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64
식물의 소통 방식인 소세계창유.
-아무래도 우리, 나무로 윤회한 모양이야. 당분간은 더 여기에 있어야겠네.
-하하. 그러네.
-뭐야, 그 반응은? 나랑 하나가 된 게 싫어?
-아니. 문득 생각이 났거든. 잊어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떠올랐어.
-뭔데?
-예전에 고블린이었을 때, 어떤 점성술사를 만났거든. 내 미래가 뭐였는지 알아? 사랑에 말라 간다고, 비틀리고 썩어 간다고 하더라고.
-하하! 미래를 본 거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 점성술사, 순 엉터리였던 것 같아.
-왜? 나름 비슷한데.
-뭐…… 그렇긴 한데.
생명의 나무에 하나둘씩 열매가 맺혔다.
-이제는 목이 마르지 않거든.
공空의 시대 (2)
리차드에게 연결되어 있는 아담, 정확히 성 뇌는 본체에 신호를 보냈다.
“내 역할은 끝났군. 이제 전원을 꺼도 좋다.”
“괜찮아?”
전신이 기계라고 해도 아직 마음은 인간이었기에 리차드는 되물었다.
“릴리스의 일생을 다 봤으니 나도 남을 필요가 없지. 이 세계에 책임을 다했을 뿐이야. 적어도 거핀이 남긴 것은 지키고 싶었지.”
“바깥 세계에서 깨어나나?”
“모르겠군. 미싱 링크라는 것이 여전히 작동하는 한, 가 보기 전에는 알 수 없겠지.”
“깨어나면 어떨까? 당신이 이 세계를 도와줄 수도 있잖아. 그래도 머물던 세계이니.”
“글쎄.”
성 뇌는 잠시 생각했다.
“솔직히 자신이 없군. 어떤 좋은 꿈이라도 현실 앞에서는 금세 잊혀 버리는 법이지.”
“……그렇겠지.”
“너는 어때? 만약 시로네가 이긴다면, 이 세계에 신은 존재하지 않게 될 텐데.”
“그때는 뭐, 나도 전원을 꺼야 하지 않겠어?”
“신이 될 기회를 버리는 건가?”
“하하.”
리차드가 말했다.
“신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거거든.”
“…….”
아담이 작별을 고했다.
“그만 가야겠어.”
“그래. 부디…….”
출력이 빠지는 소리가 들리고.
“좋은 꿈이었기를.”
푸른 전기를 머금고 있던 뇌가 어두워졌다.
***
선과 악, 공과 애가 격돌했다.
“크아아아!”
인류의 연합 공격에 하비츠는 괴성을 터트리며 물러서고 있었다.
반면에 형태는 더욱 기괴해졌다.
하반신이 녹으면서 땅과 연결되고 검은 상반신에 우주가 순행하고 있었다.
“절대로 안 져! 나는 절대로 안 진다고!”
그렇지, 엄마?
하비츠와 연결된 땅이 물처럼 요동치고, 수백 개의 손이 튀어나왔다.
“큭!”
그중 하나에 손유정이 붙잡히자 그대로 땅에 처박은 하비츠가 괴음을 질렀다.
“그아아아아!”
엄청난 고통이 밀려들면서 손유정의 육체가 바싹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가올드가 미간을 찡그렸다.
“미치겠군.”
정신 상태가 혼돈이었을 때가 나았을 만큼, 그의 존재 자체가 혼돈이었다.
***
태성과 레테가 리차드의 밀실로 들어왔다.
“폭주하고 있어.”
전방에 켜진 화면에서 하비츠를 발견한 레테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히든 코드라는 것은 본래 메인 그라운드에 그대로 적용되면 안 되는 메타 코드야. 세계가 구현되기 이전에, 프로세스를 운용하는 마스터 언어거든.”
태성이 말했다.
“그것이 이면 세계고요.”
