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43
적어도 네이드는 어설프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경우의수는 두 가지였다.
‘의외로 해볼 만하거나…….’
이미르가 상상을 초월하는 괴물이 되었거나.
“이미르.”
가올드가 전진했다.
“여기서 보니 사뭇 색다르군. 하지만 이번에는 쉽지 않을 거야. 여긴 네 세계가 아니거든.”
“…….”
이미르는 침묵했다.
‘마치 날 잘 아는 듯 말하는군.’
물론 대부분의 강자와 겨루어 봤지만 가올드의 말에는 가시가 있었다.
심층 1단계, 무의식의 작용이리라.
“뭐, 좋아. 초면도 있고, 구면도 있군. 나름 긁어모은 최정예라는 것은 알겠어.”
이미르의 살기가 발산되는 순간 네이드의 한쪽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크으!”
호랑이가 공룡을 만난 것 같은 반응에 이루키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심각한데. 저 녀석이 겁에 질릴 정도면.’
그때 빛으로 만든 나비 한 마리가 빠르게 날아와 진성음에게 도착했다.
“…….”
망막에 비친 정보를 읽은 그녀가 물러섰다.
“새로운 임무가 왔다.”
그리고 어쩌면, 이 임무야말로 세계의 운명을 좌우할 가장 큰 변수였다.
일행이 무언으로 동의한 가운데 진성음이 에테르 파동을 통해 사라졌다.
“자, 갈 사람은 갔으니…….”
이미르가 그들을 향해 손을 까닥거렸다.
“전부 덤벼.”
이곳에 모인 누구도 전투에서 패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자들이기에.
‘천수관음.’
미로의 화신술을 시작으로 각자의 장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결과는…….
“크크크.”
아주 일방적이었다.
***
“꺄악! 사람 살려!”
델타 본청에 머물고 있는 자들은 신분을 막론하고 복도를 달리고 있었다.
“죽여라! 모조리 죽여!”
아니, 이곳을 복도라고 할 수 있을까?
박지의 장막이 사라진 현실에는 피와 고름, 살점이 벽에 달라붙어 있었다.
“흐윽!”
마족의 상아처럼 날카로운 팔이 시녀의 등을 꿰뚫어 들어 올렸다.
“아악! 아, 아파!”
“듣기 좋은 소리군.”
팔을 휘두르자 쭉 하고 몸이 빠져나온 시녀가 사람의 손이 달린 벽에 처박혔다.
“오! 오오오!”
마치 무덤 바깥으로 튀어나온 것 같은 망자의 손이 여자의 몸을 쥐어뜯었다.
마족이 피식 웃었다.
“형편없이 약하잖아. 지옥의 군대는 뭐 한 거야? 차라리 내가 입대할 걸 그랬어.”
전투 능력이 떨어지는 지옥의 주민이라도 인간에게는 악마와 다름없었다.
“방심하지 마. 공간이 합쳐져서 빈틈을 노린 것뿐이니까. 인간은 강하다. 지옥의 군대가 궤멸한 것은 절대로 우연이 아니야.”
“하긴…… 쩝.”
인간이 만든 방어막을 모조리 무시하고 침투했으니 쉬운 것도 당연했다.
“뭐, 사탄께서 알아서 하시겠지. 그동안에 우리는 재미나 좀 보자고. 여기 봐. 엄청 귀한 재료들이 차고 넘칠 정도로 있다고.”
잘린 신체 부위, 피, 내장 등, 이면 세계에서는 금은보화나 다름없었다.
마족이 고개를 돌리자 다리에 힘이 풀린 시녀가 화들짝 놀라며 기어갔다.
“살려 주세요!”
“헤헤! 일단 배가 고프니.”
마족이 송곳처럼 날카로운 팔을 치켜드는 순간 고막에서 타는 소리가 들렸다.
“응?”
펑 하는 폭발과 함께 얼굴 반쪽이 날아갔다.
“키이이이!”
쓰러진 동료를 발견한 마족들이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복도 끝을 향했다.
현재 국제재판부의 수장을 맡고 있는 미토 시라노가 투덜대며 걸어왔다.
“뭐야, 너희들? 어디서 들어온 거야?”
병사들은 자국의 요인을 지키기에 바빴기에 5대 부서의 마법사들이 나선 것이었다.
마족의 머리를 날린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공간이 중첩됐어. 이건 좀 심각한데. 섹터의 방호벽이 완전히 뚫린 셈이니.”
“흥. 죽을 놈은 죽어야지. 이 상황에서도 누가 지켜 줄 거라 생각하는 머저리가 어디 있어?”
시라노의 말이 현실적이기는 했지만 죄 없는 사람들을 지키는 것도 중요했다.
알페아스가 말했다.
“토르미아 교사회는 식당 쪽을 맡지요. 넓은 공간으로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합니다.”
“네, 부탁하죠.”
시라노의 어투가 누그러졌다.
알페아스는 존경받는 마법사였고 올리비아 교감 또한 공인 제2급의 대마법사였다.
“저도 갈게요!”
총군사 대임인 도로시가 나서자 경제인으로 참석한 리즈도 끼어들었다.
“저, 저도.”
한껏 긴장한 얼굴이었으나 그들 또한 프로였기에, 알페아스는 받아들였다.
