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312
반대로 시간을 끌다가 예측이 어긋나면 그녀나 성음, 둘 중 1명은 죽는다.
이사칼이 말했다.
“뭐야? 진짜로 해 보려고? 시간이 지날수록 위력은 세지는데? 과연 정답일까?”
“닥쳐.”
에이미는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결국 폭탄을 종아리에 붙였다.
“기폭.”
213초에서 폭발이 터졌다. 폭발의 위력에 그녀가 벽 쪽으로 날아갔다.
“흐으으으!”
벽에 등을 기댄 에이미는 다리를 살폈다. 무릎 위쪽까지 소실된 상태였다.
파열된 곳에서 피가 철철 쏟아졌다.
이사칼이 깔깔 웃었다.
“어머나, 이제 어떡하지? 걸을 수도 없겠네?”
에이미는 응급치료를 했다.
윗옷을 벗어서 길게 찢은 다음 사타구니 쪽을 묶었다. 이빨까지 사용해 강하게 당기자 출혈이 조금씩 잡혔다.
“하아.”
고통의 탄식을 토해 낸 에이미는 주저앉은 상태로 성음을 바라보았다.
‘이걸로 된 거지?’
저번 판은 성음의 턴이었고, 그녀는 10초 룰이 끝나자마자 이동시켰다.
어차피 이사칼에게 넘길 수는 없으니 에이미에게 선택권을 준 셈이었다.
그리고 이제 에이미의 턴이었다.
폭탄이 등장하고 태엽이 돌아갔다. 에이미는 대략적인 시점을 파악했다.
‘짧다. 67초에서 90초 사이.’
1사이클 안에서 정해지는 것이기에 그만큼 오차 범위를 줄일 수 있었다.
‘당할 수만은 없지.’
에이미가 이사칼을 보며 말했다.
“아, 몰라. 찍어. 이건 69초야. 60초에 보낼 거니까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해.”
“호호! 그러든가.”
카운트가 올라가고. 에이미는 말한 대로 60초에 폭탄을 붙잡고 말했다.
“이동.”
이사칼에게 폭탄이 옮겨졌다.
여전히 눈웃음을 짓고 있었으나 그녀의 속마음은 달랐다.
정확한 기폭 시점은 67초. 따라서 이사칼은 반드시 폭발에 당할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찍는다고? 동료가 당할 수도 있는데? 짜증 나게 하네, 진짜.’
위력이 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실패한다고 해도, 적어도 죽지는 않는다. 이제 손가락 몇 개 날아가는 것쯤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아아! 씨!”
67초가 되자 이사칼의 어깨 뒤쪽에 폭탄이 설치되었다.
펑 소리를 내며 살점이 터졌다.
“꺅! 아파! 아프다고!”
남이 당할 때하고는 달리 그녀는 호들갑을 떨며 제자리에서 쿵쿵 뛰었다.
꽤 심한 파열상이었다.
에이미가 핏기 없는 얼굴로 웃었다.
“하하, 꼴좋다. 앞으로 기대해. 오차 범위는 상당히 좁혀졌으니까.”
“끄어어어!”
이사칼의 목에 핏대가 섰다. 그러다가 에이미를 노려보았다.
“너! 이 싸구려 같은 게!”
실제로 이건 위험했다.
에이미가 아군의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오차 범위 안에서 기폭 시점을 찍는다면, 이사칼이 당할 확률도 비로소 생기게 되는 것이다.
‘더 끌면 안 되겠어.’
그러는 와중에도 폭탄은 다시 탄생했고 여지없이 태엽이 돌아갔다.
끼릭. 끼리릭. 끼릭.
고개를 숙인 이사칼의 눈이 크게 뜨였다.
‘711초.’
치사 카운트였다.
***
“네가 하비츠라고?”
카이의 말을 듣고도 쿠안은 담담했다.
그렇다면 조금 전 4명은 구스타프 4기예.
외모는 전혀 달라도 당시를 떠올려 보니 확실히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미싱 링크가 약한 상태로 접속했기에 현실의 성향이 반영된 모양이었다.
