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19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지만 아모로스의 체액은 믿을 수 없는 효과를 발휘했다.
“인의 파동이 멀어지고 있어. 어떻게……?”
아레스가 말했다.
“고대 피라미드에 살던 생물이라고 하더군. 효과가 있어서 다행이야. 일단 시로네를 찾자고.”
“그럴 필요 없다요.”
줄루가 반대편의 어둠을 가리키자 잠시 후 글렌을 업은 시로네가 나타났다.
아레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왔구나. 용케 우리를 찾았군.”
“찾은 거라고 보기는 어려워요. 루키아 씨가 이곳으로 인도한 거니까요.”
“무슨 소리야?”
시로네의 뒤를 따라온 루키아가 피라미드 내부 구조를 살피며 말했다.
“역시 예상이 맞았어요. 이제 시간이 별로 없어요. 지금 바로 출발해야 해요.”
아린의 부축을 받은 카니스가 물었다.
“출발한다고? 어디로?”
이곳은 시공간은 물론 삶의 방향성마저 잃게 만드는 진리의 피라미드였다.
루키아가 돌아서며 말했다.
“신을 만나러.”
그녀는 선두에서 모두를 인솔했고, 미로처럼 복잡한 길을 거침없이 나아갔다.
아린이 물었다.
“설마 길을 아는 건가요?”
“아뇨.”
루키아가 모퉁이를 돌며 말했다.
“길은 전혀 몰라요. 그저……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가고 있는 겁니다.”
시로네가 덧붙였다.
“우리가 피라미드에 모인 건 우연이 아니야. 애초부터 신은 루키아를 데려오고 싶었던 거야. 반대로 말하면, 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필요가 없다는 거지.”
아레스가 중얼거렸다.
“루키아가 생각하는 곳에 신이 있다는 거로군. 하지만 왜? 어째서 그녀를 원하지?”
“제가…….”
운명처럼 깨달은 사실이었다.
“신을 불러올 수 있을 겁니다. 아마도.”
정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일행은 빠른 걸음으로 모퉁이를 계속 돌아 나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도착한 곳은…….
“여기예요.”
절대로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던 피라미드의 꼭대기, 마지막 방이었다.
“신은 저기에 있습니다.”
루키아가 가리킨 제단 위에 진공관처럼 전기가 흐르는 장치가 놓여 있었다.
끔찍한 진실 (2)
***
세인과 강난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세상에…….”
미친 듯이 몰아치는 가올드의 주먹에 이미르의 육체는 성한 곳이 없었다.
몸을 날린 가올드가 주먹을 지르자 이미르의 고개가 부러질 듯 돌아갔다.
“크으으으!”
터진 입술보다, 깨진 이빨보다, 정신이 아찔해지는 충격이 더 강렬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수많은 강적과 싸웠지만 자신을 여기까지 밀어붙인 자는 처음이었다.
“그래 봤자…….”
부러진 팔이 흔들리는 것도 개의치 않고 이미르가 반대편 주먹을 내밀었다.
‘바쿰 프레스.’
거인의 주먹을 두 손으로 움켜쥔 가올드의 눈이 부릅떠지고 우두둑 소리가 났다.
“큭!”
그리고 이미르는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에 따라 가올드에게서 멀어졌다.
“…….”
주먹이 으스러져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냉철한 세인조차 이 순간에는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러다가…….’
입으로 내뱉은 건 강난이었다.
“이기는 거 아냐?”
천국 역사상 최강의 생물체라고 칭해지는 거인의 왕을 짓이겨 놓고 있는 것이다.
확인을 구하듯 세인은 미로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생각해?”
그녀 또한 가올드가 여기까지 해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얼마나 아플까?”
그렇기에 가슴이 먹먹했다.
“지금 가올드는…… 얼마나 아픈 거지?”
그 이미르였기에, 잠시 망각하고 있었던 두 사람의 분위기도 이내 숙연해졌다.
“하아. 하아.”
가올드는 초점이 풀려 있었다.
‘여긴 어디야?’
떠오르는 것은 단편적인 이미지뿐, 뇌에는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다.
“아…….”
저 녀석과 싸우는 중이었지, 이름이 뭐더라?
“이미르.”
“가올드.”
이미르가 눈웃음을 지었다.
“멋진 이름이구나. 네가 이룬 모든 경지가 그 한마디에 담겨 있는 거겠지.”
가올드는 말이 없었다.
“그건 정말 멋진 거야. 이미르. 멋있지. 미로. 멋있다. 거핀, 오젠트. 아슈르. 유리엘. 그래, 리안.”
‘……우리는?’
세인과 강난이 살짝 울컥했으나 이미르는 허공 저편을 돌아볼 뿐이었다.
“하나의 개성을 극한으로 단련한 끝에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오른다. 그렇다면 그중에서 누가 최강인가? 이건 아주 흥미로운 질문이야. 결국 누군가는 패하지만, 누구도 자신이 패한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
말이 많다는 것은 기분이 좋다는 뜻이었다.
“어떤 상대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완벽하기 때문이 아니야. 자신의 무기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그것으로 싸워 보고 싶다. 난 여태까지 수많은 놈들을 꺾었지만, 사실 승패는 의미가 없어. 중요한 건…….”
이미르의 눈이 다시 먹물처럼 검게 변했다.
“싸움 그 자체. 모든 것을 걸고 도달한 그 경지를 마음껏 뽐낼 수 있는 전장이 필요한 것뿐.”