교사회가 움직이자 각국의 부서도 자신의 역할을 알아서 찾아 움직였다.
소크라테스가 입맛을 다셨다.
“뭐야? 다 가 버리면 우리는 어떡하라고?”
시라노가 말했다.
“주접 싸지 마, 전 협회장이라는 인간이. 제발 책임감 좀 가지라고.”
앞으로 걸어간 그녀가 마족에게 물었다.
“너희들 대장 어디 있어?”
어차피 각국 현역들은 국왕을 지켜야 하니 자리를 뜨지 못할 터.
‘한 번은 만나야지.’
어쩌면 이것 또한 일선에서 물러난 한가로운 자의 특권이리라.
“데려다주지.”
그렇게 말한 마족들이 핏발을 세우며 돌진했다.
“목만 떼어서 말이야.”
“……호호.”
늪색 마녀, 시라노의 손톱이 붉어지자 소크라테스가 질린 표정으로 멀어졌다.
델타 본청의 지하.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멈추자 하비츠는 검을 내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졌다.”
패배는 늘 기분 나쁘지만 이번에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했다.
‘원하는 것을 들어줘야 하지.’
자신에게 입을 맞춘 위저드가 어떤 조건을 내걸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말해. 내가 뭘 해 주면 되지?”
“아뇨.”
위저드가 무심하게 말했다.
“무승부예요.”
하비츠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이해가 안 가는데?”
“제가 이 게임에서 제시한 명제는 이거예요. 당신을 사랑하거나, 증오하거나.”
“그래. 그래서 너는 입을 맞…….”
하비츠는 슬펐다.
“나를 증오하는군.”
위저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당신은 시로네도, 우오린도 죽이지 못했어요. 제가 패배할 일이 없으니, 이딴 게임도 그만두는 겁니다. 이기든 지든, 저는 당신을 증오합니다.”
“……네가 이겼어.”
그런 룰이었다.
“네 진심 따위 알 게 뭐야? 너는 증명했잖아. 네가 나를 사랑하는 건 사실이야.”
“틀렸어요.”
처음 이 게임을 제안받았을 때 위저드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하나였다.
‘무승부.’
승패는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하비츠가 이기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더 즐겁기 때문일 뿐.
‘만약 지는 것이 즐겁다면 기꺼이 패할 수도 있다. 그런 식으로는 잡을 수 없어.’
만약 위저드가 승리의 조건으로 사망을 원했다면 그는 자살했을까?
‘알 수 없어.’
그의 마음은 혼돈이다.
‘하지만 이 방법이라면…….’
위저드가 말했다.
“끝입니다. 다시는 찾지 마세요.”
그 말을 남겨 두고 그녀가 정말로 떠나 버리자 하비츠는 정신이 멍했다.
절교였다.
‘어때, 하비츠?’
바깥 세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나타샤는 하비츠의 반응을 살폈다.
‘직접 당해 보니 기분이 어떠냐고.’
“어…….”
하비츠의 한쪽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어아아아아!”
슬픔 뒤에 밀려오는 거대한 분노가 그의 얼굴근육을 완전히 뒤틀었다.
우드드드득!
뼈마저 부러뜨리면서 얼굴이 일그러지자 키도가 황급히 창을 내밀었다.
“우오린! 빨리 일어서! 빨…….”
그리고 다음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하비츠의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으어어어어…….”
머리카락은 전부 빠지고 얼굴과 몸은 숯처럼 검게 타들어 간 상태에서.
“위……저……드.”
옥처럼 하얀 눈만이 움직이고 있었다.
배니싱도, 죽음을 피하는 율법도, 그를 이루는 혼란도 사라진 끝에 남은 것은.
악惡.
“내가 가질 거야.”
극악이었다.
***
이미 초토화되었어야 했다.
쿠쿠쿠쿠쿵!
가올드의 에어 프레스가 가해지는 순간 남아날 것은 하나도 없어야 했다.
‘완충 작용.’
미로는 행성에 가해지는 에너지를 누군가가 막아 내고 있음을 직감했다.
‘태성인가?’
시로네에게 심한 짓을 했다고 들었지만, 지금 당장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거인의 주먹이 코앞 1센티미터까지 와 있기 때문이다.
‘천수관음.’
충분한 거리였다.
‘백공.’
시간이 느려지고, 수없이 탄생한 관음의 손바닥이 이미르의 팔을 두드렸다.
다만 문제는 위력.
“흐윽!”
미로의 화신술을 파괴하고 들어온 주먹이 에덴의 방어막까지 뚫고 들어왔다.
콰아아아앙!
“미로 씨! 에덴!”
두 여자가 동시에 바닥을 구르고, 역류하듯 리안이 달려와 대직도를 휘둘렀다.
“이야아아!”
역시나 괴력.
팔로 막은 이미르의 초점이 살짝 흔들렸으나 이내 입꼬리가 올라갔다.
“크크, 그런 건가?”
이미르의 심안이 상대를 꿰뚫었다.
“이게 마지막이지?”
리안은 심장이 철렁했다.
육체가 부서져도 몇 번이고 일어섰던 검사는 이제 세상에 없는 것이다.
“내 감은 못 속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