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28
“뭔가 오류가 있는 게 아닌가? 신이 정한 결과를 관리자가 거부할 권한은 없다.”
“있어.”
고개를 쳐든 레테가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마음 프로그램이니까.”
감정을 연산하는 유일한 관리자이기에 신을 거부하는 변수조차 가능한 것.
레테가 살짝 고개를 틀며 말했다.
“계속해.”
리안은 잠시 갈등했으나, 그녀를 믿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부탁한다.”
그렇게 인간과 손을 잡은 것이 확실해지자 무리의 우두머리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모든 마족이 분노에 치를 떨며 레테에게 달려들었다.
“죽어라! 가증스러운 레테!”
자식과 같은 존재가 죽이러 달려오는 광경에 레테의 눈썹이 처연하게 올라갔다.
‘가증스럽다고?’
너도 참 슬펐겠구나, 야훼여.
“호호.”
그녀의 두 눈에 정화의 불이 켜지더니 이내 온몸이 화산처럼 불타올랐다.
“얼마든지 오렴.”
어떤 죄를 저질러도 잊어 줄 테니까.
“나는 너희들의 어머니.”
망각의 레테.
인간이라는 장애 (1)
화자원관리공사.
레테가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직원들은 퇴근하지 못했다.
“시스템이 마비되고 있어.”
리안이 통곡의 골짜기를 정화시키는 여파가 지옥 전체를 흔드는 중이었다.
리안의 담당 인포메이터 비비안이 히든 코드로 전해지는 정보를 전달했다.
“레테 님이 야훼를 지키고 있어. 마족들, 엄청나게 화가 난 것 같은데.”
리오나가 말했다.
“당연하지. 불과 물 같은 사이였으니까. 하지만 야훼가 대단한 거야. 영원히 타협은 없을 줄 알았는데. 오래 일하다 보니 이런 것도 보네.”
“쉽지 않을 거야. 레테 님이 지옥을 관리한다고 해도, 마족의 수장은 어디까지나 사탄이니까.”
쿠르르르릉!
지반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았네.’
이 전투가 끝나고 시스템이 파괴되면 그들 또한 한낱 무로 되돌아갈 테지만.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할 거야?’
리오나는 자신이 담당하는 샤갈과 에텔라의 마지막 여정을 확인하고 싶었다.
“하아! 하아!”
샤갈은 끝없이 달렸다.
“으아아아!”
두 사람에게 주어진 막대한 업도 이제는 엄청난 단위로 줄어든 상태지만.
“죽인다! 사지를 찢어 버릴 거야!”
또한 그것은 샤갈이 느끼는 고통이 그만큼 거대하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왜 만날 수 없는 거야?”
아무리 달려도 에텔라는 잡히지 않았다.
“기다려. 나도 할 얘기가 있어. 너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단 말이야.”
일단 만나서 얼굴을 보게 되면 그녀의 마음을 되돌릴 자신이 있었다.
아니, 설령 되돌릴 수 없다고 해도.
“죽여 버린다!”
차라리 그녀의 목을 베어서라도 자신의 곁에 두지 않고서는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제길!”
아무리 속도를 높여도 간격은 일정했고.
“왜!”
차라리 포기하고 싶어도 그의 후각이, 그녀의 향수가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것 같아서.
“으아아아!”
샤갈의 마음은 처참하게 찢어졌다.
‘만나기만 해 봐.’
눈에 보이는 곳에 전부 칼집을 내야지.
‘한 번만 걸리라고.’
비명을 지르며 잘못했다고 빌 때까지 고통을 주고 또 주고 또 주어서…….
“제발.”
샤갈은 깨달았다.
“제발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어쩌면 자신은 이대로 영원히 에텔라를 놓치고 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 개 같은!”
하늘을 향해 울부짖던 샤갈은 달리는 것을 멈추고 절뚝이며 나아갔다.
“제가…….”
그리고 결국 그 자리에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쏟아 내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 순간 샤갈의 마음이 밑도 끝도 없이 떨어지면서 엄청난 업이 정화되었다.
리오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화까지 남은 시간 24해 8,341경…….
샤갈은 듣지 못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업이 얼마나 남았는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제가 다 망쳐 버렸어요.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받아도 상관없어요. 그러니…….”
샤갈이 울먹이며 고개를 들었다.
“한 번만 보게 해 주세요.”
유일한 소원은.
“잘못했습니다. 이대로 보낼 수는 없어. 저에게는 무슨 짓을 해도 좋으니, 한 번만…….”
에텔라의 웃는 얼굴을 보는 것이었다.
-하아.
한숨 소리가 새어 나온 것은 방송 사고였으나 리오나는 차분히 음성 장치를 껐다.
테이블에 턱을 괸 그녀는, 두 손을 맞잡고 참회하는 악 중의 악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게…… 왜 그랬어?”
그러지 말지 그랬어.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잖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행복할 수 있는 기회가…….”
네 인생에 수도 없이 주어졌었잖아.
맹목적인 분노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판단하지 못하고, 그저 세상을 원망했기에.
“남은 것은 후회뿐이라는 것을.”
비비안이 다가왔다.
“이제 정말 끝까지 왔구나.”
“응. 인간에게 시간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니까. 후회야말로 가장 비참하고 슬픈 감정일지도.”
