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04
그렇게 율법의 통합을 이룬 그들의 마음속에는 오직 하나의 의지만 있었다.
‘마야를 죽인다.’
신의 의지였다.
피날레 공연까지 30분이 남은 시점에서 수천 명의 인파가 델타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제길! 저 녀석들 왜 저래?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정문 경비대장이 지시했다.
“막아라! 반경 100미터 이내로는 접근하지 못하게 해! 살인을 허가한다!”
하나의 유기체처럼 밀려드는 행렬 앞에서는 민간인을 죽인다는 수치심조차 들지 않았다.
“돌진!”
병력은 시위대와 충돌했고.
“……신이시여.”
이내 마음을 잃은 인이 되어 그들이 달려왔던 델타로 발길을 돌렸다.
경비대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상부에 보고해.”
“네!”
그런다고 딱히 뾰족한 수가 날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크윽!”
경비대장은 느리게 밀려드는 인파의 속도에 맞추어 병력을 후퇴시켰다.
‘싸울 수 없어. 저기에 닿는 순간…….’
죽음, 분명 그런 느낌이었다.
“신이 명하신다.”
인을 통제하는 선두의 항마부가 성스러운 검을 치켜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진하라!”
“우오오오오오!”
거대한 함성과 함께 사람들이 돌진하자 경비대장은 창을 겨눈 채 눈을 질끈 감았다.
“빌어먹을!”
그 순간 델타의 본청 쪽에서 검은 피부의 전사들이 경비대를 지나쳤다.
남방, 부족연합이었다.
“모두 마음을 지켜라! 야훼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그들이 항마부와 충돌하자, 비로소 전투라 불릴 만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경비대장의 눈이 크게 뜨였다.
‘어, 어떻게?’
신념 강한 자신의 부하들도 순식간에 돌변한 현상을 이겨 낼 수 있는 것인가?
“물러서게.”
남방의 족장 은타라가 근위대를 대동하며 다가왔다.
“전하.”
은타라가 손을 저었다.
“나는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닐세. 그러고 싶지도 않고. 부하들을 막사로 복귀시키게. 여긴 우리가 맡을 테니.”
“그럴 수 없습니다! 이 문이 뚫리는 것은 저에게 있어 죽는 것과 같습니다.”
“죽을 수도 없을 텐데?”
“…….”
어떤 느낌인지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내 말을 들어. 저들이 여기에 왔다는 건, 이곳에 필요한 게 있기 때문일 게야. 여기서 전력을 낭비하면 결정적인 순간에 빼앗길 수도 있어.”
“빼앗는다고요?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하죠?”
“신.”
경비대장의 표정이 멍해졌다.
“무심한 신과 마음을 가진 신. 그리고 그중 하나를 따르는 2개의 믿음. 알겠나? 이제부터 이곳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그냥 전쟁이 아니야.”
은타라가 내뱉었다.
“성전이다.”
사랑의 정의 (1)
기스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컥!”
기스를 끌어안고 있는 플루의 두 팔이 알고리즘의 힘에 의해 기계처럼 움직였다.
으득.
목이 완전히 돌아가고, 기스의 시선이 침대 바깥의 근위대에 고정되었다.
‘……왜?’
천사마저 이용할 정도로 고도로 정치적이고 지능화된 1.5세대의 인류.
플루가 말했다.
“아직 멀었어.”
하지만 그 이성의 발달을 촉진시킨 것은 결국 더 큰 쾌락을 위해서이기에.
여전히 본능은 우위에 있었다.
기스는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뻐끔거렸고 손끝을 미력하게나마 까닥였다.
“…….”
하지만 결국 그대로 숨이 끊어지고 말았고, 동시에 신장이 검을 뽑으며 돌진했다.
‘역시 빠르다.’
자이브에서 가장 강한 검사 집단답게 갈등도 혼란도 눈에 담기지 않았다.
플루를 죽인 다음 생각하면 될 일이다.
‘끝이구나.’
그들의 엄청난 반응 속도 앞에서 그녀는 생각과 육체가 이다지도 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막 알고리즘이 발동하기 시작할 무렵에는 이미 칼날이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
모두의 인지에서 벗어난 무언가가 신장을 앞에서부터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플루는 눈을 깜박였다.
‘뭘까?’
이 위화감은.
그리고 그녀의 목을 향해 장검이 날아드는 순간, 그녀는 퍼뜩 깨달았다.
‘이거, 그거잖아! 그거!’
정확히 정의할 수는 없지만 성전에 들어온 이후 한 번도 잊지 않았던 존재.
그 실낱같은 인지가 알고리즘을 발동시켰고, 결국 플루의 목숨을 구했다.
“흐윽!”
뇌의 지시를 받은 육체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꺾이자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호오?”
하비츠가 배니싱을 풀었다.
“살았네?”
플루는 아픈 옆구리를 부여잡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도망쳐야 해.’
