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99
현실에 앙케 라 프로그램이 적용되고 있다면 막을 방법은 단 하나였다.
‘페르미의 위치는?’
미카의 신호가 도달했다.
-금화륜입니다.
‘역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아포칼립스라고 짐작은 하지만 당장으로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아니, 갔을 거야. 수를 읽는 속도는 나와 비슷하니까. 그 녀석이 해 줘야 해.’
제르비스가 깨닫게 되면 끝장이었다.
***
슈퍼 데이지는 이루키를 땅바닥에 내려 둔 뒤 거대한 몸체를 일으켰다.
그르릉. 그르릉.
관절이 움직이는 소리가 심장을 두드렸다.
“갔다 올게.”
이루키가 변환기에 대고 물었다.
“괜찮겠어? 시로네가 그러던데, 굴종의 낙인은 탑승물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슈퍼 데이지가 어깨를 으쓱했다.
“한 방 갈기면 대충 몇 놈은 나자빠지지 않겠어? 어쩌면 파계가 될지도 모르고.”
“오호.”
농담이겠지.
그래도 워낙에 거대했기에 슈퍼 데이지가 밀리는 그림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네이드는 방향을 틀어 도시로 향했다.
70미터 높이에서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저기다.”
리퍼의 군대가 도망치는 시민들의 뒤를 쫓으며 칼질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면을 가득 채우는 그림자에 위를 올려다보고 비명을 질렀다.
“으, 으아아! 저게 뭐야?”
슈퍼 데이지의 거대한 발바닥이 몸을 움츠리는 병사들을 그대로 짓밟았다.
하지만 충격음은 없었다.
군인들은 뒤늦게 눈을 떴다.
슈퍼 데이지의 발바닥이 3만 번대의 번호를 가지고 있는 백부장의 손에 막혀 있었다.
“백, 백부장님.”
기이이잉! 기이이잉!
네이드가 출력을 높여 보지만 사람을 상대로도 1센티미터도 움직이지 않았다.
비로소 깨달은 백부장이 성질을 냈다.
“젠장! 놀랐잖아!”
그리고 힘껏 발을 밀어내자 슈퍼 데이지가 기울더니 건물 밭으로 쓰러졌다.
쿠르르르릉!
거대한 먼지구름이 일어나더니 슈퍼 데이지의 상반신을 이불처럼 덮었다.
이루키가 먼지를 휘저으며 나타났다. 그리고 조종석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진짜로 지냐?”
“으아, 짜증 나! 굴종의 낙인만 아니면 끝장을 내는 건데. 뭐 이딴 율법이 다 있어?”
이루키도 동의했다.
더군다나 스케일의 차이까지 있었기에 율법의 강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거, 두 사람 탈 수 있겠지?”
“응?”
이루키는 슈퍼 데이지의 조종석으로 들어갔다.
좁은 틈을 비집자 네이드가 소리쳤다.
“아, 아파! 어쩌려고?”
“내가 조종할게. 너는 전력만 공급해.”
“될까? 해 본 적 없는데.”
“해 보면 알겠지. 그나저나 어떻게 조종하는 거야?”
“이거 연결해.”
귓바퀴에 거는 띠 같은 것으로 사용자의 뇌파를 읽어 내는 장치였다.
‘내 몸처럼 생각하면 된다는 건가? 진짜 싱크로율에 인생을 갈아 넣었군.’
네이드는 좌석 뒤편의 좁은 공간에 웅크린 채 전력장치를 움켜쥐었다.
“한다? 너, 조종 잘해.”
“걱정 말고 출력이나 최대치로 뽑아. 내 뇌는 엄청나게 빠르다는 거 알지?”
사실이기에 네이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고 전력을 일으켰다.
“으으으으!”
그르릉. 그르릉.
슈퍼 데이지가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주위를 살피더니 땅을 짚고 일어섰다.
순식간에 70미터짜리 구조물이 올라가자 리퍼의 군대는 다시 놀랐다.
