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17
‘부디…….’
저를 용서하지 마세요.
존재의 무게 (4)
***
악의 전당의 출구 앞에서 카인이 돌아섰다.
“여기야. 이 길을 따라가면 교회가 보일 거야. 기요르기는 그곳에 있다.”
시로네 일행은 문 너머를 살폈다.
전당 밖에는 아름다운 숲이 있었고, 그 숲 위로 종이 걸린 첨탑이 보였다.
카인이 말을 이었다.
“멜키두의 시스템은 내가 만들었지만 사실 이곳의 진정한 주인은 저들이지. 사탄교.”
네이드가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어쨌거나 최초의 살인자, 이대로 두고 가면 뒤통수가 근질거릴 터였다.
“걱정하지 마. 물론 나는 악이지만, 아까 말했다시피 악을 전공한 학자에 가까우니까.”
카인이 물러서며 말했다.
“지켜보고 있겠어. 나와 어머니가 탄생시킨 선과 악의 마지막 싸움을. 악이 승리하면, 나 또한 더 이상 이런 곳에 숨어 있을 필요가 없겠지.”
“선이 승리하면?”
이루키의 물음에 카인은 잠시 생각했다.
“글쎄.”
그리고 말했다.
“선에게도 승리라는 것이 있나?”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채 카인이 복도로 사라지자 시로네는 친구들을 돌아보았다.
“드디어 왔네. 이제부터는 멜키두의 시스템이 아니야. 현실의 전투라고.”
이루키, 네이드, 에덴의 눈빛이 달라졌다.
“가자.”
사탄교의 수도원은 멀리서 보기에는 다른 수도원과 다르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가까이 접근하자 장식물과 석상, 벽에 새긴 그림들이 하나같이 역했다.
“끔찍하군.”
일행은 분수대를 지나쳤다.
‘보통 꼬마 아이들이 오줌 누는 건데.’
사탄교의 장식은 쪼그려 앉은 임산부가 배에 손을 얹은 채로 절규하는 형태였다.
“윽!”
그리고 피 분수가 터졌다.
질색하며 물러서려던 네이드가 움찔하더니 이내 싸늘한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
몸을 적시는 피에서 역한 냄새가 풍겼지만 아무도 자리를 피하지 않았다.
“기요르기.”
사탄교의 교주와 간부들이 교회의 문을 열고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기요르기, 굴탄, 마리트, 유프라푸스.’
대야훼전에 특화되어 있는 4명의 마족 옆에 시로네가 찾던 사람이 있었다.
“세이나 씨.”
이미 사탄교에 감화된 그녀의 눈에는 피처럼 붉은빛이 담겨 있었다.
기요르기가 말했다.
“드디어 왔구나. 악의 성지를 돌아본 느낌이 어때? 꽤 괜찮은 곳이지?”
“세이나 씨를 돌려줘. 내가 원하는 건 그것뿐이야. 이제 와 싸우는 건 의미가 없잖아.”
기요르기도 종말이 임박했음을 알고 있었다.
“꽤 근접했군. 멜키두에서 헛된 시간을 보낸 건 아닌 모양이야. 하지만 틀렸어.”
기요르기가 악마의 바이블을 펼쳤다.
“아스카 약정서 7장 2절. 위를 멀리하고 아래를 기어라. 음란함은 그곳에 있나니.”
기요르기의 그림자가 두 갈래로 갈라지더니 거대한 손이 되어 뻗어 나왔다.
‘빛을 파훼하는 능력인가?’
시로네가 핸드 오브 갓으로 균형을 맞추자 사탄교의 권사, 마리트가 나섰다.
“엠블럼(마류의 상).”
인간의 마기가 뭉쳐져서 만들어진 형태는 차마 보기에 민망할 정도였다.
에덴이 미간을 구겼다.
‘뭔지는 몰라도, 정말 싫어.’
다만 이제는 선악의 탄생을 알았기에 성적인 느낌만큼은 이해가 되었다.
