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52
그녀에게는 충분했다.
기록자의 공간, 완벽한 밀실을 떠나기 직전 시로네가 돌아서며 말했다.
“리차드, 난 신을 이길 거다.”
어쩌면 리차드는 훗날 신이 될 수도 있을 테지만, 그는 미소를 지었다.
“야, 나 엄청 멋있지 않냐?”
“하하.”
인간이 살았다.
이 세상을 살았던 것은 인간이었다고, 시로네는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진성음이 공간을 당기자 경계선 너머의 세리엘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아?”
모두가 공간을 넘고, 진성음이 그녀의 부축을 받으며 침대에 앉았다.
“조금 쉬면 괜찮아질 거야.”
시로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성음이 쉬는 동안 우오린을 만나고 올게. 지금 어디에 있지?”
아담이 말했다.
“내가 데려다주지.”
“혼자 갈게요. 그게 좋을 것 같아요.”
시로네의 말에서 깨달은 아담은 우오린이 거주하는 위치를 설명했다.
그에게 들은 대로 걸음을 옮긴 시로네는 고립된 구역의 문 앞에 도착했다.
“우오린.”
대답이 없자 직접 문을 열었고, 종아리에 붕대를 감은 우오린이 미소를 지었다.
“왔구나, 시로네.”
키도의 부축을 받으며 절뚝거리는 그녀의 표정은 너무나 해맑았다.
“기다리고 있었어. 너에게 할 얘기가…….”
짝! 하고 그녀의 뺨이 돌아갔다.
“…….”
키도의 눈이 커지고, 우오린은 뺨을 맞은 모습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시로네도 모른다.
냉정하려고 했지만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이성을 잃어버렸다.
우오린을 피하고 싶었던 이유였다.
“하하.”
그녀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래, 뭐, 내가 잘못한 것도 있지. 그럼 이걸로 끝내면 되는 건가? 그럼 이제…….”
그 순간 시로네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왜?”
모든 것을 망쳐 버린 거야?
마치 그 말을 들은 것처럼 우오린은 슬펐으나 애써 밝은 태도를 연기했다.
“후후, 내가 꽤 미운가 봐? 하지만 어떡하지? 이제 모든 건 내 손에 달렸는데.”
오직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한 이벤트를 처연한 감정으로 마무리 짓고 싶지는 않았기에.
“내가 필요하지? 물론 나도 도와줄 의사는 있어. 내 조건은 네가 나를 사랑…….”
“할게.”
우오린의 입이 닫혔다.
“뭐든지 할게. 네가 하라는 건 다 할 테니까…….”
시로네는 애원했다.
“에이미를 살려 줘. 나와 함께하지 않아도 좋아. 네가 원하는 건 다 해 줄 테니까…….”
이번만큼은 우오린도 참지 못하고 눈썹이 팔자로 휘어 올라갔다.
터지려는 울음을 애써 참았다.
“날 사랑한다고 말해.”
“사랑해.”
채워질 수 없는 마음이었다.
“평생 내 곁에 있겠다고 말해! 에이미가 아니라 나를, 우오린을 사랑한다고 말하란 말이야!”
“평생 네 곁에 있을게.”
우오린은 이를 악물었다.
‘내가 이긴 거야.’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은 그녀는 몸을 돌리고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시로네는 내 거야. 날 사랑한다고.’
그녀가 말했다.
“알았어.”
지금보다 훨씬 가혹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녀는 더 이상 바라지 않았다.
“해 줄게. 가서 에이미를 구해.”
그때 키도는 깨달았다.
우오린은, 릴리스는, 미토콘드리아 이브는, 정말로 시로네를 사랑했구나, 라고.
‘그건 사랑이야.’
인류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오직 이 순간만을 기다려 온 한 여자의…….
‘진정한 사랑.’
우오린이 말했다.
“이제 가. 다 해결됐잖아. 인류를 구해. 내가 이런 말 할 자격도 없지만.”
시로네가 다가오자 그녀는 황급히 몸을 돌렸다.
“가.”
시작조차 하지 않은 것처럼…… 끝이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도록.
“가라고! 가!”
그녀를 위로하는 것조차 가혹할 수 있기에, 시로네는 침울하게 방을 나섰다.
이브의 속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사랑했던 여자의 순수한 호의만을 가슴 깊이 담을 뿐이었다.
문이 닫히고, 우오린은 참았던 눈물을 전부 쏟아 내며 엉엉 울어 버리고 말았다.
키도가 다가왔다.
“야, 괜찮아?”
“안아 줘.”
우오린이 흐느끼며 말했다.
“외로워서 미칠 것 같아.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 같아. 키도, 제발.”
키도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
우오린을 만나고 광장으로 돌아온 시로네에게 씽이 다급하게 다가왔다.
“여기 있었구나. 이쪽으로.”
