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08
진강과 안찰의 음성이 거의 동시에 전해졌다.
-나는 진천 제국의 황제 진강이네. 아마도 그곳은 지옥이겠지. 내 딸이 있는.
‘진강.’
진성음의 아버지.
-아무것도 전하지 않는 것이 지옥에 있는 자네에 대한 배려겠지. 하지만 나는 또다시, 내 이기심으로, 잔인한 말을 내뱉게 되는군.
“전하, 제 말이 들리십니까?”
유의미한 반응이 없는 것을 보니 에텔라의 말은 전해지지 않는 듯했다.
‘에테르 공명.’
공간 파동에 정보를 싣는 방식일 터였다.
-내 딸을 살려 주게.
생각이 정리된 그녀는 이제 침묵을 지킨 채 진강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면 세계의 공간에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파마광천성을 개발했네. 자네는 뛰어난 수도사이자 마법사이니 원리는 짐작하고 있겠지. 문제는 좌표일세. 애초에 나는 내 딸에게 에너지를 응집시켜 지옥을 폭파시키려고 했네만…….
‘대단한 집념이구나, 이 사람도.’
책임감이었다.
-우리는 좌표를 바꾸어 자네에게 에너지를 보내기로 최종 결정했네.
에텔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한 일이야. 나는 프로세스에 있다. 폭발이 일어나면 림보를 구원하는 것은 물론 이면 세계의 정화 시스템이 마비될 거야. 그렇게 되면…….’
진성음의 업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모르겠군.
잡다한 설명을 끝낸 진강이 말했다.
-자네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물론 고통스럽겠지만, 파마광천성의 에너지가 응집되면 더욱 큰 고통이 찾아올 것이네. 과연 이게 옳은 일인지. 차라리 내 딸을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자네의 안식을 기도하는 것이…….
“아니! 아니!”
에텔라는 고개를 저었다.
‘살릴 수 있잖아! 진성음을 살릴 수 있어!’
물론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통곡의 골짜기에서 진성음이 인류를 위해 어떤 희생을 했는지 보았기에.
‘살아야 해. 그 사람은…… 자격이 있어.’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는 것은 정말로 끔찍한 일이지. 특히나 인류를 위해 몸을 바친 자네를 고통으로 몰아세우는 것이…… 마치 내가 악귀라도 되어 버린 기분이군.
“전하!”
에텔라가 소리치는 순간 진강의 목소리가 떨렸다.
-살려 주게.
에텔라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제발 내 딸을 살려 주게. 내가 죽을 테니, 차라리 내가 지옥에 떨어져도 좋으니…….
진강은 기꺼이 할 것이다.
자식을 구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목숨을 바쳐도 이룰 수 없는 무언가라서.
‘책임감.’
심지어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는 것이다.
-로미 에텔라여, 지금 내 말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나는 알 수 없네. 어쩌면 나를 저주할 수도, 그래서는 안 된다고 소리칠 수도 있겠지. 그런 상상이 나를 더 끔찍한 곳으로 몰아넣지만…….
진강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나는 믿을 것이야. 로미 에텔라는 세계 최고의 구도자이자 인류를 위해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나는 믿어 버릴 것이야.
에텔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운을 비네.
그것으로 더 이상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이어서 온몸에 뜨거운 기운이 밀려들었다.
‘시작이구나.’
에텔라는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파마광천성의 효율을 극대화시키려면 시스템의 가장 깊은 곳에서 터져야 할 것이다.
“할 수 있어.”
이 목숨으로 책임질 수 있다.
‘진성음, 인류는 아직 당신이 필요합니다.’
고통이 밀려들었다.
“안 돼!”
샤갈은 절규했다.
거의 광인이 되어 버린 그는 개처럼 사지를 휘저으며 달리는 중이었다.
“으아아아아!”
에텔라의 고통이 태극의 사슬을 통해 밀려들자 그가 무릎을 꿇고 눈을 뒤집어 깠다.
