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34
‘사령관님.’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던 클럼프가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네가 죽는다고 뭐가 달라지지? 그게 군인이냐? 아니, 그건 패배자의 자살행위일 뿐이야.”
“…….”
“돌아가.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라.”
“싫습니다.”
라이는 물러서지 않았다.
“싸우게 해 주십시오. 저 하나의 목숨으로 무언가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생애 단 한 번만이라도.
“저 자신을 바꿀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한계.
리안에게는 있었고 자신에게는 없었던 것.
“……멍청한 놈.”
차갑게 내뱉었지만 클럼프는 더 이상 손자를 말리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이래서는 편하게 죽지도 못하겠군.’
참마도를 어깨에 걸친 클럼프가 다가오자 이미르가 흥미롭게 눈을 빛냈다.
“호오?”
오젠트가 떠올랐다.
“그렇다면 네가 리안의……?”
이미르에게 이름이 기억될 정도라는 것에 클럼프는 세월의 흐름을 느꼈다.
“그래, 내 손자하고 인연이 있다고 들었소. 내가 그 녀석의 스승이외다.”
반은 농담이지만 이미르는 정색했다.
“설마…… 검의 스승이라는 얘기는 아니겠지? 가르칠 수 있는 건 많으니까.”
“껄껄껄!”
짜증 나게 하네.
당장이라도 튀어 나가 참마도로 허리를 끊어 버리고 싶지만, 노장의 관록은 상당했다.
“거인의 왕이라면, 상대를 잘못 찾은 게 아니오? 신이라는 최강의 적을 눈앞에 두고 고작…….”
“쉿.”
이미르가 말을 끊었다.
“복잡한 건 잊자고. 전쟁은 부하들이 할 거야. 난 전투를 하고 싶어서 온 거다. 단독으로 나와 싸울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아. 너희들에게는 행운인 셈이지.”
“그런 행운이라면 사양…….”
“보고 싶지?”
클럼프는 입을 다물었다.
“너희들이 평생을 바쳐도 도달하지 못하는 경지. 무엇을 바쳐도 갖고 싶은 그 경지 말이야.”
이미르가 손을 까닥거렸다.
“들어와. 부하들이 올 때까지는 놀아 주지.”
“후우우우.”
클럼프에게서 여태까지하고는 질적으로 다른 살의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미안하다, 라이.’
철이 없는 건 할아비인 모양이다.
‘일국의 사령관이라도, 누군가의 가족이라도, 인류의 운명이 위태롭다고 해도.’
클럼프의 참마도가 허리 뒤로 넘어갔다.
“이건 양보 못 하지!”
그가 땅을 박차는 순간, 같은 생각을 한 수백 명의 검사들이 이미르에게 돌진했다.
“쳇! 새치기를.”
클럼프는 다음 순간 깨달았다.
자신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펑! 펑! 펑! 펑! 펑!
사람의 머리가 터지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이미 수십 명이 사망한 뒤였다.
‘뭐야?’
그리고 마침내 이미르가 허리를 뒤틀며 이쪽을 돌아보았을 때, 클럼프는 이성을 잃었다.
“이야아아아!”
평생을 통틀어 최고의 일격이 이미르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쩡!
팔이 부러질 듯 아팠으나, 그의 참마도는 유리처럼 산산조각 부서진 상태였다.
‘피부도 벨 수 없다고?’
“……조금은 기대했는데.”
아마도 일부러 일격을 양보한 것이 분명한 이미르가 모멸의 시선을 보냈다.
“실망이다.”
100퍼센트 죽음을 직감한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고, 라이가 몸을 날렸다.
“할아버지!”
오젠트 가문의 두 검사가 땅을 데굴데굴 구르며 이미르의 반경 밖으로 멀어졌다.
“크윽!”
클럼프가 고개를 들자 이미르는 어느새 다른 검사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
좌절, 수치, 분노.
라이가 클럼프를 부축하며 물었다.
“괜찮으세요?”
“……고맙다.”
가문의 명예마저 땅에 떨어진 셈이지만 클럼프는 진심으로 라이가 고마웠다.
‘개죽음이다.’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사상 최강의 적과 맞서 싸우며, 용맹했던 일 합이라도 역사에 남기를 바랐을까?
‘그런 수준이 아니야. 저건 누구도 못 이겨.’
클럼프가 말했다.
“미안하다, 라이. 내가 어리석었어. 저런 것과 싸울 필요는 없다. 도망쳐라.”
클럼프만의 생각은 아닌지, 각국의 병사들도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고 있었다.
이미르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죽는 게 두렵다고?”
그런 주제에 감히 최강을 입에 올리다니.
여태까지 일대일 대결을 고집하던 이미르가 온몸을 뒤틀며 정권을 내질렀다.
“한낱 미물 따위가!”