‘릴리스가 금단의 선을 넘었을 때 느꼈던 감정을 형태로 나타내면 저런 게 되려나?’
반면 시로네는 엠블럼 자체에 주목했다.
‘엠블럼은 사탄교 신도의 마류를 수집한다. 그리고 유프라푸스의 능력으로 공격.’
엠블럼의 창이 핸드 오브 갓을 뚫고 옆구리에 박혔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야훼의 천적 같은 무기야.’
마족의 것이 아닌, 야훼를 부정하는 인간들의 감정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카.”
-네.
멜키두의 코어는 현실이기에 미카와 접속이 되었다.
‘사탄교의 신도가 몇 명이지?’
-현재까지 사탄교의 신도 수는 세계 총합 12억 7,301만 8,388명입니다.
“…….”
당시 옆구리를 찌른 엠블럼의 창이 대략 3천만 명분의 위력이었다.
‘이번에는 버티지 못할 거야.’
설령 목숨은 건질 수 있다고 해도 야훼의 경지는 갈기갈기 찢어질 터였다.
-감정병의 영향으로 사탄교의 신도 수는 11억대까지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습니다. 다만 근래 특별한 파동의 영향으로 성장이 둔화된 상태입니다.
인의 파동이었다.
사탄교의 장로 유프라푸스가 말했다.
“야훼여, 패배를 인정하시오. 당신은 감정병도, 율법의 변화도 막아 내지 못했소. 세계를 지배하는 건 선과 애가 아니라 악과 공이라는 것을 왜 모르오?”
이루키가 받아쳤다.
“어차피 너희들도 공을 이길 수 없어. 이대로 가면 모든 게 끝난다고.”
굴탄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상관없어. 그렇게 끝나면 같이 사라지면 그만. 누군가가 막아 주면 또 그런대로 그만. 어차피 아쉬운 건 너희들이지, 우리가 아니거든.”
카타콤의 일원들이 비웃음을 짓는 가운데 오직 기요르기만이 불편한 표정이었다.
그가 말했다.
“야훼여.”
나를 버린 자여.
“이것이 너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다.”
말이 끝나는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세이나가 걸음을 옮겨 시로네의 정면에 섰다.
“이 여자는 사탄의 세례를 받은 자. 어떤 인간보다 우리에게 가깝다.”
에덴이 소리쳤다.
“헛소리하지 마! 너희들이 세뇌시킨 거잖아!”
“피차 마찬가지.”
“뭐?”
기요르기는 말을 아꼈다.
“세이나를 구원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라. 하지만 너는 마류의 창에 죽을 것이다.”
네이드가 말했다.
“흥, 우리가 그렇게 내버려 둘 것 같아?”
“모르지. 분명한 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여기서 너희들이 패한다면…….”
기요르기가 악마의 바이블을 펼쳤다.
“울티마는 없다.”
말이 끝나는 동시에 세이나가 돌진하고, 시로네 일행이 좌우로 흩어졌다.
‘제길!’
인류 종말까지, 앞으로 1시간.
***
전승몽의 마지막.
요라한의 정신은 드리모에 있으나 육체는 여전히 속세를 떠돌고 있었다.
얼마나 긴 세월이 지났을까.
“산치! 산치!”
둘의 여정은 수없이 세상을 돌고 돌아 동방의 깊은 산골 마을에 다다랐다.
“키아아아! 복수할 테다! 가증스러운 것들! 감히 나를 죽여? 너희들이 감히?”
17세 소녀의 얼굴은 잔뜩 상했고 뺨에는 실핏줄이 전부 올라온 상태였다.
“산치! 제발 정신 차려 봐!”
산치의 어머니가 오열하는 가운데 마을의 노파가 미친 듯 쌀통을 흔들었다.
“토지신이시여! 이 아이를 도와주소서! 사악한 악귀로부터 자유를 찾게 해 주소서!”
“크으으으!”
