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60
마치 자신의 죽음이 나네에 대한 일말의 복수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져서.
“끄륵. 끄륵.”
시로네는 손에서 힘을 빼지 않았다.
‘어…….’
아련하게 멀어지는 의식의 말미에서 시로네는 문득 한 가지를 떠올렸다.
뱅가드의 점성술사.
-거대한 적이 당신을 옭아맬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스스로 목을 졸라 죽을 거예요.
‘정말이었구나.’
또한 예언이 실현되었다는 것은 여전히 신의 지배하에 있다는 뜻이기에.
“…….”
시로네는 지독한 패배감을 느끼며 사망했다.
또다시 회귀.
“흐음.”
나무 아래 앉은 시로네는 사과를 한입 베어 물며 생각에 잠겼다.
‘승산이 없는 게임이야.’
자살이 정신을 맑게 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사실을 깨달은 것은 성과였다.
‘내 죽음조차 실현되었다는 것은 어떤 방법으로도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뜻인데.’
무엇이 문제일까?
‘같은 타키온을 사용한다. 하지만 언제나 관철시키는 것은 나네야. 그 이유는…….’
수행의 난이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살리고, 나네는 죽인다. 에이미 하나만으로도 차원이 다를진대…….’
그 메타에는 전 인류의 무게가 있었다.
‘사고의 방향성이 달라. 처음에는 상관없지만 역사가 진행될수록 이 약간의 사고 차이가 엄청나게 거대한 격차를 벌리게 되는 거야.’
그래서 패배한다.
‘그럼 어떡하지? 나네처럼 누군가를 죽이는 것으로 변수를 만들어야 하나? 하지만 그럴 경우 내 사고가 나네 쪽으로 기울 수도 있어.’
공과 애는 한 끗 차이.
그 순간 시로네의 뇌리에 한 사람이 스쳤다.
‘미네르바 씨.’
어떤 상황이 와도 자신을 구원하지 말라고 했던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안 돼.’
그럴 수는 없다.
‘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니야. 어떻게 그런 말을 해? 세상을 위해 죽어 달라고…….’
기꺼이 그럴 테지만.
그로부터 밤이 될 때까지 시로네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결론을 내렸다.
“이야기라도 해 보자.”
방법이 없기도 했고, 뭐라도 의지해야 할 만큼 그의 정신도 지쳐 있었다.
‘나와 내기를 한 이후의 시간대로.’
새로운 착각에 풍경이 바뀌고, 시로네는 상아탑에 있는 미네르바를 찾았다.
“미네르바 씨?”
문을 열고 들어가자 창문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가 황급히 눈물을 훔쳤다.
“응? 뭐야, 이 시간에.”
애써 밝게 웃고 있지만 눈빛에 담긴 슬픔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이렇게 울고 있었구나.’
실제로 있었던 사건일 테지만 시로네가 경험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저는 미래에서 왔어요.”
“응?”
“설명하자면 길지만, 미네르바 씨가 힘들면 찾아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온 거예요.”
당시만 해도 세계의 비밀이 밝혀지기 전이었기에 미네르바는 황당했다.
“푸. 너, 지금 나 꼬시는 거야?”
“소원 말이에요.”
맥락이 없음에도 그녀의 표정이 진지해진 것은 마음에 담고 있었기 때문.
“아직 말하지 않았지만, 알고 있어요. 절대로 자신을 구원하지 말라, 이거죠?”
“…….”
미네르바는 의자를 꺼냈다.
“앉아.”
그로부터 날이 새도록 시로네는 앞으로 인류에게 닥칠 사건을 설명했다.
미네르바는 몇 가지 질문을 던졌으나 거의 대부분 입을 다물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알았어.”
그녀가 후 하고 숨을 내뱉었다.
“율법의 완벽성. 나네의 사고를 깨트리려면 우리 쪽에도 변수가 필요하다는 거지. 그 변수가 나고.”
“네. 하, 하지만! 정말로 그런 희생을 바라는 건 아니에요. 사실 너무 답답해서…….”
미네르바는 시로네를 끌어안았다.
“고마워, 기회를 줘서.”
“…….”
“후후, 걱정 마. 나에게 한 가지 생각이 있으니까. 이제부터 너는 다시 과거로 가서 나네가 부처가 되기 전의 나를 만나. 그리고 내 말을 전해 줘.”
“무슨 말을…….”
“훗날 나네를 만나라고. 부처는 자비로우니 외면하지 못하겠지. 자랑은 아니지만, 단언컨대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삶을 산 사람이 나일 테니까.”
시로네도 오메가를 통해 알고 있었다.
“나네는 에이미가 아닌 나를 사랑하게 될 거야. 따라서 오메가의 마지막 순간에 죽는 건 내가 되겠지. 어쩌면 역사가 제법 뒤틀릴 수도 있지만, 12사도조차 막아 내지 못할 정도의 변화이기에 통하는 거야. 무엇보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잖아.”
“…….”
여태까지의 시도 중에 가장 확률이 높은 전략에 시로네는 몸을 떨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야.’
정말로 될 것 같다.
“하지만.”
시로네는 시선을 돌렸다.
“미네르바 씨의 삶은 없어지잖아요. 한 인간의 삶이 이런 식으로 소모되는 건…….”
