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31
“제발 그 상태로 당당하게 말 좀 걸지 말아 줄래? 내가 인간은 아니어도 마음 프로그램이거든! 최소한 가리는 척이라도 하든가! 짜증 나게!”
“흠.”
“흠이 아니라 빨리하라고! 나뭇잎이든 뭐든 주워서 몸을 가리란 말이야!”
‘거 참 말 많네.’
이미르가 오고 있는 지금 한가롭게 나뭇잎이나 뜯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길 수 있을까, 내가?’
지옥 여정을 통해 훨씬 성장했지만 그럼에도 이미르는 거대한 벽이었다.
심각하게 생각에 잠겨 있는 리안의 모습을 지켜보며 레테는 황당했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
***
성전의 진천 섹터.
국법에 따라 신하들이 진강의 시신을 이동시키자 안찰이 성음에게 다가왔다.
“황제 폐하.”
진강의 뜻에 따라 제국을 맡게 되었지만 안찰의 지극한 공대가 사뭇 어색했다.
“편하게 말하거라. 아직은 적응이 되지 않는구나.”
“적응하셔야 합니다. 진천의 국민, 온 인류의 운명이 폐하의 손에 달려 있으니까요.”
성음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이제 내가 무엇을 하면 되지?”
“우선…….”
안찰은 성음이 지옥에 있었던 동안 현실에서 벌어진 일을 빠르게 설명했다.
“동시 사건이라.”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시로네라는 사람은 알면 알수록 한계가 느껴지지 않았다.
‘나의 0보.’
성음의 미소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 안찰은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공주님에게 딱 어울리는 짝일 텐데.’
표정을 고친 성음이 말했다.
“무슨 뜻인지 알겠다. 동시 사건이 끝났으니, 세계 각지에 있는 자들을 이곳으로 데려오면 되는 것이지.”
“그러하옵니다. 분초를 다투는 사안인 만큼 폐하의 역할이 가장 중요합니다.”
전쟁으로 말하자면 성음의 능력은 수송과 보급에서 최고의 효율을 갖는다.
“알았다. 우선 리안에게 다녀오마.”
성음이 눈을 감고 에테르 파동을 퍼트리자 공간의 정보가 수집되었다.
‘저기 있다.’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이었지만 그녀는 공간을 구겨 리안과 자신의 거리를 0으로 만들었다.
“그럼.”
건물 안에 숲이 펼쳐지고, 성음이 사뿐 걸음을 내디디며 경계선을 넘었다.
그리고 1분 뒤…….
“폐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진 성음이 홀로 되돌아오자 안찰이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오…….”
“오?”
성음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옷을 가져오거라. 가장 큰 걸로. 빨리.”
***
갈리앙트섬.
케르고 부족이 있는 토아산의 깊숙한 곳에서 시로네는 가올드 일행과 얘기 중이었다.
“그렇게 된 거군.”
몽인 루버의 배신, 인류의 편을 들었던 관리자마저 신의 의도하에 있었다는 것.
미로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신과 싸우는 거라면 적이 얼마나 늘어나든 상관없어. 문제는 울티마를 추출하지 못했다는 거야.”
아리우스가 목숨을 걸고 해냈다는 사실도 그녀의 마음에 얹혀 있을 터였다.
시로네가 말했다.
“한 가지…… 남은 방법이 있어요.”
“방법?”
“오브제를 이용해 인류를 통합하는 건 수포로 돌아갔지만, 그렇다고 울티마가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전 인류가 마음을 합하면…….”
세인이 말을 끊었다.
“그건 이상론일 뿐이야. 우리가 이미르의 정신세계에 들어가기 전과 다를 게 없다고.”
“한 가지 다른 건 있죠. 타키온.”
미로가 간파했다.
“너…….”
“네. 성공 여부는 자신할 수 없어요. 하지만 이게 유일한 희망입니다.”
가올드가 물었다.
“이미르가 온다고 하지 않았나?”
시로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행성 헥사가 소멸했어요. 크기를 생각하면 지금쯤 우주를 건너고 있을 겁니다.”
“얼마나 걸리는데?”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
시로네가 말을 이었다.
“일단 직면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울티마에 도달할 수 있어요. 이미르. 셀 버스터. 그리고 오파츠. 신의 주도하에 인류가 사물이 되면, 이 세계에 마음은 사라집니다.”
강난이 말했다.
“잘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지만 맥락은 알겠어. 당장 성전으로 가면 되잖아?”
“성음이 데리러 올 거예요. 저도 동시 사건을 끝낼 거고요. 하지만 그 전에…….”
시로네는 신전의 문을 돌아보았다.
“확인부터 하죠.”
은은하게 스며드는 피 냄새를 무시할 수 없었다.
강난이 다가가 돌문을 밀었으나 밖에서 잠가 놓은 것인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안 되는데. 부수고 나가야 하나?”
말이 끝나는 순간 가올드의 에어 건이 강난의 어깨를 지나 돌문을 강타했다.
쾅!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강난이 사나운 눈으로 돌아보자 가올드가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크크, 재밌군.”
