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13
“…….”
할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닌가?
“더 빨리.”
결정을 내린 시로네가 작업 속도를 끌어올리자 물질이 나오는 공간이 붉게 달구어졌다.
“크으으으으!”
물아일체의 경지에서 정신이 혼미해지고, 동시 사건의 근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
“윽!”
델타 본청의 입구에서 인의 행렬을 막아 내던 시로네가 갑자기 머리를 움켜쥐었다.
“야훼!”
남방의 전사들이 걱정스럽게 소리쳤으나 시로네는 이내 고개를 쳐들었다.
‘포기하지 않아.’
인의 행렬이 델타로 들어가는 순간 마야는 필연적으로 죽게 될 터였다.
‘마야.’
그녀의 노래를 상상하며 시로네는 눈을 부릅떴다.
“핸드 오브 갓.”
방어의 마음을 담은 빛의 손이 행렬을 밀어내자 순식간에 20미터의 거리가 벌어졌다.
“야훼여, 너는 오류다.”
서로 치이고 구르는 와중에도 인人은 표정 변화 없이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섬뜩한 기분을 느끼며 시로네는 흔들리는 정신을 한 점에 집중시켰다.
두 가지 집중점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것은.
“오류가 아니야.”
처음 보는 악보를 초고속으로 연주해야 하는 강도와 유사한 난이도지만.
“마음이다.”
어릴 적 레이나의 말에 의하면 시로네는 꽤나 초견을 잘하는 아이였다.
오오오오오오오!
율법과 마음이 또다시 충돌하면서 인의 행렬이 끝없이 밀려 나가기 시작했다.
“시로네는.”
창문 앞에서 페르미가 말했다.
“어쨌든 해낼 거야. 어떤 상황에서든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고 그것을 수행하지.”
세리엘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학창 시절부터 그랬잖아.”
“기술만 가지고 되는 건 아니지. 냉철한 판단력, 도박을 거는 용기, 그 베팅의 기준을 잡는 상황 인지력, 연산 속도, 방법의 가짓수를 제한하지 않는 다양성과, 한쪽이 막히면 다른 쪽을 뚫는 유연성 등.”
페르미가 돌아섰다.
“단지 우리가 잘한다고 부르는 것에는 실상 많은 것들이 담겨 있지.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인간 능력의 총체야. 그리고 내가 아는 한, 그 녀석은 문제 해결 능력이 가장 탁월한 마법사일 거야.”
“웬일로 시로네를 다 칭찬해? 오늘 좀 이상한데. 정말 무슨 일 있는 거야?”
페르미는 다시 몸을 돌렸다.
“10분 뒤에 마야가 죽어.”
“뭐!”
세리엘이 벌떡 일어났다.
“그걸 이제 말하면 어떡해, 미친놈아! 넌 그걸 알면서도 이러고 있는 거야?”
“막을 수 있는 성질의 일이 아니야. 신의 의지라는 것은 결과를 관철시키니까.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페르미는 정문을 가리켰다.
“시로네는 인의 행렬을 막아 낼 거야. 그렇기 때문에 내가 속일 수 있는 거지.”
“속여? 누구를?”
“신을.”
“…….”
너무 넓은 시야를 가진 자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미쳤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시로네가 해내면, 신은 우회한다. 그 녀석이 해내기 때문에 가능한 전략이야. 아마 지금도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원인들이 얽히고 있겠지. 그리고 그렇게 신이 원하는 결과에 도달하는 순간.”
페르미가 손바닥을 주먹으로 때렸다.
“카운터를 날리는 거야.”
“이해할 수가 없어. 아니, 이해하고 싶지도 않아. 마야는 정말로 죽는 거야?”
“모르지.”
페르미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을 마야의 노래를 상상하며 나직이 말했다.
“그건 신조차 모를 테니까.”
케이든에게 달렸다.
마야의 목소리가 사라진 뒤에도 별관의 공기에는 그녀의 환청이 스며들어 있었다.
정적을 깨는 소리는 관객석의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나직한 탄성뿐이었다.
파니에르는 지휘봉을 내렸다.
‘잘했구나, 마야.’
그리고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숨을 몰아쉬는 그녀를 눈에 담았다.
‘이제 네가 세계 최고다.’
“브라보!”
누군가가 기립하며 소리치는 순간 사방에서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마야의 표정은 그제야 풀어졌다.
‘끝났다.’
사실은 박수 소리도, 휘파람 소리도, 그녀를 치하하는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집에 갈 수 있어.’
그저 책임을 다했다는 안도감 하나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최고다! 마야!”
무대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케이든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
‘맞아. 항상 내 옆에 있었지.’
공연이 끝난 뒤에야 여태까지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현실로 다가왔다.
“흐윽…….”
뒤늦게 눈물이 터진 마야가 관객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박수 소리가 더욱 커지자 동료들이 그녀의 손을 잡고 중앙으로 이끌었다.
“앞으로 가, 마야. 네가 주인공이니까.”
한껏 상기된 얼굴로 화답하는 예인들을 지켜보며 파니에르는 미소를 지었다.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겠지.’
이 짧은 순간의 기쁨을 위해 수없는 시간을 공포와 싸워야 하는 것은 좀 가혹하지 않나.
‘크크, 천만의 말씀.’
절대로 떠날 수 없는 것이다.
‘돌아올 수밖에 없어. 지금 느끼는 감정이 평생의 행복보다 더 짜릿할 테니까.’
한편 무대 뒤에 있는 케이든도 관객들만큼이나 열렬히 박수를 치고 있었다.