“후후.”
미네르바가 다시 그의 고개를 되돌렸다.
“진심이라는 거 알아. 이건 인류를 위해서야. 에이미가 살아야 모두가 살아. 그리고 이건 내가 속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 아니, 솔직히 말하면…….”
시로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그녀는 가장 감추고 싶은 비밀을 꺼냈다.
“이제 그만 끝내고 싶어.”
“…….”
절대로 씻기지 않는 육체의 수치심과, 그 분노로 저질렀던 몇 가지 재앙을.
“해 보자. 나에게 맡겨 줘.”
시로네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
전투 4일째.
쿠르르르르르.
최강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늘 꼽혔던 두 존재의 대결은 절정을 이루었다.
반경 120킬로미터, 깊이 3킬로미터로 파인 대지는 자체로 콜로세움이 되었다.
“흐흐흐.”
6개의 팔 중에 2개가 부러진 상태의 이미르가 지친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세잖아, 너?”
“…….”
유리엘 또한 성광체가 약해진 상태였다.
“이 정도로 강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천사도 각성이란 것을 하나? 아니.”
이미르의 시선이 이카엘을 향했다.
“물러설 수 없는 건가? 아까부터 계속 저 대천사를 지키며 싸우는 것 같던데.”
이카엘의 눈에 슬픔이 담겼다.
‘유리엘.’
백경의 대천사 중에서도 압도적인 무력으로 늘 의지가 되었던 존재.
하지만 그렇기에 백경의 누구보다 더 어렵고 멀게 느껴진 천사이기도 했다.
‘유리엘, 당신은 나를…….’
천사가 마음을 가질 수 있다고 믿기 전부터 마음은 존재했던 것일까?
그 사실을 외면하기 위해 유리엘은 필사적으로 중립을 지켰던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덤벼라.”
자신의 본질만을 거듭하는 것.
사법광륜-라그나로크.
하늘에서 떨어진 백색의 뇌전이 유리엘의 육체를 파괴의 개념으로 휘감았다.
이미르가 부러진 팔을 뜯어 버리고 남은 4개의 팔로 받아 낼 자세를 취했다.
“크크크! 멋지구만.”
우르르르릉!
뇌전의 천둥소리와 함께 한 줄기의 섬광이 대지를 뚫고 나아갔다.
***
시로네는 과거의 미네르바를 만났다.
증명은 쉬웠다.
“당신은 그 당시…….”
오직 본인만이 알고 있는, 절대로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가 나열되었다.
과거의 미네르바는 납득했다.
“내가 뭘 하면 되지?”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나네는 결국…….
“미네르바.”
그녀의 운명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물론 율법은 누군가를 마녀로 만들거나, 누군가를 불행하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는 마녀가 되고, 누군가는 불행해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
‘고통의 돌려 막기. 그녀가 아니었어도, 또 다른 누군가가 희생되었을 것이다.’
정말로 화가 나는 건 세상 그 자체.
‘공을 깨닫기 위해.’
나네는 미네르바를 통해 애를 깨달았고, 또다시 부처가 되었다.
그렇게 변한 역사에서.
‘할 수 있어.’
시로네는 처음으로 확신이 들었다.
‘완벽히 역사를 뒤틀었다. 이제 나네의 집착은 에이미가 아닌 미네르바 씨야.’
신을 속였다.
하지만 그 대가로 치러야 할 희생은 죽지 않아도 되었을 한 사람의 목숨이다.
‘제길!’
시로네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쩔 수 없잖아! 에이미 때문이라면 이러지 않았어! 전 인류의 미래가 걸린 일이야.’
끝없는 자기 합리화.
‘미네르바 씨도 원하고 있어. 에이미가 살 수 있어. 드디어 해냈다! 에이미! 에이미!’
오메가의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나네는 분명 미네르바를 죽이려 하고 있었다.
시로네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고.
‘내가 해낸 거야!’
뿌연 시야 속에 역사의 변화를 모른 채 적과 싸우는 에이미가 보였다.
나네를 만나지도, 불의 화신을 깨닫지도 못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에이미.’
다이안의 말이 떠올랐다.
-너는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으러 가는 게 아니야. 살아 있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거다.
“…….”
-에이미가 생각한 것들, 에이미가 선택한 것들을 존중해 줬으면 좋겠다.
무시하고 싶었다.
하지만 미네르바의 희생으로 변해 버린 에이미의 마음은 어떻게 되는가?
‘어쩔 수 없잖아.’
시간과 공간이 일치한 것이 전부라면 대체 마음은 어디에 담기는 것인가?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단 말이야!’
잃어버린 물건.
“흐으으으.”
물건을 되찾으러 가는 게 아니다.
“나무…….”
나네가 대일여래의 화신으로 미네르바의 육체를 지우려 하고 있었다.
이제 몇 초만 버티면 페르미가 이 순간을 미래와 연결시킬 테지만.
“으아아아.”
그 돌이킬 수 없는 영원 앞에서, 시로네는 결국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 에이미.”
나네의 다음 구결이 이어지기 전에 시로네는 이 순간을 착각으로 되돌렸다.
무한무의 공간.
“흐으으. 흐으으으.”
가장 고독한 어둠 속에 시로네의 울음소리가 구슬피 울려 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