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311
‘아는 사람 없나?’
어릿광대 피에로-한 편의 마술 쇼.
고차원 벌크로 이동한 그가 도착한 곳은 다중 우주 관제 센터였다.
“으, 으아악!”
관측자들이 벌떡 일어났다.
조금 전만 해도 다중 우주에 있던 쿠안이 자드의 앞에 서 있는 것이다.
“흐음.”
쿠안은 인간과 똑같이 생긴 자들 사이에서 특이한 외모를 발견했다.
곤충, 어류, 두족류, 설치류, 파충류 등 다양한 종족이 뒤섞여 있었다.
자드의 목소리가 떨렸다.
“쿠안?”
쿠안이 고개를 돌리자 자드는 움찔했다.
하지만 위축되는 것도 잠시, 강렬한 호기심에 다시 눈에 광기를 담아내며 안경을 올렸다.
“굉장해. 진짜로 넘어서다니. 이건 기적이야. 혹시 날 기억하나? 크라운이야.”
크라운?
기억이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쿠안의 검이 자드의 턱 밑으로 들어갔다.
자드가 두 손을 들었다.
“이봐! 진정해! 그건 그냥 꿈이었다고.”
“나한테 그딴 소릴 지껄인 놈이 어떻게 됐는지 확인해 보는 게 어때?”
물론 알고 있었다.
“그, 그래! 자네에게는 중요한 세계지. 미안해. 내가 도와줄게. 자네, 지금 위험한 상황이야.”
사실 위험한 건 자드였다.
라그랑주 문명이 할 수 없는 일을 쿠안이 해냈다는 건 차원에서 밀린다는 뜻.
따라서 쿠안이 검을 거둔 이유는 그저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여기가 바깥 세계라면 왜 말이 통하지? 그리고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 거 아닌가?”
자드는 곧바로 살길을 깨달았다.
“아, 설명할게. 실제로 벌어진 건 처음이라 나도 당황스럽지만, 일단 자네들이 알고 있는 바깥 세계의 언어는 라그랑주 문명의 언어가 아니야. ‘신’이라는 연산장치가 코딩하는 일종의 기계어지. 시간의 개념을 담은 4차원 스크립트. 그게 자네 세계에서 오파츠로 적용되는 거야. 생각해 봐, 우리가 접속하는 우주인데 말이 다르면 불편하잖아?”
“…….”
자드가 말을 이었다.
“시간도 마찬가지야. 다중 우주에서는 바깥 세계가 음의 시간처럼 보일 테지만, 우리의 입장에서는 자네의 세계가 음의 시간으로 흐른다고. 그저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거지. 예를 들어 여기, 바깥 세계와 자네의 세계가 있어.”
자드는 손가락으로 동그라미 2개를 만들었다.
“두 세계는 똑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어. 다만 애초에 이렇게 독립적으로는 존재할 수가 없는 거야. 우리가 다중 우주를 만들어서 자네의 세계가 탄생한 거잖아? 따라서 정확한 우주의 형태는…….”
그는 동그라미 2개를 맞붙였다.
눕힌 8자의 형태였다.
“이렇게 되는 거야. 이걸 뫼비우스 띠라고 부르지. 그리고 이 2개의 세계를 연결하는 것이 바로 다중 우주 연산장치인 신이야.”
손을 내린 자드가 말을 이었다.
“다중 우주의 입장에서 이곳은 가장 먼 미래일 테지만, 우리에게는 다중 우주가 미래야. 내가 다중 우주에 접속해서 꿈을 꾸는 거니까. 즉 원인과 결과, 인과율 또한 서로 뒤집어진 상태라는 거야. 이런 상태에서 두 세계를 연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쿠안은 알 것 같았다.
“역행.”
“그래. 시간을 거꾸로 처리해서 인과를 연산하는 거야. 이런 식으로.”
자드는 허공에 뫼비우스 띠를 그렸다.
“이제 알겠나? 본래 바깥 세계와 다중 우주는 정보 교환이 불가능해. 설령 신을 매개로 한다고 해도 시간이 거꾸로 연산되지. 하지만 자네는 달라. 차원을 뛰어넘어 여기에 온 거라고. 이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자네조차 알지 못할 거야. 그러니 나와 함께…….”
그때 센터의 문이 열렸다.
“저기다! 체포해!”
