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58
현실의 이틀이 지났다.
저항군의 항전은 필사적이었으나 마족의 숫자는 갈수록 불어났다.
냉철한 루피스트도 짜증이 났다.
‘너무 많아.’
아니, 원래 많던 숫자가 박지가 벗겨지면서 계속 쌓이고 있는 것이었다.
‘사탄의 위치가 추적이 안 돼. 진성음도, 총이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가능한 일인가?
‘반칙이란 반칙은 다 쓰고 있군.’
그나마 이 세계를 무단으로 닫지 못하는 건 위저드의 존재 때문이었다.
끼아아아아!
괴조음에 고개를 들자 드래곤들이 테라포스와 공중전을 벌이고 있었다.
‘지원은 불가능하겠군.’
박빙, 아니 드래곤이 밀리는 추세였다.
“어?”
그리고 모두는 보았다.
“저, 저게 뭐야?”
저 멀리 하늘에서부터 마치 물이 얼듯이 회색이 밀려드는 광경을.
“안티셀?”
크기는 처음보다 훨씬 줄어들었지만 개체 수는 조, 경, 해 단위를 넘는 듯했다.
두두두두! 두두두두!
사문의 신호가 연결되면서 빠른 비트의 드럼 소리가 하늘을 수놓았다.
기타루맨의 연주였다.
“예에~~~!”
린의 목소리에 이어 노래가 시작되었다.
-아침에 잠을 잤더니 날더러 게으르대. 어머, 미안. 하루 종일 노느라 잠잘 시간도 없었다, 얘.
그녀의 노래는 성전의 지하에 있는 파니에르의 방에까지 흘러들었다.
-놀다가 기절하는 내 하루 일과. 자면서도 음악은 끝나지 않아. 우리 편은 10억 명. 나는 새벽의 지배자. 야!
“흐흐흐.”
마족이 지하로 침투하는 와중에도 파니에르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겁나 골 때리네.’
저항 음악 같은 거, 유행이 지난 지가 언젠데.
‘이제는 가수가 갑이야, 이것들아.’
하지만 싫지 않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너무 좋아.
***
회귀, 10,874회 차.
“흐음.”
토르미아 이민정책 실장이 안경을 올렸다.
“16년 전에 들어온 동양인 남매라. 하긴, 그때만 해도 이민정책이 활발할 때였으니까요.”
시로네가 물었다.
“기록을 찾을 수 있을까요?”
“글쎄요, 워낙에 방대한 양이라서. 아마 다 찾으려면 며칠은 걸릴 겁니다.”
“시간은 충분해요.”
실로 그랬다.
“흐음, 그러시다면야…….”
실장은 귀찮은 표정이었으나 상대가 마법사인지라 거부하지 못했다.
물론 마테리얼로 위조한 자격증이었다.
“저기…….”
복도에 있던 남자가 들어오자 실장이 황급히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아, 행정관님.”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 토르미아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동양인이었다.
행정관이 시로네에게 물었다.
“혹시 그 남매가, 이란성쌍둥이는 아닙니까?”
“알고 계시나요?”
“……이쪽으로.”
그를 따라 행정관실로 들어가자 비서가 차를 내오고, 얘기가 시작되었다.
“그 둘을 왜 찾으시죠?”
“딱히 찾는 건 아니에요. 그냥…… 남매인지 확인하고 싶어서요. 개인적으로 중요한 문제라.”
“저에게도 중요합니다.”
“네?”
행정관이 찻잔을 들고 창문을 향했다.
“하긴, 시간이 많이 흘렀군요. 당시에 저는 동방의 민이라는 소국에서 이민을 왔지요. 내전이 한창이었거든요. 지방 영주들의 주권 쟁탈전이죠.”
시로네는 듣고 있었다.
“어떻게 자리를 잡아 이민정책관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뿌리는 민 왕국인지라, 그쪽의 정세를 주시하고 있었죠. 물론 지금은 멸망했지만요.”
“그렇군요.”
“한 장군이 이란성쌍둥이 남매를 얻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영지는 풍전등화의 상태였죠. 지배자의 혈통을 중요시하는 나라라서 장군은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적통의 핏줄을 남겨서 후일을 도모할 것인가, 목숨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멀리 보낼 것인가.”
“그래서 토르미아로 보낸 건가요?”
“아뇨. 장군은 끝까지 싸울 생각이었습니다. 전쟁에서 이겨 영지를 물려줄 생각이었죠. 하지만 아내는 반대했습니다. 영지를 버리고 도망칠 생각이었죠.”
시로네는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혹시……”
행정관이 물었다.
“그림자 무사라는 말을 아십니까?”
“네. 위급 시에 지도자와 비슷한 사람을 대신 앞세우는 거죠. 동양에서 많이 사용되었고요. 아.”
시로네는 깨달았다.
“네. 장군은 아내 몰래 쌍둥이 중 한 명을 그림자 무사로 바꿔치기했습니다. 물론 아내는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토르미아로 넘어왔고요. 당시에 그녀의 이민을 도와준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
“돈을 받긴 했지만, 동향 사람이니 최대한 도와주고 싶었어요. 어쨌든 관문은 통과했지만,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림자 무사에 대한 사실도 민 왕국이 통일된 다음에 밝혀진 내용이죠.”
“민에 남은 아이는……?”