세인이 말했다.
“뭔가 이상해. 마치 물리력에 면역이 생긴 것 같군. 하지만 가능한 일인가?”
“저 인간이 약골이라 그런 걸 수도 있죠.”
강난이 조금 전의 상황에 대해 복수했지만 사실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가올드가 부술 수 없다는 것은…….’
정말로 안 되는 것이다.
“제가 해 볼게요.”
시로네가 문으로 걸어갔다.
미라클 스트림이 핸드 오브 갓으로 변하고, 거대한 손이 문을 움켜쥐었다.
“크으!”
마음을 통해 느껴지는 순간 시로네는 비로소 문의 정체를 깨달았다.
‘집착. 열망.’
거대한 감정이 이 문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뜯어낸다.’
으드드드드드!
고강도의 마음을 집중시키자 돌문이 을씨년스러운 소리를 내며 구겨지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아서, 강난은 이유 없이 소름이 돋았다.
쩍!
정방형으로 뜯어진 돌문을 바닥에 내려놓은 시로네는 통로의 정경을 살폈다.
“…….”
모두 죽어 있었다.
세인은 문이 뜯어져 나간 테두리에 새겨져 있는 고대 주술 문양을 확인했다.
“완벽하게 밀봉했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시체를 살핀 미로가 말했다.
“깔끔하네. 전문가의 솜씨야. 게다가 죽인 지 얼마 되지 않았어. 아무리 길게 잡아도 6시간 이내.”
“저기!”
강난이 가리킨 복도의 끝에서 하얀 물체가 모퉁이 너머로 사라졌다.
시로네가 땅을 박찼다.
“기다려!”
모퉁이를 지나 몸을 돌린 순간 또 백색의 물체가 코너를 돌았다.
‘저게……!’
오기가 생긴 시로네는 순간 이동을 시전해 순식간에 간격을 좁혔다.
“너! 누구…….”
하지만 정체불명의 대상을 눈에 담았을 때 시로네는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몸에 석고를 바른 듯, 백색의 육체를 가진 남자가 등을 지고 서 있었다.
물론 놀라기에 충분한 외모였지만, 시로네가 주저하는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위험하다.’
울티마의 감각이, 어쩌면 타키온의 신호가 명백한 ‘접근 금지’ 신호를 내리고 있었다.
“정체를 밝혀라.”
시로네가 다시 물었으나 백색 인간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질문인 듯했다.
“글쎄. 내가 누구지?”
그의 두 손에서 상아처럼 매끈한 쌍검이 길게 뻗어 나와 팔과 연결되었다.
“…….”
그는 그것조차 신기한 듯했다.
‘대체 뭐야?’
시로네가 생각하는 그때, 뒤늦게 도착한 가올드 일행이 성큼 걸어왔다.
“네가 부족민을 죽였냐?”
“접근하지 마세요.”
시로네가 손을 들어 그들을 말렸다.
이곳의 멤버 누구도 질 것 같지 않았지만, 그것을 초월하는 위화감이 문제였다.
“몰라.”
여태까지 그것만을 생각한 듯 백색 인간이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나는 이름이 없어.”
무명無名.
‘설마?’
시로네의 머릿속에 퍼뜩 스치는 것은 아르민에게 들었던 천국의 일화였다.
어떤 천사와 가라스가 결합하여 상상할 수 없는 생물체가 탄생했다고 들었다.
‘다행히 더 성장하기 전에 쿠안 씨가 베었지만.’
아르민은 이렇게 덧붙였다.
-조금만 더 늦었다면, 그놈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망자가 되돌아왔는가?
‘제길.’
시로네는 깨달았다.
‘내가 바깥 세계에 접속했을 때.’
신이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 현실로 보낸 특별한 관리자, 일종의 백신이었다.
‘아르민 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무명은 어떤 강자의 능력도 자신의 것으로 흡수시켜 상대를 제거할 터.
‘말 그대로 천재天才.’
여태까지의 모든 천재를 가짜로 만드는.
‘그렇다고 현실에서 일어난 돌연변이를 그대로 모방하다니. 신이라면서 상상력도 없냐?’
물론 최악의 적에 대한 투정에 불과했다.
실상 온 우주의 이치를 섭렵한 신에게 무언가를 상상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무명이 말했다.
“나는 나에 대해 모른다. 어떻게 태어났는지, 왜 이곳에 있는지. 기억나는 것은…….”
그는 깊은 곳의 무언가를 끄집어내듯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끔찍한 죽음의 공포와.”
그 죽음마저 망각하게 만들 정도로 짜릿했던…….
“칼춤.”
무명의 눈이 빛났다.
‘그래.’
그 녀석이다.
***
“쿠안.”
성전에서 10킬로미터 떨어진 숲에서 시이나는 몇 가지 열매를 가져왔다.
“이것 좀 먹어 봐요. 하루 종일 모았어.”
“시이나.”
쿠안이 말했다.
“지킨다. 내가…… 지킨다.”
시이나는 울컥 눈시울이 붉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