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91
“만나 보면 알아. 민감한 사안이라 국왕께도 보고 드리지 않았어. 한마디로 내가 월권으로 처리한 일이라는 거지. 보안은 좀 지켜 주라.”
단테가 회담실의 문을 열었다. 시로네는 익숙한 얼굴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어? 강난 씨? 세인 씨?”
강난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시로네, 오랜만이네?”
‘남방이구나.’
성전 가입국은 아니지만 재건 사업을 거쳐 전쟁 피해를 꽤 회복했다고 들었다.
다만 인력은 태부족이라 강난과 세인도 그곳에 머물며 힘을 보태고 있었다.
“네. 1년 정도 됐네요. 잘 지내셨어요?”
“정신없지 뭐. 무술학교를 열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어. 세인은 남방 도시화 계획을 담당하고 있고. 물론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지만.”
세인이 본론을 꺼냈다.
“천사, 라고 해야 되나? 아무튼 괴형태는 남방에도 출몰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굴종의 낙인을 찍었지. 가올드와 미로는 어때? 싸울 수 있나?”
“아마도요. 하지만…….”
모르겠다.
미로는 아이를 가졌고, 가올드는 예전만큼 마법력을 발휘하지 못할 터였다.
“대충 알겠다. 뭐, 당연한 일이지. 오늘 은밀히 너를 만난 건 그것 때문이야.”
세인이 몸을 틀자 회담실의 상석에 앉아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인이 보였다.
“은타라 님.”
한때 남방을 이끈 족장.
현재는 투표로 통령을 선출하지만 여전히 그가 가진 영향력은 막강했다.
“허허, 이럴 때만 보게 되는구려. 미약하지만 힘을 보태고 싶어 떼를 좀 썼소.”
시로네는 직감했다.
“엘리키아군요.”
마음을 순간적으로 집중시켜 소규모 울티마에 도달하게 하는 기술이었다.
“하늘에 뜬 것을 보았지요. 인류가 원하는 형태는 아닌 것 같더군요. 최선을 다해 엘리키아를 준비했습니다만, 한 번이 고작일 것입니다. 미안하오, 야훼여. 인류의 어리석음을, 인간의 망각을 용서하시오.”
최후의 전쟁만큼 인원이 많지 않으니 소수의 사람이 정신을 불태울 터였다.
“그렇지 않아요. 정말 큰 힘이 될 거예요. 모두의 노고를 잊지 않을게요.”
강난이 말했다.
“공식적으로 남방은 이번 전쟁에 참전할 수 없어. 개도국의 특성상 자원을 타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통령도 어쩔 수 없거든. 하지만 나와 세인은 남아서 싸울 거야. 명심해. 기회는 딱 한 번이야.”
시로네가 고개를 끄덕이는 그때 이상한 리듬으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신호를 해독한 단테가 말했다.
“광장 쪽은 상황이 끝난 모양이야. 그만 나가자. 관료들이 돌아오면 골치 아파.”
시로네 또한 남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기에 신속하게 문으로 향했다.
“그럼 가 볼게요. 자세한 얘기는 끝나고 해요.”
“이길 거라고 보나?”
세인이 물었다.
“이 전쟁은 길게 가지 않아. 처음에나 소요가 있지, 결국 순위대로 결괏값이 정렬될 테니까. 게다가 성전은 결렬, 가올드와 미로에게도 큰 기대를 걸 수 없는 지금, 1번이 왕좌에 앉으면 끝나는 거야.”
“승패는 저도 몰라요. 하지만 적들도 쉽게 바슈카로 진입할 수는 없을 겁니다.”
문을 연 시로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강하거든요, 리안은.”
***
토르미아의 국경선.
5천의 병력을 이끌고 있는 리안과 테스는 지평선 너머로 다가오는 대군을 보았다.
리퍼의 군대였다.
“많다.”
저들도 선봉대일 테지만 먼지구름의 크기만 봐도 족히 3만은 넘을 듯했다.
테스가 짜증을 냈다.
“성전 가입국의 병사일 거야. 토르미아가 망하는 꼴을 보고 싶었으면서 어떻게 여태까지 굽실댔는지 몰라. 하여튼 정치인은 비위도 좋다니까.”
“그만큼 전부를 걸었다는 뜻이기도 하지. 그런 놈들은 앞뒤를 가리지 않아.”
테스는 리안을 흘끗 보았다.
불가촉천민인데도 굳이 선봉대를 하겠다고 고집을 부린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을 증명하려고?’
이데아의 재생 능력 없이도 여전히 강하다는 확신을 갖기 위해서라면…….
테스가 물었다.
“오기 전에 시로네랑 얘기하는 거 같던데, 특별히 해 준 말 같은 건 없어?”
“딱히? 아, 이거 끝나고 너랑 다 같이 해서 여행 가자던데. 신혼여행 망쳤다고.”
그런가?
테스는 슬퍼졌다.
‘역시 시로네도 더 이상 자신이 싸우는 곳에 리안을 데려갈 수 없는 거야.’
그러는 동안 적들이 다가왔다.
눈에 보이는 기세만으로도 오합지졸이 아닌 정예병임을 알 수 있었다.
“읏차.”
말에서 내린 리안은 10미터 정도를 걸어가서 대직도를 땅바닥에 꽂았다.
“나는 오젠트 리안이다!”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여기는 토르미아의 영토다! 당장 회군하지 않으면 우리도 칼을 뽑을 것이다!”
“오, 오젠트 리안?”
최후의 전쟁에서 거인의 왕 이미르를 베어 버린, 세계 최고의 대검호였다.
적장이 코웃음을 쳤다.
