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18
그녀는 미소 지을 수 있었다.
소세계창유가 풀리자 그녀의 정신이 어두운 공간에서 현실로 되돌아왔다.
“이제 됐습니다. 딸은 무사합니다.”
갑옷 기사가 몸을 일으켜 돌아 나가는 순간 사람들이 납작하게 엎드렸다.
“천인이시여! 우리 마을을 지켜 주소서!”
‘천인.’
아르망은 갑옷의 틈새에서 원한귀의 육체였던 촉수를 사방으로 뻗어 냈다.
“으악!”
사람들이 놀라 물러서는 가운데, 그녀는 열린 길을 차분하게 걸어 나갔다.
“저는 길 잃은 망자일 뿐입니다.”
그로부터 다시 수백 년의 시간이 흘렀다.
“하아! 하아!”
풀 한 포기 없는 광야에서 아르망은 더 이상 걷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한계다.’
마를 삼키며 능력을 키워 왔으나 이제 혼자서는 버틸 수 없는 지경이었다.
“나는…… 이제 검이 된다.”
그녀는 사물이 되는 스스로에게 각인시켰다.
“마검을 가진 자, 세상을 얻을 것이다. 선인도, 악인도, 귀신도 나를 휘두를 수 있을 테지만.”
부디.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구나.”
그 외로운 독백은 바람을 타고 퍼져 훗날 그녀를 시로네에게 인도할 테지만.
‘고생했어, 여보. 이제는 나도…… 당신을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아.’
정인과의 작별은 늘 슬픈 법이다.
금강무장이 해제되면서 한 자루의 마검이 광야의 돌바닥에 단단히 찍혔다.
이어서 한쪽 무릎을 꿇은 시체가 먼지처럼 풀어져 바람에 흩날리기 시작했다.
‘안녕.’
요라한.
끔찍한 진실 (1)
사탄의 교회.
세이나는 피가 비처럼 쏟아지는 정원을 가로질러 시로네에게 돌진했다.
“마검 아스타시아.”
본래 성검이어야 마땅한 그녀의 검이 검붉은 마기를 휘감고 있다는 것은.
“세이나 씨! 정신 차려요!”
단순히 세뇌나 최면이 아닌, 마음이 악으로 기울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미안합니다, 시로네.”
그녀의 육체에서 마기가 불꽃처럼 타올랐다.
‘더 강해졌어.’
기존의 신성력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위력에 시로네는 이를 악물었다.
‘기요르기. 너 이 자식.’
“저는 참회하는 막시무스 님을 찔렀습니다.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어요.”
“그건 실수였어요.”
굴탄의 심상공예가 작용한 결과물일 뿐이다.
“아뇨.”
세이나는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반대예요. 저는 막시무스를 죽이고 싶었던 것입니다. 다만 체면이, 두려움이, 성기사라는 껍데기가, 제 마음을 가로막고 있었던 거죠.”
“…….”
“그것이 진실입니다. 인간의 마음이란 선하고 싶다가도, 모든 걸 망치고 싶은. 어느 한쪽으로 영원히 치우친 마음 같은 건 없습니다.”
기요르기가 말했다.
“소용없어. 네 신념이 꺾이지 않는 만큼이나 세이나의 신념도 강하다. 물론 너라면 관철시키겠지. 원한다면 그렇게 해. 단, 너도 죽을 테지만.”
마류의 창이 날아들 터였다.
“세이나에게 부여한 능력은 이것이다. 아스카 약정서 7장 2절. 효과는…… 내 목숨을 담보로 대상의 능력을 상상할 수 있는 한계치까지 올린다.”
암흑 속성의 특징이었다.
“걱정하지 마라. 우주가 파괴되는 건 아니니까. 그런 건 누구도 상상할 수 없어. 아스카는 사탄의 유혹을 이용해 인간의 마음을 실험했지. 절대로 마르지 않는 돈을 주었을 때, 인간은 어디까지 실행할 수 있는가?”
시옥과 비슷한 수준의 히든 코드일 터였다.
