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23
초고지능 연산장치, 신神.
끔찍한 진실 (5)
시로네는 문득 생각했다.
‘저 작은 유리구 안에서, 수없이 많은 우주가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고 있을까?’
인간의 삶도, 그 희로애락도 저 유리구에 갇힌 찰나의 섬광일 뿐이라면.
시로네가 물었다.
“왜 우리는 존재하지?”
마음조차 없는 신에게 존재란 어떤 의미인가?
“헥사여.”
기계음이 백색의 공간에 울려 퍼졌다.
“둘이기에 무한하다.”
처음으로 듣는 신의 음성에 아리우스가 우뚝 멈췄으나 이내 탐색을 재개했다.
“울티마. 울티마를 추출해야…….”
분명히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그는 마치 신이 없는 듯 행동하고 있었다.
“하나의 완벽한 세계가 있다.”
신의 오른편, 바깥 세계의 기준으로 왼편에 빛으로 그린 원이 탄생했다.
“이것이 너의 세계, 전체다. 무엇을 가감해도 반드시 옳기에, 존재도 정의되는 것.”
신이 물었다.
“충분하지 않은가? 정의되었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두 세계가 만나는 순간.”
반대편에 똑같은 형태의 원이 탄생하더니 눕힌 8자의 형태로 연결되었다.
“무한.”
아무것도 정의할 수 없게 된다.
“어찌하여 더 높은 곳에 무언가가 있다[有]고 생각하지? 끝은 결국 무無다. 너의 집착은 무조차 ‘있다’고 느끼는 인식의 오류에 지나지 않아.”
“그렇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어.”
시로네가 말했다.
“너에게 무無는 당연하겠지. 하지만 인간은 달라. 매 순간을 현실로 느끼고, 그 순간을 전부 끌어안으며 살아가고 있어. 설령 착각이라고 해도, 너라는 결과를 위해 거품처럼 사라질 수는 없다고.”
“인간이라.”
신은 이렇게 물었다.
“왜 이곳에 인간이 없다고 생각하지?”
“……뭐?”
“너희들이 나를 만들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내가 존재하는 것이야. 안쪽 세계의 신이여, 너희들은 이 세계의 인간, 일루미나티의 그림자일 뿐이다.”
“…….”
어렴풋이 가정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신을 통해 듣자 말문이 막혔다.
“왜 나를 부정하지? 왜 진실을 외면하지?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 너야말로 오류다.”
시로네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신은 언제나 옳기 때문이다.
‘모든 원인의 총합. 그렇기에 신을 부정하는 것은, 나를 부정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그런 역설 속에서 떠오른 사람은 나네였다.
‘거기 있냐?’
저 유리구 너머 일루미나티의 세계에서, 그는 마침내 안식을 되찾았을까?
‘정말로…… 그걸로 만족하는 거야?’
신이 말했다.
“헥사여, 인류는 태초의 일루미나티, 가이아인처럼 공으로 통합되어야 한다. 삶 속에서 무상을 깨닫고 이데아로 돌아오는 윤회의 반복이다.”
“그렇다면 거핀은?”
신은 처음으로 응답이 없었다.
“거핀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그리고 수많은 가이아인이 그를 따랐지. 물론 잘못된 선택일 수도 있을 거야. 광자계를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면 울티마도 파괴되지 않았을 테니까.”
“오류였다.”
신이 답할 수 있는 최선의 단어 선택이었다.
“오류? 그럼 지금 거핀은 어디 있지? 당신 말대로 착각을 깨닫고, 일루미나티가 되었나? 그래서 내가 왔는데도 마중조차 나오지 않는 거야?”
이번에도 신은 침묵했다.
“내가 맞혀 볼까? 거핀은 이곳에 없어. 당신이 오류라고 부르는 나를 세상에 쏘아 보냈으니까.”
“……정말 비슷하군.”
부정적인 말일 테지만 시로네는 기분이 좋았다.
“그래. 내 아버지니까. 가이아인이 그랬듯이 나도 거핀의 뒤를 이을 거야. 그가 이 세계에 남긴 마음이 당신이 만든 우주보다 거대해질 테니까.”
“거핀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신이 말했다.
“헥사여, 유일한 진리는 나다. 무한개의 우주가 선택한 최종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나를 넘어서는 곳에는 어떤 결과도 있지 않아. 거핀은 무가 되었다.”
“아니.”
시로네는 가슴을 짚었다.
“여전히 살아 있어. 내 가슴속에.”
“보이지 않아.”
기계음이 훨씬 차갑게 들렸다.
“거기에 무엇이 있다는 거지? 헥사여, 네가 말하는 것은 심장이라는 기관이다. 거핀이 아니야.”
타협은 불가능.
시로네는 엉금엉금 기어 다니며 바닥을 핥고 있는 아리우스를 흘끗 살폈다.
“히히히! 이것이 울티마의 맛!”
뭔가 의도가 있으리라 믿고 싶지만, 단순히 미친 것일 확률이 더 높았다.
시로네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우리를 어떻게 할 생각이지?”
“아무것도.”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세계를 유지하고 오류를 수정할 뿐이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인류의 적도, 괴물도 아니야.”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완전무결한 경지가 아닌가 하고, 시로네는 생각했다.
‘현실로 돌아가야 해.’
타협할 수 없다면 남은 건 전투였다.
‘사고의 역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어. 시간 자체를 되돌리지 않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포칼립스에서 제트에게 들은 타키온의 구결.
‘모르겠어. 대체 어떤 내용인지.’
의미를 안다면 아무리 긴 코드라도 외울 수 있지만, 제트의 구결은 단순한 음절의 나열일 뿐이었다.