“장군이 자결한 뒤, 아이는 참수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건 하나였다.
“그럼, 이곳에 들어온 여자와 남자 중에, 어느 쪽이 그림자 무사인가요?”
“흐음.”
행정관은 턱을 만졌다.
“이건 당시 민 왕국에서 이슈였던 문제입니다. 적통을 생각하면 사내를 남겨 두었을 테지만, 장군이 밝히지 않고 자결을 해 버렸거든요. 아마 이곳에 온 아이들도 죽었을 겁니다. 부끄러운 말입니다만, 통일 왕은 혈통을 끊기 위해서라면 세상 끝까지도 쫓아갈 정도로 난폭했으니까요. 어쩌면 그래서 망한 것인지도 모르죠.”
결국 누가 장군의 자식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시로네가 다시 물었다.
“그럼 이곳에 온 아이들은 남매가 아니군요. 1명은 그림자 무사니까요.”
“네. 그게 정설입니다.”
두 사람에게는 이것으로 충분하리라.
“네, 감사했습니다.”
“혹시…….”
시로네가 일어서자 행정관이 물었다.
“그들을 알고 계십니까?”
어떤 말을 해도 상관이 없을 테지만 시로네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친구일 뿐이에요.
고개를 끄덕이는 행정관을 뒤로하고 시로네는 관청을 빠져나왔다.
“후우.”
조금은 후련했다.
‘정말 다행이다. 카니스, 아린.’
진리의 피라미드에서 그 두 사람은 온 마음으로 인의 파동을 견뎌 냈다.
장면이 파편적이었던 이유는, 아마도 신이 그들의 원인을 조작하기 위해.
‘너희들이 이긴 거야.’
그리웠다.
1만 번이 넘는 회귀를 경험하는 동안 정신은 완전히 피폐해진 상태였다.
‘싸울 수가 없어.’
어느 순간부터 그는 회귀를 멈췄다.
‘더 이상…… 에이미가 죽는 것을 볼 수가 없어.’
그저 착각 속을 살며, 친한 사람을 만나거나 이런저런 뒷이야기를 추적하는 삶.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절대로 찾아가지 못한 사람이 남아 있었다.
카르미스 에이미.
‘가 볼까?’
그녀를 만나는 순간, 살아 있는 모습을 본 순간 모든 게 무너질 것 같아서.
‘보고 싶어.’
하지만 너무 그리웠다.
상상만으로도, 이미 말라 버린 정신에 시원한 물이 스며드는 것 같아서.
“아…….”
시로네는 자신도 모르게 향했다.
“에이미.”
알페아스 마법학교.
공원을 돌아다니며 에이미를 찾던 시로네는 벤치에 앉은 그녀를 보았다.
빨간 머리를 질끈 묶은 뒷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래, 만나자.’
그렇게 발을 떼려는 순간, 저 멀리서 세리엘이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에이미!”
마치 죄를 지은 것처럼 시로네는 나무 뒤편으로 황급히 몸을 숨겼다.
에이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왜 이렇게 늦어?”
“헤헤! 미안! 늦잠 잤어.”
“하여튼.”
바쁜 일정 속에서 어렵게 만난 그들은 졸업반의 고충을 토로했다.
“월말 평가가 문제야. 특히 대인 전투. 점수가 걸려 있으니, 좋게 지내다가도 서먹해지는 거 같아.”
세리엘이 히죽 웃었다.
“히히, 나는 알지.”
“뭘?”
“시로네랑 싸우게 되는 게 걱정이지? 혹시 사이가 어색해지면 어쩔까, 하고.”
“무, 무슨 소리야. 테스트에 사적인 감정이 어디 있어? 난 그런 걸로 삐지지 않아.”
“누가 뭐래? 시로네가 삐지면 어떡하나 이 문제지.”
“시로네는!”
에이미는 말을 멈췄다.
“정말 삐질까?”
“흐음.”
친구의 앞에서는 세리엘도 진지했다.
“솔직히 말해 봐. 시로네야, 시험이야? 시험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일단…….”
“좋아해.”
에이미도 솔직했다.
“좋아한다고. 그래서 복잡하다는 거야. 그냥 같이 있으면 떨리고, 설레고. 솔직히 뭐…….”
“키스 정도는 가능?”
“그래. 아, 하지만 내가 먼저 하는 건 절대 싫어. 시로네가 싫은 게 아니라, 그…….”
“알아, 어떤 느낌인지.”
그렇게 말한 세리엘의 눈에 근심이 스쳤다.
‘말해야 하나?’
페르미를.
에이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어째 네가 나보다 더 고민인 것 같은데? 혹시 사귀는 사람?”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갈등하던 세리엘이 씁쓸하게 웃었다.
“나중에 말해 줄게. 나중에.”
결국 시로네는 에이미를 만나지 못했다.
‘다행이다.’
목소리를 들은 것만으로도 모든 의지가 무너지기 직전이었으니까.
‘왜 몰랐지?’
아니, 당시에도 알았지만 지금의 감정은 말로 설명할 정도가 아니었다.
‘만나러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여기서 더 사랑할 수는 없을 거라고,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됐는데.
“구하러 갈 거야! 반드시 살릴 거야!”
그 희망조차 붙잡지 않으면 정말로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릴 것 같았다.
“에이미.”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이름.
“에이미.”
내 심장의 형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