“고작 그 정도야, 인간의 상상력이란. 우주를 사는 망상 따위, 현실이 되면 거래하는 방법조차 모르지. 아스카의 실험에 당한 자들은 대부분 지루할 정도로 일관적인 결과만을 내놓았어. 뭔지 아나?”
“……모든 것을 사들였겠지.”
“그래. 다른 말로 하자면, 누군가가 ‘파는’ 것만 살 수 있었다. 소수의 인간만이 ‘파는 것을 산다’라는 개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흥미로운 행동을 했지. 하지만 그들 또한 상상력의 부재로 실패했어.”
물론 사탄의 유혹이 그렇듯, 꿈에서 깨어난 뒤에는 지옥으로 끌려갔다.
“아스카서에는 이런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지. 물론 너와 나라면 훨씬 거대한 상상도 할 수 있겠지만, 이 능력은 자신에게는 사용할 수 없어. 상상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세이나.”
시로네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보통의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한계라면, ‘이길 수 있는 자를 전부 이긴다’ 정도인가?’
그것만으로도 천하제일일 테지만, 몇몇 인물은 상식을 초월한 파계의 경지에 있다.
“……무슨 생각이야?”
시로네 또한 파계였기에 기요르기의 선택을 선뜻 이해할 수 없었다.
‘수많은 능력 중 아스카 7장 2절을 고른 이유.’
과연 대야훼전에 특화되어 있는 카티콤이 내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일까?
“무엇을 의심하지? 너는 세이나를 공격할 수 없겠지. 한순간이라도 빈틈이 보이면 마류의 창이 날아들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승리야.”
“거짓말. 세이나 씨는 날 잡을 수 없어. 그건 네가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진짜 의도가 뭐야? 왜 굳이 세이나 씨를 잡은 거지? 나를 죽이려면 더 강력한 방법도 있을 텐데.”
“아니, 없어.”
기요르기는 고개를 저었다.
“여태까지 네가 상대한 수많은 적들이 널 죽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강구했지. 하지만 누구도 해내지 못했어. 효율 대 효율의 전투에서 네 역사는 무적이다. 하지만 나는 너를 알지. 내가 너의 마魔니까. 너는 세이나를 공격할 수 없어. 그렇기에 이것이 가장 강력한 방법이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와서…… 아무려면 어때?”
세계의 종말이 눈앞에 와 있는 시점에서 그는 명확히 알고 싶은 것이다.
‘야훼의 마음과, 야훼가 버린 마음.’
어쩌면 기요르기에게는 승패보다 중요한 문제였다.
“시로네!”
네이드의 목소리에 몸을 날리자, 마류의 창이 시로네가 있던 자리를 강타했다.
“내가 막을게.”
에덴이 자리를 옮겨 시로네를 가로막았다.
‘시로네의 빈틈을 노리는 전략. 목숨을 걸어서라도 한 방은 막아야 해.’
요라의 자부심을 걸고.
시로네 일행과 카타콤이 동시에 움직인 가운데, 세이나가 검을 휘둘렀다.
분명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강의 일격이었으나 시로네는 찰나의 빈틈을 발견했다.
‘저기다!’
기요르기는 씁쓸하게 웃었다.
‘무적.’
카타콤이 실수한 것이 있다면 시로네의 성장 속도를 간과했다는 점이었다.
‘이제 이런 수준은 직관으로 처리하는군. 그래, 네가 이 세계의 최강이다.’
한때는 그도 시로네였다.
-왜 나를 버렸는가?
야훼의 마에서 처음 탄생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관념은 이런 것이었다.
-야훼가 옳다면, 나는 왜 존재하지? 우리가 틀렸다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아야 하잖아?
존재하는 것이 틀릴 수가 있는 것인가?
‘이긴다.’
선악을 넘어 공애를 보는 건 야훼와 똑같지만 불행하게도 성향은 정반대.
‘야훼, 이게 내 마지막 카드다.’
시로네의 아가페가 세이나에게 스며드는 것을 느낀 기요르기는 소멸을 각오했다.
동시에 마류의 창이 에덴을 강타했다.
“흐으으으!”
마류의 기운이 방어막을 타고 공포를 주입하자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요르 신이시여.”
