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313
정확히 말하자면, 어디에도 없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끝까지 확장시켰을 때 그 너머에 있는 공(空).
무한무란 그런 것이다.
무언가를 가정할 주체도 없고, 어떤 일이 벌어질 가능성조차 없는 상태.
그런데…….
‘만약.’
비록 주체는 없지만, 어떤 것이 가정된다고 가정하면 어떻게 될까?
그것 또한 무한무일 것이다.
따라서 가정을 할 주체가 있든 없든, 결국 그런 가정으로 귀결되는 것이라면.
‘나.’
무한무에서 한 소녀가 자신의 존재를 인지했다고 가정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위저드.’
만약 거기까지 가능하다면, 위저드가 무한무에서 처음으로 관측한 것이…….
“우와.”
폭포수가 빛에 산란하고, 성인(聖人)들이 무지개 위를 걷는 천공 섬이라 해도.
그리 큰 착각은 아니지 않을까?
“아아.”
위저드는 전율했다.
성스러운 광경이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정확히 망막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래서 마치 머릿속에 떠오른 듯했다.
빛에 휩싸인 부처, 우주에 누운 비슈누, 미소를 짓는 성모, 보석으로 치장한 가네샤, 거대한 뱀, 번개의 신, 천공 섬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야훼의 실루엣…….
인간이 가정할 수 있는 모든 성스러운 느낌들이 하나의 풍경으로 겹쳐 있었다.
위저드는 무엇을 보았는지 깨달았다.
‘신(神).’
어떤 신도 아닌, 신들도 아닌, 그저 개념적인 신이 눈앞에 투영되어 있는 것.
그때 천공 섬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내려오시죠.”
“어라?”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풍경이 망막 밖으로 넘어가면서 가까워졌다.
마치 한 폭의 그림 속으로 들어간 듯했다.
도착한 곳은 햇살이 바르고 바위틈으로 작은 폭포가 흐르는 숲이었다.
강철 같은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가 바위에 앉아 새를 만지고 있었다.
“혹시?”
위저드는 퍼뜩 깨달았다.
키는 인간보다 컸고, 날카로운 눈매에서 힘이 느껴지는 인상이었다.
새를 날려 보낸 그가 다가왔다.
“네. 거핀이라고 합니다. 시로네의 아빠죠.”
위저드는 멍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다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안, 안녕하세요.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러니까, 스승님의 제자…….”
“알아요. 웨나 위저드.”
거핀이 숲의 정경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언젠가는 올 줄 알았어요. 누군가는. 마음이 이어지는 한 인간은 끝없이 나아갈 테니까요. 그래도 놀랐습니다. 초공의 성질을 다루다니.”
위저드는 수줍게 시선을 내렸다.
“헤헤, 아니에요. 사실 제가 좀 특이체질이라.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어요.”
“겸손할 필요 없어요. 당신의 무상신은 신격에 올랐습니다. 대단한 일이죠.”
위저드는 기분이 좋았다. 그녀가 신이 되었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의 능력이기에 돌아갈 수 있고, 거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싸우러 갈 건가요?”
1프레임 전의 상황을 떠올린 위저드가 말했다.
“네. 좀 두들겨 패야 할 사람이 있어서요, 하하! 아, 죄송. 불경하게…….”
거핀이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요. 이제는 당신도 신이 무엇인지 알고 있잖아요. 그런 게 아닙니다.”
거핀은 존재하는가?
아니다.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이 가정하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위저드는 얼마 전 시로네에게 들은 얘기를 떠올렸다.
“저기…….”
어떤 책임감이 느껴졌다.
“이카엘 씨 말인데요. 많이 그리워하시는 거 같아요. 뭔가 전할 말씀이라도?”
“만나게 될 겁니다.”
거핀이 말했다.
“당신이 왔다는 건 인류의 사고가 무한무까지 확장되었다는 뜻이겠죠. 그리고 인간은…….”
늘 그랬듯이.
“자신의 생각을 실현시키니까요.”
위저드는 안도했다. 스승님에게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네. 그럼 가 볼게요.”
“위저드.”
거핀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의 투기에서 시로네가 보이는 듯했다.
“할 거면 화끈하게. 알죠?”
위저드가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옛썰.”
깔끔한 1프레임.
위저드의 어퍼컷에 제르비스의 이빨이 마치 팝콘처럼 허공으로 튀었다.
“흐이이이!”
입술이 피로 시뻘겋게 변한 제르비스가 온몸을 떨며 고함을 질렀다.
“왜, 왜!”
본체의 의식이 없어서일까, 제르비스는 전에 없던 속마음을 토해 냈다.
“내가 뭘 어쨌다고! 너희들이 나에 대해 뭘 알아? 내 인생을 어떻게 알아!”
위저드는 화신술을 발동했다.
“하아.”
또 시작이네.
1프레임 단위로 연달아 소실시키자 눈을 깜박이듯 위저드가 점멸했다.
사방에서 무상신이 피어오르고, 제르비스의 몸이 군데군데 부서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항거할 수 없는 능력 앞에서 악을 지른 제르비스의 얼굴에 핏줄이 일었다.
“가만두지 않아! 네 사지를 찢어 주마! 죽여 달라고 애원할 때까지 고문해 주마!”
위저드는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래, 아직 덜 맞았지?”
다음 순간 제르비스의 턱이 돌아가고, 팽이처럼 그의 몸이 회전했다.
“크아아아!”
제르비스는 허공에 정지했다.
살의의 충동에 온 세계가 흔들리고 있었다.
“죽여 버릴 거야! 널 씹어 먹어…… 컥!”
