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89
성음은 에이미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개운치 않은 듯 작게 중얼거렸다.
“뭐, 상관은 없다만.”
이루키가 말했다.
“큰 틀이 정해졌으니, 구체적인 전략을 세우죠. 각각의 동선과 일정, 연락 방법은…….”
회의는 3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결론이 났을 때는 이미 저녁을 넘긴 시간이었다.
“밥 먹고 합시다.”
누군가의 말에 건조한 웃음이 터지고, 다들 일어나 회의실을 나가기 시작했다.
네이드는 이루키에게 다가갔다.
“같이 먹자. 간단히 술이나 한잔하게. 스트레스받아서 안 되겠다.”
“무슨 스트레스? 넌 임무도 없잖아.”
“술 먹고 싶은 스트레스. 리즈가 싫어하거든. 그래도 너랑 마신다고 하면 좀 괜찮아.”
“너 도대체…….”
“아, 몰라. 그냥 좀 가, 빨리. 찬스 카드 한 번 쓸게. 그럼 됐지?”
찬스 카드가 뭐야?
도로시와 리즈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어디 가?”
“응? 아, 그게, 이루키랑 상의할 게 있어서. 둘이 먹고 있어. 금방 올게.”
문밖으로 떠밀린 이루키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 갔다 올게!”
두 여자는 황당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
루피스트와 플루는 용뢰의 접객실에서 휴식을 취하며 곧 있을 성전을 기다렸다.
화장대 앞에서 귀걸이를 착용하던 플루가 거울을 통해 바라보며 물었다.
“위저드 말이에요, 정말 괜찮을까요? 아무리 시로네가 따라간다고 해도…….”
“힘들겠지. 시로네의 말을 들어 보면 무한무라는 것은 신의 개념을 초월하니까.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면, 그 신을 누가 창조했냐는 의문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무한무는 달라. 인간이 할 수 있는 질문의 끝이니까. 위저드의 두려움은 그런 레벨이야.”
“그렇다면 시로네에게 맡기는 게 낫지 않아요? 아무리 위저드가 시로네보다 강하다고 해도, 지금 이 상태로는 임무 수행이 어려울 텐데.”
“흐흐.”
루피스트가 웃었다.
소리 내어 웃는 경우를 손에 꼽는 그이기에 플루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왜요?”
“아니, 농담이 지나쳐서. 자네도 위저드가 시로네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나?”
“음, 그야, 화두였잖아요. 스승과 제자 사이고, 각자의 장기도 다르니까. 그래도 사람들은 6 대 4 정도로 위저드의 승률이 높다고 보던데요.”
“승률은 무슨. 고양이 영역 다툼도 아니고.”
“하하! 그래도 궁금하잖아요. 협회장님은 어때요? 만약 두 사람이 맞붙는다면?”
“흐음.”
루피스트는 다리를 꼬았다.
“개인적인 생각을 묻는 거라면, 100번 싸울 경우 100번 다 시로네가 이기겠지.”
“네?”
의외의 말이었다.
“위저드의 상태가 안 좋기는 하지만 그런 걸 배제해도 내 생각은 똑같아. 위저드는 강하지 않아. 하지만 시로네는 강하다. 그 녀석이 최강이야.”
“그래요? 하지만 무상신은 정말 사기잖아요. 시로네도 꽤 버거울 거 같은데.”
“그래서 의미가 없다는 거야.”
플루에게 다가간 루피스트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올려 목덜미를 살폈다.
최후의 전쟁 당시, 데스 필드에 당한 화상의 잔재가 남아 있었다.
“아팠나?”
“그야 뭐…….”
플루가 어색하게 몸을 빼냈다.
“고통은 인간을 나약하게 만들지. 하지만 너는 당당하게 소리쳤어, 토르미아 마법협회의 비서실장이라고. 만약 비슷한 상황이 또 벌어진다면, 너는 똑같이 할 수 있을까?”
플루는 눈을 굴리다 대답했다.
“아마도?”
“왜지? 두렵지 않나?”
“그렇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게 제 일이잖아요.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거.”
루피스트는 피식 웃었다.
“그래. 그래서 넌 강한 거야.”
플루는 제4급 마법사로 승진했지만, 실력에 비해 과분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진심이세요?”
몸을 돌린 루피스트는 창가로 향했다.
“예를 들어 가올드, 그 녀석의 행보에는 늘 드라마가 있지.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야. 그래도 인정하는 이유는 강하기 때문이다. 미로는 좀 애매하더군. 쿠안도 그랬고. 리안? 그 녀석은 진짜 강하다. 오늘도 소름이 돋았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시로네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야.”
느낌은 알 것 같았지만, 그녀가 생각한 전투 역량과는 다른 분석이었다.
“의외네요. 전 반대로 생각했거든요. 협회장님이 생각하는 강함의 기준이 뭐예요?”
“기준이라.”
마치 오래된 서고를 정리하듯 생각에 잠긴 루피스트가 플루를 돌아보았다.
“강하다는 것은…….”
히든 코드 (2)
***
자정을 1시간 앞둔 시간.
단테는 토르미아 관료들을 이끌고 대형 공간 이동 마법진 앞에 섰다.
“30분 뒤부터 각국 VIP들이 순차적으로 도착할 겁니다. 동선 꼬이지 않도록 하세요.”
성전 가입 국가는 총 8개국으로 규모는 줄었지만 기 싸움은 여전했다.
“네. 걱정 마십시오.”
단테는 시계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상아탑은 움직이지 않아. 어떻게든 오늘 회담에서 타국과 협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현재 상아탑에서는 제르비스의 울티마를 두고 진의(眞意) 논쟁에 한창이라고 들었다.
‘하여튼…….’
10년이 지나도 바뀌지를 않아.
