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308
에이미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성음, 너…….”
“괜찮아. 다음번엔 네 차례다.”
차가운 목소리였다.
“일단은 살아야 하니까. 데이터가 쌓이면 홍안도 효과가 있겠지. 다음엔 넘길 거야.”
성음은 에이미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이사칼은 뇌가 열리는 기분이었다.
‘아, 아아.’
기분 죽인다.
사지가 폭발하고 목숨이 간당간당한 상황에서 어떻게 화가 나지 않겠는가?
‘미워 죽겠지? 모든 게 짜증 날 거야. 누구의 탓도 아니지만, 그렇게 증오하는 거야.’
증오하면 이길 수 없다. 자신의 성취보다 타인의 불행이 더 간절해지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끝났어.’
이사칼이 승리를 확신하는 동안 에이미는 성음의 진의를 파악하려 노력했다.
‘끝난 게 아니야.’
차가운 말투와 태도, 표정으로 성음은 에이미에게 분명히 전하고 있었다.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폭발 시점을 예측하려면 더 많은 데이터가 필요해. 이대로는…… 아.’
그 순간 깨달았다.
조금 전 성음의 판단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있다.’
이길 수 있는 한 번의 기회.
***
쿠안은 여전히 심장이 뛰지 않았다. 산소가 없는 뇌도 기능을 멈췄다.
그렇기에 알 수 있는 것.
자신조차 관측할 수 없는 생각, 그 상태를 사람들은 흔히 시체라 부른다.
하늘의 대형 화면에 레온의 모습이 비쳤다.
“찾았다.”
이제는 진정한 안티 히어로가 된 그는 시이나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쿠안의 손끝이 움찔했다.
‘시이나.’
화면이 절반으로 분할되더니 오른편에 죽어 있는 쿠안의 모습이 나타났다. 안티 히어로의 위력을 높이기 위한 레온의 노림수였다.
텅 빈 뇌에 작은 스파크가 튀었다.
‘나.’
시이나는 학생들을 감싸듯 앞으로 나섰다. 레온을 향해 빙결 마법이 쏘아졌다.
얼음 송곳이 과자처럼 부서졌다.
그것을 통해 시이나가 굴종의 낙인을 찍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하하! 나는 주인공보다 강하다고!”
레온이 주먹을 쳐들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인파를 뚫고 시이나에게 도착했다.
‘나, 시이나.’
쿠안의 뇌에 폭발하듯 빛이 차올랐다.
‘지킨다.’
심장이 엄청난 속도로 박동하면서 그의 전신에 피를 돌게 만들었다.
누운 자세에서 그대로 기립한 쿠안은 허공의 화면으로 고개를 들었다.
시점(時點)……이라고 해야 할까.
그는 시이나의 콧날에 주먹이 닿아 있는 것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제대로 들어갔……!”
레온의 주먹이 허공을 찔렀다. 그보다 3미터 떨어진 곳에 시이나가 있었다.
“뭐야?”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쿠안이 그녀를 외팔로 안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럴 리가. 무인 촬영에는…….’
화면을 확인하자 쿠안이 죽어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시이나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여보.”
쿠안의 기괴한 움직임은 알지만, 이번 것은 10년 전의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했다.
“시이나…….”
쿠안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녀를 돌아보며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괜찮습니다.”
후우, 시이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에도 의문은 남아 있었다.
“어떻게…….”
레온이 말을 가로채듯 물었다.
“어떻게 했지?”
쿠안은 대답 대신 시이나를 물려 세웠다. 그리고 칼을 뽑아 들며 말했다.
“외팔이는 누군가를 지키며 싸울 수 없습니다.”
레온은 짜증이 났다.
“지랄하지 말고 대답이나 해! 어떻게 했지?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걸어서.”
“……뭐?”
쿠안은 잠시 생각을 해 보았으나 설명하라고 한들 너무 흔한 과정이었다.
“걸어서 왔다. 시이나가 위험한 것 같아서 바슈카 성문을 지났지. 정확한 위치까지는 몰라서 시장을 지나다가 아, 여기가 아닌가? 그래서 다시 길을 돌아…….”
“그러니까!”
레온은 악을 질렀다. 쿠안의 존재 자체가 이상한 두려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말이 안 되잖아. 거기서 여기까지 거리가 얼만데, 이 짧은 시간에 왔다고?”
“거리? 시간?”
쿠안은 피식 웃었다.
“그건 네 생각이지.”
라그랑주 문명.
신호를 분석하고 있던 관측자가 소리쳤다.
“말도 안 돼!”
화면에 비친 것은 명백한 오류였으나 다중 우주 연산장치는 잡아내지 못했다.
경고음도, 리포트도 없었다.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자드에게 달려갔다.
“자드 씨,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죠? 그냥 이동했어요. 시간도 정상적으로 흘렀고 공간도 왜곡되지 않았는데. 이건 완벽한 모순이잖아요?”
자드는 안경을 올렸다. 쿠안을 통해 알고 싶었던 정보가 눈앞에 있었다.
“고차원 벌크인가.”
“네?”