“어, 어어?”
비록 백부장에게 막혔지만 역시 크기와 중량이 주는 압도감은 엄청났다.
“젠장. 저건 때릴 수도 없잖아! 그냥 도망칠까?”
“다들 물러서.”
백부장이 뒷짐을 지고 부하들 사이를 헤쳤다. 이미 순위를 파악한 그였다.
“내가 처리하지. 너희들은 떨어져 있어.”
경외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백부장은 당당하게 슈퍼 데이지에게 다가갔다.
‘나는…… 강하다.’
지금은 백부장이지만 3만 번대의 순위란 인류 전체에서 상위권에 속했다.
‘전쟁이 끝나면 내 계급도 바뀌겠지. 내 찬란한 역사는 이제부터 시작이야.’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슈퍼 데이지의 발이 내려오고 있었다.
백부장은 지그시 올려다보았다.
떨어지는 강철을 향해 오른손을 내민 그가 입꼬리를 올리며 내뱉었다.
“와라.”
쿵!
흙먼지가 동심원을 그리며 퍼졌다.
슈퍼 데이지는 거리낌 없이 다음 발을 내디디며 전장의 중심으로 걸어갔다.
쿵. 쿵. 쿵. 쿵.
씩씩하게 팔을 흔들며 멀어지는 로봇을 병사들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
에테르 파동으로 공간을 넘은 에이미와 성음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왔던 고아원이 세월의 풍파를 강하게 맞은 상태였다.
족히 10년은 방치된 듯했다.
“무슨 조화야?”
“좌표는 아까와 똑같다. 여기가 고아원이야. 아마 이게 본래의 모습일 거다.”
“사실은 오래전에 폐원됐다고?”
“그래. 히든 코드로 감췄겠지. 멜키두라는 곳처럼. 어쨌든 이사칼이라는 여자도 우리를 맞이할 준비를 한 것 같구나. 들어가자.”
두 여자는 거침없이 발을 내디뎠다.
내부 풍경도 전에 왔을 때와 달랐다.
안쪽으로 긴 1층 건물에 삼각 지붕을 얹은 오래된 양식의 건물이 고아원이었다.
여닫이문을 열자 복도를 따라 수많은 방이 보였고 벽에 핏자국이 있었다.
성음이 걸음을 멈췄다.
“여기는 에테르가 없다.”
“뭐?”
“인위적인 환경이라는 얘기지. 공간이 압축되지 않아. 이사칼의 능력도 공간에 관련된 것일 거다. 바깥 세계 놈들, 꽤 필사적이구나.”
“인위적으로 공간을 만들었다면, 굴종의 낙인도 통하지 않는다는 거야?”
성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포칼립스의 준동경계에 시스템을 교란하는 지점이 있다고 들었다. 이 공간의 퇴적이겠지.”
모노리스였다.
다시 걸음을 옮긴 그들은 ‘교무실’ 팻말이 달린 곳으로 들어갔다.
먼지가 쌓여 있었고,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마저 낡은 것처럼 멀미를 일으켰다.
에이미는 주변을 살폈다. 서랍을 뒤지던 그녀는 원장의 기록 일지를 발견했다.
“응? 메이델 씨 이름인데?”
페이지 전체가 뭉텅 뜯겨 있었는데 사선으로 찢어진 종이에 글귀가 보였다.
……비스의 상태는 더 악화되었다. 교사들은 매일 밤 죽는 꿈을 꾼다. 나는…… 보았다. 피의 쾌락을. 금기를 넘어서는 순간의……. 사탄교의 지침에 따라…… 제르비스를 봉하고…… 빼앗기지 않아. ……에게도.
“사탄교 신자.”
히든 코드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설정이지만, 설정의 주인은 이사칼이 아니었다.
에이미는 결론을 내렸다.