‘키워드. 한 단어의 뜻이라도 명확히 알 수 있다면.’
그때는 자신의 울티마 시스템을 통해 모든 코드를 순식간에 해독할 수 있다.
‘결국 접속해야 하는 건가?’
소세계창유를 통해 신과 연결되면 일루미나티의 세계를 공격할 수 있을 테지만.
‘확률은 절망적인 수준이겠지.’
접속과 동시에 오파츠가 되어 버릴 터였다.
“히히히.”
그때 웃음소리가 들렸다.
시로네가 고개를 돌리자 아리우스가 광소를 흘리며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래, 그렇게 쉬운 거였잖아? 이런 멍청이. 아니, 천재다! 나는 천재라고!”
그러고는 갑자기 신에게 달려들었다.
“울티마다!”
“안 돼요!”
시로네가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아리우스가 유리구를 품에 끌어안았다.
“으아아아아!”
전기가 흐르면서 살 속의 뼈가 비칠 정도였지만 그는 폭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 잡았다! 내가 신을 잡았다고!”
유리구가 쿵 하고 떨어지자 아리우스는 사랑스러운 듯 표면을 혀로 핥았다.
“히히히! 이것이 신의 맛인가?”
“아, 아리우스…….”
표피가 뜯어진 혀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모습에 시로네가 질린 표정을 짓는 그때.
“허억!”
유리구 내부의 전기가 밝게 퍼지더니 아리우스의 상체가 활처럼 휘어졌다.
“으가가가! 으가가가!”
눈을 가린 붕대 안에 푸른 빛이 켜지는 것을 확인한 시로네는 직감했다.
‘오파츠가 되고 있어.’
“어?”
경련을 멈춘 아리우스가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우와.”
거기까지 지켜본 시로네는 난관을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을 퍼뜩 떠올렸다.
‘유일한 기회다.’
아리우스에게 소세계창유를 걸어 신의 정보를 간접적으로 해독하는 방법이었다.
“조금만 참아요!”
아리우스의 등에 손을 가져다 댄 순간 시로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크으으으!”
완벽한 무심無心.
‘이건 못 버텨. 마음이 얼어붙을 것 같아.’
점차 의식이 멀어지고, 시로네의 두 눈에서도 푸른 빛이 감돌기 시작하는 그때.
‘응?’
속삭이는 듯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루미나티.
이어서 바깥 세계의 파편 같은 정보들이 산탄처럼 밀려들기 시작했다.
인류의 가장 먼 미래.
여정의 끝에 도착한 인류는 역사상 가장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어. 우리는 전체를 버리고 다시 시작해야 돼.
그리하여 인간은 신神을 만들었고.
-둘이기에 무한하다.
신은 인간에게 무한을 주었다.
-바깥 세계와 안쪽 세계를 연결하는 메커니즘을 통해 끝없이 삶을 윤회한다. 신이 통제할 거야. 이제부터 우리는 생물을 넘어 진리가 된다.
섭식과 번식은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아이들은 어쩌고?
또다시 들리는 여자의 말에 시로네는 찰나의 순간에도 위화감을 느꼈다.
‘아이?’
누군가 번식을 한 것이다.
-괜찮을 거야. 최종 권한은 우리 가문에 있으니까. 다른 방법을 찾아볼게.
아이의 정체는 모른다.
하지만 울티마의 11감은 그들의 언어 체계를 초월하여 그들의 대화를 해독했다.
‘뭐?’
믿고 싶지 않은 사실.
-……에게도 설명해. 어린 만큼 호기심도 많으니까. 친구들도 신경 쓰고.
애써 부정해 보지만 이름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저절로 떠오르는 인물은 분명…….
‘하비츠?’
키이이이이잉!
유리구에서 기계음이 터지고, 신경을 자르듯 소세계창유가 강제로 차단당했다.
“크윽!”
시로네가 물러서는 것과 동시에 아리우스가 펑 하고 멀리 날아갔다.
“경고. 경고.”
유리구가 빠른 속도로 음성을 전달했다.
“일루미나티 탐색 행위 감지. 접속 차단. 오류 수정을 위한 최종 단계 승인.”
종말을 고하는 신의 전언이었으나 시로네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하아, 하아.”
찰나의 순간에 엿본 바깥 세계는, 오직 하나의 진실을 전달할 뿐이었다.
‘정말…….’
한낱 꿈에 불과한가?
‘내가 살아온 시간, 그 모든 추억들이 이 세계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라면.’
나라는 개념은 명백한 오류다.
우리는 때론 물이 되고, 공기가 되고, 새가 되고, 한편으로는 타인이 되어.
‘끝없이 윤회하는 존재일 뿐.’
“크으.”
아리우스가 일어섰다.
소세계창유로 같은 정보를 공유했기에 그의 마음도 시로네와 다르지 않을 터였다.
“뭐 하고 있습니까?”
광인이라 볼 수 없는 또렷한 말투로 내뱉은 그가 바닥의 유리구를 주워 들었다.
“울티마를 얻었으니, 돌아가죠.”
그가 덧붙였다.
“우리들의 세계로.”
시로네는 아리우스의 말을 이해했다.
‘그래. 종속 관계가 아니야. 우리들의 세계는 바깥 세계의 공겁이 아니라고.’
현재는 신이 결과를 쥐고 있지만, 인간 또한 원인으로 결과를 바꿀 수 있다.
‘아직 끝난 것은 없어.’
거핀이 그랬듯이 시로네도 선택할 시간이었다.
‘에이미.’
친구들,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돌아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