괴로움에 꿈틀대던 산치의 입꼬리가 찢어지더니 탁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크크크. 크크크크!”
노파의 눈에 공포가 깃들었다.
“흐아아악!”
마치 환영을 본 것처럼 뒤로 넘어진 그녀가 초점이 풀린 눈으로 말했다.
“너, 너무 사악한 귀신…….”
“어떻게 좀 해 봐요!”
산치의 어머니가 간절하게 소리쳤으나 마당에 모인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을에서 제일 신기가 강한 노파도 저러는데, 우리가 귀신을 어떻게 잡나?”
“아아, 그럼 우리 딸은…….”
“실례합니다.”
사람들이 뒤를 돌아보자 처음 보는 철갑을 걸친 자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으아아아! 도, 도깨비다!”
“악의 기운이 느껴지는군요. 폐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잠시 살펴봐도 될까요?”
분명 남자의 목소리였으나 어딘가 중성적이었고,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도와주세요!”
다들 겁에 질렸으나 딸을 잃게 생긴 어머니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우리 딸이 귀신에게 씌었어요! 제발, 제발……!”
철컥, 철컥, 묵직한 발소리를 내며 아르망은 허름한 가옥으로 들어갔다.
“키이이이! 넌 또 뭐야?”
온 세상을 다니며 수많은 악을 감화했으나 이번에는 새로운 종류였다.
‘악도 진화하는구나. 끝이 없는 싸움이다.’
아르망이 말했다.
“그 아이에게서 떠나라. 네가 있을 곳은 불의 강이 흐르고 유황불의 하늘이 있는 곳이다.”
“키헤헤헤! 개소리하고 있네! 두 연놈들이 날 생매장시킨 주제에 뭐가 어째?”
‘원한귀인가.’
원통한 기억에 집착한 나머지 현실과 이면 세계의 경계에 걸린 악마였다.
“심정은 이해하지만, 오래전의 일이다. 널 해친 자들도 이미 백골이 되었을 거야.”
“너 따위가 어떻게 알아! 내 분노를, 내 증오를……!”
아르망이 산치의 가슴에 손을 짚었다.
‘소세계창유.’
“끄아아아아아!”
끔찍한 비명 소리에 사람들이 기겁했으나 이내 산치는 잠에 빠져들었다.
“아아! 우리 딸!”
어머니가 기어오자 아르망이 말했다.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그렇게 읊조린 아르망은 자신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원한귀를 대면했다.
어둡고 깊은 마음의 공간에서.
“키히히히! 이제 보니 너도 죽은 놈이었군. 나처럼 빙의할 수 있는 건가?”
원한귀는 썩은 육체에 팔다리 대신 수십 개의 촉수가 달린 형태였다.
아마도 생매장을 당했을 때의 공포와 발버둥이 형태로 구현된 것이리라.
“차라리 잘됐어. 산 놈들은 자꾸 쫓아내려고 하거든. 이제 이 몸은 내 것이다.”
촉수로 어둠을 찍으며 아르망에게 도착한 원한귀의 짝눈이 크게 뜨였다.
“뭐……?”
스르릉, 스르릉.
칼을 갈고 있는 여자의 모습, 하지만 반대편에는 온갖 괴물들이 뒤섞여 있었다.
“왔느냐?”
괴기스러움으로는 자신이 있는 원한귀도 이 광경 앞에서는 겁에 질렸다.
“너, 도대체 뭐야?”
“그만 미련을 버리고 불의 강을 건너거라. 망각의 레테가 너에게 안식을 줄 것이다.”
“미련을 버리라고?”
원한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네가 뭔데!”
그리고 아르망에게 촉수를 찌르는 순간, 엄청난 감정의 파동이 밀려들었다.
“헉!”
“그들을 용서하거라.”
나도 너를 용서할 테니.
마음의 공간에서 아르망은 원한귀의 욕망과 집착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것은 실로 역겹고 혐오스러운 과정이지만.
‘그렇지, 요라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