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9
“그래서 약쟁이 됐니? 눈은 완전히 맛이 가 가지고, 그래서 칼이나 제대로 잡겠어? 지금 네가 할 줄 아는 게 뭐야? 대체 나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뭐냐고?”
팔코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다들 똑똑히 들어. 깡패 짓이 하고 싶으면 나가서 해. 그런 놈들 미련도 없고, 붙잡지도 않을 테니까. 앵무의 이름을 걸었으면 무조건 내 말에 따르는 거야. 불만 있는 놈들은 떠나. 돈이나 펑펑 쓰면서 여생 보내라고.”
부하들은 순한 양처럼 입을 다물었다.
이 중에서 사연 없는 단원은 없었고, 마르샤는 그 삶의 종착지에 선 자들을 모두 끌어안았다.
애초에 떠날 곳이 있었다면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기에, 용병단 전원에게 타락한 성모는 살아가는 유일한 의미인 셈이었다.
정적 속에서 프리먼이 고개를 숙였다.
“단장님, 언제 돌아오셨습니까?”
“루카스가 다시 체포됐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출발했어. 그놈은 보나 마나 은신처를 불어 버릴 테니까. 조만간 이곳도 정리해야 할 거야. 떠날 채비해.”
마르샤는 쓰러진 팔코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겁에 질린 유나를 보며 물었다.
“팔코아, 분명히 말했을 텐데. 살인은 전쟁에서만. 우리는 민간인과 섞일 수 없다고.”
“흥, 이쪽도 사정이 있었어.”
“사정이라…….”
마르샤가 시선을 들자 팔코아의 너머에 있는 프리먼이 어깨를 으쓱했다.
“좋아, 들어 보지. 그 사정이라는 것이 진짜 짜릿한 게 아니면 각오해야 할 거야.”
팔코아는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그녀 앞에서 거짓말은 소용이 없기에 결국 입을 열었다.
“어린놈들이었어.”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했다.
관리하는 호객꾼이 금화를 패대기친 일. 그것으로 얽혀 에이미를 주점에 부른 일. 시로네 일행이 쳐들어와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까지 갔던 일.
“참을 수가 없더라고. 단장도 내 성질 알잖아. 그리고 이건 민간인도 아니야. 그 녀석들 검사가 2명에 마법사가 2명인데, 실전 경험이 있는 놈들이야. 이상한 마법까지 쓴다고. 이러면 해도 되는 거잖아?”
“흐음.”
마르샤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유나는 그동안의 사정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오빠가…….”
그녀를 살핀 마르샤가 고개를 되돌렸다.
“그래서 이 아이를 납치했다?”
“어쩔 수 없잖아. 놈들은 귀족이니까. 바깥에서 처리하면 용병단이 위험해. 나도 머리를 쓴 거라고.”
“넌 그냥 머리를 쓰지 마. 한심하긴. 약이나 빨고 있으니 애들한테 당하지.”
팔코아는 울컥했다.
“……할 말은 없지만 그 녀석들은 정말로 강해. 내가 약해진 것과는 별개로 말이야.”
“알아.”
마르샤가 일어섰다.
“너를 찾아온 일행 중에서 금발 머리 말이야. 혹시 이름이 시로네 아니야?”
분명 그렇게 들은 듯했다.
“어떻게……?”
마르샤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
“역시 내 촉은 정확하다니까. 하긴, 그 녀석이라면 꽤 애를 먹었을 수도 있겠어.”
프리먼이 물었다.
“아는 사이인가?”
“아니, 그냥 좀……. 아무튼 그건 됐고. 뭣들 하고 있어, 적이 쳐들어오는데 준비 안 하고?”
“정말로 이곳으로 올 거라고 생각하나? 인질이 있다고 해도 아무 상관 없는 호객꾼의 동생일 뿐이야. 게다가 귀족이지. 귀족은 그런 일로 움직이지 않아.”
마르샤는 확신했다.
“올 거야.”
소름 돋을 정도로 위선적인 인간이니까.
“자, 자! 우리도 시작하자. 단원들 전원 무장하고, 30분 뒤에 아지트 앞으로 모여. 아, 그리고 팔코아 너는…….”
마르샤는 팔코아를 돌아보았다.
“어떡할래? 요새 잘나가잖아? 아예 이참에 전직하는 게 어때? 사업가로 말이야.”
“비꼬지 마. 가져가고 싶은 게 있으면 다 가져가. 나는 그 녀석들을 도륙 내고 싶을 뿐이야.”
“……가 봐.”
앵무에서 쫓겨나는 건 면했지만 마르샤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 사실이 불쾌한 팔코아가 창고를 나서려는데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약 끊어. 또 하다가 걸리면 진짜 죽는다.”
“…….”
팔코아는 대꾸하지 않았으나 마르샤는 알고 있었다.
그는 약을 하지 않을 것이다. 피와 고통, 공포가 가득한 전장으로 그를 데려다줄 사람이 돌아왔으니까.