그녀의 발이 제르비스를 밀어내자 빨랫줄처럼 쭉 하고 그가 멀어졌다.
위저드가 뒤를 쫓았다.
‘나도 여자거든?’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가슴이 떨리고, 연약한 척도 하고 싶은 소녀였다.
‘그냥 마법학교 학생이라고. 무슨 사지를 찢겠다느니, 씹어 먹겠다느니.’
누가 더 강하고, 누가 이기고.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면 된단 말이야. 왜 오라는 남자는 안 오고…….’
허구한 날 이런 인간들만 들러붙는 건지.
“아우! 내 팔자야!”
치솟는 짜증을 담아 제르비스의 옆구리를 후리자 갈빗대가 전부 부러졌다.
한 방, 한 방이 무상신이기에 제르비스의 본체에 가해지는 쇼크는 엄청났다.
“크아아아!”
제르비스는 포효했다.
살의에, 풍경의 색채마저 핏빛으로 변하는 듯했다.
“죽, 죽여. 널…….”
상체를 활짝 펼친 그가 위저드를 덮쳤다. 세상 전체로 짓누르는 듯했다.
“죽여 버릴 거야!”
동시에 위저드는 제르비스의 멱살을 붙잡았다.
이를 악문 그녀가 몸을 틀었다.
‘뭐래? 이 시빡 새……!’
1프레임이 소실되고.
‘……끼가!’
쿵!
수직으로 내리꽂은 업어치기에 제르비스의 머리에서 수박 터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마치 탄성을 가진 것처럼 땅 위를 퉁퉁 튕기며 멀어졌다.
“하아. 하아.”
위저드는 무릎을 꿇은 자세 그대로 고개를 들어 전방을 노려보았다.
대자로 땅에 엎어진 제르비스가 경련을 일으키더니 결국 자취를 감추었다.
더 이상 사건은 초기화되지 않았다.
“하아, 끝났다.”
긴장이 풀린 위저드는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시로네가 다가와 어깨를 짚었다.
“축하해. 해냈구나.”
“스승님.”
“본능의 영역을 논리로 교체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 하지만 그것만이 기술이다.”
‘통달’이라 한다.
“이제부터는 너의 ‘일가(一家)’인 거야.”
하나의 능력을 극한으로 갈고닦아 수많은 재능들과 자웅을 겨루는 세계.
비로소 마법사가 된 기분이었다.
“감사합니다.”
미소를 지으며 일어선 그녀는 시로네의 뒤편에 있는 일행을 살폈다.
저 멀리 이카엘이 보였다.
‘무사하셨구나. 다행이다.’
빨리 좋은 소식을 전해 주고 싶지만 아직 상황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세인이 다가왔다.
“준동경계가 깨지지 않았어. 제르비스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뜻이겠지.”
시로네가 말했다.
“정신 충격만으로 사망시키기는 힘들어요. 게다가 앙케 라 프로그램이 적용되어 있다면 시스템으로 억제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고요.”
에덴이 물었다.
“제르비스가 받아들이면 어떡하지? 본체가 곧 앙케 라가 되는 거잖아.”
“일단 에이미 팀의 소식을 기다리자. 우리가 할 일은 제르비스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세계 각지의 천사를 파괴하는 거야. 그럼 굴종의 낙인도 사라질 테고, 울티마 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오겠지.”
미로가 하늘을 살피며 말했다.
“가올드의 파계도 망가뜨리는 게 고작이었어. 세계를 통째로 부수지 않고서야…….”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어.”
고개를 돌리자 한쪽 팔이 없는 리안이 반쯤 부서진 상태로 걷고 있었다.
시로네의 눈이 흔들렸다.
“리안, 너…….”
테스의 표정도 시로네와 다르지 않았다.
반면 리안은 태연하게 도착했다.
사람들의 표정을 살핀 그가 시로네를 돌아보며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그래서, 뭘 하면 되는데?”
***
폭탄의 카운트가 500초를 넘어갔다.
이사칼이 말했다.
“서로 작별 인사라도 하는 게 어때? 이것도 지루해져서, 끝낼 생각이거든.”
에이미가 고개를 들었다. 폭발의 충격으로 눈빛이 퀭한 상태였다.
“무서운 거겠지. 내가 찍기 시작하면 너도 당할 확률이 생기니까. 한심한 겁쟁이.”
“마음대로 생각해. 어차피 생명 줄은 내가 잡고 있으니까. 자, 누굴 죽여 볼까?”
“흥, 뜻대로 될 거 같아? 이번 태엽은 꽤 복잡하거든. 계산 잘못하면 죽는 건 너야.”
“그럴 리가.”
웃고 있는 이사칼의 눈빛이 깊어졌다.
실수를 할 리는 없지만 700초짜리 위력인 이상 확실히 해 두는 게 좋았다.
‘태엽이 돌아간 횟수는.’
당시의 소리를 통해 확인한 그녀는 세 가지 형태의 톱니바퀴를 접목시켰다.
‘작은 태엽이 한 바퀴를 돌 때 중간 태엽은 2.4배를 돌고, 가장 큰 태엽이…….’
거기서 다시 톱니의 중간에 이빨이 빠진 것을 적용해서 방정식을 만든다.
그것을 세 번이나 되풀이한 이사칼은 비로소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역시 711초였다.
그래도 불안한 게 사람의 심리인지라 그녀는 확실한 타이밍을 정했다.
‘691초에 이동시키면 10초 룰 안에 성음을 지나 에이미까지 포함된다. 하지만 이건 좀 찜찜하니까 약간 밀어서 692초. 이러면 안전해.’