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62
“시이나를…….”
“그만.”
크라운이 성대를 빼앗았다.
“함부로 다루지 마. 지금은 내 거니까. 결판이 날 때까지는 지켜보고 싶거든.”
쿠안이 인상을 찡그렸다.
“비, 비켜…….”
며칠간의 추격전으로 심신이 지친 상태인지라 이제는 크라운이 우위였다.
“할 만큼 했잖아?”
섞여 있던 두 표정이 통일되고, 크라운이 아픈 얼굴로 몸을 움츠렸다.
“아우!”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데다 멀미가 심했다.
“어리석기는. 이렇게 계속 싸우다가는 우리가 먼저 죽어. 좀 쉬고 있으라고.”
크라운이 절뚝이며 걸음을 옮겼다.
“나도 해 볼 테니까.”
***
현실의 상황은 모르지만, 시로네는 직감했다.
‘이제 기회가 없어.’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미쳤던 그의 정신 또한 되돌려 놓았다.
‘하지만 방법도 없다.’
분하지만 미련조차 갖지 못할 정도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 보았다.
‘패배인가.’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아니.”
승부가 아니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으면 좋은 거야.”
이미 인류에게 차고도 넘칠 만큼 기회를 받았기에, 이제는 돌려주어야 할 때.
‘받아들이자.’
에이미가 선택한 삶을 받아들이고, 나네와 싸울 운명인 것을 받아들이자.
‘그럼 야훼의 경지는 잃지 않아.’
비록 헥사라서, 바깥 세계에서도 그녀를 만날 수는 없을 테지만.
“에이미.”
시로네는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만나러 갈게.”
그리고 다음 순간.
모든 회귀를 통틀어, 야훼가 품은 가장 거대한 착각이 우주를 가득 품었다.
‘이 세상의 모두가 행복할 수 있도록.’
-너희의 죄를 사하노라.
허수의 시간을 타고, 타키온의 입자가 우주 전체에 그의 사랑을 전했다.
***
우르르르릉!
유리엘의 라그나로크는 이미르를 기존 성전이 있던 자리까지 밀어냈다.
마침내 정지한 그들은…….
“멋졌다.”
팔이 날아가고 어깨만 남은 이미르의 아래로 유리엘이 무릎을 쿵 하고 찍었다.
뒤늦게 도착한 이카엘과 아슈르는 파괴의 대천사가 당한 모습을 보았다.
“유리엘!”
이카엘의 목소리에 어깨를 움찔하던 유리엘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끝내라.”
어차피 곧 소멸할 테지만 차마 그녀에게 쓰러지는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그 정도는 해 주지.”
이미르가 팔을 재생시키는 그때.
지지지지! 지지지지!
강렬한 헤비메탈 사운드에 이어 사탄이 거느린 군대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
그 중심에 있는 사탄의 크기는 신장 20미터, 가분수인 얼굴은 말처럼 길었고 몸에는 지네처럼 수십 개의 다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아파! 아파아아아아!
“저건 또 뭐야?”
강해 보이는 건 다 가져다 붙인 듯한 모습에 이미르가 미간을 찌푸렸고.
“쯧쯧.”
하늘에서 지켜보던 나네가 혀를 찼다.
“……한심한 놈.”
어쨌거나 인간이 만든 업이다.
물론 세상이 닫히면, 하비츠 또한 바깥에서 나름의 대가를 치르게 될 터.
뒤를 이어 인간의 군대가 도착했다.
‘에어 프레스!’
눈이 뒤집어진 가올드가 대기를 찍어 누르자, 마족의 잔당이 쭉 짓눌렸다.
이어서 터진 강렬한 폭발 속에서, 이미르의 눈이 누군가를 찾아냈다.
“크크.”
“이야아아아!”
기계로 만든 팔로 대직도를 들고 돌진한 리안이 이미르를 그대로 치받았다.
“크하하하하!”
날아가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이미르의 목소리가 저편으로 멀어지고.
“설법.”
나네가 검지를 들었다.
“묘.”
연분홍빛 검이 마치 물고기처럼 몸을 틀더니 가올드를 향해 쏘아졌다.
‘에어 프레스!’
쿵! 쿵! 쿵! 쿵!
사방을 찍어 대는 대기압을 피해 유영하던 설법이 가올드의 심장을 겨누고.
천수관음-멸장.
드드드드드!
초당 천만 잔상에 달하는 관음의 두 손이 검을 어루만지듯 두드려 튕겨 냈다.
