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81
“……굉장하군.”
위력으로 뚫었다.
제르비스는 진짜와 가짜를 결정짓지만, 예측을 초과하는 사건이 발생할 경우 본인의 정신에도 충격이 가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작 쇼크다. 물리적인 충격이 아니야. 그런데도 이 정도 대미지라니.’
정신이 아찔할 정도였다.
시로네가 말했다.
“뭘 하려는지는 모르지만 그만둬. 너도 무적은 아니야. 후회하게 될 거다.”
“크, 크크크.”
제르비스가 고개를 들었다.
“희망 사항인가? 너도 사실 알고 있잖아? 내가 굳이 네 앞에 나타날 이유가 없다는 걸 말이야. 위저드 다음으로 널 찾은 이유가 뭘까?”
‘위저드에게 갔었나?’
그런데 어째서 협회에 보고하지 않았을까.
“보여 주마.”
제르비스가 두 팔을 펼치자 세계 각지에 흩어진 7기의 천사가 작동했다.
도합 수십만 개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며 율법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나는 제르비스다.
인류의 뇌파에 똑같은 신호가 흘렀다.
-이제부터 너희에게 굴종의 낙인을 찍을 것이다. 나에게 굴종하는 의지를 갖는 순간 신체 특정 부위에 숫자가 새겨진다. 그것이 바로 굴종의 징표이며 나에 대한 충성도를 가늠하는 순위가 된다.
모든 인간이 듣고 있었다.
-순위가 낮은 자는 더 높은 순위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다. 어떤 수단으로도 해칠 수 없다는 뜻이다. 칼도, 함정도, 독약도 소용없다.
시로네는 황당하게 듣고 있었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런 짓을 해서…….”
미카의 신호가 뇌파에 접속되었다.
-울티마 시스템 가능성 감지.
“뭐?”
육성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굴종의 낙인을 찍은 자들의 숫자가 전체 인구의 17.8퍼센트를 넘어섰습니다. 현재 18.7퍼센트. 19.3퍼센트. 19.9퍼센트. 상승 속도만 고려했을 때 대략 36분 뒤에 울티마 시스템에 도달합니다.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상 유례없는 속도로 사용자 코드가 모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오호, 이런 기분인가?”
시로네가 고개를 들자 제르비스의 몸에서 보랏빛 광채가 커져 가고 있었다.
“설마, 너…….”
제르비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쉬운데, 울티마?”
***
토르미아 마법협회.
“제르비스는 울티마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거예요. 지금 성전에 알려서……!”
시로네의 육체가 사라졌다.
그가 있던 자리를 한동안 지켜보던 플루가 생각을 정리하고 말했다.
“동시 사건을 막았어요. 인류가 다시 야훼를 중심으로 뭉칠 가능성 때문이겠죠.”
알비노가 동의했다.
“최후의 전쟁 당시에도 큰 역할을 했지. 준동경계로 사건을 말소시킨 모양이군. 그렇다고 해도 이토록 쉽게 할 수 있다니, 과연 울티마인가?”
루피스트가 말했다.
“문제는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 정도라는 겁니다. 얼마나 걸릴까요?”
“그럼 슬슬 우리도 확인해 볼까?”
알비노는 손등을 내밀었다. 3101이라는 숫자가 낙인으로 찍혀 있었다.
루피스트가 말했다.
“빠르군요.”
“듣자마자 선택했지. 그럼에도 3천 번대라. 생각의 속도도 중요하지만, 굴종이라는 표현에 대한 심리적인 거부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거야.”
루피스트는 왼쪽 아랫팔을 드러냈다. 43399라는 굴종의 낙인이 찍혀 있었다.
“알비노 씨와 몇 초 차이 안 났을 겁니다. 그런데도 4만 3천 번대. 심각할 정도로 빨라요.”
플루가 말했다.
“일단 저는 안 찍는 쪽으로 가 볼게요. 어차피 유의미한 순위를 얻기는 늦었으니까요.”
제르비스의 신호가 이어졌다.
-굴종의 낙인을 찍지 않은 자는 불가촉천민이다. 그들은 이단으로 간주, 마음껏 죽여도 좋다. 너희들에게 어떤 보복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플루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정신병자 아냐? 고작 이딴 룰로 사람들이 전부 살인자가 될 줄 아나?”
