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46
오메가의 마지막 순간 극악이 정의한 세계였다.
***
테스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에, 에이미.”
대일여래의 화신이 사라진 자리에는 머리카락 한 올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완전한 소멸, 공空.
“……고통은 없었을 것이다.”
고개를 든 나네의 뺨에는 말라붙은 두 줄기의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이 세계가 고통이니, 닫는 것이 마땅하다. 중생을 구제하여 극락왕생을 이루리라.”
악은 고통을 향하고, 고통은 공을 향한다.
“나는.”
나네의 등 뒤에서 태양처럼 밝은 광휘가 퍼졌다.
“부처다.”
진정한 부처.
이 세계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집착, 에이미를 버리는 것으로 그는 완벽해졌다.
그리고 시로네는.
“이…….”
제정신이 아닌 눈빛으로 일어서며 태양을 향해 소리쳤다.
“개새끼야아아아아!”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한 침묵 속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넓게 메아리치고.
“으아아아!”
홀로 날아오른 시로네는 가장 빠른 속도로 나네를 향해 쇄도했다.
“죽여 버린다!”
살기로 가득한 눈빛과 거친 말투에서는 종전의 야훼를 찾아볼 수 없었다.
“설법.”
나네가 꾸짖었다.
“반.”
붉은 검이 섬광처럼 날아들어 명치에 꽂히는 순간 시로네의 눈이 크게 뜨였다.
“헉!”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추락하는 동안에도 그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어째서?’
미라클 스트림이 발동되지 않지?
“시로네.”
나네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는 야훼가 아니다.”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계에 없는데, 어떻게 다른 것을 사랑하겠는가?
시로네는 비로소 깨달았으나 냉정을 되찾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웃기지 마.”
그의 표정이 다시 표독스럽게 구겨지고 이모탈 펑션이 부처의 설법을 깨트렸다.
‘야훼고 뭐고.’
나네, 너만큼은 반드시 죽인다.
“시로네! 안 돼!”
미로가 소리쳤으나 이미 증오에 사로잡힌 시로네는 또다시 돌진했다.
“포톤 캐논.”
수천 개에 달하는 빛의 구체가 탄생하더니 모조리 한곳을 향해 쏘아졌다.
“어리석은 중생이여.”
원근법의 소실점처럼 모여드는 섬광을 바라보며 나네가 반장의 자세를 취했다.
“집착에서 벗어나라.”
콰르르르릉!
엄청난 폭발이 대기를 뒤흔들었다.
***
“무슨 소리지?”
동굴에 몸을 숨기고 있던 시이나가 다시 바깥을 살폈다. 대낮처럼 밝은 하늘에 두 종류의 마법이 교차하고 있었다.
구와 검.
그녀 또한 마법사였기에 저것 이상의 마법은 세상에 없음을 깨달았다.
“……시이나.”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돌아서자 쿠안이 흐트러진 표정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지킨다.”
그 말을 들은 시이나는 더 이상 갈등하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우리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조금 더 자요. 피곤할 텐데.”
시이나는 쿠안을 떠밀었다.
물론 등 뒤로 외면한 세계에 뒷골이 으스스한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쿠안을 데리고 전장에 합류하는 건 미친 짓이었다.
“시이나, 지킨다.”
쿠안은 고집을 부렸다.
아무리 밀어도 동굴 입구로 되돌아오는 모습에서 시이나도 이상함을 느꼈다.
“왜 그래요?”
다음 순간 공간의 떨림이 느껴지더니 숲의 풍경과 전혀 다른 풍경이 탄생했다.
어딘가의 지하 던전이었다.
‘공간 마법.’
그것도 초일류의 마법사만이 구사할 수 있는 난이도였다.
“성공.”
가볍게 말을 내뱉으며 그곳에서 나온 것은 인간의 형태를 가진 무언가였다.
‘사람…… 아니, 생물이긴 한가?’
석고를 바른 듯 하얀 몸, 근육질이라는 것 외에는 생식기도 없었다.
“무명.”
시이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천국에서 봤을 때와 느낌은 달랐지만, 오히려 그나마 있던 생물적 성향마저 제거된 듯했다.
“하하, 찾았다.”
그런 해맑은 미소로 무명이 쿠안에게 다가갔다.
“오지 마!”
시이나는 스피릿 존을 발동했으나 순간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
‘이 녀석은 상대의 능력을 훔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학습일 테지만, 그렇게 불러 주고 싶지 않았다.
“괜찮아. 너에게는 관심 없으니까.”
무명의 시선은 오직 쿠안에게 가 있었다.
“모두를 이길 필요는 없거든.”
높은 등수를 쓰러트리면 그 사이의 모든 존재를 이긴 것이기에.
“이번에는 다를 거야.”
