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27
“너는 태성을 어떻게 생각하지? 음지와 양지가 희생했어. 정확한 판단을 내려 줘.”
“난 믿어.”
시로네는 단호했다.
“물론 관리자를 믿는 건 아니야. 그건 명백히 내 실수지. 하지만 태성이 나를 죽이지 않은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그럴 수밖에 없었던.”
“만약 아니라면?”
씽이 물었다.
“그런 이유 따위는 없었다면? 심장을 멈추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면?”
“그때는…….”
시로네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
“절대로 용서하지 않아. 태성은 물론 신조차. 인류를 능멸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씽이 미소를 지었다.
“그거면 됐어.”
음지와 양지도 똑같이 말했을 것이기에.
“성전에서 보자.”
시로네의 육체가 흐릿하게 사라지고, 상아탑의 정상에는 씽만이 남았다.
“또다시 혼자인가?”
우리는 결코 타인의 진실을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다시 피어오를 무렵.
“오대성님.”
통합우주관리부의 별들이 들어왔다.
‘미니. 아리아나. 키라.’
상아탑의 주민들 대부분이 다치거나 사망했지만 아직 함께 싸울 동료들이 있기에.
“가자.”
씽은 시로네를 믿어 보기로 했다.
***
전기적 위상공간.
빛의속도로 전파가 교차하는 불가시적인 영역에서 관리자들은 소통했다.
신호의 차가운 교환에 불과했지만, 만약 그 신호를 인간적으로 표현한다면…….
“왜 그랬지?”
누구라도 아르고네스가 화가 났다고 여길 것이다.
“뭐가요?”
“더 확실하게 죽일 수 있었잖아? 목을 자른달지, 뇌를 파괴하는 것 정도는 쉬운 일이었어.”
“…….”
태성의 전파가 늦게 전해졌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시로네가 살아난 것은 내 의도가 아니에요. 나는 내 프로그램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뿐.”
이번에는 아르고네스가 응답이 없었다.
관리자들은 시스템 교란을 막기 위해 모두 자체적인 섹터를 관할하고 있다.
‘왜 저러지?’
아르고네스의 섹터에서 분석되는 정보를 인간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런 식일 터.
‘분명 가이아 프로그램이 인류를 위해 방법을 바꿨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내가 셀 버스터를 발동하지 않는 것과 같은 수준의 모순이야.’
‘오류?’
상위 섹터에 보고해야 할까?
프로그램이라면 응당 그래야 하겠지만, 아르고네스는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만둬요. 나를 의심하는 거라면, 나 또한 당신을 내버려 두지 않을 테니까.”
동등한 위상에 있지만, 시스템적으로 봤을 때 가이아는 아르고네스의 상위.
‘원천 차단하고 있다. 대체 왜 저래?’
아르고네스가 물었다.
“너와 충돌하고 싶지 않아. 정말로 문제가 없다면 코어 시스템에 판단을 맡기면 되는 일이야.”
“문제는 없습니다.”
아르고네스가 태성을 우회하는 다른 루트를 찾으려고 하는 그때 새로운 전파가 왔다.
“인류가 울티마를 갖는 것은 막았다.”
루버였다.
“잘했군. 시로네는?”
“드리모에서 빠져나갔어. 태성의 작품인가? 탁월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하네.”
“빠져나갔다고?”
아르고네스의 전파가 강하게 밀려들었다.
“그래. 내가 보냈네. 이미르에게 제약을 걸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었어. 어차피 울티마는 없으니, 남은 건 인류의 멸망뿐이지.”
그런가?
‘대체 이것들 왜 이래?’
아르고네스는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설마, 내가 오류인가?’
태성이 말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당신 또한 셀 버스터가 봉쇄당한 상태 아닌가요? 계산 착오를 시스템 오류로 의심한다면, 당신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몽아가 물었다.
“그런데 히든 코드 관리자는 어디 있죠?”
망각의 레테.
부재를 깨달은 관리자들이 동시에 전파를 보냈으나 응답은 없었다.
“이거야말로 오류로군.”
바깥 세계의 시스템이 공격당한 중대한 시점에 아무런 신호도 보내지 않다니.
루버가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하면 되오. 각자의 섹터에서, 인류를 멸망시키고 이 우주를 닫는 것.”
“좋아.”
아르고네스가 승인했다.
“레테를 제외한 각자의 섹터에 문제는 없는 것으로 종결짓지. 더 이상의 판단 실수는 용납되지 않아. 앞으로 내가 모든 프로그램을 감시할 것이다.”
태성이 차갑게 말했다.
“할 수 있다면.”
“……실망스럽군.”
인간이라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관리자들의 회담이 끝나고, 태성은 자신의 시스템으로 복귀했다.
푸른 빛이 지나가는 어두운 공간에 그녀는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건 보고할 수 없어.’
그녀의 자체 시스템에서 하나의 명령어가 계속해서 밀려들고 있었다.
‘왜?’
‘왜?’
왜? 왜? 왜? 왜? 왜?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어디가 잘못된 것인가?’
왜? 왜? 왜? 왜? 왜?
이유도 근원도 모르는 의문만이 태성의 뇌리에서 끝없이 연산되고 있었다.
***
마침내 리안은 도착했다.