“상위권의 성향에 달렸지.”
알비노는 낙인을 보았다.
“검증하기 위해 무조건 낙인을 찍을 수밖에 없었던 나조차도 잠깐 주저했어. 심리적인 장벽. 평범한 사람들은 굴종이라는 단어 앞에 판단을 미룰 거야. 그렇다면 현재 상위권을 이루는 자들의 성향은?”
루피스트가 말했다.
“체제를 전복시킬 마음을 품고 있던, 평범하지 않은 부류라는 거군요.”
날마다 분노를 쌓아 온 자들.
“뭐,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지켜보면 알게 되겠지. 어쨌거나 이런 식이라면…….”
알비노는 수염을 꼬았다.
“인류도 오래 버티지는 못하겠군.”
***
용뢰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이루키!”
네이드가 들어오고, 데이지를 품에 안은 리즈가 황급히 문턱을 넘어섰다.
“아.”
도로시가 그들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도 혼란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으앙! 도로시 이모.”
엄마의 품에서 빠져나온 데이지가 아장아장 달려가 도로시에게 안겼다.
“무서워요, 이모. 자꾸 무서운 소리가 들려요.”
도로시는 아이의 등을 토닥거렸다.
“괜찮아. 우리 꼬맹이, 많이 놀랐지? 그냥 방송 같은 거야. 누구도 너에게 나쁘게 못 해.”
이루키는 책상을 짚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리즈를 보았다.
“오셨어요.”
“죄송해요, 허락도 없이 불쑥 찾아와서. 하지만 근처에 안전한 곳이 여기밖에…….”
네이드가 말을 끊으며 다가갔다.
“제길! 늦었어! 이것 좀 봐.”
종아리 쪽을 걷어 올리자 354762201라는 굴종의 낙인이 세로로 찍혀 있었다.
“3억 5천만 등이야. 처음에는 무슨 개소리를 하나 싶었는데 불가촉천민에 대한 룰을 듣고 낙인을 찍었어. 이런 식이라면 데이지는 꼼짝없이 당하는 거잖아.”
4살 아이가 판단할 일이 아니었다.
리즈가 말했다.
“저도 네이드와 거의 동시에 했어요. 그런데도 3억 9천만 번대. 회사 사람 중 절반이 우리보다 높아요. 아직 심각한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분위기가 이상해서 일단 데이지를 데리고 빠져나온 거예요.”
네이드가 물었다.
“이루키, 너는? 낙인 찍었어?”
“그래.”
“몇 번이야?”
잠시 생각하던 이루키는 소매 단추를 풀고 오른쪽 손목 안쪽을 내밀었다.
숫자가 적혀 있었다.
2.
네이드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희열인지 짜증인지 모를 만큼 얼굴이 구겨지고, 시선이 다시 이루키에게 향했다.
“미친……놈.”
이루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심각한 표정으로 테이블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겨 있을 뿐이었다.
굴종의 낙인 (3)
시간이 흐른 뒤, 이루키가 말했다.
“울티마인가?”
“뭐?”
“순위 시스템으로 멸망하지는 않을 거야. 굴종의 낙인만 찍지 않았을 뿐 사회는 비슷하게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당장은 소요가 크겠지만 또 적응하게 되겠지. 늘 하던 대로.”
힘의 논리에 의해.
“하지만 굴종의 낙인은 심각해. 더 높은 순위를 얻기 위해, 혹은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낙인을 찍은 자는 제르비스에게 굴종하기로 마음을 먹은 거야. 지금의 시스템하에서 스스로 선택한 결과라고.”
“어, 어라?”
네이드도 깨달았다.
“그럼 제르비스라는 놈이 울티마를 갖게 된다는 거야? 고작 이 정도로?”
“울티마는 이론상 어렵지는 않아. 모두가 조금만 양보하면 된다는 그 사실 하나, 그걸 해내지 못해서 여태까지 인류가 이 지경으로 사는 거지. 하지만 놈은 그걸 관철시켰어. 자신이 만든 시스템으로.”
네이드는 이루키의 말을 곱씹었다.
