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53
테라포스가 악의 승리를 빠르게 확정 지은 이유는 우주의 운명 때문이었다.
“여기서 시간을 끌다가는 정말로 우주가 닫힌다! 법관이여, 그것을 바라는가?”
“일어나지 않은 일이야. 우주의 심판관은 현재만을 놓고 생각해야 한다.”
“그 현재를 보라. 인류에게 무엇이 남았지? 이 땅에서는 어떤 사용자도 살아갈 수 없어. 문명은 사라졌고 자원도, 생물도 멸종했다!”
오직 고통뿐이다.
“부정! 정식으로 항고한다!”
“그럴 시간이 없어! 각 수행원은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시행하라! 어기는 자는 구속이다!”
법회의 문이 열리고 양손에 플라즈마 검을 장착한 자들이 밀려들었다.
“법관! 정말 이럴 것이오!”
대법원의 판결에 항고하는 것은 테라포스 역사에서도 이례적인 사태였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인간을 초월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11감에 도달한 것은 아니었다.
“창조자가 정한 테라포스의 대원칙에 따르는 것이네. 우리는 균형을 맞추려는 거야.”
그들 또한 신의 피조물.
“…….”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수행원들이 반대파의 법관을 둥그렇게 에워쌌다.
“구속.”
균형의 감옥.
우주의 균형에 위배되는 것을 격리하는 공간으로 그들 모두가 사라졌다.
***
잿더미가 되어 버린 대지 위로 불에 타는 듯한 먼지 폭풍이 불었다.
“후우. 후우.”
그 희뿌연 장막을 가르고 헝겊으로 코와 입을 가린 한 여성이 걸어왔다.
마지막 선의 수호자, 미로였다.
“살려 주세요!”
바람을 타고 흘러드는 소리에 그녀가 걸음을 멈추자 한 소녀가 달려왔다.
‘생존자.’
전 인류의 99퍼센트가 사망했지만 아직 지상에 남은 자들도 있을 터였다.
물론 얼마 남지 않았을 테지만.
“히히히! 잡아라!”
뼈만 남은 말들이 이끄는 마족의 마차가 소녀를 사냥하고 있었다.
이미 죽일 수 있었을 테지만, 몇 안 되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듯했다.
“천수관음.”
미로의 화신이 높게 솟구치자 마차에 탄 마족들이 위를 올려다보았다.
“어?”
커튼처럼 출렁이는 회색 장막에 관음의 화신이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뢰.”
쿠우우우우웅!
장법이 수직으로 떨어지면서 마족들이 마차와 동시에 땅에 짓눌렸다.
소녀가 마른 입술로 신음했다.
“아아.”
“괜찮니?”
눈앞에 있는 상대가 적이든, 아군이든, 꿈이든 생시든, 할 말은 하나였다.
“물. 물 좀…….”
미로는 마법으로 물을 전했다.
해갈이 풀리자 소녀의 눈에 비로소 초점이 돌아오더니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으아아앙! 으아아앙!”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천운이구나. 마족들이 모여 있는 곳을 알고 있니? 너 말고 다른 생존자는?”
“없어요. 제가 어디서 온 건지도 모르겠어요. 죽으려고 했는데…… 너무 무섭고…….”
그때 폭풍의 바람이 완전히 변하면서 회색 하늘에 테라포스의 함선이 등장했다.
“뭐야, 또?”
“극선이여.”
지척에서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으나 투명한 형체만이 아른거릴 뿐이었다.
“대법관인가?”
스텔스가 풀리고 외계 생명체의 모습이 나타나자 소녀가 기겁했다.
“히익!”
미로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대법회의 판결이 났다. 이 시간부로 인류는 선악의 대결에서 악에 패한 것으로 정해졌다.”
지금 상황을 보면 납득이 가지만 억울한 점도 없지 않아 있었다.
“당신의 뜻이야? 당신이 대법관이잖아.”
“선고는 내가 하지만 판결은 테라포스 종족의 3원칙에 따른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막을 수 없었다고?”
“시간을 끌 수는 있었겠지. 하지만 거기서 싸우는 것보다는 이게 낫다고 생각했다.”
만약 대법회에서 투쟁했다면 대법관 또한 균형의 감옥에 구속되었을 터.
“빠른 판단은 좋은데, 무엇 때문에?”
“현재 생존자들이 상황을 뒤집을 시도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잠시 생각하던 대법관이 내뱉었다.
“일리가 있어.”
“…….”
“물론 승산이 높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실패하면 우주의 소멸을 막을 수 없지. 즉, 인간의 실패가 테라포스 종족의 멸종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걸어 보겠다고?”
“울티마.”
대법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테라포스는 인류보다 뛰어나지만 울티마에 도달하지는 못했지. 어쩌면 그 이유를 본 것 같아서. 울티마란, 지성만으로 되는 건 아닌 모양이다.”
미로는 그 말을 음미했다.
“내가 뭘 하면 되지?”
“버텨라.”
길게 얘기할 시간이 없었다.
“극선이여, 홀로 악을 물리칠 수는 없다. 선과 악, 공과 애란 하나에서 분리된 것. 어느 한쪽이 압도하는 순간 인류는 방향을 잃게 된다.”
“그럼 어떻게 이기지?”
“이기는 것 또한 악의 방법론. 선악공애의 모든 것이 맞물렸을 때, 인류가 최후의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버텨야 한다.”
저 멀리 테라포스의 함선이 다가왔다.