무명의 두 팔이 유성물감처럼 늘어나더니 두 자루의 검으로 변했다.
“…….”
상대의 적의 앞에서도 반응이 없는 쿠안의 모습에 무명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다.”
전생의 기억에 의하면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경지였을 텐데도.
“배울 게 아무것도 없어.”
둔하고 서툴러서, 오히려 전투 순위의 가장 밑바닥이 어울릴 것 같았다.
“너, 무능력해졌구나.”
쿠안보다 시이나의 자존심이 더 상했다.
“함부로 말하지 마! 이 사람은 나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거야!”
“지켜?”
무명은 어머니가 자신을 낳을 당시가 떠올랐다.
“……모르겠군. 저 녀석이 등수가 더 높은데, 왜 너 때문에 희생을 하지?”
‘말이 통하지 않아.’
그렇다고 싸울 수도 없다.
아르민이 스톱 마법으로 겨우 막은 것을 생각하면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
“어쨌든 왔으니까, 너라도 꺾어 주지.”
무명의 검이 시이나 쪽을 향하자 소름이 돋을 정도의 살기가 느껴졌다.
‘이길 수 없어.’
가정이 사실로 변하는 그때, 쿠안이 처음으로 반응을 보이며 움직였다.
“내가…… 지킨다.”
무명이 말했다.
“비켜. 넌 죽일 필요 없어. 내가 조금 전에 죽인 놈들보다 못한 실력으로…….”
“시이나…… 지켜. 내가…….”
바보의 고집에 미간이 찌푸려졌으나 무명은 생각을 바꿨다.
“좋아.”
자신을 생의 서열 밖으로 밀어냈던 자에게 복수전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지능도 떨어진 것 같지만, 똑똑히 봐라. 이것이 예전의 너를 뛰어넘은 경지.”
에테르 파동을 퍼트린 무명이 사라지고, 백색의 검이 사방에서 들쑥날쑥했다.
“어때?”
왼쪽에서 들린 목소리가.
“공간을 완전히 장악했다. 이제 어디로 피할래?”
오른쪽에서 이어졌다.
멍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쿠안이 절뚝이며 걸음을 옮겼다.
“안 돼요! 함부로 들어가면……!”
시이나가 어깨를 붙잡자 쿠안이 고개를 돌렸다.
“시이나.”
그의 입꼬리가 배시시 올라갔다.
“웃어.”
무명의 쌍검이 나선의 형태로 회전하며 두 사람이 있는 공간을 압박했다.
어릿광대 피에로-백치.
다음 순간, 어느새 다른 공간에 서 있는 쿠안이 습관대로 검을 후렸다.
피는 묻지 않았지만, 그의 등 뒤에 서 있는 무명의 목이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시이나가 파르르 전율하는 그때, 바닥을 구르던 얼굴이 입을 열었다.
“어, 어떻게? 피할 곳이 없었는데.”
“그건…….”
흐흐, 잠시 웃던 쿠안이 말했다.
“네 생각이지.”
‘그래?’
무명은 눈을 깜박거렸다.
‘모르겠다.’
대체 저 녀석은…… 뭘 본 거지?
다시 찾아온 마지막 순간, 무명이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은 고작 하나뿐이었다.
번식이 전부인 가라스와 성취의 천사 아디오의 결합으로 태어난 존재.
‘엄마, 미안해요. 이번에도…….’
1등 하지 못했어요.
“…….”
누구도 괜찮다고 말해 주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최고가 되는 것보다 더 아픈 것일지 모른다고, 무명은 생각했다.
짧은 전투에 넋을 잃고 있던 시이나는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달려갔다.
“쿠안! 괜찮아요?”
“헤헤.”
쿠안은 기분이 좋은 듯했다.
“지켰다. 시이나.”
그 순간 깨달았다.
‘바보가 아니야.’
어떤 경지.
폐인이 되어 버린 그를 지킨다고 생각했건만, 오히려 보호를 받았던 건 자신이었다.
“고마워요.”
세계가 시시각각 멸망하는 상황에서 가장 안전한 사람은 시이나였다.
‘마지막까지 함께.’
그런 생각으로 쿠안의 몸을 잡아 이끄는데 숲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짝! 짝! 짝!
시이나가 황급히 돌아본 곳에 엘프의 특성을 가진 여성이 웃고 있었다.
“감동적인 전투였어. 정말 좋은 재목이야.”
“누구시죠?”
엘프라면 인류의 편일 테지만, 그녀의 눈빛에서는 광기가 번질거렸다.
“글쎄.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남성의 말투?
“일루미나티.”
육체의 이름은 에린, 그녀의 뇌에 탑승한 자의 이름은 크라운이었다.
“그나저나 그거…….”
크라운이 쿠안을 가리키며 물었다.
“탑승자가 없는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