슈트로 무장한 트리니티 요원들을 본 자드가 황급히 두 손을 내밀었다.
“잠깐! 안 돼!”
“무슨 소립니까? 저 녀석은 트리니티에게 치명상을 입혔어요! 라그랑주 헌법에 살인 행위는 가장 큰 중죄라는 거 알고 계시잖습니까!”
“멍청하긴. 그게 문제가 아니야!”
오늘의 사태를 기점으로, 라그랑주 헌법은 대대적으로 수정이 될 터였다.
물론 요원들이 물러설 수 없는 이유도 있었다.
바깥 세계에서의 죽음은 진정한 소멸, 그런 곳에서 동료가 칼을 맞은 것이다.
마치 나를 죽인 듯 화가 났다.
“개 같은 자식! 우리에게 이런 짓을 해 놓고도 네 세계가 무사할 것 같으냐?”
“호오?”
쿠안은 천천히 돌아섰다. 그리고 고개를 좌우로 꺾으며 그들에게 향했다.
“무사하지 않으면?”
엄청난 살기에 요원들이 물러섰다.
하지만 그들 또한 라그랑주의 군인이었다.
“전원 공격. 죽여도 좋다.”
“그만두세요.”
반대편 문에서 소녀가 들어왔다. 연두색 피부에 검은 눈을 가진 개체였다.
요원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너희들이…….”
소녀의 뒤에는 거구의 남자, 개미를 닮은 청년, 한쪽 다리가 기형인 소년이 있었다.
요원이 말했다.
“에스카니아, 네가 나설 자리가 아니다. 고위 가문이라고 해도 너희들은 정식 주민이 아니야. 방해하면 헌법에 따라 체포하겠다.”
“아뇨. 틀렸어요.”
에스카니아는 어깨의 배지를 가리켰다. 라그랑주를 상징하는 문양이 보였다.
“이제 우리도 정식 주민이거든요.”
“그게 무슨…….”
요원들이 진위를 파악하기도 전에 에스카니아와 친구들이 좌우로 물러섰다.
순백의 로브를 입은 흑발의 미청년이 차분하게 걸어왔다.
자드의 표정이 멍해졌다.
“카, 카이 루트?”
그가 이곳에 있다는 건 징벌이 끝났다는 뜻.
그 사실을 증명하듯 왼쪽 가슴의 배지에 루트 가문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1만 회를?”
카이는 말이 없었다. 조금 전 어머니와 나눈 마지막 대화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카이.”
급속 윤회를 끝마친 카이는 지도자의 옷을 입고 스스야에게 다가갔다.
“미안하다.”
그녀는 수면 장치에 들어가 있었다.
지도자는 1명이기에 카이를 제외한 루트 가문은 영면에 들어야 한다.
수명이 다하면 죽을 것이다.
만약 지도자가 부재하면 다시 깨우게 되지만, 모든 개체가 사망했을 경우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이용해 부족한 개체 수를 채우게 된다.
“너에게 너무 큰 짐을 지웠구나. 이 어미를 용서하지 마라. 다 내 잘못이야.”
“어머니.”
카이가 물었다.
“왜 저를 낳으셨어요?”
라그랑주 문명에 인구는 충분히 많다.
우주가 넓어도 결국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개체 수를 늘리는 건 위험했다.
스스야는 희미하게 웃었다.
“나도 몰라.”
“…….”
“그런 걸 생각했다면 낳지도 않았겠지. 유일하게 아는 건, 엄마와 아빠는 너무 사랑했고, 그래서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다는 거였어.”
스스야는 눈을 감았다.
“너를 낳고 싶었다. 다른 이유는 없어.”
카이는 입술만 움직여 웃는 표정을 지었다.
윤회를 끝낸 지금은 알 수 있었다.
“카이.”
그녀가 다시 눈을 떴다.
“라그랑주 문명은 인간을 중심으로 진보할 수 있는 최대치에 도달했다. AI 특이점을 이겨 내고, 우리가 우리 손으로 개척한 우주야.”
“알아요.”
“생명은 소모하는 존재지. 우리는 우리가 고갈되기 전에 개체 숫자를 제한시켰지만, 이제는 그것마저 삐걱거리는 시대가 오고 있어.”
다중 우주를 통해 공겁으로 파고들어도 바깥의 시간은 똑같이 흐른다.