‘잘했어. 잘했어, 마야.’
세계 최고의 예인들과 나란히 서 있는 그녀의 모습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그때.
“응?”
박수를 치는 손이 자신도 모르게 내려가 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뭐야?’
조명이 없는 무대의 반대편에서 한 남자가 석궁을 겨누고 있다는 사실을.
존재의 무게(1)
아포칼립스의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각국 수뇌부는 똑같은 의문을 품었다.
‘마야를 죽여야 한다면…….’
살해의 방법은 어디까지 적용되는가?
‘암살자가 특정 국가의 첩자라면? 혹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간접 살인이 발생하면?’
기준이 애매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국가들은 칼로 죽이는 게 가장 정확하다고 보았으나.
‘석궁수.’
본래 세계 지도국이 될 예정이었던 아이론 왕국은 초강수를 두었다.
케이든은 신중했다.
‘왜 저러지? 위험하잖아. 왜 아무도 말리지 않는 거야? 설마 나만 보고 있는 건가?’
페르미는 생각했다.
‘만약 내가 미래의 정보를 얻지 않았다면, 시로네는 인의 행렬을 막지 않았을 거야.’
지금쯤 관객은 인의 파동에 휩쓸렸을 테고, 그 혼돈에서 마야를 죽이는 건 아이론 왕국.
또한 페르미는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알고, 그다음 아이론 왕국이 알았다. 아이론 왕국은 마야를 죽이지 않을 거야.’
마야를 죽이고 세계 지도국이 된다는 예언에서 위화감을 느낀 자들은 한둘이 아닐 터.
‘그리고 이제 모든 국가가 정보를 알게 되었다.’
발을 빼는 순간 패배라면 아이론은 두 가지 경우를 모두 상정하고 있을 테고.
‘시로네가 인의 파동을 막았으니, 당연히 아이론은 마야를 죽이려고 할 것이고…….’
아이론이 마야를 죽이려고 하기 때문에.
‘케이든은 탈옥한다.’
여기까지가 페르미가 아포칼립스의 정보를 공개했을 때 상정한 미래였다.
케이든은 주저했다.
‘나밖에 모르는 거 같은데. 아니, 설마 알고도 그냥 보는 건가? 무슨 이벤트야?’
미래를 모르는 자의 두려움을 탓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오른손은 주저하지 않았다.
“큭!”
마검기가 발동하면서 날카로운 대기가 석궁수의 목을 똑 하고 떨어뜨렸다.
‘진짜 죽였어.’
암살자가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더라도 오른손은 움직였을 터였다.
“케이든?”
박수 소리가 그친 가운데 마야가 황당한 표정으로 무대 뒤를 돌아보았다.
이어서 비명이 터졌다.
“꺅! 사, 사람이 죽었어! 어떻게 된 거야?”
엘 키아나가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살인자! 경비들은 뭐 해요! 어서 빨리 저 사람…….”
뒤를 돌아본 그녀는 얼어붙었다.
“어?”
각국의 히트맨들이 전부 올라와 각자의 무기를 꺼내며 달려들고 있었다.
“비켜!”
“아, 아아.”
엘 키아나는 진심으로 비키고 싶었으나 손가락 하나도 까닥하지 못했다.
히트맨의 눈이 싸늘하게 식는 것을 본 그녀는 찰나의 순간에도 직감했다.
‘나, 죽는 거야?’
칼날이 목을 치려는 그때, 레이나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무대를 뒹굴었다.
“멍청아! 빨리 도망쳐!”
“힉!”
엘 키아나가 출구를 향해 달려가자 레이나는 아수라장이 된 무대를 살폈다.
‘라이가 말한 게 이거였나. 하지만 왜 우리를 노리지? 아니, 노린 것은…….’
석궁수의 위치가 퍼뜩 떠올랐다.
“마야!”
그녀가 소리치는 순간 각국의 암살자들이 마야를 둘러싸고 검을 휘둘렀다.
‘무조건 먼저 죽여야 한다.’
“이야아아!”
그 순간 케이든의 기합 소리와 함께 마야가 있는 곳에 토네이도가 일어났다.
질끈 눈을 감고 있던 마야가 한쪽 눈꺼풀을 올리자 넓은 케이든의 등이 보였다.
“괜찮아?”
“응. 이 사람들은 뭐야?”
“나도 몰라, 왜 너를 노리는 건지. 조금 전만 해도…….”
눈물을 글썽이며 박수를 쳤으면서.
“마검사인가?”
두 자루의 단도를 역수로 쥔 자가 말했다.
“좀 어설프군.”
“…….”
물론 최고의 히트맨들일 테지만 케이든이 입을 다문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적십자성의 운명이 약해졌어.’
언제부턴가 자신을 따라다니던 지긋지긋한 운명이 사라졌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마검기를 쓸 수 있는 이유는, 마음대로 날뛰는 자신의 오른팔 때문.
‘한쪽 팔로 싸우는 셈이다. 심지어 통제도 안 돼.’
케이든은 이 상황에서 마야를 지키는 방법이 무엇인지 결정을 내렸다.
“마야, 도망쳐.”
적들도 듣고 있는 상황이지만.
“나는 이길 수 없어.”
자존심을 버리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만이 마야를 움직이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케이든…….”
“빨리 가! 짜증 나게 하지 말고!”
절대로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기에 마야는 눈물을 머금고 순간 이동을 시전했다.
“쫓아!”
히트맨이 움직이고 케이든이 앞을 가로막았다.
“이야아아!”
강하게 기합을 넣어 보지만, 실상 그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