-정화까지 남은 시간……
처음 이곳에 왔을 때보다 절반 이상 줄어든 시간이었으나 여전히 영겁이었다.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한 거야! 그렇게 떠나 버리면, 그렇게 사라지면…….”
너를 만나야 한단 말이야.
엄청난 마음의 고통이 밀려들면서 또다시 카르마가 대폭 정화되었다.
샤갈은 문득 깨달았다.
“젠장! 제기랄!”
지금 받는 이 고통이, 이 절망감이, 자신이 에텔라에게 주었던 것과 똑같다는 사실을.
‘내가 괴롭혔어. 내가 그렇게…….’
그녀를 파괴했다.
‘업이라고?’
눈물을 훔친 샤갈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어떡하지?”
정말로 내가 망쳐 버린 거야?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
책임질 수 없다.
“아니야!”
그 사실을 부정하며 샤갈이 소리쳤다.
“왜 나한테 그러는 거야! 날더러 뭘 어쩌란 말이야! 그냥 돌아오면 되잖아!”
이룰 수 없는 것이 있다.
“죽인다!”
이 증오마저 없으면 이제 에텔라와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 같아서.
“죽일 거야! 죽여 버릴 거라고!”
샤갈은 마족에게 당한 육체를 지옥으로 내던졌다.
댕. 댕. 댕.
10시를 알리는 성전의 종이 울렸다.
이미 30분 전부터 별관 극장에 모인 각국의 대표들과 관리들의 얼굴은 비장했다.
피날레 공연을 마지막으로 성전의 공식적인 행사는 막을 내리게 되겠지만.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끝났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정세는 치열하고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마야를 죽인 국가가 세계 지도국이 된다고? 무슨 예언이 이래? 정말 믿어도 되는 거야?’
페르미가 각국에 전달한 정보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내린 결론이었다.
알비노가 중얼거렸다.
“또다시 피바람이 불겠군.”
루피스트가 물었다.
“정말 그럴까요? 출처는 아포칼립스지만 조작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페르미는 어설픈 거짓말은 하지 않아. 거짓은 거짓을 낳고, 결국 자멸하니까. 놈이 강한 이유는 논리적으로 무장되어 있기 때문이야.”
알비노는 아포칼립스의 기록을 읊었다.
“성전 말미에 두 여성이 노래를 부른다. 마야에게 박수갈채가 쏟아지고 아이론의 군대가 그녀를 죽인다. 아이론은 세계 지도국이 된다.”
“자이브가 아닌, 아이론이라.”
루피스트는 좌석을 살폈다.
“기스가 없군요.”
“플루가 성공했다는 얘기겠지. 타국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눈치야. 어쨌든 페르미의 정보대로 되어 가고 있어.”
“하지만 마야를 죽이는 것과 세계 지도국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걸까요?”
“알 수 없지. 느낌상 아포칼립스의 정보는 핵심 사건의 결과만을 시간순으로 기록한 것 같더군. 마치…… 사람이 아닌 기계가 적은 느낌이랄까?”
인간만이 원인을 필요로 한다.
“어쨌든 나도 의문이야. 과연 마야가 죽을까? 예인들은 모르고 있지?”
“네. 기밀이니까요.”
“우리 쪽은?”
“일단…… 준비는 시켜 놓았습니다.”
정보가 사실이라면 마야를 죽이는 국가는 토르미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오젠트 라이?”
“아뇨. 예인 중에 레이나라는 피아니스트가 가족입니다. 맡길 수 없는 일이죠.”
“그렇겠지.”
“어차피 시행하기 어려울 겁니다. 페르미가 알고 있다는 것은 시로네도 알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그러고 보니 없군.”
시로네가 보이지 않자 알비노는 수염을 꼬았다.
‘이것들 대체 무슨 수작이야?’
페르미가 정보를 공개한 이유는 보안이 뚫렸기 때문이라 예상할 수 있다.