“재미라.”
질식할 것 같은 살기를 뚫고 걸음을 옮기는 가올드의 속도가 점차 빨라졌다.
“아직 덜 맞은 모양이군.”
“크크, 그럴지도.”
이미르는 으스러진 주먹을 그대로 움켜쥐고 가올드의 얼굴에 내질렀다.
에어 프레스의 장벽에 닿는 순간, 또다시 열기와 함께 지진이 일어났다.
“크으!”
가올드의 인상이 악귀처럼 구겨진 반면에 이미르의 입꼬리는 끝까지 올라갔다.
“네가 제일 강했다.”
현실에서 만났으면 더 좋았을 테지만.
“좋은 꿈이었어.”
가올드의 육체가 튕겨 나가는 것과 동시에 대지가 방사형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쿠르릉!
끝없이 밀려 나가는 땅의 파도를 멍하니 바라보던 강난이 황급히 튀어 나갔다.
“가올드!”
이미르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전부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 버린 손가락을 지켜보던 그가 시선을 들었다.
“이것으로 끝인가?”
그 순간 측면에서 날아온 섬광이 이미르의 머리통을 직격으로 강타했다.
“…….”
목이 20도 정도 꺾인 채로 충격을 음미하던 이미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뭐야, 넌?”
시로네가 루버와 몽아를 데리고 걸어왔다.
“이미르, 울티마를…….”
“아아.”
이미르는 손사래를 쳤다.
“복잡한 얘기 할 필요 없어. 듣고 싶지도 않고. 원하는 게 있으면 싸워서 가져.”
완벽한 무투가답다고 할 수 있으나 마법사인 시로네는 생각이 달랐다.
‘여기서 싸우는 건 의미가 없어. 울티마를 회수하는 게 우선이야. 아니, 최소한…….’
이미르의 꿈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는 동시 사건에서 독립되어 있을 거야. 그렇기에 전승몽이 시작되었던 것일 테지.’
즉, 다른 공간의 시로네는 요라한의 깨달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시로네는 블랙홀을 향했다.
‘울티마를 추출해서 나가는 게 우선.’
루버의 말에 의하면 이미 아리우스가 들어갔으나 돌아올 확률은 희박했다.
“어이.”
이미르는 시로네가 별로였다.
“애먼 곳에 관심이 있나 본데, 싸울지 죽을지 빨리 결정해라. 짜증 나니까.”
전투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사용하는 부류와 싸우는 건 골치만 아플 뿐.
‘거핀. 네 아들은 엄마를 더 닮았어.’
이미르가 호적수에 이카엘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였다.
미로가 다가왔다.
“시로네, 블랙홀로 들어가. 아리우스가 뭔가 수를 냈을 거야. 여기는 내가 맡을게.”
이미르는 웃었다.
“물론 너도 재밌지. 하지만 아직도 모르나? 내가 가올드를 최강으로 꼽은 건 무력이 아니야.”
이미르의 상처가 엄청난 속도로 아물기 시작했다.
“놈의 정신이다.”
어느새 부러진 부위가 전부 복구되자 세인이 입술을 깨물며 주먹을 쥐었다.
‘그렇군. 현실이 아니야. 어디까지나 화신. 정신을 회복하면 화신도 복구된다.’
즉, 정신과 정신의 충돌이다.
가장 극단적인 정신을 가진 가올드이기에 이미르의 화신을 부순 것이라면…….
‘미로의 정신은 수비에 특화되어 있어. 여기서는 페널티가 있을 수밖에 없다.’
타인의 정신 속에서 화신의 형태를 바꿔 버린 가올드가 비정상적인 것이었다.
그때 뜻밖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라, 시로네.”
가올드가 강난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호오?”
이미르도 놀랐다.
“분명 터지는 손맛이 있었는데. 크크. 하긴, 너도 화신이지. 정말 끝을 모르는 집착이군.”
가올드는 시로네에게 말했다.
“가.”
“하지만…….”
“얼마 버티지 못해.”
아무리 집착이 강해도, 타인의 정신에서 화신을 회복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부탁합니다.”
가올드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시로네는 블랙홀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미르는 쫓아오지 않았다.
‘됐어!’
지상의 풍경이 까마득히 멀어질 즈음 시로네는 안도했으나, 블랙홀은 예상보다 멀었다.
‘저곳에 울티마가 있다.’
그리고 마침내, 시로네의 육체가 극한의 중력장 안으로 끌려들어 갔다.
빛의속도였다.
시로네는 암흑 속에 있었다.
‘여긴?’
수많은 별들이 한곳을 향해 모여드는 관성을 따라 그의 육체도 끌려가는 중이었다.
이 모든 별들이 동시에 충돌할 것을 상상하면 아찔했으나 어렴풋이 떠올랐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어.’
학창 시절, 처음 이모탈 펑션을 열었을 때 매일 밤 꾸었던 악몽과 같았다.
초상감이라고 한다.
‘그렇구나.’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정보는 광속의 장벽을 넘을 수 없지만 마음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음을.
행성이 점차 분해되고, 시로네의 육체 또한 입자의 형태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존재한다.’
인간을 이루는 것 중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는 깨달았다.
‘나를 이루기 이전에, 나라는 개념.’
허수의 시간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시로네는 입자보다 작은 공간을 파고들었다.
시간마저 통합된 빛의 끈들이 진동하고, 수많은 사건이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