“오젠트 리안이면 뭐? 저 녀석에게 남은 건 이름값뿐이야. 순위나 확인해.”
부장이 신호를 보내자 후미의 마법사가 활을 겨누었다.
화살에 푸른 전기가 감돌더니 유도탄처럼 리안을 향해 휘어져 들어왔다.
‘마법이군.’
리안은 몸을 틀어 화살을 붙잡았다. 그런 다음 전류를 힘으로 버티며 땅에 팽개쳤다.
적장은 간파했다.
“최소 6천만 번대 이후다. 불가촉천민일 수도 있겠지. 검병대 1진 투입시켜.”
붉은 깃발이 올라갔다.
“검병대! 진격!”
3천 명에 가까운 정예병이 저마다 스키마를 발동하며 무섭게 돌진했다.
‘대검호.’
만약 여기에서 리안을 잡을 수만 있다면 최고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게 된다.
한편 테스는 잔소리를 퍼붓고 있었다.
“바보야! 그렇게 순순히 맞아 주면 어떡해? 너를 테스트해 본 거란 말이야!”
“흐음.”
리안은 땅에 꽂힌 대직도를 뽑았다.
그리고 칼날을 땅에 끌며 적들에게 돌진하자, 테스가 황급히 손을 내밀었다.
“리안! 잠, 잠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리안이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대직도를 뒤로 넘겼다.
‘벤다.’
신적초월-궁.
팔을 휘두르는 순간 풍경에 그어진 수평선이 3천 인파를 모조리 관통했다.
후드득! 후드득!
상반신이 허리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본 뒤에야 그들은 죽음을 깨달았다.
“으, 으아아아!”
3천 명이 6천 조각으로 늘어난 광경 앞에서 적장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말도 안 돼. 순위는 우리가 높을 텐데?”
남은 건 파계였다.
“설마?”
조금 전 일격으로 근육이 증발해서 뼈만 남은 리안의 오른팔이 비로소 보였다.
“미친놈. 이렇게 싸운다고?”
리안은 힘없이 매달린 오른팔을 보더니 위팔뼈를 붙잡고 딸까닥 뽑아냈다.
테스의 고개가 힘없이 떨어졌다.
‘그래, 나도 알아.’
망설일 인간이 아니다.
‘회복이 안 된다느니, 죽을지도 모른다느니.’
할 수 없는 이유 같은 건, 애초에 찾을 생각조차 없었을 터였다.
“흐음.”
리안은 대직도를 왼손으로 쥐었다. 그리고 감각을 점검하듯 크게 휘둘렀다.
테스는 생각했다.
‘왼손.’
다음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오젠트 가문에서 있었던 일이 뇌리를 스쳤다.
-무슨 수련을 하는 거야?
당시 그녀의 물음에 리안은 이렇게 답했다.
-뭐가? 왼손 단련 중이잖아.
테스의 눈에 충격이 담겼다.
‘너, 그래서 왼손을…….’
그녀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안은 적진을 향해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적들은 심장이 철렁했다.
‘오지 마.’
파계다.
‘오지 말라고, 개자식아.’
비록 오른팔을 잃었지만, 그렇기에 누구도 리안에게 달려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 어어?”
마치 거짓말처럼, 3만에 가까운 대군이 겁에 질려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히든 코드 (4)
3만의 적군이 술렁거렸다.
“우, 우리가 밀린다고?”
고작 1명의 검사에게 덤비지 못해서 후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적장이 소리쳤다.
“부대 정지! 어차피 한계는 있다! 남은 팔까지 날아가면 그때는 우리의 승리야!”
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하지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을까? 누가 되었든 덤비는 자가 죽는다.
“으으…….”
대장의 지시에도 적들이 후퇴하는 가운데 테스는 상황의 모순을 간파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누가 되든 반드시 죽을 테지만, 일단 시행에 옮기면 위험해지는 건 리안이었다.
테스가 외쳤다.
“전군 출진!”
5천의 병사가 돌진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적군은 더 싸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쳇! 예봉이 꺾였어.’
시간을 끌어 봤자 추한 꼴만 보일 것이기에 적장은 퇴각 명령을 내렸다.
“후퇴! 일단 돌아간다!”
깃발이 올라가자 병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틀어 달리기 시작했다.
토르미아의 군대가 그들을 뒤쫓는 동안 테스는 말에서 내려 리안에게 향했다.
“괜찮아? 이 멍청아! 너……!”
리안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때, 제대로 먹혔지?”
“하아.”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근력의 힘으로 출혈을 잡고 있지만 통증까지 없는 건 아닐 터였다.
“어쩌자고 그런 짓을 해? 고작 3천에 팔 하나를 날린 셈이잖아.”
리안은 대직도를 살폈다.
“굴종의 낙인은 파계로 깰 수 있는 것 같아. 하지만 적당히 조절하며 싸워 봤자 언젠가 내 몸은 부서지겠지. 그러느니 확실히 각인시키는 게 낫잖아.”
딴에는 옳은 소리였다.
조금 전 상황이 적군에게 보고되면 그들도 출진에 생각이 많아질 테니까.
리안이 몸을 틀었다.
“돌아가자. 적당히 추격하고 빠지라고 해. 어차피 숫자에서는 압도적으로 밀려. 조금씩 전선을 후퇴시키면서 시간을 버는 수밖에 없어.”
‘처음부터…….’
리안은 이길 생각이 없었다.
시로네가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시간을 끌며 피해를 최소화시키려고 했던 것.
오른팔을 잃은 것은 억장이 무너지지만, 한편으로 테스는 안도했다.
‘그래. 그게 리안이니까.’
여전히 그는 시로네의 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