새어 나왔다.
“노올자…….”
그 목소리를 뒤로한 채 하비츠는 성큼성큼 복도의 저편으로 멀어져 갔다.
묻지 않았다.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연당한 자신을 위로해 준 발칸의 저의를.
가장 친했던 친구로서의 우정이었을까, 아니면 이 또한 고도의 계산일까?
하비츠는 묻지 않았다.
그것이 하비츠와 구스타프 4기예가 공유했던 유일한 즐거움이었기 때문이다.
“전부 죽일 거야.”
그가 복도를 떠나고 10분 뒤, 고양이처럼 날렵한 걸음이 발칸에게 다가왔다.
나타샤는 벽에 등을 기댄 채 늘어져 있는 육체와 그보다 멀리 떨어진 머리를 보았다.
“…….”
무릎을 꿇은 그녀는 입가를 끝까지 찢은 표정으로 웃고 있는 발칸의 머리를 품에 안았다.
“……너무해.”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하비츠.”
눈꺼풀 없는 그녀의 두 눈은 세상에서 가장 깊은 심연을 담고 있었다.
***
성전은 아수라장이었다.
“벌써 사망자가 20명이 넘었습니다. 하비츠, 사탄의 소행으로 추정됩니다.”
발칸을 죽인 하비츠는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인간을 도륙해 나갔다.
경비대가 총출동했고, 각국의 근위대들이 철통같은 경계를 서는 가운데.
“응?”
누구도 하비츠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이렇게 바쁜 거지? 누구를 막으려고 전부 다 모인 거야?”
그는 알지 못했다.
하비츠가 동료들의 목을 하나씩 자르면서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이상하군. 대체 무슨 일이…….”
심장을 관통당한 경비가 피를 토하며 말했다.
“일어나고 있는 거야?”
그렇게 분당 1명씩 사망자가 발생하자 성전의 5대 부서 수장은 긴급회의를 열었다.
“하비츠가 폭주하고 있습니다.”
“야훼는 뭐 하는 거죠? 여태까지 그가 하비츠의 위치를 찾아내지 않았습니까?”
이미 상아탑에서 엘리키아를 발동했기에 울티마가 충전되려면 시간이 걸린다.
군사부의 도로시가 말했다.
“지금은 우리가 하비츠를 인지하고 있지만, 언제 또 배니싱이 발동될지 몰라요.”
“어째서 능력을 푼 거지?”
국제재판부의 미토 시라노가 말했다.
“조롱의 의미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우리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것 같아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죽는다는 것은, 사실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이죠.”
“지금 남 일처럼 말할 때가 아니오. 뭔가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투표는 물 건너가고 말아요.”
의장은 기스의 편이었기에 어떻게든 투표를 진행시키려 애를 썼다.
종교부의 콘스탄틴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야훼에게 의존할 것이오?”
“교황님.”
“지금 이 사태가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야훼 때문이오. 인류를 구한다는 명목하에 사탄을 자극하고, 해결법은 제시하지도 못하지.”
그가 일어섰다.
“나는, 라미교는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소.”
“방법이 있습니까?”
“들어오라.”
교황의 말이 떨어지는 즉시 라미교의 항마부 성기사들이 다시 들이닥쳤다.
‘이제는 자기 집처럼 드나드는군.’
법적으로는 문제가 될 소지가 있지만 하비츠가 날뛰는 판국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없었다.
“야훼는 신을 사칭하며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소. 하지만 신은 설득하지 않습니다. 그 자체로 전지하며 전능하니, 이제부터 내가 신의 역사함을 증명하겠소.”
콘스탄틴의 몸에서 눈부신 광채가 퍼지자 시라노가 한쪽 눈을 찡긋했다.
‘분명 성스러운 기운이다. 어지간한 마족들은 저것에 뼈도 못 추릴 거야. 하지만…….’
그녀는 야훼의 힘을 얕보지 않았다.
‘어떤 능력인지는 모르지만 1시간에 한 번, 그 야훼도 하비츠의 배니싱을 파훼하는 게 고작이었다.’
교황은 대체 무슨 생각일까?
그때였다.
“큰일 났습니다!”
나름 중역을 맡은 보좌관이 창백한 얼굴로 들어오자 의장은 짜증부터 났다.
“무슨 소란인가!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바, 바깥에…….”
“바깥이라니. 시위대를 말하는 건가?”
“그런 수준이 아닙니다.”
보좌관은 이 말을 내뱉어야 할지를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폭동입니다.”
저녁 9시가 넘은 시각이었으나 델타 본청 앞 시위대의 숫자는 더욱 불어났다.
반대파와 옹호파는 절대로 좁혀질 것 같지 않은 간극을 사이에 둔 채 목청을 높였다.
“기스를 탄핵하라! 진상을 규명하라!”
“자이브의 국왕을 성전의 대표로! 우리가 자이브를 세계 지도국으로 만듭시다!”
그 순간 두 파벌의 사이를 관통하는 새로운 흐름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크리아 신이시여! 우리를 굽어살피소서!”
피라미드를 조사하러 떠났던 항마부가 기도를 외치며 복귀하는 중이었다.
그들의 표정은 경건했으나, 눈동자는 영혼이 빠진 것처럼 힘이 없었다.
‘마야를 죽인다.’
오직 그 사명 하나만을 가지고 전진하는 인人의 행렬이 인파를 그대로 치받았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아무리 라미교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시위대를 몰아내는 건…….”
말은 오래가지 않았다.
“신이시여.”
항마부 근처에 있던 사람들의 눈에 일제히 초점이 풀리더니 똑같이 방향을 틀었다.
“우리를 구원하소서.”
인人의 전파 속도는 너무나 빨라서, 순식간에 시위대 전원이 마음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