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30
마족들은 침묵했다.
감정.
머리로는 이해해도 그들의 마음속에 담긴 분노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차라리 같이 죽고 말지.’
관리자인 레테가 모를 리가 없었다.
‘힘든 싸움일 것이다, 야훼. 내가 너를 따른다고 해도 마족에게는 사탄이 있어.’
마가 극한으로 애정하는 존재, 하비츠가 죽지 않는 한 그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마족이 말했다.
“우린 싸울 것이오. 통합이라고? 죽음이 두려운 건 인간뿐이지. 야훼가 절망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테니.”
통곡의 골짜기에 생긴 박지의 구멍을 통해 마족들이 현실로 나가기 시작했다.
레테도 거기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후우.”
한숨을 쉬는 그때.
“레테.”
“깜짝이야.”
시로네의 목소리에 어깨를 들썩인 그녀가 잠시 주저하더니 돌아섰다.
이면 세계가 초기화되면서 시로네가 끌어안은 마 또한 정화된 상태였다.
레테가 말했다.
“이제 좀 괜찮아 보이네. 그러게 왜 감당하지 못할 짓을 해? 마가 호락호락한 줄 알아?”
“그러는 너는?”
시로네는 미소 지었다.
“인간을 위해 싸우기로 했잖아.”
“착각하지 마.”
여태까지 쭈뼛하던 레테의 표정이 변했다.
“어디까지나 이면 세계를 위해서야. 이대로 지옥이 사라지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으니까.”
“……그래.”
지옥의 관리자는 신보다 마족을 택했다.
“괜찮아. 이제는 나도 마를 끌어안았으니까.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흐음.”
레테가 턱을 들었다.
“상당히 자신이 있나 본데. 알고 있겠지? 지금의 너는 마족을 죽일 수 없어.”
말하자면 그런 경지.
시로네가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웃고만 있자 레테 또한 가식을 거두었다.
“쳇, 그래. 너는 타키온을 구사할 수 있지. 이제는 신과 동급이니, 나도 널 어쩔 수 없어. 하긴, 바깥 세계에 접속했으니 더 이상 감출 것도 없고.”
관리자에 대한 말에 시로네가 물었다.
“정말로 거짓이었어?”
“…….”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알았으나 레테는 그저 다음 말을 기다렸다.
“태성도, 루버 씨도, 처음부터 우릴 속인 거야? 인간에 대한 애정은 없었던 거야?”
“우린 프로그램일 뿐이야. 특정 상황에 대응하는 매뉴얼대로 행동하는 것뿐이라고. 너에게는 마음처럼 보이겠지만, 실상 나도 다르지 않아.”
양자적인 매개변수가 더해졌을 뿐.
“하지만 태성은 나를…….”
“아, 몰라!”
레테가 고개를 저었다.
“신이라는 코어에 묶여 있어도 각자의 섹터가 있는 거야. 게다가 저마다 권한도 막강해서, 자칫 침범했다가는 시스템 간에 충돌이 생겨. 그래서 응답도 꺼 놓고 있구만.”
“그래…….”
시로네가 생각에 잠겨 있는 그때 리안이 진성음을 부축하고 다가왔다.
“고마워, 구해 줘서.”
짧은 인사였지만 성음의 목소리는 떨렸다.
‘상상도 못 했지.’
시로네를 다시 보게 될 줄은.
“무슨 소리야. 오히려 내가 너에게 고마워해야지. 네가 아니었으면 세상은 이미 멸망했을 거야.”
레테가 저 멀리서 불어오는 열풍을 느끼며 말했다.
“길게 얘기할 시간 없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나 말해. 여기도 곧 재가 될 테니까.”
시로네가 리안을 돌아보았다.
“나는 동시 사건을 끝낼게. 이미르가 곧 부활할 거야. 그 녀석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판도가 뒤바뀔 테니까. 리안은 성음이랑 델타 본청으로 와 줘. 에테르 파동을 이용하면 순식간일 거야. 해 줄 수 있지?”
성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얼마든지. 하지만 리안을 데리고 가기 전에, 잠시 들를 곳이 있는데.”
진강.
그녀는 아직 아버지의 상태를 모를 것이기에 시로네는 즉각 승낙했다.
“그래. 빨리 가 봐.”
차마 밝힐 수는 없었지만 재촉하는 말투만으로도 성음은 직감한 듯했다.
에테르 파동이 발동하자 박지의 장막이 구겨지면서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럼 나도 사라질게. 성전에서 보자.”
동시 사건이 해제되면서 시로네의 육체가 흐릿해지자 리안이 엄지를 들었다.
“걱정 마. 금방 쫓아갈 테니까.”
“…….”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시로네는 리안과 함께 지옥에서 보낸 시간을 떠올렸다.
“리안.”
쑥스럽지만 꼭 말하고 싶었다.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빛의 입자가 꽃잎처럼 나풀거리고, 리안이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렸다.
“짜식.”
팔짱을 낀 레테가 물었다.
“그나저나 너는 어떻게 돌아갈 거야?”
“응? 당연히…….”
불의 해일이 통곡의 골짜기를 모조리 불태우며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런 젠……!”
화마가 그들을 덮치고.
