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80
***
대륙표준시 10시 35분.
구스타프 제국의 부동항, 마르바샤.
휴가를 얻은 가올드와 미로는 다국적 쇼핑센터에서 아기용품을 구경했다.
“너무 귀엽다.”
작은 양말을 만지며 미소 짓는 미로를 가올드는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지금도 가끔 실감이 나지 않는다.
저 여성이 자신을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
‘전쟁이 끝나서 다행이야.’
지금은 많은 자들이 잊고 살지만, 가올드는 본래 지극한 평화주의자였다.
“꺄아아악! 저, 저기! 괴물!”
한 여자의 비명을 시작으로 사람들이 하늘을 가리키며 고함을 내질렀다.
검은 눈동자, 보랏빛 연기 같은 날개를 펄럭이고 있는 초형태가 떠 있었다.
준동경계중천사.
제2식 질투.
“히익! 악마, 저건 악마야!”
전쟁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기에 공포가 전염되는 속도는 빨랐다.
“으아아! 도망쳐! 빨리!”
사람들이 쇼핑센터를 떠나는 와중에도 미로는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가올드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뭐 해? 빨리 가야지.”
“하지만…….”
시대의 극선으로 수많은 행사에 참석했던 그녀로서는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미로야!”
일갈에 어깨를 움찔한 그녀가 돌아보자 가올드가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신 차려. 아직 무슨 일이 벌어진 건 아니야. 그러니까 일단 나가자. 너…….”
그의 시선이 배로 향하자, 얼굴이 창백해진 미로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
가올드의 손에 이끌려 따라가는 와중에도 미로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확인하지 못했을까?’
사실은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가올드에게 전부 떠넘겨 버린 것이다.
“가올드.”
“아무 말도 하지 마.”
가올드는 미로를 돌아보지 않았다.
“네가 갈등한 이유는 우리 아기이기 때문이야. 네 아기가 아닌, 우리 아기. 비난이든 뭐든 전부 내가 받을 테니까, 넌 너만 신경 쓰면 돼.”
후세를 지키려는 본능.
태초의 암수가 필멸을 대가로 얻은 분업 시스템이 그들을 이끌고 있었다.
“……응.”
***
토르미아 마법협회.
“보고해.”
루피스트가 협회장실로 향하는 가운데 플루가 서류철을 펼치고 말했다.
“성전의 브리핑 내용입니다. 대륙표준시 10시 43분경 세계 각국에 초형태의 괴물체가 나타났습니다. 크기는 직경 8킬로미터에서 14킬로미터까지 다양하며, 부속질까지 더하면 30킬로미터가 넘는 것도 있습니다. 개체 수는 총 7기이고 현재까지 특별한 적대 반응은 없습니다.”
협회장실로 들어가자 이미 도착한 알비노가 창문 앞에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
“오셨군요.”
“어디까지 알아냈지?”
플루가 조금 전의 설명을 다시 반복했다.
“흐음, 7기라. 정확한 장소는?”
“카샨의 모니사, 바이덴의 헤로디카, 구스타프의 마르바샤, 토르미아의 크레아스, 아이론의 부드라, 진천의 황도, 남방의 아루페입니다.”
행성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떠올린 알비노는 출현 지역을 선으로 연결했다.
“인위적인 패턴이군.”
“네?”
“인구 밀집 지역을 피한 것 같지만, 문명권 전체를 커버하는 포석이야.”
루피스트가 말했다.
“어쨌거나 사람이 한 짓이라는 건가요?”
“그렇지. 또한 7기라. 마치 7대 죄악에서 비롯된 7악마가 떠오르는군.”
플루가 말했다.
“그건 좀 비약 아닌가요? 7이라는 숫자에 의미는 많잖아요. 럭키 세븐도 있고.”
루피스트가 물었다.
“생각하시는 이유라도?”
“딱히. 비서실장 말대로 비약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뭐랄까, 7대 죄악이라면 교만, 질투, 분노, 타락, 탐욕, 폭식, 색욕을 뜻하는 게 아니겠나?”
알비노는 조소했다.
“그것만큼 인간적인 것도 없지.”
굴종의 낙인 (2)
***
시로네는 괴형체에게 접근했다.
수만 개의 눈동자가 움직이는 광경은 가히 형태만으로도 폭력적이었다.
‘보고 있다.’
무언가를 정의하고 있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야훼라는 개념이 부정당하는 것만은 확실했다.
따라서 위험 요소였다.
포톤 캐논을 시전하자 섬광으로 뻗어 나간 구체가 괴형체의 눈에 처박혔다.
퍼……어……엉…….
안구의 표면에 수면처럼 파문이 일며 포톤 캐논이 맥없이 흩어졌다.
“아, 그래?”
시로네는 팔을 들었다.
허공에 핸드 오브 갓이 탄생하고, 그 위로 직경 200미터의 포톤 캐논이 떠올랐다.
“소용없어.”
시로네는 고개를 돌렸다.
연녹색 머리를 기르고 입술에 피어싱을 한 남자가 허공에 떠 있었다.
눈썹이 없는 것보다도 눈에 여러 개의 동공이 박힌 다중안이 더 섬뜩했다.
“누구야, 당신?”
“제르비스.”
시로네는 오메가의 기록을 검색했다. 그리고 곧바로 양자 신호를 전송했다.
토르미아 마법협회.
루피스트와 플루, 알비노가 대책을 강구하는 곳에 빛이 응집하기 시작했다.
