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57
“제발……!”
이를 악물고 도착한 시로네의 눈에 나네가 합장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크으으으으!”
고개를 숙인 나네의 얼굴 아래로 실핏줄이 터진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왜?”
나네가 물었고, 시로네가 소리쳤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벌써 수백 번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수백 번 사랑하는 사람을 죽였다.
“시로네!”
부처도 악에 받쳐 있었다.
“나는 포기하지 않아! 공을 받아들여라! 더 이상 현세에 아픔을 남기지 마!”
“으아아아!”
시로네는 그에게 날아갔다.
2,469회 차.
시간과 공간이 모두 달라진 지점에서 야훼와 부처는 또다시 만났다.
에이미가 소멸한 뒤였다.
“…….”
몸을 던지면 찰나에 도달할 거리, 두 사람의 눈빛은 지독하게 지쳐 있었다.
“타협하자.”
시로네가 말했다.
“차라리 내가 죽을게. 에이미를 살려 줘. 그냥 이 세계를 살아가게 해 줘.”
나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어. 바깥 세계와 분리되면 너희들의 세계는 완벽해지겠지. 하지만 시로네, 그 세계가 악으로 물든다면 어떻게 할래? 그때는 고통뿐이야.”
“어떤 상황이 닥쳐도 우리가 선택한 일이야. 그리고 반드시 선을 선택할 거야.”
“우리라.”
나네는 씁쓸했다.
“너 혼자가 아니고?”
시로네는 으득 이빨을 깨물며 주먹을 쥐었다.
“……싸울 거야.”
“나도 마찬가지다.”
타협은 결렬이었다.
6,579회 차.
시로네는 이미 울고 있었다.
“으아아…….”
너무나 많이 반복되어서, 이제는 마음이 그저 슬픔으로만 이루어진 듯했다.
‘못 하겠어.’
솔직한 심정으로는 가고 싶지 않았다.
한 번을 경험해도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고 싶지 않아.’
나네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오지 마라.’
제발 이곳으로 오지 마.
충돌의 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나네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죽여야 한다고?’
또다시.
늘 새로운 과거지만 자신의 두 손에서 피 냄새가 나는 기분이었다.
사랑하는 여자의 피 냄새.
야훼와 부처는 같은 순간 자문했다.
‘그만둘까?’
하지만 그 여파는 자신이 아닌 인류 전체의 결말이 될 것이기에.
“포기할 수 없어.”
둘의 표정이 동시에 일그러졌다.
“나네!”
시로네가 빛의속도로 돌진하는 순간 대일여래의 손바닥이 맞닿았다.
나네는 눈을 질끈 감았고.
‘빌어먹을…….’
세世.
시로네는 울음을 터트렸다.
“으아아아아!”
나무관세음.
***
루버가 물었다.
“슬픈 표정이군요.”
성전에 남아 있는 나네는 생각에서 빠져나온 듯 눈을 깜박거렸다.
“……착각일 뿐이지.”
미칠 듯이 아픈 이 마음도.
‘하지만 내 아픔이 곧 중생의 아픔이다. 이 세계는 이미 악으로 물들었어.’
문명을 쓸어 내고 남은 자리에는 화석처럼 숯이 되어 버린 사람들만 남았다.
“…….”
죽을 수도 없는 자들.
“데스 필드. 끔찍하군. 내 손으로 돌려보낸 자들이 많아서 다행이야. 방법이 없겠는가?”
신의 물음에 루버가 고개를 숙였다.
“몽아를 시켜 사몽死夢을 주입하겠습니다. 고통과 이탈 중에 선택하게 될 겁니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접근이 금지된, 사망을 직접 경험하는 꿈이었다.
나네는 씁쓸했다.
“여전히 선택인가?”
“사용자 코드를 직접 건드릴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이제 사용자들도 깨달았을 겁니다, 세계를 악으로 물들게 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시행하라.”
루버가 몽아를 돌아보자 창백한 아이의 얼굴이 괴물처럼 징그럽게 변했다.
-꿈의 코드, 사몽.
퍽! 퍽! 퍽!
드리모를 타고 신호가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검은 인형이 재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탈을 선택한 것이다.
“색즉시공.”
아무것도 없는 세상을 돌아보며 나네가 말했다.
“공즉시색.”
***
“후우.”
마족들의 시체가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곳에 백발의 여성이 오롯이 남았다.
제천대성 손유정.
