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07
두 사람은 입을 맞추었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요라한의 화신이 소멸했다.
몽아가 루버를 돌아보았다.
“괜찮을까요?”
“그들이 정의하는 것이니까.”
어느새 안정을 되찾은 드리모를 살피며 그가 말했다.
“파멸은 면했군.”
아르망은 의식을 되찾았다.
‘여긴?’
눈도, 코도, 귀도 없지만 소세계창유의 느낌을 통해 공간의 정보가 들어왔다.
감옥.
미카스의 국왕과 경비들이 쓰러져 있었고 벽 쪽에 요라한이 느껴졌다.
‘음.’
다리가 없기에 검이 흔들렸으나 그녀는 이내 자신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았다.
‘늘 검과 공명했으니까.’
정격조종으로 부유한 아르망이 요라한이 죽은 벽으로 날아가 나란히 기댔다.
‘여보.’
모든 것을 용서했기 때문인지 그는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무 착한 사람.’
한때는 인간을 증오했지만, 그리고 지금도 좋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당신을 만나서 다행이야.’
그 무엇과도 요라한과 함께 사랑했던 시간을 맞바꾸지 않을 것이다.
마검의 주위로 아르망의 환영이 탄생하더니 요라한의 몸을 끌어안았다.
‘당신은 너무나 착해서, 또 너무나 마음이 여려서, 늘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지.’
다 같이 행복하기를 바랐을 뿐인데.
‘내가 지켜 줄게.’
마검의 칼날이 관절을 가진 곤충의 다리처럼 열리더니 요라한의 육체를 삼켰다.
‘누구도 너의 마음에 상처를 낼 수 없도록, 그 무엇보다 단단한 껍질이 되어…….’
갑옷을 입은 요라한이 일어섰다.
“널 지켜 줄게.”
금강무장金剛武裝.
목소리는 요라한의 것이었으나 그의 성대를 움직이는 것은 아르망이었다.
“가자.”
요라한의 꿈을 꾸는 자를 찾아.
***
불꽃의 악마.
레테는 하늘에서 섬광을 내리꽂는 제천대성의 화신에게 포효했다.
“크아아아!”
또다시 레테의 몸이 관통당하고, 사방의 지옥 불이 날아와 뚫린 곳을 복구했다.
“크으으으!”
그 시점에서 그녀는 깨달았다.
‘갈 수 없어.’
야훼에게 갈 방법이 없었다.
‘안 돼.’
그녀 또한 관리자이기에 이 세계에 특별한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유일하게 다른 관리자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면 세계를 지켜야 한다.’
지옥 불로 육체를 회복한 레테가 이번에는 지상을 향해 불꽃을 쏟아 냈다.
“후아아아아!”
3분가량 지속된 굵은 불길이 동심원을 그리며 수 킬로미터를 퍼져 나갔다.
“크르르르…….”
불꽃이 사라지자, 대지 위에 손유정이 여의를 앞세우며 오롯이 버티고 있었다.
‘강하다.’
의심의 여지 없는 제천대성이었다.
‘이제 시간이 없어.’
그렇게 생각한 레테의 육체가 점차 줄어들더니 화공사의 사장으로 돌아왔다.
손유정이 여의를 내렸다.
“포기한 건가?”
“이렇게 싸우는 건 의미가 없어.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는 선택해야 돼.”
“무엇을?”
“울티마의 가능 여부를.”
잠시 생각에 잠겼던 손유정이 여의를 겨누었다.
“마족의 수장이여, 너희들의 악행은 도를 넘었다. 덤벼라. 체념한 상대를 없애고 싶지 않아.”
“나는 죽지 않아.”
레테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화공사의 직원은 퇴근이 없거든. 이 세계가 닫히기 전까지는 말이야. 하지만 너도 알고 있을 텐데? 그것은 또한 현실 세계의 종말을 의미해.”
“…….”
손유정의 허리에 매달린 리체라의 얼굴이 소리쳤다.
“뭐 하는 거예요? 빨리 죽여요! 저 여자만 없으면 나도 이 꼴로 살지 않아도 된다고요!”
“넌 조용히 해.”
허리의 사슬을 푼 손유정은 모르타싱어에게 리체라를 맡기고 레테에게 다가갔다.
“이번에는 협박인가? 하지만 나는 타협하지 않아. 내 옳음은 바뀌지 않을 테니까.”
레테의 눈이 슬픔에 잠겼다.
“너의 옳음도 나의 그름도, 결국 누군가가 정의했기에 생긴 일이다. 너희들이 정말로 원하는 게 통합이라면 이런 방법은 도움이 되지 않아.”
“어려운 말은 몰라. 나는 야훼와 달라. 나를 설득시키고 싶다면, 나를 꺾어야 할 거야.”
그 순간 레테의 눈에 빛이 들어왔다.
손유정이 접근을 멈추고 경계했으나 레테는 한참이나 그 상태를 유지했다.
‘어쩔 수 없다.’
관리자의 책무보다 마족들이 살아갈 세계를 지키는 게 더 중요했으므로.
“나는…….”
그녀는 처음으로 관리자 기밀 사항을 입 밖으로 꺼내 놓기 시작했다.
“마음 프로그램이다.”
손유정은 그저 듣고 있었다.
“우주는 다섯 가지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어. 현실, 드리모, 이면 세계, 디 어비스, 그리고 이 네 가지 시스템을 연결하는 언더 코더. 언더 코더를 제외하면 모두 많든 적든 관리자가 있지만, 오직 나만이 양자 신호로 작동한다.”
