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49
“내가 상부야! 이곳에서 나보다 높은 자가 대체 누가 있단 말인가!”
시로네가 무심한 눈길로 지켜보는 그때 복도 끝에서 앙칼진 소리가 들렸다.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상부였다.
‘시라노 씨.’
성전 국제재판부장 미토 시라노와 베베토 소크라테스가 나란히 걸어왔다.
시로네를 발견한 그녀가 잠시 멈칫했으나, 이내 신경을 끄고 방으로 들어갔다.
“좀 정숙하세요. 부상자도 있는 거 몰라요?”
“자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나! 내가 누군지 몰라? 적어도 큰 방은 내줘야 할 게 아닌가!”
시라노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미친놈.”
“뭐, 뭐야?”
“큰 착각을 하시는데, 당신은 이제 장관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당신의 국가가 사라졌거든. 영원히.”
“…….”
“그리고 귀족도 아니랍니다. 인류의 99퍼센트가 죽었으니까. 여기 남은 사람이 세상의 전부예요. 더 이상 당신이 만들 정책도, 결재할 서류도 없단 말이에요.”
‘99퍼센트.’
시로네는 아찔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이성을 잃고 부처에게 돌진한 대가라고 하기에는 너무 처참한 결과였다.
내무 장관이 눈물을 흘렸다.
“그, 그래도……. 너무 춥단 말일세. 모포 한 장만 더 주면 안 되겠나? 응?”
시라노가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한 장 더 줘.”
“넵!”
보좌관의 인사를 뒤로한 그녀가 광장으로 향하자 소크라테스가 물었다.
“예외를 두면 안 되는 거 아니었어?”
“알 게 뭐야? 세상이 망했는데 춥다고 징징대는 것부터 살 자격이 없다는 뜻이지. 밤새 우느니 적당히 달래는 게 다른 사람에게도 좋아.”
“흐음, ‘싸울 줄 아는 놈’이 필요하다는 거지?”
“야훼가 깨어났으니 이쪽도 움직여야지. 오늘 밤 세계 지도국이 결정될 거야. 롬, 가르토, 테미카. 규칙은 그대로.”
“쉬울 것 같으면서도 쉽지 않을걸. 2명만 있어도 1명이 1명을 지배하려고 들지. 세상이 망했다고 해도 정치인들은 기득권을 놓지 않아. 본능이랄까.”
“괜찮아.”
시라노는 개의치 않았다.
“이제 힘이 깡패니까.”
광장에 도착하자 그녀가 말한 깡패, 각국 마법협회장들이 회의 중이었다.
“여러분.”
시라노의 등장에 모두 예의를 갖추었다.
“어려운 발걸음 해 주셔서 감사해요. 시간이 없습니다. 마지막 기회를 살리려면 남은 모든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대표가 필요합니다.”
루피스트가 나섰다.
“마침 그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이미 토르미아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싸울 줄 아는 놈’이라는 기준에서 강력한 구심점을 가진 국가였다.
“좋아요. 투표는 오늘 밤 진행될 것입니다. 모두 돌아가서 각국의 대표를 설득해 주세요.”
플루가 끼어들었다.
“감히 한 말씀 드리자면, 괜찮을까요? 만약 거절 의사가 나오면 일이 더 복잡해지는데요.”
시라노의 해법은 간단했다.
“그때는 죽이세요. 토르미아에 투표할 새로운 왕을 만들어서 오면 됩니다.”
납득한 플루가 어깨를 으쓱했다.
‘하긴…….’
이미 기스를 보내 버린 전적이 있는 마당에 반론을 제시하는 것도 우스웠다.
알비노가 말했다.
“투표 결과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투표를 했다는 사실 그 자체지. 이를테면…… 여전히 우리는 문명인이다, 라는 착각을 심어 주는 거야.”
이건 좀 독설이었다.
“알비노 씨, 무사하셨네요.”
“껄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네. 돌부리에만 걸려도 죽을 나이인데, 나보다 세상이 먼저 끝나다니.”
“아뇨, 진심입니다. 현재 군사가 많이 부족해요. 앞으로도 좋은 전략을 부탁드릴게요.”
“내가 뭐……. 아들놈도 있는데.”
현재 이루키는 발키리의 수장으로 각국의 병력 상황을 조사 중이었다.
그때 소크라테스가 턱짓으로 광장을 가리켰다.
“어이, 저기 봐.”
시라노가 질색했다.
“윽.”
낭인처럼 머리를 풀어 헤친 가올드가 상념에 잠긴 채 걸어오고 있었다.
협회장 중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미케아 가올드.”
협회장 시절 몇 번 모임에 나온 적이 있지만 늘 광인 취급을 했었다.
물론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지만, 그가 이루어 낸 업적만큼은 절대 폄하할 수 없었다.
“비켜. 내 자리야.”
주눅이 든 협회장들이 길을 열어 준 곳에 시라노가 버티고 서 있었다.
‘어우, 저 또라이.’
협회장 시절 부단히도 부딪쳤다.
‘그래도 실력은 확실하니.’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과거는 털어 버리고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리라.
길을 막은 시라노 앞에 가올드가 멈췄다.
보는 사람이 어색할 정도로 긴 시간이 흐르고, 결국 가올드가 입을 열었다.
“뭐?”
“……뭐?”
“뭐어?”
좋은 관계는 개뿔.
짜증이 솟구친 시라노가 비켜서자 가올드는 그대로 지나쳐 벽으로 향했다.
루피스트가 물었다.
“어떡할 거냐?”
대답은 없었다.
“확실히 정해. 너를 전력에 넣어야 할지 빼야 할지 결정해야 하니까.”
“빼.”