‘아마도 아이론이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정보의 가치를 현저히 떨어뜨릴 이유가 없다.’
다음은 사실 여부.
‘타임 라인은 들어맞고 있어. 하비츠의 살인 게임에 1시간의 공백이 생긴 것. 기스의 사망…….’
그렇다면 마야는 죽는가?
‘시로네는 오지 않고 있다. 정말로 거짓 정보인가? 아니, 이게 사실인 거야.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일 뿐.’
알비노의 표정이 굳었다.
“반대로 생각해야 되는 거 아닐까?”
“네?”
“우리가 마야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마야를 죽일 수밖에 없도록 되는 게 아닐까?”
루피스트는 눈을 깜박거렸다.
“이건 정보 갱신의 함정이야. 인간의 사고는 원인에서 결과로 나아가지. 마야를 죽이면 세계 지도국이 된다. 하지만 신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반대야. 세계 지도국이 누가 되든 상관이 없어. 중요한 건 마야가 죽는 것.”
“하지만 어떻게 그게 가능하죠? 무슨 일이 벌어지기에 우리가 마야를 죽일까요?”
“그 지점에 있겠지.”
알비노는 별관의 문을 노려보았다.
“시로네는.”
델타 본청의 입구는 시위대와 항마부, 남방 전사들의 충돌로 아수라장이었다.
“흐음.”
은타라는 우위에 있던 힘의 균형이 갑자기 기울어지는 것을 느꼈다.
‘뭔가 익숙한데.’
이유 없이 목이 잘려 나가는 전사들 사이로 무언가가 돌아다니는 느낌.
‘그리고 점점 다가오고 있다.’
살기로 눈이 번질거리는 하비츠는 전사들을 죽이며 은타라에게 향했다.
“탈락. 탈락. 탈락.”
인의 파동은 그에게도 영향을 미쳤으나 특별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재밌군.”
어차피 그의 머릿속은 혼돈이었다.
“여기도 끝.”
은타라의 앞에 도착한 하비츠는 장검을 치켜든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남방이 무너지면 시위대는 델타 본청으로 들어가 세계를 장악하게 될 테지만.
“…….”
그런 정세와 무관하게, 하비츠는 배니싱을 풀며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드디어 보게 되는군.”
“흡.”
놀란 은타라가 숨을 삼켰으나 하비츠의 시선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야훼.”
“목숨을 건졌구나, 사탄.”
엘리키아의 빛을 머금은 시로네의 모습이 사투의 현장을 배경으로 밀어냈다.
엑소 유니버스 (1)
델타 별관에서 공식 행사를 기다리는 도중 성전 운영 팀이 먼저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운영 팀장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행사가 10분 정도 지연될 것 같습니다. 현재 별관은 경계 2등급 발령 구역으로 전환되었으며…….”
거기까지 들은 각국의 정상들은 직속 채널을 통해 정보를 더 빠르게 습득했다.
토르미아 쪽에서도 단테의 부하가 다가왔다.
“협회장님.”
“무슨 일이야?”
“델타 본청의 정문 쪽에서 교전이 발생했습니다. 대상은 남방의 전사들과 라미교의 항마부입니다.”
루피스트가 되물었다.
“남방과 라미교?”
“네. 그게…….”
알비노가 말을 끊었다.
“피라미드 쪽에서 온 사람들이군. 결국 성전으로 들어온 건가? 언제부터지?”
“교전 발생 시각은 9시 45분입니다. 또한 야훼와 사탄이 전장에 합류했습니다.”
‘그곳에 있었나?’
현재 성전에서 가장 뜨거운 곳임에는 분명하지만 아직 설명되지 않은 게 있었다.
“피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정보원이 목소리를 낮췄다.
“첩보에 의하면, 뭔가 좀 이상합니다. 피라미드 쪽에서 몰려온 사람들과 접촉하는 순간, 최면에 걸린 듯 의지를 잃고 인파에 합류한다고 들었습니다.”
루피스트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