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26
퍼어어어어어엉!
강력한 충격파가 심층 1단계의 대기를 모조리 밀어내고 섬광으로 폭발했다.
“…….”
모든 것이 쓸려 나간 자리에서, 루버는 코앞에 멈춘 거인의 주먹을 바라보았다.
“가져가시오.”
루버가 울티마를 건넸으나 거인의 주먹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화신, 이미르가 물었다.
“거래인가?”
“아니. 더 이상 남아 있는 게 있기는 한가?”
시로네 일행은 현실로 복귀했고, 현실에 남은 건 인류의 파멸뿐이었다.
“짜증 나는군.”
물론 울티마가 추출되었다면 이미르의 미래도 어찌 되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고작 그런 문제를 두려워했다면, 거핀에게 일격을 양보하지도 않았을 터.
그렇기에.
“그아아아아!”
이미르는 분노했다.
화신이 내지르는 일갈은 생물의 심장을 멈추게 할 정도로 난폭했으나.
“…….”
루버는 태연하게 자리를 지켰다.
“받아 가마.”
거인의 검지와 엄지가 울티마를 집자 순식간에 스며들며 하늘에 다시 블랙홀이 탄생했다.
“빚을 지는 건 질색이야.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라.”
“인간의 세계로 갈 것이오?”
“그렇다면?”
다중 우주를 통틀어 가장 뜨거운 전장이었다.
“파괴하시오, 철저하게. 마지막에 남은 자가 당신이라면, 그때는 최강이라 인정해 주지.”
루버와 몽아가 사라졌다.
“흥.”
제안에 딱히 불만은 없지만 신이라는 놈이 자신을 아래로 두는 것 같아 불쾌했다.
‘기다려라. 그다음은 너니까.’
어쨌거나 거래를 했으니, 이미르가 해야 할 일은 확실해진 셈이었다.
“크크크! 제대로 놀아 볼까?”
온 인류 멸살.
***
씽의 마음은 한도 끝도 없이 떨어졌다.
“해내지 못했어.”
곧 안티셀이 세상을 덮칠 것이고 인류는 최초의 세포를 거쳐 무로 돌아갈 터였다.
“내가, 내가 조금 더 강했더라면. 조금 더 관철시켰더라면…….”
“오대성님.”
씽이 고개를 돌린 곳에 음지와 양지가 서 있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너희들.”
무엇을 하려는지 깨달았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인류가 반응할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을 겁니다.”
태극의 힘을 이용해 셀 버스터의 율법을 잠시나마 늦추는 전략이었다.
“안 돼. 아직 너희들의 힘이 필요하다. 야훼도 죽었어. 너희들마저 떠나면…….”
양지가 고개를 저었다.
“알고 계시잖아요. 인간의 사고로는 완벽한 태극에 도달할 수 없어요. 우린 각오가 되었습니다.”
그르르르르릉!
하늘에 천둥이 울리는 소리가 들리고, 은빛의 안티셀들이 분화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어요. 하게 해 주세요.”
씽은 이를 악물었다.
설령 그들이 잠시나마 셀 버스터를 막는다고 해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마지막까지 싸워야 하는 이유.’
책임을 지는 것이다.
“부탁한다.”
씽의 결정이 떨어지자 음지와 양지는 미소를 지으며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히…….”
이모탈 펑션을 개방한 두 여자의 몸이 밝게 빛나고, 그들의 정신이 세상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그르르릉! 그르르릉!
시야의 10분의 1 정도를 뒤덮고 있던 안티셀들이 하나의 점으로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은 달처럼 둥그렇게 모인 거대한 세포의 집합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진동을 몸으로 느끼며 씽은 몸을 끌어안았다.
“생각해야 돼.”
두 사람이 벌어 준 잠시의 시간 동안, 인류는 어떤 식으로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제발…….”
피가 마르는 초조함 속에서 그녀의 시선은 차갑게 식은 시로네를 향했다.
***
“아아아아!”
강난은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었다.
꿈에서 꿈으로, 다시 꿈에서 꿈으로, 수없이 많은 몽중몽을 거쳐 도착한 곳은…….
“허억! 허억!”
생소하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신전이었다.
‘끔찍한 악몽이었어.’
그런 생각도 잠시, 그녀는 이곳이 토르미아에서 멀지 않은 갈리앙트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로네!”
단순한 꿈이 아니었고, 그녀가 고개를 돌린 곳에 일행이 모두 깨어 있었다.
아니, 모두는 아닐 것이다.
미로는 피로 물든 침대에 평온하게 누워 있는 아리우스에게 다가갔다.
“잘 가라.”
그의 이마를 짚은 채로 그녀는 케르고인들이 마련해 준 신전을 돌아보았다.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군.”
밀폐된 공간이었으나, 정적보다 깊은 고요함이 불길한 느낌을 자아냈다.
그리고 아직 깨어나지 않은 또 다른 한 사람.
“시로네! 정신 차려, 시로네!”
강난이 어깨를 흔들었으나 눈을 감은 시로네는 죽은 듯 미동이 없었다.
“어떻게 된 거야?”
가올드가 다가가자 세인이 말했다.