다른 생각을 해 보려고 해도 이게 맞았다.
“……천재적인데?”
“전혀.”
이루키는 책상에서 벗어났다.
“악의 방법론이 그만큼 쉽고 빠르고 효율적인 것뿐이야. 시로네는 인정하지 않을 거야. 어쨌거나 상황이 어려워졌어. 내가 1등을 했어야 했는데. 제길! 2등이라니.”
“그래서 화가 난 거였냐?”
얘기를 듣고 보니 이해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괴짜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2등도 엄청난 거야. 그러고 보니 너, 대체 얼마나 빨리 낙인을 찍은 거야?”
“어제 단테가 왔어.”
이루키가 말했다.
“심각한 안건을 들고 왔는데, 언제 무슨 일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겠다 싶었지. 긴장 상태였고, 생각의 속도도 내가 더 빨랐을 거야. 그런데도 2등. 따라서 현재 1등은 평생 이 순간만을 망상하며 살아온 놈이 아니면 설명이 안 돼. 즉, 상상을 초월하는 미친놈이야.”
네이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상상을 초월하는 미친놈.’
누구인지는 몰라도, 이제 인류는 절대로 그자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는 것이다.
***
“미카.”
시로네가 읊조렸다.
-네.
“현재 낙인을 찍은 자들의 숫자는?”
-8억 9,331만 7,432명입니다.
“후우.”
식은땀이 흘렀다.
‘벌써 70퍼센트를 넘겼다. 남방의 엘리키아를 빌린다고 해도 상대가 안 돼.’
제르비스의 신호에 인류가 어떻게 반응했을지는 대략 상상이 갔다.
‘주위의 누군가가 선택하면, 자신도 선택할 수밖에 없어. 한 단계라도 더 높은 순위를 받기 위해. 그런 경쟁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거야.’
낙인을 찍은 자들이 충분히 많아지면 남은 건 불가촉천민뿐이다.
‘제르비스에게 굴종하지 않은 자들. 낙인을 찍은 자들의 입장에서는 곱게 보일 리가 없어. 지배하려 들겠지. 그렇게 사냥이 시작되고…….’
불가촉천민 중에서 살기 위해 낙인을 찍는 자들이 다시 추가된다.
‘그런 현상이 반복되면…….’
울티마는 완성된다.
시로네는 피가 거꾸로 도는 기분이었다.
악의적인 시스템도 그렇지만 인간 심리를 다루는 정교함에 더 짜증이 났다.
제르비스가 물었다.
“억울한가?”
현재 그의 육체에서는 보랏빛 오라가 엄청난 크기로 승천하고 있었다.
“야훼의 기분이 궁금해서 말이야. 이거 하나 때문에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잖아?”
“오래갈 수 있을 것 같아?”
통합적 정신 체계를 유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시로네가 가장 잘 알았다.
“상관없어, 통합 따위. 내가 필요한 건 힘이니까. 죽이고 싶은 만큼 실컷 죽이면 인류도 별로 안 남겠지. 그때는 다시 넘겨줄 수도?”
시로네의 눈이 부릅떠졌다. 수천 개의 포톤 캐논이 주위에서 발광했다.
제르비스가 손을 내밀었다.
“이제는 안 돼.”
포톤 캐논의 숫자만큼 많은 문어의 다리가 시로네를 향해 날아들었다.
“울티마는 나에게 있거든.”
두 사람의 능력이 충돌하고, 천지를 뒤흔드는 충격파가 구름을 흩날렸다.
제르비스가 모습을 감추자 에이미가 다가왔다.
“쫓아갈까?”
“몇 번을 죽여도 마찬가지야. 울티마가 저쪽에 넘어갔으니 우리도 시스템에서 자유롭지 않아. 일단 굴종의 낙인부터 대책을 세워야지.”
“순위 경쟁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거네. 우리 쪽에 상위권이 얼마나 있을까?”
아예 없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그보다 먼저 확인을 해야 할 게 있었다.
“미카.”
-네.
“1등이 누구야? 지금 어디 있지?”
-굴종의 낙인으로 1번을 받은 자는 스톡 리퍼입니다. 6년 전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지금은 갈론 왕국의 모스코 감옥에 수감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