본래 거대한 불의 강이 지류로 흐르던 곳, 통곡의 골짜기의 가장 깊은 곳이었다.
“하아. 하아.”
기절한 시로네를 들고 흑승과 마족의 파도를 헤친 몸은 상처투성이였다.
하지만 여전히 적들이 뒤를 쫓고 있기에 자신의 몸을 돌볼 틈도 없었다.
-꺄아아아아아!
가녀린 여자의 비명 소리.
아니, 골짜기에서 튀어나온 수천 개의 사슬에 연결된 진성음은 미동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것은…….
‘영혼의 비명.’
-꺄아아아아아아!
산전수전을 다 겪은 리안이라도 이 순간에는 뼈가 시릴 수밖에 없었다.
“……가.”
사지를 벌리고 있는 진성음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돌아……가.”
안면이 있다면 있는 사이, 하지만 그녀의 눈빛에는 익숙한 자를 대하는 감정이 없었다.
‘끔찍하군.’
정말로 그녀는 영원히 이 고통을 견디려고 했던 것일까?
“나는 리안이다.”
“돌아……가라고.”
“이제부터 나는 너를 구할 거다. 충격이 제법 클 것 같지만, 버텨 주기 바란다.”
“안 돼……. 나를 정화시키면, 이면 세계가 열려…… 세상이 지옥으로…….”
“방법이 있어. 나는 모르지만, 시로네가 그렇게 말했다. 너는 돌아갈 수 있을 거야.”
“…….”
진성음이 입을 다물자 리안은 시로네는 내려 두고 대직도를 늘어뜨렸다.
검과 손을 연결시키는 사슬이 뜨거워지면서 가 벌겋게 달구어졌다.
“후우우우!”
모든 것을 정화시키는 게헨나의 불.
리안 또한 끔찍한 고통을 안고 여기까지 왔지만 이번에는 차원이 다를 터였다.
“간다.”
진성음이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리안이 야차의 얼굴을 하며 돌진했다.
“이야아아아!”
검이 땅에 꽂히는 순간, 골짜기에 연결되어 있던 사슬이 무섭게 출렁거렸다.
“흐으으으!”
영혼의 비명 외에는 한 번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성음이 고개를 쳐들었다.
“꺄아아아아아!”
사슬이 붉어지더니 급기야 불에 타오르고, 그녀의 모든 업이 정화되기 시작했다.
리안의 얼굴이 더욱 구겨졌다.
‘버틴다. 버텨.’
고통의 크기도 경악스럽지만, 처음 대직도를 박으며 느꼈던 절망감의 정체는…….
‘끝이 없다.’
온 인류라 해도 과언이 아닌 거대한 카르마였다.
-죄인이여!
하늘에서 흑승이 날아들고, 리안의 뒤를 쫓아온 마족들이 시로네를 발견했다.
“야훼다! 야훼를 죽여!”
‘제길!’
리안은 갈등했다.
고통이야 참을 수 있지만 애쓴다고 정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시로네는 진성음을 구하라고 했다. 나는 기사다. 주군의 명령을 따라야 해.’
곤충보다 예민한 감각이 흑승의 사슬을 포착하고, 땅의 울림이 지척에서 느껴졌다.
“크으으으!”
리안은 몸을 틀었다.
‘시로네를 구해야 해!’
생각을 하기 이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고, 땅에 박힌 대직도를 뽑아 들려는 순간.
“멈춰라.”
하늘에서 떨어진 한 여성이 손을 내밀었다.
“히익!”
마족들이 기겁하며 놀라고, 흑승 또한 감히 명을 어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레테 님.”
마족을 찬찬히 살피던 그녀는 육체마저 불에 타고 있는 리안과 눈을 마주쳤다.
‘정말로 할 줄이야. 황당한 인간이군.’
게헨나가 업을 정화시킨다고 해도 버틸 수 있는 인간은 세상에 없다고 보았다.
“너…….”
“멈춰.”
레테가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리안이 몸을 웅크리며 튀어 나갈 자세를 취했다.
“거기에 그대로 있어라. 움직이는 순간 땅에 박혀 있는 검이 네 목을 벨 테니까.”
진성음은 인질이 될 수 없다는 얘기였지만, 레테의 생각은 달랐다.
‘저 인간도 초조할 때가 있구나.’
그녀는 바닥에 쓰러진 시로네를 바라보았다.
‘야훼여.’
생과 사의 경계 초에니 바르도에서 감정은 손에 잡히는 실체로 구현된다.
따라서 완벽한 무방비 상태의 야훼야말로 진정으로 용서했다는 증거.
다시 돌아선 레테가 말했다.
“그만 물러가라. 이곳은 내가 지키겠다.”
“레테 님.”
마족들은 황당했다.
“어째서 공격을 막으십니까? 지금이야말로 야훼를 죽일 절호의 기회가 아닙니까?”
“나는…….”
저들을 설득시킬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지만, 레테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야훼의 편에서 싸울 것이다.”
웅성거림조차 없었다.
그저 느껴지는 것은 배신감, 그리고 레테를 향한 전대미문의 적의였다.
“우리가 잘못 들은 것이겠죠?”
“아니, 말 그대로야. 야훼는 마를 용서했다. 신이 세계를 닫으려 하는 지금, 나는 야훼의 뜻에 따른다.”
-레테여.
흑승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