라그랑주의 시한폭탄이었다.
“급속 윤회에서 깨달은 것은 묻지 않으마. 어차피 설명할 수 없는 것이겠지. 중요한 건 이제부터 네가 라그랑주의 지도자라는 거야. 정식 주민이 아닌 너를 지도자로 세우려고 했던 건, 이 낡은 시대에 새로운 생각을 불어넣기 위해서다. 너의 생각을 관철시키렴.”
카이는 그녀의 말을 곱씹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어머니.”
라그랑주 문명을 상징하는 생명주의는 그를 통해 꽃을 피울 것이다.
회상에서 벗어난 카이가 말했다.
“쿠안 씨와 할 얘기가 있습니다. 다들 자리를 피해 주시죠. 트리니티도.”
요원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배지가 있으니 그가 지도자일 테지만, 상식적으로 황당한 일이었다.
“여태까지 급속 윤회 1만 회를 성공한 사람은 없습니다. 혹시 부정한…….”
“제이거.”
카이의 눈빛이 번뜩였다.
“루트 가문은 위증하지 않는다. 죽음으로 명예를 증명하는 우리를 모독하는 것인가?”
“그, 그건…….”
오래전에 AI 특이점이 있었다.
강인공지능은 인류에게 영생을 주었으나 또한 그 기술로 생명을 대체하려 했다.
그때 한 인간 그룹이 나섰다.
그들은 영생을 거부하고 기꺼이 죽음을 택함으로써 기계의 철학을 반박했다.
그렇게 시작된 뿌리.
그렇게 이어진 라그랑주 문명이었기에 제이거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가자.”
“하지만 팀장님.”
“저분이 생명의 대표다. 그걸 부정하는 건 우리의 영생마저 부정하는 거야.”
반박할 수 없는 사실 앞에서 요원들은 결국 팀장을 따라 센터를 나섰다.
둘만 남은 자리에서 카이가 말했다.
“인사부터 드리죠. 카이 루트라고 합니다. 오랜만이군요, 파르카 쿠안 씨.”
“날 아나?”
“하하.”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에게 목을 잘린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
1프레임이 넘어갔다.
제르비스의 몸에 수백 회의 타격이 가해지면서 내장이 파열되었다.
“커……헉!”
흰자가 드러난 제르비스는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였고, 본능적으로 공겁을 일으켰다.
모든 사건이 망상으로 전환되면서 부활한 제르비스가 땅바닥에 엎드렸다.
“크악! 크악!”
거친 숨을 토해 내는 동안, 위저드는 주먹을 뻗은 자세를 고수하고 있었다.
동공이 완전히 열려 있었다.
‘뭐지?’
이 기억은?
어쩌면 최초, 적어도 광자계에 있는 사람 중에서는 그녀가 처음이었다.
설명하기는 아주 어렵다.
하지만 하려고 들면 못 할 것도 없을 만큼, 그녀는 정확하게 이해한 상태였다.
‘이것이…… 초공.’
웨나 위저드.
무상신의 경지에서 무한무의 실체를 깨닫다.
아직 남아 있는 것 (3)
***
폭탄의 카운트가 올라가고 있었다.
에이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후반부로 넘어갈수록 게임의 진가가 드러나는 듯했다.
‘571초에서 603초 사이.’
기폭 타이밍이 500초를 넘어서면 오차 범위는 더욱 커지게 된다. 3개의 톱니바퀴가 최소 3사이클 이상을 돌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이클이 늘어날수록 톱니의 형태를 더 정확히 상상할 수 있을 테지만, 이 게임의 함정은 그때까지 버틸 수 없다는 데에 있었다.
571초의 위력이라면 어디에서 터지든 몸통까지 날아갈 정도의 위력일 터였다.
‘톱니바퀴는 3개. 톱니의 개수는 6, 8, 13이거나 9, 11, 15. 아니면…….’
여태까지의 정보로 대충 가닥을 잡았지만 경우의수는 4개가 넘었다.
‘이번 판은 안 돼.’
에이미는 머리 위에 떠 있는 폭탄을 보았다. 어느새 200초가 넘어가고 있었다.
여기서 터트려야 할까?
사지 중 하나는 날아갈 테지만 목숨이 붙어 있다면 한 턴을 더 버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