“원장은 메이델이었어. 그녀의 설정을 이사칼이 그대로 이어받은 거야. 그래서 혼란스러워했던 거고. 기억은 나지 않겠지만…….”
어떤 감정은 끝까지 남는다.
성음이 말했다.
“제르비스에 대한 내용은 바꿀 수 없으니까. 히든 코드도 약점은 있어. 실제로 스스로 광신에서 벗어난 자도 있으니. 하지만 이번엔 각오를 해야 할 것 같구나.”
에이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쉽지 않겠지.’
오직 제르비스의 본체를 보호하기 위해 설정한 히든 코드일 터였다.
“풀어! 이거 안 풀어?”
전신에 문신이 있는 나신의 남자가 테이블의 모서리에 손발이 묶여 있었다.
이사칼이 메스를 손에 들고 말했다.
“왜 이래? 약속했잖아? 콩팥 하나만 똑 떼면 자유라니까? 돈도 받았으면서.”
“개소리 마! 돌려주면 될 거 아니야. 여긴 병원이 아니라고. 널 어떻게 믿어?”
“안 믿으면?”
이사칼이 목에 메스를 댔다.
“목을 떼어 줄까?”
“으, 으.”
남자는 몸을 떨었다.
도박 빚을 갚게 해 주겠다던 선한 인상의 여자는 어느새 사라지고, 눈이 기름처럼 번질거리는 광인이 서 있었다.
“네가 정해. 콩팥 하나 넘기든지, 아니면 샅샅이 해부돼서 개한테 먹히든지.”
“젠장! 젠장!”
공포와 분노에 눈물이 났다.
하지만 목숨 앞에서는 결국 선택을 해야 했다.
“아픈 건 아니겠지?”
“당연하지. 이미 마취됐잖아? 수술도 빨리 끝나. 이래 봬도 나, 전문가거든.”
고아원은 오래전에 폐쇄됐고, 이사칼의 주 수입원은 장기 매매였다.
남자가 말했다.
“약속해. 다른 곳 털끝만큼이라도 건드리면 죽여 버릴 테니까. 분명히 말했어.”
“알았다고. 그럼 한다.”
이사칼은 눈웃음을 지으며 메스를 댔다.
서늘한 느낌에 남자는 전율했다.
“으으.”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고통은 없었지만 숫제 지옥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아직이야? 대체 언제 끝…….”
남자는 말을 멈췄다.
수술을 하는 이사칼의 눈동자가 흐리멍덩하게 풀려 있었다.
“하아. 좋아. 더, 더.”
“저기, 이봐? 괜찮은 거야?”
“아, 너무 좋아. 꿈틀대는 것 좀 봐. 안 되겠어. 이러다가 돌아 버릴 거 같아.”
남자는 초조해졌다.
“어이, 정신 차려. 당신 지금 수술 중이잖아? 내 몸에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끄으으…….”
괴음을 내지르는 이사칼의 동공이 위로 올라갔다.
메스를 떨어뜨린 그녀가 벽장 서랍으로 향하더니 안에서 전기톱을 꺼냈다.
“하아. 피, 피를 줘.”
남자의 표정이 울상으로 변했다.
“제, 제발. 내 얘기 듣고 있는 거지? 응? 당신 그런 사람 아니잖아. 수술이라며?”
끈을 당기자 윙 하고 톱날이 돌았다.
“안, 안 돼! 멈춰! 제발! 선생님! 으아아아!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에이미와 성음은 동시에 돌아섰다.
‘비명 소리.’
하지만 그보다 더 귀를 거슬리게 하는 건 빠르게 돌아가는 모터 엔진음이었다.
교무실을 나온 두 사람은 복도 맨 끝에 있는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갔다.
햇빛마저 붉은 듯했다.
“미친…….”
이사칼이 돌아섰다.
고개를 바짝 쳐들고 혀를 내민 얼굴에 피가 뚝뚝 흘렀다.
에이미의 손에 불꽃이 타올랐다.
“죽여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