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305
‘너무 오래 끌 수는 없어. 그러다가 우리 쪽에서 터지면 치명적이다. 일단 초반에는 이사칼의 대응을 보는 게 중요해. 여기서 돌리자.’
에이미는 57초에서 폭탄을 잡았다.
“이동.”
폭탄이 이사칼에게 넘어갔다. 에이미는 폭탄을 주시하는 이사칼을 살폈다.
‘어떤 계산을 하고 있을까?’
89초가 되었을 때 이사칼이 폭탄을 잡았다. 이동.
성음에게 턴이 돌아갔다.
에이미가 말했다.
“10초 룰 끝나면 바로 넘겨.”
성음은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신뢰가 중요했다.
99초에서 성음이 폭탄을 넘겼다.
“이동.”
에이미는 다시 돌아온 폭탄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과연 얼마나 끌어야 할까.
100초. 101초. 102초.
“응?”
갑자기 폭탄이 사라지더니 에이미의 손목 쪽에 반구의 형태로 달라붙었다.
“큭!”
팔을 최대한 몸에서 떨어뜨리는 순간 펑! 하고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툭 하고 왼손이 떨어졌다.
“흐으으!”
에이미는 손목 부근에서 끊어진 왼팔을 보고 오른손으로 쥐어 피를 막았다.
아프다는 생각도 잠시, 에이미는 이번 판에 벌어진 상황을 복기해 보았다.
‘느낌이 이상한데.’
폭탄은 102초에 터졌다.
‘이사칼은 89초에 이동시켰다. 나와 성음의 10초 룰을 더하면 20초 동안은 이동이 안 돼. 결국 둘 중 하나는 무조건 당하는 범위에서 폭탄을 넘긴 거야.’
게임을 하다 보면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지만, 우연이라기에는 석연치 않았다.
‘이사칼도 자신만의 기준으로 결정을 한 거야. 그 기준이 마음의 변덕이라면, 그것도 납득은 돼. 하지만 10초 룰 사이에 터졌다는 건…….’
심리적인 의심이 가는 상황에서 한 가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만약 폭발 시점을 알고 있다면?’
확인은 빠를수록 좋다.
이사칼이 할 수 있다면 그녀도 할 수 있다는 뜻이고, 판이 진행될수록 그 사실을 확인하는 데에 들어가는 피해 규모도 커지기 때문이다.
‘홍안.’
에이미의 눈에 불이 켜지면서 여태까지 모든 과정이 머릿속을 스쳤다.
‘……성음의 손에서 폭발했다. 그다음 다시 한 바퀴를 돌아 내 턴에서…….’
환청처럼 남아 있는 소리.
끼리리리릭.
“아.”
에이미는 고개를 들었다. 이사칼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전자 방식이 아니었어.’
폭탄의 디지털 패널은 함정, 실제 타이머는 아날로그 태엽 장치였던 것이다.
‘소리를 듣고 예측한 거야.’
사탄의 게임, 그 말의 의미를 비로소 깨달은 에이미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
이사칼이 웃으며 말했다.
“왜 그래, 선수끼리? 이건 그냥 사탄이 어릴 때 하던 게임이야. 장난감이 다 그렇지 뭐. 진짜 사탄도 이겼으면서 과몰입하지 마. 즐기자고.”
에이미는 앞머리를 훅 하고 불었다. 딴에는 사실이었기에 냉정을 찾는 건 빨랐다.
“좋아. 끝까지 가 보자. 내가 장담하는데, 넌 절대 손목 하나로 안 끝나.”
“호호! 재밌겠네.”
밝게 웃은 이사칼은 언제 그랬냐는 듯 무서운 눈빛으로 폭탄을 바라보았다.
틱. 틱. 틱.
카운트가 올라가고 있었다.
***
쿠안의 검이 막혔다. 예상치 못한 일에 이번만은 쿠안도 당황했다.
‘뭐야?’
이유는 곧바로 알게 되었다. 레온의 팔뚝에 굴종의 낙인이 새겨져 있었다.
대략 11억 번대의 숫자였다.
레온은 이빨을 드러내고 반격했다. 그의 주먹이 쿠안의 명치를 강타했다.
아이돌 스타-안티 히어로.
심미안의 기준이 바뀌면서, 우악스럽게 내지른 동작에 엄청난 위력이 담겼다.
“큭!”
충격이 관통한 순간 심장마비가 왔고, 쿠안은 멀리 날아가 땅을 굴렀다.
레온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아! 하아!”
굴종의 낙인을 새겨서 공격을 막아 내고, 안티 히어로로 치명타를 입힌다.
그에게도 생명을 건 전략이었으나 쿠안이 예상하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레온 본인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왜?’
레온은 자신을 알고 있다.
낙인을 찍을 인간이었으면 진즉 찍었을 터였다.
‘죽으면 죽었지, 이게 뭐야, 폼 안 나게. 꼭 노예에게 찍는 인장 같잖아.’
멋진 외모, 천재적인 두뇌.
평생을 아이돌로 살았고, 구질구질하게 생을 연명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기시감이 들었다.
현실이 아닌 특유의 느낌.
전과 다른 점은 이번엔 병적으로 선명하다는 것이다.
레온은 머리를 움켜쥐었다.
“으.”
그가 내린 결론은, 죽음의 공포를 이겨 내지 못했고 그래서 낙인을 찍었다는 것.
