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92
***
리퍼의 군대 본진.
마차에 타고 있던 리퍼는 목덜미에 7이 새겨진 마법사에게 보고를 받았다.
“어제 하루 동안 살인 13건, 폭행 342건, 이성 간 추행 72건, 동성 간 추행도 3건이나 보고됐습니다. 법령 발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리퍼는 안경을 올렸다.
“필요 없습니다.”
“네?”
“자연스러운 일이잖아요. 기껏 순위대로 인류를 줄 세웠는데 그런 재미도 없으면 안 되죠.”
마법사는 입을 다물었다.
발키리에서 요직을 맡은 대마법사지만, 리퍼라는 인간은 좀체 이해할 수 없었다.
“한 가지 여쭤도 될까요?”
“뭐죠?”
“어째서 울티마를 깬 겁니까?”
리퍼는 말이 없었다.
그간 인터뷰에서 그가 했던 말은 오직 한마디였다.
-최초가 되고 싶었습니다.
마법사가 물었다.
“정말 그것뿐인가요? 최초가 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울티마를 깬 겁니까?”
“기분이 더럽잖아요.”
“네?”
리퍼는 당시를 회상했다. 세상을 뒤흔들던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오오오. 오오.
‘그래, 기분이 더럽다고.’
스톡 리퍼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다.
변호사 자격증도 손쉽게 땄고, 살면서 딱히 불행한 일도 겪지 않았다.
다만 그의 마음속에는 그런 자신에 대한 환멸과 세상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최고는 정해져 있어.’
법조계도, 의학계도, 마법계도, 결국 1등만이 주목을 받는 세상이었다.
리퍼는 자신의 역량을 알았다.
‘난 최고는 무리지. 하지만 말이야, 1등이 아닌 놈들까지 1등, 1등 하는 건 좀 웃기지 않아? 그런 건 2등도, 3등도 못하는 놈들이 자기보다 높은 놈들을 까 내리기 위해 만든 설정일 뿐이잖아?’
누구도 리퍼를 인정하지 않았다.
마치 이 세계에는 1등과 그를 추종하는 자들만 살 자격이 있다는 듯이.
그는 많은 자들을 변호했다.
“피고인은 10년 동안 37명을 납치, 감금하고 인체 실험을 행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사지를 이종 접합하고 일지에 기록을 남기는 등…….”
사건 보고를 하는 동안 그는 생각했다.
‘참신한데?’
아마도 자신이 본 범죄 기록 중에는 최고가 아닐까?
그래, 이건 최고였다.
다른 자도 있었다.
“공금 90억 골드를 횡령한 혐의에 대해서는 변호인도 일정 부분 인정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남은 270억 골드는 차명을 사용한 실체가 없으며…….”
굉장하다고 생각했다.
‘똑똑한 놈이군. 이 녀석도 최고다. 아마 세상 모두가 관심을 갖겠지.’
따라서 살아 있다.
‘나도…….’
살아 있고 싶다.
2년 뒤에 최후의 전쟁이 발발했다.
“오오오. 오오.”
시민들의 시체 사이에서 리퍼는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벌려 노래를 불렀다.
깨진 안경알 밑으로 눈물이 흘렀다.
벅찬 감동과, 여태까지 자신이 생각했던 모든 불만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그래! 할 수 있어! 우리는 해낼 거야!’
전쟁이 끝났다.
문명을 재건하려는 사람들의 에너지는 폭발적이었고 어디서나 노래가 들렸다.
“오오오! 오오!”
회사로 출근하던 리퍼는 축제를 만끽하는 인파의 행렬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모두를 사랑합시다. 우리가 한마음으로 이룩한 이 세계를 지켜 냅시다!”
리퍼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후우.”
그래, 살아남았다.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이제는 세상 모두가 그 사실을 기뻐하고 있다. 그런데…….
‘왜일까?’
기분이 몹시 더러운 이유는.
***
언더 코더.
시로네는 조금 전에 해독한 아우터 리포트의 내용을 카니스에게 들었다.
“해독률은 87퍼센트야. 일단 확실한 것만 말할게. 바깥 세계는 라그랑주 문명이라고 부르는, 특이점을 훨씬 지난 시대인 것 같아. 정신적 노화를 방지하기 위해 공겁 시스템을 채용했고, 다중 우주 연산장치인 신을 통해서 밸런스를 조율해. 그 핵심이 바로 부처. 특정 상황에서 인류를 반강제적으로 바깥 세계로 유도하는 프로그램이야. 이걸 깨달음이라고 하는데…….”
“잠깐.”
시로네가 손을 내밀었다.
“곧 연결을 끊어야 할 것 같은데, 내가 알아야 하는 핵심 정보가 있을까?”
페르미가 요약했다.
“바깥 세계에서 침투한 게 아니야. 우리 쪽에서 저들을 불러낸 거지.”
“…….”
카니스가 말했다.
“바깥 세계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건 미싱 링크야. 사용자가 깨닫게 되면 다중 우주의 밸런스가 붕괴되고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리니까. 즉, 그곳의 사람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는 거지. 반면에 이 세계가 얼마나 끔찍하든 그들은 신경 쓰지 않아. 야훼라는 오류조차 시스템으로 포함시킨 것은, 그만큼 다중 우주에 인위적인 조작을 가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따라서 네가 연결을 끊었다면 바깥 세계는 들어올 수 없을 거야. 결국 반대로 생각하게 되지. 만약 이 세계의 누군가가…….”
“바깥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그래. 정확한 건 해독이 끝나야 알겠지만, 현재는 그게 가장 유력한 설이야.”
“하지만 무슨 수로? 제르비스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그런 능력은…….”