“늘 바꾸지 못하지. 정답을 알면서도 고집스럽게 오답을 써 내는 자기 파괴적인 종족.”
인간이라는 장애.
비비안과 리오나는 어느새 다시 달리고 있는 샤갈의 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달릴 수밖에 없지.”
그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희망일 테니까.
통곡의 골짜기에 불의 강이 흘렀다.
진성음이 정화시키기 전만큼이나 풍부한 황금빛 용암의 정체는…….
“레테를 죽여라!”
이곳에 모인 마족들의 마魔였다.
“저 여자의 목을 잘라 똑똑히 보여 줄 것이다! 가증스러운 야훼의 살점을 뜯는 것을!”
수를 셀 수 없이 많은 마족들이 소멸을 각오하고 레테의 불로 뛰어들었다.
“크아아아!”
자식들이 사라질 때마다 레테의 마음도 아팠다.
“가련한 아이들아, 어찌하여 분노하느냐? 분노의 끝은 언제나 후회뿐이란다.”
“네가 우리를 배신했잖아! 네가 우리를 버렸잖아!”
마족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마치 자신의 죽음으로 레테가 조금이라도 아플 수 있다면 뭐든 상관없다는 듯이.
레테의 눈빛이 쓸쓸해졌다.
“하긴…….”
너희들도 인간에게서 태어났지.
정화되는 마족의 숫자가 엄청났기에 불의 강은 위쪽을 향해 역류했다.
리안과 진성음이 있는 곳이었고, 또한 그곳에는 시로네가 쓰러져 있었다.
“으…….”
리안은 온 힘을 다해 게헨나의 불꽃을 키웠다.
“으아아아아!”
골짜기가 흔들리고, 역류하는 불의 강이 시로네의 앞에서 순식간에 증발했다.
‘시로네를 지킨다.’
의식을 잃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상태에서도 하나의 생각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바보로군.
하늘을 배회하던 흑승들이 움직일 수 없는 리안의 몸에 사슬을 찔렀다.
“크으으으!”
얼굴의 피부가 쩍쩍 갈라지고, 급기야 해골에 가까운 골격이 드러났다.
‘이대로는 버틸 수 없어.’
신적초월을 한계까지 끌어 올렸지만 이데아의 회복력이 전과 같지 않았다.
근육에 이어 뼈까지 녹아내리는 시점에서 리안은 영혼마저 불타는 기분이었다.
‘나는…….’
특별히 가진 재주가 없는 놈이다.
‘세상은 나에게 대검호라 하지만, 솔직히 이제는 중요하지 않아. 동경하든 질투하든, 신경도 안 쓰인다고.’
이 경지에 도달해서 뿌듯하냐고?
‘그럴 리가.’
글쎄, 어디 하늘에서 대검호라는 경지가 뚝 떨어진 거라면 절이라도 할 테지만.
‘기분이 좋을 리가 없잖아.’
오직 고통으로 맞바꾼 칭호일 뿐이다.
‘무언가를 잘하는 방법?’
딱 하나 알지.
‘잘하지 못해서 괴롭다고 해도…….’
온갖 이기적인 의도와, 불합리한 상황과, 가학적인 고통과, 불가능 앞의 절망과, 나의 고통 따위 알아주지 않는 수많은 자들의 조롱이 가해진다고 해도.
“참아.”
그게 전부야.
“으아아아아!”
참는다.
“절대로 꺾이지 않아!”
리안의 몸에 꽂혀 있던 흑승의 사슬을 타고 붉은 기운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위험하다! 떨어져라!
뒤늦게 흑승이 산개했으나 게헨나의 불은 그보다 더 빠르게 사슬을 타고 올라갔다.
퍼어어어어어엉!
흑승의 군집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저, 저게 뭐야?”
레테를 증오하는 마족들조차도 온 하늘을 가득 채운 불길에 넋을 잃었다.
레테가 뒤를 돌아보았다.
“정화된다.”
연료처럼 연소하는 리안의 몸이 진성음에게 연결되어 있는 사슬을 녹이고 있었다.
성음의 영혼이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아아!
만약 이대로 정화가 된다면, 그녀 또한 완전히 불에 녹아 소멸할 터였다.
‘이제 어떡하면 되냐, 시로네?’
따라서 성음을 구하기 위해서는 이면 세계의 시스템이 한순간 마비되어야 할 터.
그리고 그 타이밍은, 파마광천성을 쏘아 보내는 진천 제국의 손에 달려 있었다.
안찰이 식은땀을 흘리며 소리쳤다.
“황제 폐하! 최종 단계입니다!”
에텔라에게 집적되고 있는 에너지가 99퍼센트를 넘어 100퍼센트로 향하고 있었다.
“쿨럭!”
의자에 앉아 있는 진강의 몸은 버드나무처럼 반쯤 휘어져 있는 상태였다.
“폐, 폐하.”
이미 죽었어야 마땅한 상태.
초점 없는 눈으로 고개를 든 그가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 비틀거렸다.
누구도 부축하지 않은 이유는, 지금이야말로 황제의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리라.
“딸아.”
내 딸 진성음.
‘너를 지옥에 보내고 나서야 깨달았다. 후회 따위는 모르는 이 진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