대기에 주먹의 형태가 투명하게 찍히고, 엄청난 풍압이 병력을 강타했다.
퍼어어어엉!
마치 폭탄과 같은 위력에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전멸이다.’
라이는 생각했다.
‘도망치는 적에게 자비는 없어. 오히려 맞서 싸울 때만이 시간을 벌 수 있다.’
할 수 있을까?
‘제길.’
솔직히 다리가 후들거렸다.
“빨리 움직여! 여기 있으면 다 죽어!”
클럼프의 말을 듣는 순간, 라이는 자신도 모르게 땅을 박차고 튀어 나갔다.
“라이!”
‘죄송합니다, 할아버지.’
결국 그런 놈이다.
최강의 검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가족에게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에.
‘사실 대검호를 품을 그릇조차 안 되는 놈이에요.’
그러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족은 지킨다.’
도망치는 적들 사이로 역주행하는 라이를 본 이미르가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호오?”
그 미소조차 끔찍했다.
“간다아아!”
이미르의 눈이 부릅떠지자, 라이는 검을 쳐든 자세 그대로 굳어 버렸다.
“……어?”
심권.
초심자도 하지 않을 자세로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이미르가 허리를 틀었다.
“너희들이 오젠트라고?”
스밀레가 통곡을 하겠군.
세계를 통째로 잡아 끌어오는 듯 이미르의 주먹이 라이에게 다가오고.
“응?”
그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라이가 주먹의 사정거리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공간이…….’
그리고 그 사이로 끼어든 청발의 검사가 이미르의 주먹을 대직도로 막았다.
쩌어어어어어엉!
엄청난 충격파에 정신착란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똑똑히 보았다.
아니, 어쩌면 이조차 착시일까?
불의 기운을 뿜어내는 야차가 이미르의 주먹을 지나 뛰어들고 있었다.
“너.”
리안이 말했다.
“누구 마음대로 내 가족을 괴롭혀?”
신적초월-아수라발발타.
이미르는 리안의 어깨 너머로 뻗어 나오는 수백, 수천 개의 팔을 보았다.
‘와우.’
만다라 문양처럼 어지럽던 권의 잔상들이 이미르의 명치 앞에서 하나로 모였다.
펑!
충격파가 먼저 지나가고, 이어서 거인의 육체가 수십 미터를 밀려 나갔다.
“크으으으으!”
찰나의 순간 이미르는 직감했다.
‘그래.’
최강이라 부를 만하다.
신의 선택 (2)
“으으으으.”
각국의 검사들은 이미르의 특징인 정신착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으엑! 으엑!”
멀미에 토악질을 하는 병사들이 부지기수였으나 역시나 고르고 고른 엘리트.
그들이 혼란 상태에서 빠져나온 시간은 평균적으로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
“후우.”
그리고 모든 자들은, 정신착란에서 보았던 어떤 장면은 환각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미르가…….”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신음하는 거인의 왕.
“크으으으.”
이미르의 무력이 어느 정도인지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했기에 충격은 더했다.
당연히 모두의 시선은 굉장한 등을 가진 청발의 검사에게 집중되었고.
“모두들.”
리안이 허리를 틀며 반갑게 웃었다.
“오랜만이야.”
지옥에서 돌아온 손자의 모습에 눈물이 흐르려는 것을 클럼프는 필사적으로 참았다.
‘나이를 먹은 게지.’
일국의 부대를 이끄는 사령관이 아니었다면 정말로 실수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 이제 왔냐? 제법 강해진 모양…….”
클럼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에서 내린 테스가 리안을 향해 돌진했다.
“여어.”
리안이 손을 드는 순간 그녀가 품으로 파고들었다.
“휘유.”
이런 상황에서도 휘파람 소리를 내는 걸 보면 그들의 정신도 어지간히 무뎠다.
리안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잘 지냈어?”
“멍청아.”
고개를 든 테스의 눈이 촉촉했다.
“온다면 온다고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야?”
“……미안.”
엉뚱한 소리라는 것을 알지만, 사실 테스에게는 많은 것들이 미안했다.
이미르가 말했다.
“방해해서 미안한데, 나도 말 좀 해도 될까? 가장 반가운 사람은 나거든.”
조금 전 리안의 일격이야말로 이미르가 우주를 건넌 유일한 이유였다.
테스가 쏘아붙였다.
“생명을 개미처럼 짓밟는 너 같은 놈한테 반갑다는 얘기 듣고 싶지 않아.”
“어이.”
이미르의 눈에 힘이 들어가고, 심권이 테스의 마음에 음각의 형태로 찍혔다.
‘큭!’
다음 순간 공격이 가해지기에 심권이지만, 설령 아니라도 사망할 수준이었다.
“강한 건 저 녀석이지, 네가 아니다. 자격이 없는 자는 끼어들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