“라그랑주 문명은 다중 우주의 관점에서 미래의 끝일 테지만 이곳의 시스템도 인간의 생각이 구현된 것에 지나지 않아. 따라서 어떤 프로그램도 인류의 아키텍처를 넘을 수 없다. 하지만 쿠안은 해냈어. 아키텍처를 넘어섰기 때문에 오류로 인식하지 않는 거야.”
“차원을 넘었다는 건가요? 얼마나요?”
“모르지.”
쿠안도 모를 것이다.
“2차원 미로가 있다고 하면, 시작 지점에서 볼펜을 그어 도작 지점까지 가게 된다. 2차원에는 높이가 없으니까. 하지만 3차원을 이용하면?”
높이를 깨달을 수 있다면.
“미로 위를 날아서 도착지에 볼펜을 찍으면 그만이야. 그럼에도 미로의 구조는 전부 인지된다. 그게 차원의 일방향적인 지배 구조. 2차원의 존재는 이런 현상을 납득할 수 없어. 개념 자체가 없으니까.”
관측자의 표정이 멍해졌다.
“하지만…… 그건 쿠안도 마찬가지잖아요? 인간의 아키텍처를 넘은 거니까.”
“알고 했든 모르고 했든, 중요한 건 생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야. 그래서 쿠안은 생각을 파괴했다. 그건 생각을 하지 않는 것과는 전혀 다르지.”
관측자는 다시 화면을 보았다.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요? 쿠안은 지금,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 거죠?”
“일종의 트릭.”
그래.
“알면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지만, 쇼가 끝날 때까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어릿광대 피에로-한 편의 마술 쇼.
쿠안이 사정거리까지 거리를 좁히자 레온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물러섰다.
‘아니야.’
속임수다. 사기다.
그것 외에는 어떤 논리적 해법도 찾을 수 없었다.
본능은 말한다.
지극히 단순한 트릭이라고, 일단 알게 되면 오히려 속은 자신을 비웃게 될 거라고.
‘그런데…….’
알 수가 없다.
개념도, 느낌도, 형태도, 그 어떤 것도 인간의 인지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쿠안이 도약했다. 레온은 심장이 철렁했다. 마치 사신이 다가오는 듯했다.
‘죽는다고?’
내 마지막이 이럴 수는 없어.
아이돌 스타-빌런.
심미안의 기준을 역전시킨 레온이 괴물처럼 고함을 치며 주먹을 휘둘렀다.
“남은 팔도 뜯어 주마!”
쿠안은 몸을 뒤틀었다. 그리고 공격을 피하며 자신의 배에 검을 쑤셔 넣었다.
“어?”
이상함을 느끼는 그때, 쿠안의 입에서 칼날이 나와 레온의 눈을 푹 찔렀다.
“으아악! 눈!”
고작 이 정도의 기괴함조차, 인간의 두뇌는 미리 예측하지 못하는 것.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뚫렸어.”
화면을 통해 지켜보았기에 쿠안이 불가촉천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시이나는 생각했다.
‘파계?’
아니, 그것과는 다르다.
‘특유의 극단적인 현상이 없어. 오히려 지극히 당연한 일이 벌어진 느낌.’
인간의 아키텍처를 초월한 무언가.
일방향적인 차원의 지배 구조가 무엇인지 시이나는 눈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빛을 달리는 소녀 (5)
***
제르비스는 하늘을 날았다.
이미 999회 사망을 경험한 그의 목표는 더 이상 죽지 않는 것이었다.
‘너희들 뜻대로 되지는 않아!’
바슈카 성이 보인다.
악부처가 사라지면서 아귀들도 소멸했고, 리퍼의 군대는 패색이 짙었다.
‘졌다고? 내가?’
끝없이 공겁으로 파고드는 능력이 있는데도 이 세계를 관철시킬 수 없다니.
‘아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아. 너희들은 절대로 내 세계에서 나갈 수 없어!’
제르비스는 뒤를 살폈다. 조금 전까지 추격하고 있던 시로네가 보이지 않았다.
“응?”
다시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앞을 가로막은 위저드가 발 차기를 가했다.
“크윽!”
이를 악물고 정신을 잡으려는데 시로네가 그를 뒤에서 끌어안고 땅으로 급강하했다.
“으…….”
제르비스가 고함을 토했다.
“으아아아!”
지상에 있는 사람들이 고개를 들고, 잠시 후 제르비스가 수직으로 땅에 꽂혔다.
쿠우우웅.
땅울림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풍경이 구겨지면서 모두의 기억에 장착되었다.
씽은 주위를 살폈다.
비슷하지만 명백히 다른 위치에서, 그녀는 조금 전에 벌어진 현상을 복기했다.
‘이게 공겁인가.’
전투 시간 : 5시간 50분
제르비스 준동경계중사망 : 1,000회
뒤늦게 지상에 착지한 위저드는 경이로운 눈빛으로 시로네를 쳐다보았다.
‘스승님, 진짜로 1천 회를…….’
어릴 때부터 따른 사람이기에 강한 것이 당연하다고 막연히 생각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