“그래. 사탄의 정의는 이면 세계의 소스를 총괄하는 중앙 통제장치. 그렇다고 해도 최종 승인 권한은 5대 시스템의 코어인 신이 가지고 있지만, 현재 하비츠는 신의 권한을 무분별하게 남용하고 있어.”
리차드가 말했다.
“가능한가요?”
“가능하지. 일루미나티라면.”
“…….”
“관리자인 나도 신 너머의 영역은 몰라. 다만 신의 데이터를 통해 추측할 뿐이지. 일루미나티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레벨의 권한일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신의 보안 규정을 이렇게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어.”
태성이 씁쓸하게 말했다.
“하비츠는…… 미싱 링크가 해제됐군요.”
“자의는 아닐 거야. 그렇다고 타의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 정상적으로 동기화한 게 아니야. 저건 불법 접속자다. 미싱 링크 신호가 약했던 거야.”
리차드는 사탄의 전투를 보았다.
“역시 어린아이일까요? 코드를 다루는 게 너무 미숙하고 직관적이에요.”
“하비츠도 이곳에서 40년 이상 살았지만 미싱 링크가 약해지면서 본래의 성향이 나오는 거지. 물론 숙련자라면 저렇게 다루지 않겠지만, 애초에 저런 짓을 할 리도 없잖아? 의미도 없을뿐더러, 사용자가 접속해 있는 세계에 대한 공격은 중죄에 해당될 테니까.”
태성이 물었다.
“하비츠의 미숙함이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요?”
“어려울걸.”
레테는 부정적이었다.
“미숙하다고 해도 신의 권한이야. 5대 시스템 전부를 이해한 인간이 있다고 해도, 성장하는 것과 이미 완성된 것을 사용하는 것은 차이가 나지. 테라포스의 말대로 선악의 대결은 악의 승리로 끝날 거야. 설령 애가 공을 이겨서 세계가 유지된다고 해도 말이야.”
“애와 공은…….”
리차드가 화면의 배경을 바꾸었다.
시로네와 나네가 400킬로미터의 거리를 유지한 채 서로에게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인간에게는 먼 거리지만 그들의 탄속을 감안하면 지척인 셈이었다.
“팽팽하군요.”
이번에는 태성이 나섰다.
“하비츠가 신의 규정을 깼다면, 나네는 신의 규정 그 자체죠. 그렇기에 옳은 것이고요.”
“복잡한 상황이지. 시로네가 이긴다고 해도 악이 승리하면 그건 사용자의 고통을 의미해. 그렇다면 당연히 이탈시켜야 되는 게 맞아.”
“그래서 테라포스가 있죠.”
리차드가 화면을 돌리자 레테가 멍해졌다.
“저건 또 뭐야?”
인류의 역사를 초기화시켜야 할 그들의 함선이 휘청거리며 날고 있었다.
태성이 말했다.
“일루미나티가 탑승했어요. 현실 세계에서 미싱 링크를 해제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럴 경우 사용자 자율 규정에 의해 처벌은 불가능하죠. 물론 바깥 세계를 알면 이곳에 미련을 가질 리가 없지만. 그런데 왜 저럴까요?”
리차드가 추론했다.
“뭔가 이 세계에 남은 게 있는 거겠죠. 어쨌거나 듣기로, 현재 이 우주는 신의 다중 우주 속에서도 유일무이하게 거핀의 신호가 들어온 곳이니까요.”
“완전 망했어.”
레테가 머리를 움켜쥐었다.
“이 우주는 난장판이야. 5대 시스템의 한 관리자로서 수치심이 든다고.”
리차드가 말했다.
“심판은 불가능할 듯 보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선악공애의 톱니바퀴 속에서 결정되겠네요. 시스템의 관리자로서, 최종 결과를 예측한다면?”
레테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신도 연산할 수 없어. 선악공애라는 것은 나침반에 적힌 방향일 뿐이야. 극에 도달한 4명이 각기 다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뿐이지. 그 중심에서 회전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태성이 말했다.
“마음.”
어디로 향할지는 인간이 정하게 될 것이다.