“동시 사건의 여파겠지. 다른 공간에서 치명적인 충격을 당한 게 틀림없어.”
“하지만 이상하군. 동시 사건은 화신술이잖아. 정말로 치명상이라면 유지할 수 없어.”
“…….”
잠깐의 침묵 뒤에 미로가 입을 열었다.
“죽은 거야.”
모두가 미로를 돌아보았다.
“죽었다고?”
“치명상을 당했지만 정신은 깨어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심장은 죽었지만 뇌는 살아 있다.”
강난이 두 팔을 벌렸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예요? 심장이 멈췄다는 건 죽었다는 뜻이에요.”
“네가 어떻게 알아?”
강난은 입을 다물었다.
“심장이 멈춰 본 적도 없잖아?”
“그, 그건…….”
“물론 특이한 경우이긴 하겠지. 하지만 그런 특이한 일이 벌어졌기에 이 사태가 일어난 거야. 즉, 시로네는 현재 죽은 상태이지만…….”
미로가 검지를 들었다.
“살아 있다.”
***
두…….
‘제발! 제발!’
시로네는 필사적으로 심장을 조였다.
‘뛰어라!’
두근! 두근!
마침내 멈춰 있던 심장이 박동을 시작하자 엄청난 충격이 육체를 강타했다.
“허어어억!”
벌떡 몸을 일으킨 순간, 오히려 놀란 쪽은 씽이었다.
“뭐, 뭐야?”
황당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그녀는 고통스러워하는 시로네를 보고 기어갔다.
“시로네! 시로네!”
“크으으으!”
피를 원하는 몸이 불에 타는 듯 뜨거웠고 등 쪽의 상처도 그대로였다.
“지혈부터……!”
피가 철철 쏟아지자 씽이 율법을 집중했다.
그 위에 미라클 스트림의 회복력이 더해지자 빠르게 출혈이 잡혔다.
“어떻게 된 거야? 죽은 거 아니었어?”
“죽었어.”
심장이 멈췄으니 당연히 그럴 테지만 아직 뇌 기능까지 마비된 것은 아니었다.
“미안해, 씽. 나 때문에…….”
“아니.”
씽은 고개를 저었다.
“남의 말 따위로 결정한 게 아니야. 납득했기에 따른 거야. 네가 나를 설득시킨 거라고.”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웠다.
“셀 버스터가 발동됐어. 막을 방법을 찾아야 해.”
“태성은 어디 있지?”
이번에는 씽도 화가 났다.
“아직도 모르겠어? 우린 속은 거야. 어차피 관리자들은 신의 하수인일 뿐이라고!”
물론 시로네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왜 머리를 노리지 않았을까?”
“응?”
“왜 심장이었지? 아니, 심장을 터트릴 수도 있었을 거야. 어째서 멈추게 한 거지?”
“너, 미쳤어? 태성은 널 죽이려고 했다고!”
“알아. 하지만 모르겠어. 신이라는 거, 완벽한 연산장치가 이런 실수를 저지를 수 있나?”
“그건……!”
씽은 대답할 수 없었다.
“이건 중요한 문제야. 반드시 확인해야 돼.”
“무엇을?”
“어쩌면 태성은…….”
아포칼립스에서 만난 제트가 수많은 제트와 달랐던 이유와 마찬가지로.
“오류가 생긴 게 아닐까?”
다른 말로, 마음이라고 한다.
끔찍한 진실 (8)
씽이 물었다.
“오류……라고?”
“그렇지 않고서는 이해가 되지 않아. 나를 죽일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이렇게 날렸다는 것은.”
씽도 거기에 대해서는 반박할 수 없었다.
“이제 어떡할 거야? 태극의 힘으로 셀 버스터를 막아 내고 있지만 오래는 버틸 수 없어.”
시로네는 하늘에 압축되어 있는 안티셀의 덩어리를 보았다.
“셀 버스터가 무서운 이유는 안티셀이 끝없이 분화하기 때문이야. 하나를 파괴하면 둘이 되고, 둘을 파괴하면 넷이 되지. 그렇게 분화되다 보면 결국 인류의 숫자보다 더 늘어나게 되고, 세상은 멸망하는 거야.”
“지금도 늘어나고 있는 건가?”
안티셀의 덩어리가 진동하고 있다는 게 증거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폭발할 거야. 그리고 폭발하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숫자가 세상으로 쏟아지겠지.”
“방법을 찾을 거야.”
“어떻게?”
시로네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모르지. 하지만…… 그 녀석이라면, 어쩌면 해답을 갖고 있을지도 몰라.”
아르디노 페르미.
‘이런 쪽으로는 나보다 똑똑한 놈이니까.’
상처가 어느 정도 치유되자 시로네는 부축하고 있는 씽에게서 물러섰다.
“이것으로 상아탑의 동시 사건은 끝이야. 나는 성전에서 페르미를 만날 테니 씽은 이곳에 남아 있는 별들을 소집해서 그곳으로 와 줘.”
“그 전에 묻고 싶은 게 있어.”
시로네가 살아난 것은 인류에 천운이지만 아직 찝찝한 부분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