“자아아아앙!”
화염을 다시 불태우며 전진하는 리안의 목소리가 지옥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바닥에 드러누운 진강의 눈빛은 텅 비어 있었다.
“허어어어.”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은 더 이상 쏟아 낼 피도 남아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황제 폐하.”
안찰이 다가가 진강의 상체를 떠받쳤다.
“지옥은…… 내 분노를 느꼈는가?”
“그러할 것이옵니다.”
“내 딸은…….”
진강은 연거푸 숨을 들이마신 뒤 내뱉었다.
“돌아왔는가?”
거기까지는 안찰도 알지 못했다.
다만 정말로 살아 있다면, 이제 1분도 남지 않은 진강의 삶 속에 있어 주기를 바랐다.
“폐하, 분명히 공주님은…….”
“괜찮다.”
정리를 할 때였다.
“딸이 살아 있다면 좋은 것이지. 하나, 만약 살아 있지 않다고 해도…….”
그의 입꼬리가 배시시 올라갔다.
“내가 구하러 갈 것이니.”
안찰의 뺨을 타고 소리 없이 눈물이 흐르는 그때.
“아버지.”
아름다운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공……!”
안찰의 외눈이 크게 뜨이고, 모든 신하가 무릎이 깨질 듯이 절을 했다.
“공주님을 뵙습니다!”
놀란 표정 그대로 굳어 있는 진강을 향해 성음이 사뿐히 걸어가 앉았다.
“아버님.”
“아, 아아…….”
딸의 손에서 온기를 느낀 뒤에야 진강은 현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제가 돌아왔습니다, 아버님.”
“그래. 그래.”
연신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감격은 잠시, 황제의 책무를 떠올린 그가 표정을 고치며 말했다.
“안찰.”
“하명하십시오.”
“앞으로 진천의 황제는 진성음이다.”
만세! 만세! 만세!
“내 딸아, 시로네를 도와라. 진천의 황제는 절대로 신의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성음이 경건하게 고개를 숙였다.
“폐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후후.”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
진강은 천장을 바라본 채로 평온하게 웃고 있었다.
“흐윽.”
성음이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아버지! 아버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진천의 황제, 진강.
사망.
인간이라는 장애 (3)
***
이름 모를 숲속에서.
“크으으으!”
불타오르는 해골 검사가 이면 세계의 장막을 뚫고 현실로 넘어왔다.
뼈대만 남은 그의 오른손에는 불길에도 끄떡없는 대직도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키이이이!”
마치 지옥에서 돌아온 망자의 왕처럼 공허한 안와로 전방을 향하던 그가 검을 땅에 찍었다.
신적초월의 힘에 대지가 흔들리고, 육체가 점차 복구되면서 불길이 잡히기 시작했다.
“으으으으……!”
피부까지 재생된 리안이 소리쳤다.
“으아, 뜨거워!”
남은 잔불을 두 손으로 털어 낸 그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몸으로 숨을 헐떡였다.
“하아. 하아.”
게헨나의 불은 현실에서 감정.
다만 이면 세계로 들어가기 전에 붙인 불은 그의 옷가지를 전부 태운 상태였다.
“돌아온 건가?”
숨을 고른 리안이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나라조차 모를 막막한 숲이었다.
“뭐, 성음이 데리러 오겠지.”
정확한 원리는 모르지만 그녀의 능력은 공간 계열 마법의 최고봉이었다.
허공에서 레테가 탄생했다.
“너도 괴물은 괴물이야.”
사뿐히 땅에 착지한 그녀는 리안의 육체와 땅에 박힌 대직도를 번갈아 살폈다.
“화마의 불을 정화시키면서 빠져나오다니. 야훼가 너에게 의지하는 것도 알겠어.”
때아닌 칭찬에 리안은 머쓱했다.
“뭐, 그 정도야.”
“그 정도가 아니지. 게헨나의 불을 견뎠다는 것은, 지옥의 감정을 모두 극복했다는 뜻이다. 인간 중에 어떤 고승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해탈했지.”
좌탈입망이라고 한다.
“하지만 너는 그것을 넘어 현실에 존재하고 있다. 너의 신적초월은 정말로 신에 준할지도 몰라.”
레테는 그렇게 생각했다.
‘무신武神 야차.’
현시점에서 지옥에서 돌아온 리안을 이길 수 있는 인간은 아마 없을 것이다.
리안이 대직도를 세우고 날을 살폈다.
“그런가? 어쩌면 강해진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싸워 보기 전에는 모르겠는데.”
“정신의 영역이니까. 너를 극한으로 몰아넣을 상대를 만나기 전에는 체감하지 못하겠지. 단, 회복 능력은 주의해야 돼. 이데아의 신호를 복구해서 사망을 부정하는 건 사용자 권한에서 편법에 가깝지만, 그렇기에 한계가 있어. 계속 누적되면 이데아 자체가 사라질 거야.”
리안도 느끼고 있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정확히 측정할 수는 없지만, 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을까? 대충 느낌으로는.”
“…….”
그리 길지 않았다.
“상관없어.”
시로네가 뜻을 이룰 때까지만 버틸 수 있다면 그다음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리고…….”
머뭇거리던 레테가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