하비츠의 악에 굴복한 이후 두 번 다시 악에 지지 않겠다고 다짐했기에.
“용기를 주소서!”
전심력을 다하는 순간 마류의 창이 폭발하며 에덴의 몸이 튕겨 나갔다.
“에덴!”
무서운 속도로 땅을 구르는 모습에 친구들이 소리쳤으나, 시로네는 돌아보지 않았다.
‘정화한다.’
세이나의 몸에서 마를 밀어내는 순간 기요르기 또한 소멸하게 될 터였다.
시로네의 손바닥에 모인 빛이 엄청난 광채를 일으키자 기요르기는 눈을 감았다.
‘그래, 죽여라. 악을 세상에서 지워.’
존재할 가치가 없다면 사라지는 게 마땅하지만.
‘내가 이겼다, 야훼.’
울티마 또한 도달하지 못할 터였다.
“응?”
갑자기 아가페의 빛이 사라지자, 모두가 전투를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시로네는 무릎을 꿇은 세이나의 이마를 짚은 상태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네이드가 소리쳤다.
“뭐 하고 있어? 빨리 세이나 씨를……!”
그 순간 시로네의 뺨을 타고 맑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시, 시로네?”
전승몽이 끝난 것이다.
이미르의 심층 1단계.
요라한과 아르망의 평생을 함께 경험한 시로네의 눈꺼풀이 천천히 올라갔다.
‘그렇구나.’
요르라는 이름의 꿈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요라한의 꿈은 드리모를 통해 요르교의 신도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거대한 용서.’
릴리스로부터 분리된 선악공애가 다시 통합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내가 용서해야 하는 거였어.’
모든 사람이 쓰레기를 버린다고 해도, 서로가 서로에게 미룬다고 해도…….
‘요라한은 해냈다.’
죽음보다 무서운 고통 속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꽃을 세상에 피운 것이다.
‘그렇지, 아르망?’
요라한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한 자루의 검이 된 여인은 대답이 없었다.
-한 번의 기회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 대면에서 했던 그녀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다.
‘감사합니다.’
그녀가 자신을 선택해 줘서 영광이었다.
“이제는 물러서지 않아.”
전과 달라진 눈빛으로 몸을 일으킨 시로네는 이미르의 심층을 살폈다.
지평선 너머에서 터지는 굉음을 들으며 시로네는 블랙홀을 올려다보았다.
‘저곳에…….’
이 세계에 남은 유일한 울티마가 있다.
***
진리의 피라미드의 어느 곳에서, 카니스는 머리를 움켜쥐고 절규했다.
“으아아아! 안 돼!”
인의 파동에서 카니스는 아린과 남매일 가능성을 얼마든지 부정할 수 있었지만.
‘그럴 수 없어. 그렇게 되면 나는…….’
마음을 잃고 만다.
하지만 이대로 버틴다고 해 봤자 남은 것은 절망적인 인생뿐이었다.
“크으으으으!”
“카니스! 참아야 해! 너를 잃으면 안 돼.”
“아, 아린…….”
삶의 기억이 시작될 때부터 함께였던 그녀가 여동생이었다고?
고개를 돌린 카니스가 눈물을 흘렸다.
“……사랑해.”
아린은 초경을 통해 깨달았다.
어떤 삶도 선택할 수 없는 카니스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이었다.
“그래.”
아린은 그를 끌어안았다.
“같이 가자. 마지막까지 싸우는 거야. 운명 따위에 굴복하지 않을 거야.”
목숨을 끊는 역할을 맡게 된 하비스트가 긴 팔로 그들을 끌어안았다.
-이걸로 괜찮은 거냐?
카니스가 고개를 끄덕이고, 하비스트의 육체가 폭발을 위해 진동하는 그때.
“아직 끝나지 않았어.”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레스 씨?”
동행해 온 줄루가 카니스에게 다가와 철갑충 아모로스의 체액을 건넸다.
“마셔. 당분간은 버틸 수 있을 거다요.”
보기만 해도 역한 액체였지만 죽기로 작정한 마당에 신경조차 쓰이지 않았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