히든 코드라고 한다.
“내 이름은 망각의 레테. 마족들을 관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나는 관리자의 권한을 침범하지 않는 이상 어떤 죄를 저지르든 망각으로 처리하게 되어 있어.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기회를 주는 거지.”
비서실장 모노라스에게 그랬듯이.
“만약 그런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마족의 혼돈은 오류로 인식되고 만다. 따라서 나는 다른 관리자와 달리 기준을 바꿀 수 있고, 혼돈의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게 설계된 존재야.”
손유정은 어려운 말은 모른다.
다만 그렇기에 직감하는 것은, 어쩌면 이 정보가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것.
‘모르겠어. 왜 이게 중요하지? 만약 시로네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그는 자신과 다른 반응을 보였을까?
레테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지금, 네가 나를 압도하는 것으로 내 마음 프로그램이 변했다. 마족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지키고 싶어. 그건 야훼가 현실 세계를 지키고 싶어 하는 것과 똑같은 논리. 하지만 이대로는 우주가 닫히고 말아.”
선과 악의 관점을 뒤집는다면 레테 또한 시로네와 같은 이유로 싸우는 셈이었다.
모르타싱어가 말했다.
“유정아, 믿으면 안 돼. 수없이 우리를 속이고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온 여자야. 기준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거짓말도 할 수 있는 거라고.”
“그래.”
손유정도 한때는 혼돈의 극치였다.
하지만 또한 그녀가 지금 제천대성의 화신에 도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레테가 말했다.
“야훼는 선악공애를 모두 이해했지만 결국 악은 끌어안지 못했다. 그는 스스로 마를 버렸어.”
그 마의 응집이 카타콤의 기요르기다.
“관리자로서 확신하는 것은, 이대로는 절대 울티마에 도달하지 못해. 내가 야훼를 돕겠다. 나를 보내 주면, 세계의 종말을 막을 수 있어.”
손유정은 이를 악물었다.
“어째서? 너는 야훼를 증오하잖아?”
“그래. 모든 관리자는 자신의 프로그램에 따라 임무를 수행할 뿐이야. 나 또한 야훼를 증오하지. 하지만 너도 알고 있을 텐데? 그렇기에…….”
레테가 가슴을 짚었다.
“오직 나만이 야훼를 사랑할 수 있다.”
어쩌면 바로 이것이 핵심이라고, 손유정은 동물적 감각으로 받아들였다.
손유정이 물었다.
“세계의 끝이…… 몇 시간 남았지?”
“2시간.”
성전을 기준으로 자정, 12시였다.
“이미 야훼와 거리가 벌어졌어. 내가 가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10분이 한계야.”
레테가 두 손을 펼쳤다.
“그 안에 결정해. 나를 야훼에게 보낼 것인지, 이곳에 묶어 둘 것인지.”
고작 600초.
인류의 운명을 걸기에는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으나, 결국 그런 세계였다.
손유정은 가불가의 판단을 끝없이 되풀이했다.
“흐으으으.”
야생마의 갈퀴처럼 떨어지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점차 하얗게 세기 시작했다.
“유, 유정아.”
모르타싱어가 걱정스럽게 불렀지만 그녀 또한 해 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우리는 결코 타인의 진실을 알 수 없기에.
‘레테를 믿어야 하나?’
손유정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누구도 믿어서는 안 돼. 오직 내가, 나 자신을 구원해야 하는 거야.’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알 수 없는 진실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사랑의 정의 (4)
***
에텔라는 끝없이 걸었다.
“엄마, 엄마.”
태어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던 림보의 아이들은 이제 공간이 되어 있었다.
“미안하다.”
림보가 느끼는 공포는 자신의 배 속에 있는 아이의 공포와 똑같을 것이기에.
“엄마가 미안.”
에텔라의 마음은 찢어질 듯했다.
아마도 그녀의 육신은 갈기갈기 찢어졌을 테지만 스키마는 끝없는 고통을 전달했다.
마치 부처가 아귀들에게 몸을 바쳤던 것처럼, 그녀 또한 시스템의 끝을 향해 나아갔다.
‘그곳에 가면…….’
그녀는 물론 배 속의 아이와 림보도 영원한 무의 세계로 사라지게 된다.
‘샤갈.’
그가 걱정이었다.
‘나를 이해해야 합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샤갈이 세상에 속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테니까.
“엄……마…….”
한 걸음이 무겁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 이 공간을, 삶의 무게를 통째로 짊어진 기분이었다.
‘쓰러지면 안 돼.’
림보를 정화시키겠다는 사명은 꺾이지 않았으나 힘에 부치는 것은 사실이었다.
“흐으으으!”
아무리 애를 써도 나아갈 수 없는 생명의 무게 앞에 그녀의 무릎이 꺾였다.
‘고작 이 정도인가?’
이 세계가 잔인한 이유는, 목숨을 바쳐도 이룰 수 없는 게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야 하는데. 이 아이들을 구원해야…….’
그렇기에 책임감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무거운 짐이자 가장 아름다운 신념.
“엄마, 엄마.”
살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일어서야 해!”
그 순간 그녀의 정신에 환청이 들렸다.
-아아, 검사 중.
‘뭐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에텔라가 물었다.
“누구……시죠?”
-에테르 공명에 성공했습니다. 그럼 이제……. 아, 전하. 모두 물러서라.
‘이게 뭐야?’
지옥에서 듣는 현실의 소리가 으스스했다.
-로미 에텔라.
차갑고 근엄한 목소리에 이어 조금 전 여자가 통역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