저항군 지휘실로 들어가자 시라노를 비롯한 간부들이 모여 있었다.
이면 세계의 관리자 레테가 세계지도를 보고 있고 그녀의 옆에는…….
“태성님.”
행성의 관리자도 있었다.
“시로네.”
심장을 찌르고 차갑게 말을 내뱉던 때와 달리 그녀는 겁을 먹은 듯했다.
“그때는…… 나도…….”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말로 알 수가 없었다.
“고마워요.”
하지만 시로네는 알았다.
“인류의 편을 들어 줘서. 오류든 마음이든 상관없어요. 함께 싸우는 거니까요.”
그녀의 결정이 아니었다면 인류에게 마지막 기회조차 없었을 테니까.
시로네는 씽을 돌아보았다.
“괜찮아?”
배신감이라면 그녀도 만만치 않을 터였다.
“내 의문이 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네가 나를 설득했으니, 너를 믿을 뿐이야.”
레테가 말했다.
“잡설은 나중에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죠. 야훼여, 오메가의 기록자를 만났습니까?”
시로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설명이 쉽겠군요. 출발 일정을 앞당길 거예요. 예상보다 빠르게 박지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탄의 의지였다.
“나와 태성이 최대한 버텼지만 역부족이에요. 6시간 후면 마족이 침투합니다. 그리고 그때가…… 인류 최후의 전쟁이 되겠죠.”
“나는 언제 출발하지?”
“빠를수록 좋습니다. 현재 인류는 세계 지도국 투표를 앞두고 있습니다. 야훼께서는 그 전에 떠나야 해요. 앞으로 1시간 안에 준비를 끝내 주세요.”
‘1시간.’
오직 자신을 위한, 혼자만의 여행이었다.
***
키도는 멍하니 서 있었다.
“뭐 하고 있어?”
바닥에 앉은 우오린이 물을 때까지도, 그는 이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우오린, 이건 자포자기야.”
“그렇지 않아.”
모든 것은 시로네를 위해.
“철극을 왕복할 때마다 시간파를 감당해야 돼. 하나보다는 둘이 낫잖아.”
기억의 맛.
키도가 우오린의 피를 먹으면 역사의 내구력이 2배로 늘어나는 셈이다.
“그럼, 그냥 피를 줘.”
우오린은 고개를 저었다.
“키도, 너는 나를 따라 죽는 거야. 그리고 난 이제 모든 걸 이루었지. 그러니까…… 괜찮아.”
“안 괜찮아!”
키도는 화가 났다.
사랑할 수 없더라도, 카샨의 여황은 언제까지고 고결한 여인이어야 했다.
“나는 괴물이란 말이야.”
약간 놀란 표정을 짓던 그녀가 눈웃음을 지었다.
“나도…….”
안 돼.
“나도 괴물이야.”
키도는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사실은 알고 있지만, 절대 듣고 싶지 않았던 말.
“흐윽.”
눈물을 흘리며 다가간 키도는 우오린의 등을 받치고 바닥에 눕혔다.
‘배니싱.’
고블린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배려였다.
“사랑해, 우오린.”
절대로 인지할 수 없을 테지만 무언가를 느낀 듯 우오린은 눈을 감았다.
“하아…….”
달뜬 신음 소리.
그리고 키도는, 가장 다정한 난폭함으로 우오린의 목덜미를 깨물었다.
기억의 맛.
***
우주.
행성은 시커멓게 타들어 간 상태였다.
바다는 흔적조차 없고, 검은 대지 위에 그물 같은 용암이 흐르고 있을 뿐.
“흐읍.”
하비츠는 숨을 들이마셨다.
분사焚死한 시체 같은 몸에 불씨가 살아나자 행성의 용암이 뜨겁게 타오르고.
“하아.”
숨을 뱉으면 빛도 약해졌다.
그 죽음의 들숨과 날숨 속에서, 마족들마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흐읍.”
빠르게 달구어진 대지에서 쇳물이 폭발하자 마족들이 몸을 웅크렸다.
“흐익!”
사탄의 불에 닿으면 그들 또한 숯이 될 뿐이었다.
“위저드.”
하비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디 있는 거냐?”
행성 전체를 데스 필드로 바꾸었으나 그녀의 위치는 포착되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곳에 숨었거나.’
이미 불타 죽었거나.
그 어느 쪽도 불쾌한 하비츠가 공기를 빨아들이자 행성이 지글지글 끓기 시작했다.
“위저드으으으으!”
그리고 이 순간, 테라포스 대법회에서 공식적으로 악의 승리가 확정되었다.
철극哲極 (5)
***
테라포스 대법회.
대법관은 이미 자리를 떠났으나 뜻을 굽히지 않은 법관들은 남아 있었다.
“너무 성급하다! 선악의 대결은 끝나지 않았어! 극선도 남아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