***
행성은 세포막에 싸인 핵 같았다.
태양 빛에 타들어 가는 안티셀의 외피에서 엄청난 가스가 발생하고 있었다.
치이이이이!
초당 수조에 달하는 개체가 불탔지만 그보다 더 많은 세포로 분열되었고, 세포막은 점점 두꺼워졌다.
점액질 안에서 난반사를 일으키며 세상을 비추던 햇빛은 점차 약해졌고.
“시로네!”
그 회색빛 하늘 아래에서.
“나네!”
야훼와 부처는 40마하가 넘는 속도로 비행하며 공중전을 벌이고 있었다.
‘포톤 캐논!’
선회의 각도에 따라 그들의 거리는 400킬로미터에서 1,200킬로미터 사이를 움직였고.
“설법.”
그 중심에서는 수만 개의 섬광과 그에 준하는 빛의 검이 교차하고 있었다.
펑! 펑! 펑! 펑!
광익을 펄럭이며 시로네는 지평선 너머에서 날아오는 빛의 검을 회피했다.
나네는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설법이 말을 대신하고 있었다.
‘아니야, 나네.’
이런 식으로 닫으면 안 되는 거야.
‘고통도 있겠지. 누군가 대신해 줄 수도 없겠지. 어쩌면 죽기를 바랄지도 모르지.’
시로네 또한 그런 삶을 살았기에.
‘하지만 이렇게 다시 살아가고 있잖아. 그것이 설령 고통스럽다고 해도…….’
핸드 오브 갓-포톤 캐논.
“행복한 날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잖아!”
태양처럼 거대한 섬광이 700킬로미터를 순식간에 주파해 나네에게 도달했다.
나네가 합장했다.
“강! 개! 구! 진! 파! 열! 극!”
설법의 조화가 엄청난 크기의 검으로 변해 포톤 캐논을 폭파시켰다.
“중! 열! 무! 비! 용! 루!”
그리고 이어서 진동하는 검이 진동의 횟수만큼이나 늘어나 쏘아졌다.
“그래.”
나네도 알고 있다.
‘태어나서 행복했던 적도 있었겠지. 광대의 공연을 봤다든지, 연인과 손을 잡았다든지.’
하지만 누군가는.
‘굶주리고. 능욕당하고! 병에 걸리고! 아무런 이유 없이 살해당하고!’
나네의 공격이 거세졌다.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데! 고작 그 한 방울의 행복을 받아먹기 위해!”
온갖 고통을 감수한 채 입을 벌리며 기다리고 있는 게 중생이라면.
“행복이라는 가혹한 환상보다…….”
욕심과 번뇌를 버리고 무상의 평온함을 취하는 게 옳은 길이 아닌가.
무지막지한 설법이 쏘아지고.
콰콰콰콰쾅!
아마도 시로네가 있는 곳, 남에이몬드 공화국 상공에서 폭발음이 터졌다.
남에이몬드 국민들은 두려움과 경이를 담은 채 빗발치는 검을 지켜보았다.
설법의 검이 너무 빛나서 시로네에게 꽂히는 장면조차 볼 수 없었다.
“야, 야훼여.”
그들은 알고 있다.
마지막 회귀에서, 시로네가 온 세상의 죄를 사랑으로 끌어안았다는 것을.
“후우우우.”
창공의 연기가 걷히고, 미라클 스트림에 휩싸인 시로네가 나직하게 내뱉었다.
“나네.”
어차피 타협은 불가능.
“그걸 정하는 건 우리가 아니야.”
***
“크크크!”
하비츠는 끝없이 진화했다.
쿵!
데스 필드가 사방에 깔리고, 저항군은 숯이 되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으아아아아!”
몸에 우주를 담고 있는 하비츠가 두 팔을 활짝 벌리며 선언했다.
“나는 신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렇지, 엄마?
위저드만 아니었어도, 이 짜증 나는 세계 따위, 박살 내 버리는 건데 말이야.
“돌격! 멈추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