신장의 공격과 맞물려서 살았으나 두 번째 배니싱부터는 발동조차 못할 터였다.
“특이하군.”
하비츠는 신의 주파수를 발동했다.
“합격.”
“뭐?”
“당분간은 살려 두지. 지금은 판을 까는 중이거든.”
본게임은 우오린에게 히스토리 서치 능력을 얻게 되고 난 뒤였다.
“그보다…….”
하비츠는 시체들을 넘으며 창문으로 향했다.
“저건 또 뭐야?”
델타의 본청 앞에 남방의 전사들과 성기사들이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마야를 죽여라?’
신의 주파수로 잡히는 것은 오직 그것뿐.
“크크.”
하비츠에게서 급격하게 살기가 피어오르자 플루는 경계하는 와중에도 몸을 떨었다.
“재밌겠군.”
창문이 열리고.
“…….”
플루는 또다시 하비츠를 잊었다.
***
진리의 피라미드.
파라스 왕국에 있는 초고대 문명의 유적지는 강력한 자기장을 발산하고 있었다.
내벽에 새겨진 천문의 개념들이 시공간을 파괴하며 수많은 사건을 중첩시키고 있었다.
“크윽!”
에이미의 오빠 아레스의 눈은 마치 불이 붙은 듯이 발광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홍안의 자기상 기억으로 끝없이 마음을 되돌려 보지만 인의 파동은 강력했다.
‘아니야.’
후회와 미련.
‘그럴 수밖에 없었어.’
그 후회와 미련을 남기게 된 원인들이 아레스의 모든 감각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그때 그랬다면…….’
인의 파동 속에서 미래는 바꿀 수 있는 것.
“크으으으!”
하지만 아레스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의지를 지키며 모든 가정을 파괴했다.
“삶이다.”
온전히 나 자신을 책임지는 것이다.
‘그걸 부정하는 순간, 나 자신을 책임지지 못하는 순간 인간에게 삶이란 없어.’
행성의 순행이나 물방울의 추락, 바람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부는 것과 다를 게 없어지는.
“으아아아!”
아레스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날 내버려 둬!”
왜 바꾸고 싶지 않겠는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더 나은 삶이 있을 줄 알았다면 기꺼이 그리했을 것을.
“어쩌라는 거야!”
아레스가 악을 지르는 것과 동시에 통로 끝에서 인의 파동이 강풍처럼 들이닥쳤다.
“어어어어……!”
그의 두 눈이 위로 말려들더니 급기야 홍안의 점멸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끝났어.’
사물이 되어 가는 공포보다도, 온 미래가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희열이 먼저였다.
“흐흐흐.”
솔직히 말하자면, 멋진 경험이었다.
부모의 속을 썩였던 일, 학창 시절에 용기가 없어 고백하지 못했던 첫사랑, 탐사 중에 자신의 판단 착오로 소중한 동료를 잃은 일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
미련도 후회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갇힌 아레스는 눈물을 흘렸다.
알고 있는 것이다.
‘나는 벗어날 수 없어, 이곳을.’
당장 1초 앞도 볼 수 없는 장님이 되어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잃어 가는 그때.
“에르가.”
저 멀리서 아련하게 들리는가 싶던 망자의 괴성이 아레스의 고막을 찔렀다.
“허억!”
동시에 벼락이 그를 강타했다.
“으아아아!”
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도 아레스는 치명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여전히 경련하는 몸을 스스로 끌어안으며 그는 눈앞의 여인을 올려다보았다.
“줄루.”
“…….”
공갈 젖꼭지를 뺀 그녀의 무심하고 가련한 얼굴이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돌이킬 수 없을 뻔했다요.”
“쳇! 누가 뭐랍니까?”
어느 정도 기력을 되찾은 아레스는 줄루의 뒤편에 떠 있는 리치를 바라보았다.
“괜찮으세요?”
“뭐가?”
줄루는 여전히 무심했으나 인의 파동을 직접 경험한 아레스는 의문스러웠다.
“이 피라미드는 기괴해요. 사람의 마음을 유린하죠.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를, 무한한 시공간의 영역에 담그는 겁니다.”
줄루는 침묵했다.
“그런데 어째서 줄루 씨는 아무렇지 않은 거죠? 인의 파동을 피할 방법이 있는 겁니까?”
“아니. 그런 건 없다요. 나에게도 너와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앞에는 수를 셀 수 없이 많은 미래가 펼쳐지고 있지.”
“그렇다면…….”
줄루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난 애정이 없다요.”
“…….”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줄루의 동공을 본 순간 아레스는 깨달았다.
‘이 사람은 어쩌면…… 이미 인이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줄루가 말했다.
“후회도, 미련도, 회한도, 미래를 바꾸고 싶은 생각도,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도, 나는 모른다요. 에르가를 죽였을 때 이미 나도 죽은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