‘내가, 고작 이런 놈이었나?’
안티 히어로라니.
화면을 통해 공개되었을 것이다. 공포에 질려 제르비스에게 굴종한 모습이.
‘살 필요도 없어. 죽자. 하지만…….’
비참하고 우울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상황을 이렇게 만든 쿠안에게 쏠렸다.
‘네 삶도 박살 내 주마.’
현실감각이 떨어진 탓일까. 흥분해서 이성을 잃은 것인지도 모른다.
레온은 그저 받아들였다.
미싱 링크가 약해진 상태에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결론이었다.
한편 심장이 멈춘 쿠안은 대자로 쓰러진 채 대형 화면을 보고 있었다.
‘무엇을 놓치고 있지?’
피가 돌지 않아 쇼크 상태였지만 그럴수록 묘하게도 또렷해지는 생각이 있었다.
‘어째서?’
근진동으로 심장을 뛰게 할 수 있지만, 쿠안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죽음이 가까울수록, 의식이 멀어질수록 어떤 것이 선명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0년을 고민했다.’
최후의 전쟁 당시, 시이나를 지킬 수 있었던 그 현상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굳이 알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시이나를 지킬 수 있는 힘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의식은, 모든 정신은, 그 감각에 손을 뻗고 있었다.
그렇게 번뇌하며 살아온 10년.
‘아하.’
이제 좀 알 것 같네.
생명의 불꽃이 꺼져 간다. 그럴수록 선명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보게 되었다.
“…….”
심정지 3분째.
사망이라고 불러야 할 상태.
쿠안은 눈조차 감지 않은 채 그렇게 죽어 있었다.
***
미로는 보았다. 멸을 향해 소리를 치는 사람들과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을.
‘모두…….’
선의 성지를 지키고 있었다.
멸은 그들을 적으로 인식했다. 이어서 세 쌍의 손이 지상에 폭격을 가했다.
“피, 피해!”
땅이 흔들리고 파편이 튀었다.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바위를 본 피드로가 맥버크를 안고 몸을 던졌다.
“큭!”
쿵 하고 집채만 한 바위가 꽂혔다.
겨우 목숨을 구한 그들은 엉금엉금 기었다.
비로소 안전한 곳에 도착하자 맥버크가 의아한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
“아무 생각 없었어!”
피드로가 소리쳤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고! 굴종의 낙인인지 뭔지, 그런 일이 갑자기 터졌는데 날더러 뭘 어쩌라는 거야? 그냥…… 그렇게 되어 버렸어!”
맥버크는 그저 듣고 있었다.
“너한테 말하려고 했는데, 이미 상황은 끝났고 괜히 껄끄럽기도 하고. 내가 비겁한 놈이 된 것 같기도 하고! 몰라! 그냥 그것뿐이라고!”
“나도.”
맥버크는 울먹였다.
“나도 그랬어.”
갑자기 머릿속에 신호가 꽂히고, 굴종을 하라는 둥 순위가 어쨌다는 둥.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네 잘못도 아닌데, 그냥 화가 너무 나서, 그래서…….”
길을 잃을 때가 있다.
자신이 모르는 일이 닥쳤을 때, 그것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자가 얼마나 될까?
“염병할.”
피드로가 울음을 참으며 말했다.
“진짜 친구 하나 잃는 줄 알았잖아.”
맥버크가 허허 웃었다.
“미친놈. 이딴 일로 무슨. 우리가 언제는 안 싸웠냐? 아무것도 아니야, 인마.”
맥버크는 피드로의 얼굴을 툭 하고 쳤다.
순위가 낮은 자는 높은 자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지만, 피드로의 얼굴이 돌아갔다.
“크, 크크!”
“푸하하하!”
두 사람은 생각한다.
‘살자.’
또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아름다운 것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됐지, 뭐. 이거면 된 거야.’
그렇기에 우리가 상상하는 악의와 적의도, 두려움이 만든 허상일지도 모른다.
“가자, 피드로.”
두 사람은 서로를 부축하며 일어섰다. 그리고 인파 속으로 다시 걸어갔다.
“오오오! 오오!”
그들이 부르는 울티마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미로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가올드.’
사람은 얼마나 역동적인가.
탁하고, 복잡하고, 흉악하지만, 또한 순결하고, 고결하고, 희생적이다.
‘그래, 난 절대로 착한 애는 아니지. 옳음을 지켰기에 극선이라고 하지만…….’
인간을 어떻게 정의하겠어.
‘인간이 애초에 선하다면 누군가는 상처받고, 인간이 악하다면 여전히 선을 지키는 수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게 된다는 것을…….’
관음이시여.
‘저도 알고 있습니다.’
아직은 정의할 수 없는 시대이기에 미로는 초월자에게 경건히 고했다.
‘언젠가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온다면, 그럼에도 누군가가 그 행복을 깨트린다면, 저는 그것을 악이라 정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둘 수는 없다.
‘저는 반드시 그것이 악이어야만 한다고, 세상 끝까지 소리칠 것입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
‘그들을 굽어살피소서. 선이 이길 수 있도록 모두의 삶을 지켜봐 주소서.’
미로의 얼굴에 인자한 미소가 떠올랐다. 멸의 수도가 그녀에게 떨어지고 있었다.
‘옳음을 지킨다.’
그녀의 등 뒤에 누군가 다가왔다.
“……앱솔루트 배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