시로네는 말을 멈췄다.
그의 동공이 아무것도 없는 측면으로 움직였다.
“어쩌면 그럴 수도.”
“뭐?”
카니스가 되물었다.
하지만 현재 시로네의 의식은 언더 코더가 아닌 현실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만 끊을게. 나머지는 부탁해.”
“야! 시로네!”
카니스가 어떤 말을 하기도 전에 시로네는 언더 코더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크으. 크으으.”
짐승이 내는 것 같은 소리에 시로네는 돌아섰다.
악의 울티마를 받은 제르비스가 보랏빛 안광을 뿜으며 경련하고 있었다.
‘엄청난 살의다.’
인간이 담기에는 너무 강력한 감정이었기에 오히려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대체 정체가 뭐야?’
제르비스가 치열을 드러내며 말했다.
“드디어 왔나? 확실히 눈빛부터 다르군. 비로소 날 죽일 생각이 든 거겠지.”
“헛둘. 헛둘.”
시로네의 옆에 서 있는 위저드가 준비운동을 하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긴장을 풀기 위한 허세일 테지만, 이런 여유도 시로네가 있기에 가능했다.
‘하긴, 나도 그랬었지.’
미로, 가올드, 친구들, 그들이 해 줄 거라고 믿었기에 싸울 수 있었던 것이다.
“총력전이야. 음속 이상의 전투가 될 거야. 의견 교환이 힘들 테니까 지금 말할게.”
“옛썰.”
“우리의 목표는 24시간 내에 제르비스를 1천 회 사망시키는 거야. 놈의 의식에 계속 충격을 가해서 준동경계를 파괴하는 거지. 물론 너의 무상신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도달 속도는 훨씬 빨라지겠지?”
위저드의 입가에 어색한 미소가 지어졌다.
“옛……썰.”
“굳이 애쓰지 않아도 돼.”
준비운동을 하는 동작이 우뚝 멈췄다.
“어차피 내가 끝낸다는 각오로 할 거야. 하지만 위저드, 정말로 10년을 고민했다면 더 이상 선택지는 없는 거야. 그건 알고 있지?”
물론 알고 있다.
“의식하지 않았던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면, 남은 건 둘 중 하나야. 결국 잃어버리거나, 그것조차 뛰어넘어 완전히 네 것으로 만들거나.”
‘의식한 상태에서 해내야 한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기억을 잃은 피아니스트가 다른 방식으로 똑같은 경지에 오르는 것과 같았다.
‘할 수밖에 없잖아.’
시로네의 말대로 10년을 고민했다면, 이제 남은 길은 하나뿐일 테니까.
“네, 스승님.”
그것으로 됐다는 듯 시로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제르비스에게 물었다.
“마지막 기회야. 왜 그런 꼴이 됐는지는 몰라도 여기서 끝낼 수는 없나?”
“질문이 잘못됐군.”
제르비스의 위로 문어의 화신이 탄생했다.
“난 이제 시작이거든.”
“……그래.”
시로네의 눈앞에 광륜이 펼쳐졌다. 이어서 오색찬란한 빛이 집적되기 시작했다.
아타락시아-육탄계.
경계를 넘는 순간, 자리에 있던 세 사람은 불과 몇 초 만에 음속을 돌파했다.
사방에 포톤 캐논이 점멸하고, 문어의 다리가 끝없이 그들을 추격했다.
“으으!”
위저드는 한쪽 눈을 찡그렸다.
공기의 질감이 거의 고체 수준으로 딱딱했다.
‘일단 스승님의 의도를 파악하자.’
눈이 아닌 스피릿 존으로.
초음속 상태에서 300미터의 거리는 마치 머리를 맞대고 싸우는 수준이었다.
공방을 교환하는 두 사람이 하방 추진성을 보이며 가속하기 시작했다.
추락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이런!’
위저드가 뒤를 쫓는 가운데 두 사람이 지면 근처에서 좌우로 갈라졌다.
시로네가 착지하며 일으킨 충격파에 건물의 유리창이 파르르 흔들렸다.
“꺅! 지진이야!”
혼비백산 흩어지는 시민들 사이로 위저드가 뛰어내리듯 가볍게 착지했다.
바람에 소금기가 났다.
‘투르카 왕국. 항구도시 미다스.’
처음 충돌했던 스탕 왕국으로부터 대략 89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이었다.
제르비스가 입꼬리를 올렸다.
“몸풀기는 끝났으니, 본격적으로 해볼까?”
전투 시간 : 3분 27초
제르비스 준동경계중사망 : 0회
전면전 (1)
오후 1시를 기점으로 토르미아 군대와 리퍼의 본대가 화력전을 펼쳤다.
평천사와 12사도는 대륙 각지에서 준동경계중천사에게 대미지를 누적시켰다.
반대로 땅을 달리는 인간들은 서로의 몸을 비비며 칼과 칼을 맞부딪쳤다.
“역시 전쟁은 재밌다니까.”
그 모든 광경을 침대에 편안하게 누워 비전으로 보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이름은 스미트 레온.
나신의 몸에 팔과 배, 허벅지에는 붉은 악마들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레온의 옆에 누워 있는 여자가 말했다.
“저거 진짜야? 으, 징그러. 피 흘리는 것 좀 봐. 나였으면 아마 미쳤을걸.”
“그것도 나쁘지 않지.”
이틀 전에 술집에서 만난 여자였다.
술을 진탕 마셔서 기억이 흐릿하지만 레온의 팬이라고 했고, 그날부터 집으로 데리고 들어와 여태까지 한 번도 나가지 않은 상태였다.
여자가 레온에게 돌아누우며 물었다.
“말해 봐. 당신, 정체가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