“동시 사건?”
모습을 드러낸 시로네가 말했다.
“주동자를 찾았어요. 이름은 제르비스. 오메가의 기록에 없어요. 저보다 늦게 태어났거나, 최근에 신원을 바꾼 것 같아요. 그걸 토대로 추적해 주세요.”
플루가 물었다.
“주동자? 어떻게 찾았는데?”
“지금 저랑 대치 중이에요. 바이덴 왕국 상공입니다. 그런데 기질이 좀…….”
뭐라고 해야 하지?
“기괴해요.”
루피스트가 말했다.
“바이덴뿐만이 아니야. 괴형체는 7기. 세계 각지에 출몰했어. 의도가 뭘까?”
“괴형체는 천사의 위상을 가지고 있어요. 7기의 천사로 관철시키려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야훼를 부정하는 강도로 보건대 마(魔)의 성향일 겁니다.”
알비노가 말했다.
“그렇다면 제거 대상이군. 자네의 앞에 있다면 처리해 버리면 되지 않나?”
“그게 좀…….”
뭐라고 해야 할까?
“기괴해요.”
바이덴 상공.
핸드 오브 갓의 포톤 캐논이 장전된 가운데 시로네가 제르비스에게 물었다.
“어째서 이런 환영을 만들었지?”
에이미가 물었다.
“환영?”
“저 괴형체는 실체가 아니야. 다만 우리가 실체와 구별할 수 없을 뿐이지. 아마도 전자를 준동시켜 착각을 일으키는 능력일 거야.”
진짜라는 착각.
“그래? 그럼 싸우면 되겠네.”
“싸울 방법이 없어.”
울티마까지 가지 않아도 제9감, 초인지를 가진 시로네는 느낄 수 있었다.
“전자를 준동시킨다는 것은 율법적 인과를 그대로 구현시킬 수 있다는 거야. 그래서 진짜와 구별하지 못하는 거지. 아마 저 녀석도 실체가 아닐 거야.”
제르비스가 비소를 지었다.
“준동경계의 핵심을 간파하다니, 역시 야훼로군. 부처를 꺾은 것도 요행이 아니야. 물론 엄밀히 따지면 울티마 시스템이 한 거지만.”
“…….”
“아, 미안하군. 폄하하는 건 아니야. 사실이 그렇다는 거지. 넌 대단한 놈이니까.”
시로네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원하는 게 뭐야?”
“글쎄? 이를테면…….”
제르비스가 화신술을 발동하자 문어의 다리처럼 생긴 것들이 꿈틀거렸다.
시로네는 화신을 분석했다.
‘축축하다. 미끄럽다.’
빨아들인다, 흐물거린다, 파고든다, 조인다, 팽창한다, 비벼진다, 쫄깃하다, 휘감는다 등.
‘따라서…….’
완벽한 마(魔)의 성향을 가진 화신이었다.
“충동적인 살의랄까?”
허공에서 튀어나온 문어의 다리가 에이미를 휘감더니 꾸득 소리를 내며 조여들었다.
“흥.”
피닉스의 불꽃.
불의 화신이 된 그녀가 문어의 다리를 녹여 버리며 제르비스에게 돌진했다.
“옷값은 톡톡히 치러야 할 거야.”
2차로 들어오는 문어의 촉수를 피해 그녀는 제르비스의 등 뒤로 돌아갔다.
“말과 달리 실력은 형편없네.”
“큭!”
목을 끌어안고 피닉스의 불꽃을 일으키자 엄청난 화염이 공간을 불태웠다.
“으아아아!”
동시에 풍경이 구겨지더니 마치 그녀의 기억 속으로 빨려 들듯 사라졌다.
전혀 다른 사건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
엄청난 기시감.
불의 화신술을 발동한 상태, 핸드 오브 갓의 포톤 캐논도 그대로였다.
오직 제르비스만이 불에 타기는커녕 멀쩡한 상태로 공중에 떠 있었다.
시로네의 말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우리는 구별할 수 없다. 이거, 진짜 위험한데.’
제르비스의 사망은 가짜가 될 수 있지만, 만약 누군가가 죽는다면 준동경계가 풀리지 않는 이상 이 세계의 유일한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제르비스가 말했다.
“파트너도 깨달은 모양이군. 그만 포기해. 너희들은 절대로 나에게 닿을 수 없어.”
“과연 그럴까?”
시로네의 말이 끝나는 순간 핸드 오브 갓에 떠 있는 포톤 캐논이 끝없이 커졌다.
“너무 여유 부린 거 아냐?”
굵은 섬광이 천사를 강타했다. 주변 대기 온도가 올라갈 정도의 속도였다.
“크……!”
반응은 그보다 느렸다.
천사의 눈동자에 거품이 부글부글 일어나더니 세 쌍의 날개가 흔들렸다.
깃털이 닭털처럼 뽑히고, 급기야 형체가 뒤틀리더니 폭발이 일어났다.
지상의 유리창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파였다.
그와 동시에, 그 모든 장면을 담은 사건이 구겨지듯 기억으로 빨려 들어갔다.
“쯧.”
시로네는 혀를 찼다.
태양이 떠 있는 곳 아래에 여전히 준동경계중천사가 부유하고 있었다.
“확실히 쉽지는 않네.”
고개를 돌리자 한쪽 눈을 찡그리며 식은땀을 흘리는 제르비스가 보였다.
“그래도 충격은 줄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