반면 카이는 달랐다.
하비츠 같지 않다는 게 아니라, 그보다 훨씬 깊은 영역으로 들어간 느낌이었다.
카이가 쿠안의 손을 보며 말했다.
“검, 들지 않는군요. 사실 각오하고 있었거든요. 휘두르면 어쩔 수 없다고.”
“벴을 거다.”
쿠안은 검을 검집에 넣었다.
“네가 조금이라도 적의를 보였다면. 그때는 나도 판단할 여유가 없을 테니까.”
“과찬이십니다.”
“흥. 서두를 것 없어. 널 싫어하는 놈은 내 세계에 널리고 널렸으니까.”
카이는 살며시 시선을 내렸다.
1만 회의 급속 윤회에서도 하비츠로 살았던 꿈은 조금도 희석되지 않았다.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도.
“위저드는, 잘 지내고 있나요?”
“그 꼬맹이? 글쎄. 별 관심은 없지만, 이리저리 힘든 거 같더군. 네가 보인다나.”
정신착란이라고 했다.
“……그렇군요.”
카이의 눈에 담긴 복잡한 감정을 읽은 쿠안이 물었다.
“궁금하면 직접 보면 되잖아?”
이제는 볼 수 있다.
끝없는 윤회 속에서 그를 붙잡아 준 여자가 눈앞의 화면 속에 있는 것이다.
카이는 자드의 자리로 돌아섰다. 버튼만 누르면 신호는 이미지로 변할 것이다.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버튼으로 향하는 손끝이 떨렸다.
순간 최후의 전쟁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다.
-너를 범할…….
‘큭.’
트라우마에 눈이 질끈 감겼다. 근위축증처럼 버튼 위의 손이 구겨졌다.
‘안 돼.’
그녀를 볼 자신이 없었다.
결국 카이는 포기하고 다시 돌아섰다.
그들의 문제였기에 쿠안도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할 얘기가 뭐야? 그게 전부라면 돌아가고 싶은데. 아내가 기다려서.”
카이는 씁쓸하게 웃었다.
차원을 초월해서 라그랑주에 왔는데도 약간의 호기심 정도가 고작이라니.
‘하긴, 그렇기에 넘은 거겠지.’
언제라도 오갈 수 있다면, 바깥 세계가 시이나보다 중요할 이유가 없었다.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제안?”
카이가 센터를 돌아보며 말했다.
“라그랑주 문명은 아이를 낳지 않아요. 개체 수를 늘릴 수 없기 때문이죠. 지금도 우주는 충분히 넓지만, 이건 극한과 무한의 문제예요. 물질은 무한하지 않고, 따라서 언젠가는 우리도 사라질 겁니다.”
“그래서?”
“오래전에, 인공지능 특이점이 있었어요. 텔로미어 기술을 통해 인간은 영생과 젊음을 얻었죠. 하지만 기계는 인간의 신체 구성을 납득하지 못했습니다. 약한 내구력, 어떤 자극에도 쉽게 질려 버리는 뇌. 결국 인공지능은 모든 생명을 기계로 대체하기로 했죠.”
대기 화면에 라그랑주 마크가 떴다.
“우리 조상인 루트 가문은 노화를 받아들이고 영생을 거부하는 것으로 기계의 철학을 논파했습니다. 생명의 존재 의의는 삶이 아닌 죽음에 있다는 것을 몸소 실천한 거죠. 기계는 반박하지 못했습니다.”
카이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루트 가문은 영생하지 않아요. 인간의 수명 그대로를 살고 죽죠. 이 규칙을 어기면 기계는 다시 인간과의 논리 대결에서 승리하게 되며, 모든 생명을 기계로 대체할 겁니다. 루트 가문 또한 변심을 막기 위해 1명의 지도자를 제외한 모두가 수면 캡슐에 있죠. 수명이 다할 때까지 잠을 자다가 떠나는 겁니다.”
바깥 세계도 복잡하다고, 쿠안은 생각했다.