단원들이 모두 빠져나가자 프리먼은 비로소 마르샤를 단장이 아닌 고향 친구로 대했다.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다. 한참이나 연락이 안 돼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마르샤의 미간이 구겨졌다.
“멍청아, 도망치느라 바쁘니까 연락을 못 하지. 하여튼 너희들은 생각이 없어. 그나저나 팔코아는 어떻게 된 거야? 저래 가지고 써먹기나 하겠어? 원래부터 미치긴 했어도 칼 쓰는 솜씨는 좋았는데.”
“팔코아만 탓할 수는 없어. 놈에게서 전장을 뺏은 건 우리니까.”
“아니, 나겠지.”
“그래도 덕분에 군자금을 모을 수 있었어. 네가 돌아오면 언제라도 타국으로 떠날 수 있게끔 준비는 해 두었다.”
“또다시…… 도주인가.”
얼마든지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열일곱 살에 집을 나서며 고향 친구인 프리먼과 여태까지 꾸려 온 용병단이었다. 비록 정치적인 계략을 당해 평생의 기반을 잃었지만 그녀에게도 앵무는 유일한 집인 셈이었다.
“씁쓸하네.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다른 일도 아니고 국가에 배신당한 몸이야.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잖아.”
“그래. 할 수 있는 건 뭐든 해 봐야지. 설마하니 너도 망가진 건 아니겠지?”
프리먼은 단호했다.
“전투 능력은 늘 최상으로 유지하고 있어. 마르샤, 나는 앵무에서 바라는 게 아무것도 없어. 오직 네가 행복해지기만을 바랄 뿐이야.”
마르샤는 소름이 돋았다.
“으…… 닭살. 넌 좋은 말도 토 나오게 하는 능력이 있더라. 꼭 그런 식으로 얘기해야 돼?”
“사실이니까.”
프리먼은 어릴 때부터 마르샤에 대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진실로 고역이었고, 그럴 때마다 마르샤는 성질을 냈다.
“왜? 네가 뭔데 내 행복을 원하는데?”
“너는…….”
뻔히 알면서도 묻는 질문에 프리먼은 잠시 고심하다가 적합한 말을 찾아냈다.
“우리의 단장이잖아.”
마르샤는 콧방귀를 뀌었다.
잠시 대화를 나누어 보니 프리먼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듯했다. 예나 지금이나 복장 터지게 하는 건 그대로였으니까.
프리먼이 물었다.
“그나저나 어떡할 거야? 정말 그 애송이들과 싸울 건가?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는다는 게 용병단의 원칙이지만 이번엔 상황이 달라. 명백히 팔코아가 오버한 거고, 앵무 전체가 움직일 필요는 없어.”
“그것도 알아.”
미적지근한 대답에 프리먼이 다시 물었다.
“말하지 않은 게 있나?”
마르샤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녀가 가끔 이런 눈을 할 때면 프리먼의 심장도 빠르게 뛰었다.
“프리먼,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뭐지?”
“위선.”
고민할 필요도 없는 이유는 마르샤의 지옥 같은 시간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마르샤의 능력이 유효한 이상, 당시의 트라우마는 평생 사라지지 않고 끝없이 정신을 왜곡시킬 터였다.
“그런 쪽인가? 네 삶에 가장 우선하는?”
견딜 수 없는 분노.
“시작하자.”
마르샤는 자리를 떠나 창문으로 향했다. 어느새 단원들이 무기를 들고 아지트 앞에 집결해 있었다.
“시로네, 금발 머리는 꽤 할 거야. 그 녀석이 내 주요 타깃이지. 다른 놈들은 알아서 처리해도 좋아. 팔코아의 말대로라면 꽤 실력이 있는 것 같은데.”
“흥, 그건 놈이 게을러서지. 그 녀석이 약이나 하는 동안 나는 아지트를 요새화시켰어. 마법진과 마법 무구를 활용한 전술적인 부분도 훈련시켰다. 어지간한 실력이 아니고서는 1차 관문에 도착하기도 전에 죽을 거야.”
“그건 그것대로 괜찮고.”
마르샤는 시로네의 얼굴을 떠올렸다.
선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만이 기억에 남은 전부였다.
강행 돌파(3)
‘이제 곧 죽일 수 있어.’
시로네의 얼굴이 양부와 겹치더니 세상 모두의 얼굴이 되었다. 미소는 섬뜩했다.
피가 빠르게 돌았다.
이건 분노일까, 설렘일까, 공포일까?
어쩌면 그 무엇도 아닌 한 인간의 뒤틀린 감정일 터였다.
차가운 표정을 지운 마르샤는 다정하게 눈웃음을 지으며 유나를 돌아보았다.
“후후,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면 좋겠다, 그렇지? 그 애송이가 내 얼굴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거든.”
“살려 주세요. 집에 보내 주세요.”
겁에 질려 벌벌 떠는 모습을 본 마르샤가 유나를 끌어안고 등을 다독였다.