짧게 내뱉은 그가 갑자기 돌아섰다.
“이것만 말해 주지.”
철학의 끝에 도달한 눈빛에 일순 광기가 번뜩였다.
“내가 싸울 때, 절대로 옆에 있지 마라.”
그 말의 진의를 아는 협회장들이 침을 꿀꺽 삼키고, 가올드는 구석에 주저앉았다.
한때 그를 따랐던 플루의 표정이 슬픔에 잠겼다.
‘여전히 존경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무언가를 해 줄 수도 없을 만큼 그는 많이 망가진 모양이었다.
한편 시로네는 네이드에게 걸음을 의지한 채 넓은 방으로 들어갔다.
한정된 재화로 가장 깔끔하게 꾸민 모습에서 이 방의 중요도를 알 듯했다.
“시로네.”
세리엘이 먼저 일어서고, 침대에 누워 있던 진성음이 눈꺼풀을 들었다.
“……왔느냐.”
지옥에서 돌아왔을 때보다도 훨씬 야윈 모습에 시로네는 충격을 받았다.
페르미가 설명했다.
“아이론에 세워진 제단은 대략 200개. 국왕 바사크는, 정확히 슈라는 그 아래 147개의 피난처를 건설했어. 우리는 마지막 인류를 전부 그곳에 피신시켰다. 에테르 파동으로.”
상상만으로 엄청난 작업이었다.
“현재 지상으로는 나갈 수 없어. 모든 게 불타 버렸고, 건물은 먼지가 되었다. 각 피난처로 흩어진 지휘관을 하나로 모아야 했어. 여기서 진성음이 다시 노력했지. 간단한 협의 사항은 총이의 통신 마법으로 전달할 수 있지만…….”
“잠깐.”
시로네가 물었다.
“다시, 싸우겠다고?”
“그래.”
“왜?”
세리엘과 진성음의 눈빛이 측은해졌다.
“우리가 싸우는 게 아니야.”
“그럼?”
“너.”
시로네.
“오직 너를 위한 싸움이다.”
세상을 위해 모든 걸 바친 야훼에게, 페르미가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철극哲極 (2)
***
지하 시설의 허름한 방.
이루키가 이제는 귀한 종이에 빼곡히 숫자를 적고 있는데 도로시가 차를 가져왔다.
“마셔.”
다른 생존자들은 맛도 볼 수 없는 것이지만, 실상 흔한 풀을 끓인 것에 불과했다.
“음.”
뜨거운 차 기운으로 정신을 달랜 이루키가 한숨을 내쉬며 펜을 내려놓았다.
“심각한 상황이군.”
“글쎄. 심각하다는 말도 농담으로 들리네.”
말 그대로 인류는 궤멸.
오히려 속은 편해야 마땅할 테지만, 이루키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지상군과 연락할 방법이 없을까?”
진성음이 사력을 다해 모두를 대피시켰지만 자의에 의해 남은 자들도 있었다.
“알잖아, 올라가는 순간 죽는다는 거. 그들은 그걸 감수하고 남은 거야.”
이루키는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지상에 남은 자들.’
정보 체계를 수집해서 총동원한 자료지만 정확하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꽤 많은 숫자였고, 이루키는 그중에서 핵심적인 인물을 빠르게 추려 냈다.
‘이카엘. 아슈르. 위저드. 손유정. 키라. 에덴. 그리고…….’
아드리아스 미로.
‘선과 악의 대결. 미로 씨가 도망친다는 것은 결국 악이 승리한다는 것이기에…….’
이루키가 물었다.
“가올드 씨는 좀 어때?”
“듣기로는 이제 좀 진정이 된 모양이야. 물론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겠지만.”
“그렇군.”
이루키는 손에 얼굴을 묻고 생각했다.
‘버틸 순 있는 거야?’
정보에 의하면 지상은 더 이상 생물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전 세계의 건물이 먼지로 부서지면서 발생한 먼지 폭풍에 시계는 제로.
하비츠의 데스 필드는 빠른 속도로 대지를 태우고, 마족들이 생존자를 찾아 돌아다닐 터였다.
“여기도 안전하지 않아.”
“지하 시설이라고 해도 현실에서의 지하니까. 박지가 완전히 불타면 이곳에도 통로가 생길 거야.”
이루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 셀 버스트.”
씽이 알려 준 바에 의하면 태극의 힘이 깨지는 시간은 길어야 12시간 이내였다.
도로시가 물었다.
“막을 수 있을까? 바깥 세계에서 수행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코드잖아.”
“막아야지.”
이루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로네에게 의지할 수는 없어. 생애 처음으로, 자신을 위한 전투에 돌입할 거니까.”
친구이기에 어떻게든 해 주고 싶다.
“우리가 기댈 곳은…….”
문이 열리고.
“기타루맨.”
로베 란스틴과 타이라 린이 대기하고 있었다.
***
생존자들이 둥그렇게 모인 곳에서 예인들은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레이나의 피아노 선율과 마야와 엘 키아나의 노랫소리가 아름답게 어우러졌다.
라이도, 케이든도, 다른 병사들도 이 순간만큼은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연주가 끝나자 누군가가 말했다.
“브라보.”
“파니에르 선생님.”
한때 세상에서 제일 유명하던 음악가도 이제 사람들과 함께 박수를 치는 신세였다.
엘 키아나가 물었다.
“어디 다녀오셨어요? 유명한 예인이 왔다고 하던데, 알고 계세요?”
“당연히 알지. 일전에 내가 말한 그 기타리스트가 그 녀석이니까. 로베 란스틴.”
마야가 관심을 가졌다.
“끝까지 자기 음악을 고집했던 분 말이죠? 그런데 왜 이곳에 안 오죠? 듣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