“정말 끝도 없네. 사람들도 다 죽었는데, 대체 뭐가 그렇게 분한 거야?”
어쩌면 마족들은 인간이 아닌, 그저 화를 낼 대상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다음 지역은…….”
육체를 불태운 그녀가 근두운을 뿜어내며 지상 위를 비행하는 그때.
“엇?”
마치 허공을 붙잡듯 얼굴부터 멈춘 그녀가 여의를 박으며 착지했다.
퍽! 퍽! 퍽!
인간의 형태를 유지한 채 타 버린 숯들이 빠르게 재로 변하고 있었다.
‘다들 떠나는구나.’
손유정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럴 수밖에.’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데스 필드에 몇 번 당해 본 그녀가 잘 알고 있었다.
다시 길을 떠나려던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놀란 표정으로 돌아섰다.
“저건…….”
모두가 재로 흩어진 자리에 하나의 육체만이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버틴다고?’
가까이에서 확인하고는 더욱 놀랐다.
‘어리다.’
몸을 한껏 웅크린 자세의 육체는 아무리 많아 봐야 7세에서 8세 정도였다.
‘얼마나 살고 싶으면.’
안타까운 표정으로 손을 내미는데, 그때 딱딱한 숯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
건드리지 말라는 신호.
‘어리지 않아.’
비록 육체는 어릴지라도 정신력은 손유정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강했다.
‘이유가 있는 거겠지.’
여의를 등 뒤로 세운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무운을 빕니다.”
그녀가 자리를 피해 주자 떨리던 육체가 천천히 진정되기 시작했다.
위저드는 이를 악물었다.
‘아직은 안 돼.’
숨을 쉴 때마다 전신이 타들어 갔지만, 사탄의 시선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비츠. 극악의 혼돈이 율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신의 어떤 권한을 이용하는 것 같다.
우주의 5대 시스템을 모두 통달한 초월적인 천재가 내린 결론이었다.
‘신은 아니야. 신은 절대로 이런 식으로 연산하지 않으니까. 이건 마치…….’
부모의 권한을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망나니 아들 같은.
‘그게 정론이겠지.’
그렇기에 위저드는 하비츠의 마음을 이용해 그를 이 세계에 묶어 두었다.
‘어설프게 자극해서는 안 돼.’
그는 신과 달라서, 자신이 이기기 위해서는 금기마저도 열람하게 될 것이다.
‘이 권한이 막히면 저 권한으로. 모든 것을 조작해서 인류를 파괴하겠지.’
그의 능력치가 상승하는 속도는…….
‘나와 맞먹거나, 나를 상회하는 수준. 따라서 지금 하비츠와 붙었다가는.’
초유의 괴물만 만드는 셈이다.
‘버티는 거야.’
그리고 그가 대응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한다.
‘사탄의 진화 속도를 내가 추월한다. 그 작업이 끝나면…… 일격을 먹일 수 있어.’
하비츠가 절대로 알 수 없는.
‘초공.’
사라진 1프레임으로.
***
“출정 5분 전!”
지상에 올라온 저항군은 먼지바람 너머로 아른거리는 마족을 노려보았다.
상아탑 주민 키라처럼 요인 경호를 맡은 이를 제외하면 전원이 모인 상태였다.
후열에 배치된 카니스가 아린의 손을 잡았다.
“…….”
그의 손길을 잠시 느끼던 아린이 결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카니스, 생각해 봤는데 우리…….”
“상관없어. 남매든 뭐든,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아.”
아린의 표정이 슬퍼졌다.
“오빠 하면 되잖아.”
“응?”
“내가 원하는 건 네가 행복한 거야. 라둠에서부터, 오직 그것만을 빌고 또 빌었어. 그러니…….”
카니스가 미소 지었다.
“늘 네 곁에 있을게. 오빠로.”
아린은 초경을 통해 카니스의 진심을 확인했다.
‘아…….’
빛으로 가득 차 있는 얼굴은, 형이상이 아닌 카니스의 얼굴 그대로였다.
‘이게 카니스구나.’
그런 확신.
처음으로 얼굴을 본 아린이 카니스의 손을 강하게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하비스트가 올라왔다.
“크크크.”
창처럼 긴 팔로 두 사람의 어깨를 끌어안은 그림자가 전방을 겨누었다.
“자, 마지막 전투다.”
먼지 장막을 뚫고 마족의 대군이 밀려들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