“유일한 지도자는 다중 우주를 관리해요. 프로그램 개발, 인가, 밸런스, 세부 규정 등 총괄적인 권한을 갖습니다. 그러다가 지도자가 죽으면 다른 루트 가문을 깨우거나 유전자 조합으로 개체를 만들어 냅니다.”
“결국 제물이군.”
“그런 셈이죠. 루트 가문은 전권을 갖지만,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결국 1명의 죽음을 기계에게 증명하는 것으로 모두가 영생을 누리는 거죠.”
쿠안은 알 것 같았다.
“체제를 바꾸고 싶다는 건가?”
“네. 모두 꿈에서 깨어날 겁니다. 부모님도요. 쿠안 씨의 세계처럼 서로 사랑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더 멀리 나아갈 겁니다.”
“하지만 고갈될 거라며? 인구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만 폭발적으로 늘어날 테지. 임계치까지 왔으니 아이를 낳지 않은 거잖아?”
“그렇죠, 지금까지는. 하지만 쿠안 씨가 이곳에 오는 것으로 상황이 변했습니다.”
“무슨 뜻이지?”
“라그랑주와 다중 우주가 조우했다는 것은 한 가지 가설을 증명하고 있어요. 진짜가 아닙니다. 물질도 에너지도, 사실은 착각이라면?”
카이가 말했다.
“애초에 우리는, 존재한 적이 없었다면?”
‘없다.’
위저드가 깨달은 무한무의 정의였다.
‘우주는…….’
단 한 번도 탄생한 적이 없다.
따라서 공간도 시간도 없으며, 그 안에 담긴 이야기도 존재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이곳에서 제르비스와 싸우며 이런 생각을 하는 위저드는 누구인가?
‘아아.’
눈물이 차올랐다.
‘그렇구나.’
무한무의 공백을 느껴 본 적이 있는가?
어떤 이야기도 담기지 않은 그 공백 속에서…….
‘가능성.’
가정만이 끝없이 흐르고 있을 뿐이다.
“네. 우리는 존재한 적이 없어요. 한순간도.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카이가 말을 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의문을 갖죠. 우주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우주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가? 아뇨, 그런 일은 벌어진 적이 없습니다. 사실은 어떤 것도 탄생한 적이 없고, 오직 그런 상태만이…….”
“가장 자연스럽지.”
쿠안도 죽음을 넘어 고차원 벌크에 닿았기에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네.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오히려 괴상한 일이죠.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면, 신은 누가 창조했을까요? 그 신을 창조한 신은? 결국 무한의 역설이에요. 아무것도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겁니다.”
무(無)조차 없는 무(無).
카이는 이 상태를 이렇게 정의한다.
있었던 적이 없다.
“만약.”
가정법이다.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무언가 생길 수도 있다고 가정하면 어떨까요?”
비록 가정의 주체는 없지만.
“만약, 거기서 우주가 만들어졌다면? 물질이 있다면? 유기체가 결합된다면? 시간을 인지하는 종이 탄생한다면? 그리고 마침내 인간이 되어…….”
즉, 카이가 되어.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거라면, 저는 존재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착각일까요?”
“착각이지.”
카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정은 실현될 수 없어요. 제가 상상하기에 주체가 있는 것처럼 느끼지만, 실제로는 무한무의 끝없는 가능성 중의 하나일 뿐인 거죠. 결국 이 세계는 존재하지 않고, 우리 또한 공(空)이다.”
부처의 궁극.
“하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진실이기에, 우리는 존재한다고도 볼 수 있다는 건가?”
야훼의 궁극.
“맞습니다. 착각으로 존재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무한무에는 엄청난 가능성이 있어요. 그리고 만약, 또 가정이지만, 그곳에서 주체를 가질 수 있다면, 즉 자신의 의지로 되돌아올 수 있다면…….”
이번만큼은 쿠안도 머리가 찌릿했다.
“인류는 다중 우주 시스템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멀리 갈 수 있을 겁니다.”
무한을 넘어.
아직 남아 있는 것 (4)
“크아아아!”
괴성을 들은 위저드는 고개를 들었다. 제르비스가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무상신.’
태아의 화신이 피어오르더니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위저드가 모습을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