“짜증 나게 하고 있어.”
미로와 나네의 시선이 교차하고, 이미르와 리안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크하하하! 너희들은 이제 다 죽었다!”
전력이 분산된 것을 깨달은 하비츠가 다시 거대한 몸체를 일으키는 순간.
스트링-천변만화의 요술.
사방에서 수천 명의 손유정이 근두운을 뿜으며 달려와 그를 두드려 댔다.
-크아아아아! 또 아파!
“후우우우.”
분신을 지운 손유정이 입에서 증기를 뿜어내며 여의를 뒤로 돌려 세웠다.
상황이 합의한 소강상태에서 나네는 침착하게 피아를 식별했다.
‘선. 악. 공.’
애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에어 프레스의 폭발을 피해 반경을 벗어난 이카엘은 유리엘을 눕혔다.
“괜찮아요?”
“…….”
그녀는 알까?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그가 얼마나 자신의 본질에 충실했는지.
“미안해요, 유리엘. 사실은 나…….”
“아직도 잘 모르겠어.”
유리엘이 말을 끊었다.
“나는 파괴의 개념을 가진 존재. 그래서 당신을 부숴야 한다고 생각했지. 그런 이유로 태어났으니까. 하지만 부수지 못했어. 그게 마음일까?”
인간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일까?
“뭐, 이유가 있겠지. 내가 당신을 소멸시키지 않은 이유 말이야. 앞으로 당신이 무언가를 바꾸게 된다면, 그건 내 의지가 이어진 것이니까. 신의 지배가 아닌 온전한 나의 선택이겠지. 그래서 파괴하지 않은 걸지도.”
“그게 아니야.”
이 무뚝뚝한 대천사야.
“나를 부수지 않은 이유는…….”
이카엘의 뺨을 타고 흐른 빛의 눈물이 유리엘의 가슴에 똑, 똑 떨어졌다.
“당신이 다정하기 때문이야.”
“…….”
그런가?
잠시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유리엘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성광체가 점점 약해진다.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그는 빛으로 반짝이는 이카엘을 눈에 담았다.
‘아름답군.’
그것이 무엇이든, 우주에서 가장.
‘후후, 그래.’
존재의 마지막 순간 비로소 깨달은 사실은.
‘……어떻게 파괴하겠어?’
안 그래, 카리엘?
대천사의 성광체가 사라졌다.
빛으로 번지는 육체를 이카엘이 황급히 끌어안았으나, 이미 그는 그녀의 품을 벗어나 나풀나풀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아아…….”
이카엘은 땅을 짚었다.
“유리엘!”
또 1명의 대천사가 떠났다.
***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처음 그대로의 역사를 질주하는 시로네의 정신은 오직 사랑으로 충만했다.
‘가는 거야.’
이제는 에이미를 볼 수 있기에.
“나네!”
오메가의 마지막 순간에 도착한 그는 전력을 다해 부처에게 돌진했다.
에이미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다.
‘그것이 네 선택이라면…….’
시로네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바람을 타고 뒤로 밀려나고.
‘나도 너의 뜻에 따라 싸울 거야.’
수없이 반복했던 대일여래의 화신이 두 손을 좁히며 합장을 시작했다.
“나…….”
저곳에 에이미가 있다.
“무…….”
온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야훼의 경지를 잃지 않을 것이기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은 것이다.
“시로네!”
너무나 불가능한 목소리였기에, 시로네는 뒤를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온몸의 의식이 저절로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고, 그곳에는…….
“어?”
불의 화신, 에이미가 있었다.
“어?”
무언가를 깨달을 시간도 없이 시로네는 대일여래의 중심에 있는 자를 보았다.
미라크 미네르바였다.
“어, 어떻게?”
설마 아직도 미쳐 있는 것인가?
그래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에이미와 미네르바를 혼동하는 것인가?
그런 의문을 부정하듯 미네르바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무릎을 꿇었다.
대일여래의 손바닥이 점차 닫히고.
“나무.”
시로네를 향하고 있는 그녀가 너무나 예쁜 눈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관. 세. 음(관세음보살에게 귀의합니다).”
합장.
그리고 소멸.
나네의 눈에서 흐르는 피눈물을 본 순간 시로네는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됐다.’
이유는 모르지만, 영겁의 회귀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사건.
시공간의 진동이 느껴졌다.
‘분리된다.’
철극을 통해 공간의 좌표는 같지만, 시간 좌표는 다른 우주로 떨어져 나갈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