“무서워하지 마. 넌 괜찮을 테니까.”
“집에 보내 주실 건가요?”
“당연하지. 지금은 밖이 좀 소란스러우니까 다 정리되면 데려다줄게. 그러니까…….”
마르샤가 머리를 쓰다듬자 유나의 눈이 점차 감기며 초점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어? 어?”
눈을 감았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유나의 귓가에 몽롱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은 좀 자고 있어.”
마르샤는 기절하듯 잠에 빠진 유나를 천천히 바닥에 눕혔다.
그녀의 목에 걸린 목걸이가 보였다. 한눈에도 싸구려지만 손때가 묻어 있었다.
“이건 빌려 갈게.”
목걸이를 당겨서 끊은 그녀가 다시 일어나 프리먼을 돌아보았다.
“방으로 데려가. 애들 통제해서 전투준비 하고.”
“나는 이곳에 남는다. 너의 곁을 지키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두 번째 돋는 소름에 마르샤의 미간이 구겨졌다.
물론 용병단의 창단 멤버로서 그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적당히 해. 그런다고 내가 너한테 갈 일은 없으니까. 빨리 나가서 애들이나 이끌어!”
프리먼이 고집스럽게 자리를 지키자 마르샤가 씩씩대며 엉덩이를 떠밀었다.
“짜증 나게 하지 말고 나가라고! 나가! 나가!”
몇 번이나 앞으로 떠밀린 프리먼은 결국 잠에 빠진 유나를 두 팔로 안아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침묵을 지키며 유유히 창고를 벗어났다.
***
아침이었다.
북쪽 숲의 초입에 도착한 시로네 일행은 인적 없는 풍경을 주시했다.
실체 없는 새소리만 들렸다.
“작전은 단순해.”
시로네가 말에서 내리며 말했다.
“최단거리로 숲을 관통해서 북쪽 절벽으로 갈 거야. 팔코아의 부하들이 매복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런 위험은 산길을 선택해도 마찬가지지.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중의 누군가가 전선에서 이탈하는 경우야. 빠르게 합류하기 위해서는 동선을 단순화시키는 게 좋아.”
리안이 대직도를 뽑아 들었다.
“정면 돌파라는 거지? 그렇다면 문제없어.”
테스가 말했다.
“내가 앞장설 테니 리안은 후미를 맡아. 마법사 둘은 가운데에서 측면을 살펴 주고.”
정석적인 포지션이었다.
숲의 초입에 말을 묶어 놓은 그들은 일정한 속도로 산을 타기 시작했다.
목숨이 걸린 상황이 되자 평소라면 흔한 풍경도 처음 보는 것처럼 생소했다.
스스스. 스스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럴수록 테스의 오감은 더욱 예민해졌다.
‘내가 실수하면 끝장이야.’
마법사의 스피릿 존은 공감각의 형태로 주위의 모든 정보를 전달하지만 어디까지나 반경 내였다.
반면에 스키마 유저는 각각의 감각을 극대화시켜 다양한 정보를 분석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현재 테스가 가장 신경을 쓰는 감각은 후각과 청각이었다.
그녀는 인간의 냄새를 수백 미터 반경 밖에서도 맡을 수 있고, 그들이 긴장하며 움직이는 특유의 소리를 포착하여 아군을 지키게 될 것이다.
테스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누군가 있어.’
냄새는 위장으로 지운 것 같지만 무언가 단단한 것이 휘는 소리가 청각에 잡혔다.
‘활이야.’
생각이 도달하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귓가에 활시위가 튕기는 소리가 들렸다.
“피해!”
시로네 일행이 몸을 날리고, 테스는 레이피어를 꺼내 들고 소리의 방향으로 돌아섰다.
수풀을 가르고 화살이 날아오고 있었다.
날카로운 촉이 지척까지 다가온 상태에서도 테스는 눈조차 깜박이지 않고 고개를 틀었다.
딱 소리를 내며 화살이 나무둥치에 박히고 사방의 수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
피했다는 안도감과 죽을 수도 있었다는 분노가 순간 뇌리를 마비시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빠르게 냉정을 되찾은 테스가 주위를 둘러보자 일행 모두가 전투 중이었다.
‘14명.’
어딘가에서 궁수가 노려보고 있을 테지만 당장의 적만 해도 많은 숫자였다.
“이야아아!”
리안의 기합 소리에 테스가 고개를 돌렸다.
압도적인 힘으로 대직도를 휘두르는 리안의 무용은 확실히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장소가 좋지 않았다.
길고 두꺼운 대직도를 휘두르기에는 걸리는 게 너무 많았고, 앵무 용병단도 그 점을 노리고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크크, 멍청한 놈. 숲에서 대검이라니.”
앵무 용병단의 실력은 주점 왕궁에서 이미 가늠한 바였다.
아주 뛰어난 실력은 아니라도 전원 백전노장으로 상황에 따른 전투를 할 줄 알았다.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