그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부하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일렀다.
“팀장님, 시간 됐습니다.”
단테는 발을 모으고 옷깃을 정리했다.
공간 이동 마법진의 붉은 빛이 규칙적으로 점멸하는 가운데 5분이 지났다.
“흐음.”
어디까지나 허용 한도였기에 단테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다시 기다렸다.
하지만 20분이 지났을 무렵에도 공간 이동 마법진의 색깔은 바뀌지 않았다.
댕. 댕. 댕.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에, 곁을 지키던 부하가 창백한 얼굴로 속삭였다.
“팀장님.”
“…….”
단테는 말이 없었다.
굳이 듣지 않아도 지금의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성전은 열리지 않는다.
토르미아를 제외한 나라들은 이번 사태로 인해 토르미아가 멸망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단테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현장 정리해. 국왕님께 보고 드리겠다. 정보부 직원 전원 소집하고, 플랜 C로 전략 수정해.”
“하, 하지만 팀장님!”
단테는 기관실을 나섰다.
빠르게 걸어가던 그가 복도 중앙에 우뚝 정지했다.
“하아.”
숨을 토해 내는 것도 잠시, 갑자기 몸을 틀더니 서류 뭉치를 벽에 집어 던졌다.
그러고도 모자라 성큼 다가가서 구둣발로 벽을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젠장! 젠장! 젠장!’
플랜 C를 상정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진짜로?
인간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마지막 신뢰마저 무너진 기분이었다.
‘지긋지긋하다, 진짜.’
옷깃을 뜯어 버릴 듯 좌우로 잡아당긴 그가 복도를 걸어가며 고개를 쳐들었다.
“으아아아!”
고함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
야크마 공화국 접경지대.
수십만의 인파가 모닥불을 피우고 야영을 하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세계지도국인 토르미아를 전복시키기 위해 리퍼를 따라 남하한 사람들과, 성전 가입국에서 은밀히 지원한 고위 마법사들과 검사들이었다.
“으, 추워. 불 좀 쬡시다.”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 모닥불에 감자를 구웠다.
당장은 불편하지만 토르미아를 함락시키면 전에 없던 부를 얻게 될 터였다.
또한 그들 가운데에는, 그저 갈 곳이 없어 합류한 맥버크와 피드로도 있었다.
“야, 먹어라.”
피드로가 감자를 던졌다. 무심코 받아 든 맥버크가 뜨거움에 화들짝 놀랐다.
“앗, 뜨!”
“하하하!”
불가에 앉은 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피드로가 무릎을 치며 말했다.
“사내자식이 호들갑은. 제일 큰 거 양보한 거야. 많이 먹어야 힘쓰지.”
맥버크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받은 감자를 땅바닥에 세게 패대기쳤다.
“지랄하네.”
피드로의 표정이 굳었다.
그러고 보니 남하하는 내내 맥버크는 말수가 줄었고 차가운 태도였다.
“왜 그래, 너? 아까부터.”
피드로의 말에 맥버크는 오히려 의문스러웠다. 정말 몰라서 저러는 것인가?
결국 맥버크가 물었다.
“너, 나한테 뭐 할 말 없냐?”
“뭘?”
피드로는 결백한 눈빛을 보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심지어 답답하다는 듯.
이런 식이면 맥버크도 할 말은 없다.
어째서 굴종의 낙인을 먼저 찍었냐고 물어봤자 뻔한 대답만 나올 터였다.
“비겁한 자식.”
이번에는 피드로의 얼굴이 붉어졌다.
“야! 도대체 뭐가 문제야? 불만이 있으면 말을 하라고! 내가 만만하냐?”
“그래, 좋겠다. 3억 2천만 어쩌구라 좋겠어. 아주 대단한 순위 납셨네.”
“개자식이!”
피드로는 맥버크에게 태클을 가했다.
맥버크도 주먹을 휘둘렀으나 어차피 굴종의 낙인에 의해 충격은 없었다.
“그래, 죽여! 죽이라고!”
“뭐! 내가 뭐!”
둘 다 악을 질렀다.
마치 차가운 속내를 들키지 않기 위해 더욱 과장스레 화를 내는 듯했다.
“무슨 일이죠?”
왜소한 체구의 소년이 다가왔다.
613번이라는 높은 순위로 리퍼에게 직접 간택을 받은 알루아라는 학생이었다.
알루아의 발등에 새겨진 숫자를 본 사람들이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우, 우리는 몰라요. 저자들이 갑자기…….”
“그게 중요해요? 말리세요.”
지시가 떨어지는 즉시 사람들이 달려들어 맥버크와 피드로를 떼어 놓았다.
알루아가 말했다.
“저는 폭력을 싫어합니다. 다시는 제 앞에서 이런 모습 보이지 않도록 하세요.”
두 사람이 여전히 씩씩대는 가운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고개를 숙였다.
“아, 예. 죄송합니다.”
한편 건너편 모닥불에서 그 광경을 처음부터 지켜보던 소녀가 있었다.
“어? 알루아잖아?”
“아는 사이니?”
“우리 학교 애야. 엄마, 잠깐 갔다 올게. 어디 가지 말고 아빠랑 여기 있어.”
소녀는 자리를 박차고 알루아에게 향했다.
“야! 나 알지?”
“제, 제니?”
물론 알고 있다.
같은 반은 아니지만 유명한 귀족 가문의 자제인 데다가, 무엇보다 알루아를 괴롭히던 무리의 대장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니는 알루아의 발등을 보았다.
“우와! 너, 613번이야?”
“어, 일단 그렇기는 한데…….”
제니가 대단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드레스를 내려 어깨를 드러냈다.
“나는 6천만 번대야. 근데 집사들은 전부 우리 가족보다 높다? 완전 망했지 뭐.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