“네가 극선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돼. 네가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순간 균형은 급격히 기울 터. 애는 힘을 잃고 악이 일어설 것이며, 공은 이길 것이다.”
테라포스의 수행원이 스텔스를 해제하며 다가왔다.
“가시죠.”
“……명심해라. 선은 악을 막는 존재이지 악을 증오하는 존재가 아님을.”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하늘에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소녀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세상에.”
플라즈마 섬광이 지상을 요격하고 있었다.
***
쿠쿠쿠쿠쿠쿠!
행성에 내리꽂히는 테라포스의 공격은 지하의 생존자에게도 전해졌다.
상아탑의 주민들이 모여 있는 방에서도 심장이 떨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성급하군.”
‘카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원탁에 모여 앉아 패를 나누고 있었다.
“세계가 닫히기 전에 전쟁을 끝내려는 것이겠지. 나쁘지 않아. 마족도 사라질 테니.”
“하지만 그것은 테라포스도 공의 승리를 점치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침묵이 흘렀다.
“승리라. 그게 가능한가? 선악공애, 모두가 극이기에 더 높은 패가 없어.”
에이스의 네 가지 패턴처럼.
“흠, 이건 메이드의 문제야. 선과 악은 공과 애를 선택할 수 있고, 공과 애도 선과 악을 선택하지. 어떤 조합이냐에 따라 의미가 전혀 달라져.”
“그렇다!”
구디오가 테이블을 내리쳤다.
“이 게임의 승자는 선악공애가 아니야. 그들은 패를 만들 뿐, 선택하는 자는 따로 있다.”
“……4명이 아니군.”
“그래. 이건 처음부터 5명이 하는 게임이었던 거야. 어떤 조합이 남을 것인가. 그것이 마음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마지막 1명은…….”
인간이라는 플레이어.
마이스가 머리를 움켜쥐었다.
“제길! 그때 미네르바 씨가 전 재산을 걸었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그건 변수가 아니야. 애초에 그런 게임이었던 거야. 룰을 몰랐던 건 우리다.”
물론 미네르바는 모르고 한 일이지만, 그렇기에 이 게임은 성립된다.
쿵! 네스가 마치 철극을 심듯, 단도를 테이블의 정중앙에 꽂으며 말했다.
“1명 더! 아무나 빨리!”
“끼어도 되겠는가?”
도박에 미친 그들이라도 상아탑의 3성급 람파가 다가오자 표정을 고쳤다.
“아, 람파 씨.”
“능력도 팔아서 남은 거라고는 돈뿐인데, 내가 제격이라고 생각하네만.”
“앉으시죠.”
구디오가 룰을 설명했다.
“우리는 각자의 패를 조합할 겁니다. 누가 이길 것인지에 걸어 주면 됩니다.”
“허허.”
람파는 웃었다.
“그것 참 흥미로운 게임이군.”
***
슈라가 왔다.
“시작하자.”
고개를 끄덕인 시로네는 그녀를 따라 지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아.”
에이미의 큰오빠 다이안과 둘째 아레스가 시로네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레스는 몰라도 다이안은 에이미의 집에서 본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래, 오랜만이구나.”
시로네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지키지 못했어요. 이번에는 반드시 에이미를…….”
“무리하지 마라.”
“네?”
“나는 잘 모른다. 시간이나, 우주. 하지만 이건 확실하지. 너는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으러 가는 게 아니야. 살아 있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거다.”
“…….”
“내 여동생도 자신의 싸움을 한 것뿐이다. 그러니 결과가 어떻게 되든…….”
다이안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에이미가 생각한 것들, 에이미가 선택한 것들을 존중해 줬으면 좋겠다.”
시로네는 생각했다.
‘역시…….’
카르미스 가문이었다.
“네. 최선을 다해 싸우겠습니다.”
인생 전부를 건 여정 앞에서 다이안의 말은 놀랄 만큼 긴장감을 풀어 주었다.
아레스가 윙크를 하며 엄지를 세우고, 시로네는 마침내 지상에 도착했다.
의식을 되찾고 처음 나온 바깥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도가 심했다.
아니, 아무것도 없었다.
“이쪽으로.”
나네가 파괴한 상태 그대로의 제단을 이마에 뿔이 난 남자가 지키고 있었다.
“후아마.”
십로회 서열 4위, 후아마(금강 야차).
베론이 세상을 떠난 뒤부터 제단을 지키며 오늘을 기다려 온 자였다.
“슈라, 늦었구나.”
“상황은 어때?”
“좋지 않아. 마족의 함성도 들리고, 하늘에는 요상한 비행 물체가 떠다니는군.”
야훼의 얼굴을 매섭게 노려보던 그가 턱짓을 하며 입구로 몸을 돌렸다.
“들어와.”
우오린과 키도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키도.”
함께 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에, 시로네는 더욱 슬펐다.
슈라가 설명했다.
“제단의 반경권 안이 전부 철극이지만, 외세를 막기 위해 이곳을 택했어. 야훼, 네가 과거를 되풀이하는 동안 우리는 우오린과 키도를 지킬 거야.”
정확히는 그들의 능력이었다.
“어차피 이곳도 대지멸공파로 얼마 버티지 못해. 저항군이 최후까지 지킬 테지만…….”
여유롭지 않다는 뜻이었다.
“알았어.”
시로네는 키도에게 갔다.
“미안해. 너에게는 항상 도움만 받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렇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